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상견례
40. 상견례
포도나무 줄기에 갈라진 틈은 없는지 줄기에 각질은 안 생겼는지 혹여 해충은 없는지 포도나무를 세밀히 살피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등줄기에서는 땀이 줄줄 흐른다. 포도 송이마다 종이봉지를 씌워 놓았는데 봉지와 포도 잎사귀 사이사이로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 포도넝쿨을 살필 때마다 여간 눈이 부신 것이 아니다. 밀짚모자를 쓴 채로 있는 대로 인상을 찡그려가며 눈자위를 좁혀도 찰나에 스치는 햇빛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잠시 눈을 껌뻑거리고 있는데 이장이 찾아 왔다.
“칠복이 전화 못 받은겨? 군청에서 연락이 안 된다고 내게 전화가 왔구먼”
“어서 오셔유 이장님, 그런데 뭔 전화래요?”
“경사가 났네, 자네가 신지식 농업인으로 이번에 도지사 상을 받게 되었다는구만 그랴”
“아이고 잘 못 들으신거유. 지가 뭐를 했다고 신지식인래유.”
“아녀, 아녀 싸게 군청에 전화를 넣어 봐아. 농업지도과장님이랴”
“그래유? 알았슈 일벙 전화 올릴께유. 고마워유. 이장님”
“아녀, 아녀 나도 덕분에 나발을 불게 생겼는디 얼매나 좋아. 우리 마을의 경사여 경사”
“이장님도 참 지가 고맙쥬”
칠복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건냈다. 이장은 얼마나 흥분되었는지 얼굴이 붉어져있다. 여기저기 부리나케 찾아 다녔던 모양이다. 까짓 방송으로 전달하면 되는 일인데, 일부러 찾아다닌 것을 보면 한 마디 공치사를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도지사 상을 수상한 주민이 나온 이장은 이장단 회의에 나가서 최소한 1년은 인사를 받게 되어 있다.
칠복이 전화를 연결하여 보니 농업지도과장이 들뜬 목소리로 축하를 하며 상세한 내용을 알려 준다. 대전에 있는 농촌진흥청에서 추천되었다 했다. 군수의 추천장이 필요하니 군수가 추천장을 도지사에게 보내라는 공문이 하달되어 온 군청이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이 기뻐했단다. 시상식 날짜와 시간을 통보하면서 군청에서 직접 직원이 버스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 모셔 갈 터이니 준비하고 있으라 했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오늘 새벽기도를 마치고 난 뒤에 선영이 넌지시 말했다.
“오빠 오늘 아주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뭔 소리여. 무신 좋은 일이 생긴다고 그려.”
“오빠가 티브이에 나오는 것을 봤어요. 아주 큰 대형 화면에 나왔어. 아주 근사한 모습으로 교수님으로 나왔어.”
“오늘은 좀 심하다. 내게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겠니.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
“제가 놀라서 주님께 여쭈어 보니 주님께서 제게 그렇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으으음, 그래. 그러면 그렇게 될 줄로 믿어요. 꽉 잡어 빨리 가게.”
칠복이 자전거 페달에 힘을 주었다. 며칠 전부터 선영은 칠복이 자전거 뒤에 방석을 깔고 그 위에 앉아 새벽기도를 다니고 있다. 방석을 깔았다고는 하지만 뒷길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비포장 길이라 울퉁불퉁한 곳이 많았다. 칠복이 주의를 하면서 자전거를 운전했지만 그래도 웅덩이가 있는 곳에는 돌이 튀어 나와 있기 마련이어서 웅덩이를 피하면 튀어 나온 돌을 거쳐야 했다. 이때마다 선영은 까르르 웃으며 여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 말도 없이 칠복이 등을 잡고 가다가 웅덩이나 돌에 걸려 덜커덩하면 그것이 빌미가 되어 대화꺼리가 만들어지곤 했다. 선영은 칠복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지극히 안정되어갔고 활기가 넘쳤다. 하루하루가 날마다 새로운 듯 그녀는 병을 떨쳐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처녀 때의 광채가 돌아오고 있었다. 여인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난 뒤, 선영은 모든 사물에까지 애정과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루의 시작은 새벽기도를 통해 시작했다. 새벽기도를 하고 돌아 올 때에는 은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영은 그 때마다 예견적인 이야기를 했다. 어제 아침에는 이렇게 말했다.
“오빠 오늘은 큰 쏘가리 3마리에 커다란 눈치가 2마리 잉어 한 마리가 보였어.”
“또 봤어? 당신은 보는 것도 잘 봐”
“그래도, 그대로 맞잖아요.”
“그러게 그게 신통방통한 일이야.”
그런데 그런 일이 매일 이어졌다. 새벽기도를 하면 그 날에 되어 질 크고 작은 일들을 다 보여 주시는가 보다.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칠복이 물어 보았다.
“그러면 당신 병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여 주시던?”
“오빠 그 기도를 하는데 주님께서 아직 때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슬퍼요.”
“때가 아니라구? 내가 기도하면 염려치 말라 완쾌되고 있느니라 하셨는데 이상타...”
“오빠 기도에는 그리 응답해 주셨어요? 아이 좋아라.”
“그나저나 때가 뭘 의미하는 것일까”
칠복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선영은 선영대로 그 때라는 것이 앞으로 아빠와 부딪쳐야 할 어떤 난관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에 착잡해졌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아꼈다. 다만 각자가 생각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서로를 걱정해 주며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의 걱정을 떠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선영이 부친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에서 일치하고 있었다. 이어 두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더욱 멋지고 복된 장래를 이룰 것인가,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대한 걱정이었는데 이 면에 있어서는 생각의 차이가 있었다. 칠복은 현 상태에서 발전을 도모하는 것으로, 선영은 유학까지도 포함하여 칠복이 상상을 못했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발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현재는 그만큼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차이가 두 사람의 나이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작용되고 있었다. 그것은 칠복이가 나이에서는 앞서나 선영은 현실에서 앞서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앞선 선영에게서는 최선의 방법이 나왔고, 경험에서 앞선 칠복에게서는 지혜가 나왔다. 이에 따라 어떤 문제가 되었던지 두 사람의 의견은 결국 일치가 되는 결론으로 똑 떨어졌다.
물론 삶의 양식에서도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박 칠복이 유학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나 선영에게 유학이란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처럼 삶의 양태가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하나의 삶의 영역으로 합해지니 사고의 방향성이나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설정하는 방식에서도 많은 차이점을 보였다. 칠복은 자신보다 훨씬 앞서 있는 선영의 현실적 선택에 감탄을 하면서 존중해 주었다. 선영은 선영대로 칠복의 묵직한 현실에 대한 경험과 사물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나오는 지혜를 존중해 주며 칠복의 가능성에 대해 주목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이 사람은 온달장군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커다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먼저는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슬픔에 대한 경험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으로 사람과 현실을 통찰하고 이해하는 깊이가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만한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박 초시와의 의리를 지켜냈다는 신실함과 고통을 이겨내고 오늘의 현실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남달랐다. 더구나 목사님을 통해서 칠복의 드러나지 않은 선행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에는 깊은 존경심이 일어났다. 교회를 통한 헌신과 봉사 외에도 힘겹고 어려운 이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했다. 목사님은 칠복을 장로 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했다.
딸기를 한 광주리 땄다. 딸기 아래에 스티로폴 작은 상자를 받치고 가위로 커트를 하는 방식으로 딸기를 땄다. 손으로 감싸듯 따게 되는 방식이 딸기를 빨리 따는 방식이나 그렇게 따면 사람의 손이 닿은 부분이 먼저 물러지게 되어 있다. 시간은 다소 걸려도 이렇게 따는 방식이 딸기의 부가가치를 높였다. 딸기는 생물이며 육질이 연약하여 보관에 상당한 애로가 있었다. 하여 딸기를 딸 때에는 살며시 잡고 재빨리 따내야했다. 그래도 유통하는 단계에서 손에 닿았던 곳이 먼저 물렀다. 칠복은 포도를 딸 때 사용하는 가위로 딸기의 줄기를 짧게 커트하고 스티로폴 박스를 받쳐서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수확을 했다. 고급딸기에만 적용하는 수확의 방법이었으나 모든 딸기에 적용했다. 자연히 손이 많이 가고 수확하는 시간은 많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 수확한 딸기는 유통 중에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탱글탱글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여 소비자의 손으로 옮겨져 먹는 이의 눈과 입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딸기를 적당량을 따고 첫물인 참외도 잘 익은 것으로 몇 개를 따서 자전거에 싣고 막 떠나려는데 확성기를 통해 이장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들려왔다. 내용은 칠복이가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되어 도지사상을 받게 되었으니 이는 우리 마음의 영광이요, 국가와 민족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일이라는 거창한 방송이었다. 물론 그 동안 마을 주민들의 소득증대와 농업의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 일구월심 힘쓰고 애를 쓴 결과로서 이장은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이 사실을 주민들께 알림으로 기쁨과 영광을 함께 한다고 했다. 칠복의 얼굴이 홧홧해지고 민망해진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는 주민들에게 인사와 칭찬을 받느라고 고생 아닌 고생을 했다.
“어머, 어머 세상에 우리 선생님이 도지사 상을 받게 되다니 이런 기쁨이 다 있네요.”
유모는 칠복이 들어오자 칠복을 안고 한 바퀴 돌았다. 선영은 선수를 빼앗겼다는 듯 서운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것 봐요 내 말이 맞잖아요. 하는 표정으로 칠복을 향해 신뢰의 눈길을 보냈다. 그 눈길에는 자랑스러움과 기쁨 그리고 환희가 넘치고 있었다.
“유모, 유모 이제는 내 차례야”
기회를 엿보고는 덥석 칠복에게 달려들어 안긴다. 뺨에 입맞춤을 하더니 입술에도 쪽 소리가 나도록 입맞춤을 하는구나. 두 사람은 칠복을 눈이 부신 듯 바라보았다. 선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더 크고 더 멋진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이따가 엄마가 오신대요. 박 반장님을 보고 싶대요. 호호”
“에크 이게 무슨 소리여. 이발도 못하고 준비도 못했는데 진작에 이야기를 해 줘야지 이걸 어떻게 하나”
잘 씻어 탱글탱글한 딸기와 이제 막 수확한 노란 참외를 깎아 놓고 한 입 먹는 중에 선영이 꿈을 꾸는 표정으로 말했다. 홍차에서는 한 줄기의 김이 천장을 향해 올라가며 홍차와 위스키의 향을 풍기고 있다. 안절부절 하는 칠복의 모습에 선영의 웃음보가 터졌다.
“걱정 마세요. 잘 꾸민 얼굴 보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편한 모습을 보러 오시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 지내는 것 엄마도 알고 계셔요. 좋다고 하셨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되어요.”
“저런 그런 이야기를 남사스럽게 어찌 했누. 민망해서 어머니 얼굴을 어찌 보라구.”
칠복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를 잘 짚어서 미리 말해 주는 선영의 배려가 눈부시게 곱다. 그래도 무척이나 긴장되고 겁이 난다. 싫다고 하거나 실망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받아 놓은 밥상이라는데,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 라는 심정으로 배짱을 끌어 올렸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그려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쩔겨. 배짱이 생긴다.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면 먼저 맞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래도 긴장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점심때가 가까워 선영 어머니가 도착을 했다. 모녀가 끌어안고 운다. 사람 꼴을 하고 있는 선영의 모습을 본 애실은 반갑고 측은하고 대견하고 미안해서 선희를 보자마자 품에 끌어안고 오열했다. 선영은 엄마를 보자마자 달려가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두 마리의 도베르만은 오래간만에 보는 주인이 아는 체도 안 해 주는 것이 서운해서 끄으응 끄으응 하고 울었다. 칠복은 일어서서 인사를 하긴 했는데 인사고 뭐고 두 모녀가 끌어안고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으니 그저 두 손을 비비며 어쩔 줄 모르겠다. 애실은 달라붙어 있는 선영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들어 올려 눈을 맞추었다.
“우리 아가 얼굴을 좀 보자꾸나. 많이 통통해졌네. 엉엉”
“엄마 엄마 보고 싶었어. 엉엉”
또 운다. 선희 뒤에 뻘쭘하게 서 있던 칠복은 자신의 얼굴을 스쳐가는 애실의 눈길에 어머나 뜨거라 하고는 다시 인사를 했다. 겨우 진정이 되었나 보다. 애실이 딸의 눈물을 닦아 주고는 딸의 등을 살며시 떼밀어 자리에 앉힌다. 그제야 자신의 눈물도 닦았다. 초록색 정장에 알이 굵은 진주목걸이와 귀걸이로 치장을 했다. 채양이 있는 초록색 실크 모자를 쓴 애실은 귀부인의 티가 잘잘 흐르고 있다. 먼저 낯익은 유모와 관리인 부부의 인사를 받고 칠복에게 시선을 주었다. 칠복은 허리를 깊숙이 굽혀 극진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 얼굴을 들었다. 인사를 받는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엄마 말씀 드렸던 박칠복 선생님이셔요.”
“이리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선영이를 잘 돌봐 주신다니 고마워요.”
칠복을 찬찬이 살펴보던 부인의 눈이 흘깃 딸의 얼굴을 향하며 잠시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선영의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까딱한다. 선영의 뜻을 확인한 부인은 다시 선영의 화색이 도는 얼굴과 통통해진 자태를 보며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칠복에게 얼굴을 향하고는 물어 볼 말이 아주 많이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모님 박 선생님이 이번에 도지사 상을 받게 되었답니다. 오늘 마을에서 방송까지 했어요.”
“어머 그래요? 도지사 상을? 어떤 상을 타게 되었나요?”
“응 엄마, 신지식 농업인상을 받게 되었대요.”
유모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 조금 억울했던 선영이 칠복을 다시 쳐다보고는 어머니 에게 얼굴을 돌리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듣던 것 이상으로 성실해 보이고 진실해 보인다. 귀골이라고 하더니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도 있다. 선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있는 중에 도지사상을 받는다는 말을 들으니 얼굴이 새삼 다시 보인다.
“축하해요. 좋은 사람인 줄은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대단한 분이군요.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미천한 사람을 귀애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포도농사도 짓는다구요? 우리 선영이가 옥천포도를 아주 좋아해요. 혼자서 하루에 한 상자를 다 먹는답니다. 많이 먹여 주셔야 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대겠습니다.”
부인이 흐뭇한 표정으로 날아갈듯 생글생글하게 웃는다.
“사모님 식사 하셔야지요. 잠시 기다리셔요. 맛있게 상 볼께요.”
“참 김 기사는 주사를 안 맞았지요? 그러면 관리인하고 함께 식사를 하도록 해야겠네요.”
“네 사모님 김 기사는 저희와 함께 식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찾으실 일이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고마워요. 관리인. 그럼 김 기사 운전하느라 수고 많았는데 관리인과 함께 식사를 하도록 하세요. 유모 갈비하고 굴비하고 관리인 쪽에 좀 보내요.”
“네 사모님, 그럴께요. 이번에는 소를 한 마리 잡았나 봐요. 차 트렁크에 가득하네요.”
“그럼요. 가족이 늘었는데 마땅하지요.”
애실의 눈과 선영의 눈이 동시에 칠복에게 향한다. 애실은 직접 마음에 흡족하다는 뜻을 담았고 선영은 통과되었으니 긴장 푸세요 하는 뜻을 담았다. 유모는 딸기와 참외를 내어 놓았다.
“선생님이 농사를 지은 것인데 들어 보셔요. 아주 맛있어요.”
“그래요? 박 선생이 손수 농사를 지은 것이라구요? 참 싱싱하고 좋네요. 잘 먹을께요. 박 선생. 우리 선영이 잘 부탁해요.”
“제가... 제가 드릴말씀을 먼저 해 주시니 뭐라 말씀드릴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들이 많이 있을 것 같군요. 큰 상도 받고 선영이도 많이 좋아졌구요. 선영아 방에 올라가 보자. 저기 있는 선물박스 들고 올라가 보자”
“네 엄마”
애실이 두 개의 선물 박스를 들고 선영이 두 개의 선물박스를 들었다. 칠복이 들고 가겠다 했으나 그리 무거운 것도 아닌 터에 사양해서 다만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함께 쓰고 있는 방을 본 애실은 흥미로운지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침대의 쿠션은 탄탄한지 확인해 보고 장롱도 두드려 보았다.
“선영아 그 박스 풀어서 선생님 장에 정돈해 드려라. 그리고 소꿉장난 하는 것 아니니 장래의 계획도 멋지게 설계해 둬. 박 선생도”
“네 엄마”
“네 사모님”
딸을 여자로 만들어 준 남자이다. 박 선생은 법정전염병인 결핵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던 선영이를 사랑과 애정으로 보살펴 주었고 진심으로 사랑했다. 더 이상 무슨 이야기가 필요할까. 애실은 이 사실을 딸의 고운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 무언가 기념이 될 만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멋진 양복을 두 벌 준비하고 와이셔츠와 넥타이 구두까지 일절 최고품으로 준비했다. 미래의 사위에게 선물을 하는 것인데 오래 전 성철의 여자가 되고 나서 기념이 될 만한 정표를 선물로 준비했을 때처럼 선물을 골라 보는 내내 잔 떨림이 있었다. 그런데 이 선물이 도지사 상을 받는 칠복을 위해 알고 준비한 것과 같이 되어 버렸다. 둘이 얼마나 예쁜 사랑을 하고 있는지 자기 눈으로 확인을 해 보고 싶었다. 둘이 서로를 바라볼 때 그윽하고 화려해지며 빛이 나는 눈길로 서로를 쓸어 보고 아껴주는 눈길에서 더 이상 확인해 볼 것도 없었다. 그 흔적들이 방안 곳곳에도 남아 있었다. 필경 칠복이 선영을 위해 따 왔을 장미이며 색 고운 야생화가 주둥이가 작은 화병에 곱게 갈무리되어 있다. 그 꽃을 받으며 선영이가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를 충분히 알겠다. 한 송이 한 송이를 정성껏 커팅하고 멋을 부려가며 조화롭게 화병에 갈무리를 한 솜씨가 선영의 솜씨임을 왜 모르겠는가. 행복에 겨워 꽃을 갈무리 하다 말고 펄쩍 뛰어 몇 번씩 키스를 쏟아 부었을 터이다. 옛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어머니라고 불러도 좋아요. 다음에 만날 때는 어머니라고 불러줘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엄마 우리 오빠 마음에 들어? 통과 한거지?”
“얘는 그걸 말로 해야 알아듣니? 내 마음에 흡족해. 그래 부족한 것은 없니? 부족한게 있으면 말해라. 그리고 저기에 따로 포장한 상자는 네가 잘 보관하고 있다가 쓸 데가 있으면 마음껏 써. 둘이 살면 필요한게 많을거야.”
“응 엄마 고마워요. 우리오빠 인정해 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하늘이 주신 운명인가 보다. 잘 살아야 해 요것아.”
“엄마 아빠는?”
“아빠도 잘 계셔. 3일 후에 선거가 있잖니. 기도해라. 박 선생도 기도해 줘요.”
선영의 눈에 얼핏 눈물이 고인다. 세상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아빠. 엄하면서도 자상하고 빈틈이 없는 분이다. 아빠와 같은 남편감을 만나고 싶었다. 심장에 새겨진 아빠와 엄마. 그리고 또 한 사람. 선영은 칠복을 볼 때마다 터질 듯한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애실은 칠복의 실체를 보고 후한 점수를 주었다. 무엇보다 딸아이가 사랑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함께 품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리도 좋을까. 애실은 딸아이를 보면서 자신이 성철을 만나고 그의 여인이 되고 가정을 이루었던 때가 생각났다. 어쩌면 그때의 모습이 이토록 생생할까. 딸과 칠복을 보면서 그 시절이 저절로 회상되는 것이 신선한 느낌이 든다.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서 자식을 분신이라고 하는가 보다. 믿음이 간다. 신뢰가 간다. 둘을 보고 있자니 자신들이 오래전에 서로를 믿고 신뢰했던 것처럼, 이 두 사람도 똑같은 마음의 줄기로 연결 되어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선영아 장롱 맨 끝의 장롱이 잠겨 있구나. 아직 첼로를 안 꺼냈니?”
“응 엄마. 아빠 당선되고 난 뒤에 엄마하고 아빠하고 함께 오시는 날에 예쁜 모습 보여 드릴려구 아직 안 꺼냈어요.”
“그랬구나. 그럼 박 선생에게는 아직 예쁜 모습 안 보여 준거야?”
“응 아직, 혹시나 기침이 나면 어쩌나 하고 아직은 참고 있는 중이예요.”
“그럼 축하 연주를 보기 위해서라도 당선되어야겠네. 호호”
그래서 아들은 키워 놓아 봐야 소용이 없고 딸을 키우면 아들을 하나 더 얻는다고 했나 보다. 자기 남자에게는 아직까지 안 보여 주고 아껴 두었던 첼로연주를 부모인 자신들을 위해 연주해 주겠다고 하니 기분이 한층 좋아진다. 딸아이를 잘 키웠다는 생각과 보람이 든다. 오는 날에 도지사 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으로 환영을 해 준 것도 가슴에 남는다. 사랑을 하면 여인은 아름다워지게 되어 있다. 짝이 채워지는 것은 음과 양이 맞물려 완벽해진다는 뜻이다. 호르몬의 작용이 더욱 왕성해지고 온몸의 컨디션은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한다. 준비 작업으로 최적의 건강상태가 유지되어 여성을 더욱 여성답게 만들어 준다. 딸은 지금 사랑의 힘으로 좋아지고 있다. 이제는 걱정이 없다. 걱정이 없어. 애실은 오히려 크게 위로를 받고 효도를 받았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 칠복은 자신의 포도밭에 있는 딸기와 참외를 따서 드리고 싶다 했다. 그렇지 않아도 선영은 포도밭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여 포도밭으로 가게 되었다. 마침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이장이 방송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좋아서 막걸리를 한 잔 했는지 이번에는 구구절절 길게 방송을 한다. 칠복이 포도밭으로 나오자 부러 찾아 와서까지 인사를 하며 칭찬이 늘어진다. 두 여인은 포도밭을 둘러보기로 했다. 꼼꼼히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난 포도나무는 포도잎사귀를 한껏 펼쳐 지붕을 이루었다. 그 아래 땅은 시원하고 딸기밭과 참외밭은 포도밭 주변 사방으로 둘려, 수박까지 심어져 있다. 포도밭 입구 쪽으로 자두나무가 십여 그루 심겨 있고 파란 자두가 열려 있다. 그 옆으로는 복숭아나무가 일곱 그루가 심겨져 있다. 포도밭 안으로 들어가 몇 발자국 옮기니 머리에 포도송이가 가로거친다.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머리에 닿지 않도록 허리를 숙이고 걸어야 하는데 포도밭이 꽤 넓다. 다 돌아보기에는 힘들겠다. 두 모녀는 서로 바라보며 낭패스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적당히 둘러봐야겠다. 절반쯤이나 들어갔을까 돌아 나갈 길이 까맣다. 서둘러 돌아 나오니 칠복은 벌써 두 개의 스티로폴 박스에 딸기와 참외를 담아 놓고 포장을 해 놓았다. 성구에게 연락이 닿았는지 메실즙도 두 병이나 구해다 놓았다. 애실은 부러 메실즙 뚜껑을 열고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다.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귀히 여기고 소중하게 간직하여 잘 먹겠다는 표시로 맛을 보고 찬사를 하는 것이 애실의 고운 습관이었다.
별장으로 돌아온 애실은 방긋 웃으며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 선영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비쳤으나 이내 홍홍 하면서 칠복의 팔을 끼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선영은 지금 엄마가 선물한 양복을 칠복에게 입혀 주느라고 정신이 쏙 빠져있다. 싹 차려 입으니 말쑥한 것이 눈부시도록 근사하다. 이대로 외출해서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고 싶다. 하지만 아직 몸 안에 남아 있는 못된 병균의 찌꺼기들은 활발히 움직이며 다음 희생자를 찾고 있었다. 악하고 질긴 이 병균은 치료 중에 생긴 내성까지 길러져 더욱 악하고 질긴 병원균으로 발전되어 있었다.
간호사는 이 시기가 가장 전염 율이 높은 시기이기 때문에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사람과는 접촉하지 말 것을 강제했다. 부득이 대화를 해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멸균마스크를 쓰고 단지 몇 분 정도로 짧게 대화를 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예방 주사를 맞았다고 해도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검사를 시행해야 했다. 악하고 질긴 결핵균은 완전히 박멸시켜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활동을 멈추고 잠복하고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진 곳에서 다시 발병하곤 했다. 그것은 척추나 척수까지 검은 손을 펼쳐 희생물로 삼았다. 따라서 환자의 활동범위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사물은 정기적으로 소독을 해 주어야 했다. 선영은 교회에서 기도할 때마다 멸균마스크를 세장을 겹쳐 사용했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어서 간호사를 통해 보건소에 조치를 취해 두었다. 목사님과 교인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선영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오늘 들른 간호사가 이틀 전에 채혈한 피를 검사한 결과를 통보해 주었다. 검사 결과에 의하면 결핵균이 활동을 멈추고 잠복기에 들어가 있으니 전염성은 없어졌다는 소식이었다. 이 말은 지금부터는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며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사회활동을 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치료의 방법도 잠복 균을 박멸시키는 방법으로 전환하며 주사처치는 사흘에 한번으로 조정된다고 했다. 사실 선영의 엉덩이는 주사바늘 자국으로 멍들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멍게, 해삼장수가 리어카에 좌판을 펼치고 옷핀을 잔뜩 꽂아 놓은 반쯤 잘린 사과의 모습과 흡사했다. 멍게, 해삼장수는 멍게나 해삼 한 마리를 주문하면 그것을 잘라 작은 접시에 내어주었다. 손님은 사과에 꽂혀 있는 옷핀으로 찍어 커다란 초장그릇에 푹 찍어 먹고 다 먹으면 다시 사과에 옷핀을 꼽아 놓거나 주인이 물에 씻어 사과에 꽂아 놓곤 했다. 딱 그 형국이었다.
주사바늘이 남긴 작은 딱지들은 따닥따닥 붙어 맨살을 찾는 것이 힘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2주일 동안은 사흘에 한 번씩 주사를 맞고 다시 검사하여 더 좋아지면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 간 주사를 맞고 6개월간 약을 복용하면 치료가 끝난다.
전염이 안 된다는 말에 선영은 기운이 펄펄 난다. 오리를 몰아넣는 굉장한 장면을 보여 달라고 졸라대고 있다. 칠복은 짬밥 통에서 짬밥을 수거하여 오리먹이를 주어야 하는데 냄새가 많이 나고 험한 일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 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졸라댄다. 앞으로는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부터 익혀둬야 한단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왔으면 할 수 없이 데리고 가야 한다.
선영이는 경운기 뒤에 앉았다가 결국은 일어서고 말았다. 뚝 떨어져 실려 있는 짬밥 통에서 나오는 냄새는 코를 막아도 풀풀거리며 선영의 코를 쫓아다녔다. 하여 냄새를 피해 칠복의 등 쪽 짐칸 맨 앞에 서서 킁킁거리고 있다. 덜컹 거릴 때마다 짬밥 통은 움찔하면서 국물을 흘렸다. 그 냄새가 고약해서 죽을 맛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떼를 써서 간신히 붙어가는 것이니 냄새가 난다고 할 수도 없고 흘린 국물이 자기 쪽으로 흘러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오리 떼가 나른다. 벼와 벼 사이에 날개를 펼치고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다. 마치 삼삼칠 박수를 칠 때와 같이 일제히 꽥꽥 소리를 내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꽥꽥 합창을 하며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온다. 그래도 머리가 좋은 오리는 이미 먹이통 가까이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기웃거리는 시간에 한 벌탱이라도 주워 먹어야 할 것은 주워 먹고 말겠다는 오리들은 이쪽저쪽 사방 군데에 펼쳐져 물속을 뒤집고 있다. 이 녀석들이 칠복이 먹이를 먹이통에 쏟아 부을 때에 죽을힘을 다해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쭉 내밀고 있는 머리는 먹이통을 향해 조금이라도 더 늘렸다. 선영이가 이 꼴을 보고 가만있을 리가 없다. 입을 가리고 푹푹 웃다가 마침내 웃음보가 터졌다. 벼 밑둥과 벼 밑둥 사이에 몸이 끼어서 머리통만 길게 내밀고는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오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빼고 몸을 돌려 나오면 될 터인데 녀석은 머리는 절대로 빼지 않고 몸통만 버리적 거렸다.
포도밭 사이로 노을이 진다. 선영은 칠복의 손을 잡고 포도밭을 거닐다가 석양이 지며 노을이 지는 찬란한 모습을 발견하고 일순 숨을 멈출 정도로 감동했다. 태양이 떨어지고 있는 주변의 구름들은 점점 빨간색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구름의 모양에 따라 형용색색의 장관이 연출되고 있다. 마침내 하늘은 온통 붉게 타올랐다. 선영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자신의 눈에 비쳐지고 있는 이 놀라운 장관에 일순 숨을 멈추고 말았다. 깊은 숨이 다시 쉬어질 때 선영은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리듯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칠복도 엉겁결에 같이 무릎을 조아렸다.
“하나님 내 아버지, 이토록 멋지고 찬란한 광경을 보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스크를 안 쓰고 기도할 수 있도록 치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칠복이 오빠를 제게 보내 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엉엉”
선영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노을의 붉은 빛이 선영의 얼굴에도 드리웠다. 선영이 감정을 주체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칠복의 눈에도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영혼 저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치는 분수였다.
“오빠 오빠가 내 옆에 있어 주어서 너무 너무 고마워. 너무”
선영은 감정이 격하여 흐느껴 울고 있는 자신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있는 칠복의 손을 의식했다. 칠복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로 흥건해진 눈을 들어 칠복의 눈과 맞추었다. 살며시 힘이 빠져나갔다. 목을 끌어안은 손에는 힘이 가득했으나 선영의 온몸은 힘이 빠져 나가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그 상태로 칠복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의지했다. 그것은 평생 동안 고마워 할 수 있도록 언제나 옆에 있어 달라는 호소였다. 그것은 언제나 변치 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사랑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나는 당신의 것이라는 묵언의 몸짓이었다. 칠복이 선영의 어깨를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일어났다. 포도밭 위로 석양은 눈부신 빛을 쏟아 부었다. 석양은 뚜벅뚜벅 소리를 내어 걸어가며 두 사람의 얼굴에 빛을 비추어 주었다. 석양의 빛을 받아 두 연인의 얼굴이 눈부시게 빛났다. 빛이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둘은 끌어안았다. 벅찬 감동과 전율이 두 연인의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깊은 입맞춤으로 서로의 영혼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 위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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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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