5. 사모곡
5. 사모곡
그 일은 그리 멀지도 않은 얼마 전의 일이었으나 칠복이의 가슴 속에는 아주 오래 묵은 이야기와 같이 기억 저편에서 떠올릴 때마다 아스라이 먼 듯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짠 바닷물을 코로 들이마신 것처럼 코가 막히고 비릿한 내음이 콧속 점막을 콕콕 찔러대는 것만 같은 싸아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 비릿한 아픔은, 아무리 피곤한 끝의 잠이라고 해도 잠시라도 어른거리며 칠복이의 영혼에 머물다가 눈물과 콧물을 받아내고는 제곳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칠복이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는 질깃한 영혼의 족쇄였으며 독한 아픔이었다. 그 질깃한 아픔은 칠복이의 육신과 영혼을 발가벗겨 놓고 차디찬 동토의 땅으로 내어 몰았다. 칠복이는 거기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슬픔과 절망 그리고 분노라는 예리한 얼음장에 의해 살이 저며졌다. 저며진 살이 한 포 한 포 떠지는 동안, 추위와 살을 저미는 아픔으로 그의 영혼은 서서히 죽어갔다. 영혼의 뿌리까지 흔들리는 몸살을 앓고 나서 눈을 뜨면 아침이 되었다.
칠복은 김천과 가까운 신암에서 살았다. 강원도를 지난 백두대간이 남도 쪽으로 방향을 틀며 뻗어나가는 중간에 추풍령이 있다. 추풍령을 지나며 백두대간은 지리산을 종점으로 끝나게 되는데 추풍령은 남도와 강원도를 이어 주는 백두대간의 중간역과 같은 지정학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 신암은 추풍령의 높은 산세를 끼고 낙동강이 돌고 나가는 곳으로 낙동강 지류와 멀지 않은 곳인데 산도 깊고 계곡도 깊었으며 낙동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어김없이 평지가 만들어져있었고 넉넉한 물줄기로 인하여 기름지고 너른 평야가 만들어졌다. 산에는 철따라 약초와 나물이 지천으로 깔렸으며 산짐승도 많이 나왔다.
칠복이의 부친은 성품이 부지런하고 야무졌으며 매사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대대로 물려온 세마지기의 논농사를 지으면서도 밭을 개간했고 약초를 캐서 장에 나가 팔았다. 칠복이의 부친은 열심히 일을 해서 논을 다섯 마지기로 늘리는 것이었는데 논을 늘리기 위해서 돈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해냈다. 칠복이의 모친은 남편의 부지런함에 덩달아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몸이 야실한 모친은 언제나 힘에 부쳐했다.
그러니까 칠복이 나이 11살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해의 봄이었다. 무쇠토막 같던 칠복이의 부친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그해를 며칠 안 남긴 깊은 겨울에 장판에 벌겋게 각혈을 쏟아내곤 영원히 눈을 감았다. 병명은 폐결핵이라 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 전국의 전역을 휩쓸었던 폐결핵은 난치병에 속했고 전염병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격리수용이 원칙이었으나 당시의 행정력은 산골 깊숙이까지 미치지 못했다. 칠복이의 부친은 부인의 품 안에서 고이 잠들었다.
부친을 장례지내고 난 이듬해에는 홀시아버지로 외롭게 지내던 칠복이 할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더니 자리보전을 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그예 가을의 문턱에서 세상을 떠났다. 불과 만 1년이 채 못 되어 남편과 시아버지를 장사 치룬 모친은 망연자실하여 넋을 놓았다. 그녀의 나이 불과 33세 때의 일이었다. 시아버지를 장사지내고 난 후, 칠복이의 큰 아버지는 가산을 정리하여 김천으로 내려와 살도록 종용했고 모친이 넋을 놓고 있는 동안에 등기를 자신의 앞으로 해 놓았다.
어머니는 달구지에 얼마 되지 않는 가재도구와 침구를 쟁여 싣고 김천으로 떠나기 전에 정든 집을 보며 서럽게 울었다. 칠복이 아래로 여동생이 있었는데, 칠복과 여동생은 달구지 뒤에 앉혀졌고 어머니는 달구지를 따라 하늘이 텅 빈 길을 걸었다. 어머니는 걸으면 걸을수록 자신에게 닥친 이 어이없는 현실에 머릿골이 울리는지 하늘을 우러러 보았고 그 때마다 앙다문 입을 비집고 잇 사이로 비릿한 울음이 비어져 나왔다.
마침내 김천에 도착한 일행은 김천 변두리 자그만 단칸방에 가재도구를 풀어 놓고 타지 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너른 집에서 살다가 움막 같은 단칸방에 세 식구가 모여 살게 되니 가재도구 사이로 남은 공간은 운신할 폭도 없어 칼잠을 자야만 했다. 어머니는 밤새 서럽디 서른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다음날 아이들 아침을 힘겹게 해 주고 난 뒤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중에 큰 아버지와 큰 엄마가 부엌살림 몇 가지와 양식을 가지고 왔다. 석유곤로라고 하는데 부엌살림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며 큰 아버지는 호기롭게 석유곤로를 내어 놓았다. 처음으로 본 석유곤로는 마냥 신기하기만 한 것이다.
큰 인심을 쓰듯 내어 놓은 석유곤로에 눈길을 주고 있던 어머니는 큰 아버지의 말에 깜짝 놀라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 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직 무덤에 흙도 마르기 전인데 큰 아버지는 어머니의 재가를 슬며시 권하고 있었다. 죽은 동생과 아버지의 남긴 유산은 자신의 앞으로 등기를 이전해 두었으니 칠복이와 누이동생 칠순이 걱정은 말라고 힘주어 말하는 시아주버니 얼굴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가에 한 순간 섬뜩한 기운이 지나갔다. 큰 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뒤에 며칠 동안을 울며 칠복이와 칠순이를 어쩌지 못하는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던 어머니는 때도 거르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큰 아버지가 얻어 준 단칸방에는 죽음보다 더 진득한 슬픔과 자조 그리고 절망이 둘려 있었다. 사흘 동안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망연자실해 있던 어머니는 사흘이 지난 이른 아침에 칠복이와 칠순이를 일으켜 세워 세수를 시켜 주고 고운 옷으로 입혔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큰 아버지 집에 도착한 칠복이와 칠순이는 뜨악스러운 표정으로 맞이하는 큰 어머니와 큰 아버지의 굳은 얼굴 표정을 보고 안절부절 못하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방안으로 들어간 어머니는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에게 칠복이와 칠순이를 가리키며 서울에 가서 돈을 벌어 올 동안 잘 맡아 키워달라는 말을 꺼내며 슬피 울었다.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입술을 질끈 물으며 그러마 했고 어머니는 칠복이와 칠순이를 잠시 껴안고 서럽디 서러운 눈물을 흘리다가 입술을 앙 다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섬칫한 파란 광채가 어머니의 눈에서 흘러 나왔다가 스러져 갔다. 어머니는 눈물을 닦고 댓돌에 놓인 신을 신고 어머니를 따라 나온 칠복이와 칠순이 손에 지전을 들려주며 간신히 말했다.
“칠복아 칠순이 잘 데리고 있어야 한다. 이 돈은 절대로 쓰지 말고 가지고 있다가 입술에 피가 맺히도록 어려운 일이 생기면 쓰거라. 칠순이 몸이 약하니 칠순이가 해야 할 일도 칠복이 네가 해 주어야 한다. 알아들었느냐?” 어머니는 몇 번이고 칠복이에게 다짐을 받고 나서야 간신히 발을 떼어 휑한 길로 스러져 갔다. 그렇게 떠난 어머니에게서는 명절이 지나고 해가 바뀌기를 몇 차례 하는 동안에도 연락이 없었다.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는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에 다니고 있던 칠복이와 칠순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칠복이는 새벽에 일어나 송아지에게 줄 쇠죽을 끓였다. 하루에 두 번 주는 쇠죽을 끓여 주기 위해 칠복이는 산과 들로 다니며 익숙하지 못한 지게를 지고 지게망태에 한 짐씩 꼴을 베어 날랐다. 칠순이는 청소와 빨래를 해야 했는데 학교에 다니고 있는 손위 사촌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했다.
큰 아버지는 3남 2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그 밑으로 고만고만한 연령대로 막내는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나무는 큰 아버지가 해 오고 있었고 나무를 하는 일은 칠복이에게 맡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네 사람들의 이목이 있어서 눈치를 보는듯 싶다.
불행은 엎친 데 덮치는 것인지, 어머니가 떠난 지 만 2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년이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4년이 되던 해에, 그러니까 김천 큰 아버지 댁에서 살기 시작한 2년 된 해 어느 날 칠순이 마저 이름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힘에 겨운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칠순이는 손 위 사촌들의 등쌀에 지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기에 지쳤다. 어머니를 꿈에서 본 날이면 칠순이는 끙끙 앓았다.
칠순이가 숨을 거두던 날, 칠복이 손을 잡고 칠순이는 겨우 말했다.
“엄니가 보고 싶어. 오빠”
뼈마디는 앙상하고 눈만 휘둥그레 컸던 어머니를 그대로 빼어 박은 칠순이는 아직 어머니를 기다리는 듯 사슴처럼 크고 속눈썹이 짙은 눈을 감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칠복이는 앙상한 칠순이 몸을 이리 저리 짓누르며 칠순이 덮고 잤던 이불에서 뜯어낸 무명천으로 질끈 뼈마디를 묶어 무명베옷으로 둘둘 말아 놓은 칠순이 시신을 붙잡고 힘없이 울었다.
칠순이의 시신은 얼기설기 생선궤짝처럼 속이 훤히 보이는 종잇장처럼 얇은 관속에 넣어지고 죽은 지 하루 만에 큰 아버지의 지게 위에 얹혀 한 많은 세상을 떠나 공동묘지에 묻히고 말았다. 칠복이 나이 13살, 칠순이 나이 겨우 11살이었다. 아직 슬픔의 무게가 주는 둔중한 맛도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실감도 못 느낄 나이에 칠복이는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었다. 1963년 가을이었다.
|
총신80회동문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