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에는 소가 없어도
하늘이 말려 올라간 듯 끝자락이 까만 곳
차가운 옥수가 쉴 사이 없이 떨어져내려
물속에서 물방울이 쉬임없이 생겨나고
그 위에 물안개가 걸려 있는 계곡의 샘이 있는
그 곳에 둘의 삶이 있다.
겨울, 눈 내리고
바위 옆에는 올망졸망 고만고만한 돌들 틈으로
얼음이 엉겨 붙으면
맑고 투명한 얼음 속으로
돌고기의 가슴지느러미가 부채질을 하고 있다.
가을, 뜨락까지 단풍이 물들어 오면
바지랑대 한 쪽으로 쓰고 있는 감나무 가지 위로 까치밥이 생긴다.
초가 이엉에는 흥부네 집 박이 보름달처럼 얹혀 있다.
툇마루 위에는 아직 꼭지를 따지 않은 붉은 고추가 마지막 매운 맛을 독하게 품고 비들비들 말라간다.
마당에는 콩깍쟁이가 수북히 쌓이고 아직 털다 만 참깨이며 들깨이며 불쏘시개로 쓰일 깻죽들이 푸른빛을 잃고 말라간다.
여름, 긴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던 날,
천둥이 울고 번개가 번쩍이던 날 밤.
외양간에는 낳은지 열흘 된 어린 암송아지와 어미 소가 길게 울며 잠을 못자고
누렁이는 이 앓는 소리를 낸다.
벼락 치는 소리가 우지끈하고 천지를 가르면
담요를 덮고 귀를 막고 겨우 잠을 청하던 그녀의 엉덩이가 들썩한다.
놀란 가슴으로 품 안에 파고드는
가녀린 그녀의 숨소리는 벌벌 떨고
심장의 박동소리는 콩딱거리누나.
측은한 마음에 팔베개 한 손으로
어깨를 토닥여주니 더욱 파고든다.
팔베개한 손을 들어 일으켜 세우고 불을 켜고는
라면 한 개를 끓인다.
훈김이 입으로 들어가니 마음도 얼굴도 속도 따뜻해진다.
애기 같어.
그녀의 입에 살짝 입맞춤을 하니
수줍은 듯 부끄러운 듯 살짝 볶는다.
봄,
수수깡 퉁가리에 갈무리한 고구마가 바닥을 보일 즈음
저 멀리 분홍꽃신을 신은 봄 처녀가 재를 넘어 온다.
그녀와 나는
아직은 차가운 계곡의 물에 손을 넣고
두 손 가득 움킨 봄물을 서로의 입에
먹여주며 한해의 건강을 기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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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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