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작성자 김윤봉
작성일 2010-03-20 (토) 17:23
ㆍ추천: 0  ㆍ조회: 3802      
IP: 119.xxx.229
나의 뇌리에 스쳐 가는 많은 생각~

나의 뇌리에 스쳐 가는 많은 생각~

 

어제(2010.3.14, 주일) 주일예배 다 끝마친 봉동율소교회 남전도회 회원들이 다시 방문해 끝마무리 지어 주셨다. 무엇을? 벗겨진 비닐하우스에 20평정도 공간 만드는 일을~ 지난주에 했었다. 밤 되어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어제 처리한 것이다. 도시 교인들 같으면 도저히 하지 못했을 텐데 수월하게 처리하는 일솜씨는 일속에 묻혀 사는 시골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 전주 집 살림을 완주 고산에 있는 이 비닐하우스 공간으로 이사했다. 딸아이 피아노는 황토집 작은방으로, 딸아이 침대와 책장, 아들 녀석 테이블, 책장 등은 내가 서재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로 이사했다. 그 외 잡다한 살림 일체를 비닐하우스에 마련한 공간으로 이사한 것이다.

 

그 공간 꾸미면서 나의 뇌리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15년 전 교통사고 당해 중증장애 입어 살아온 나의 세상살이에 대해서~

 

하나, 최근의 일로는~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를 말하고 싶다. 교회사임 후 무임목사 되어 7개 교회를 전전했던바 지금 나가고 있는 봉동율소교회는 지난해 가을 우연히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계속 나가게 될 것 같다.

 

둘, 지금 하고 있는 사회사업~

완주 고산 양야리 양화분교 앞, 이곳에 자리 잡기 위해 전북도내 50곳을 답사하였는데 그 정성 하나님 기억하셔 나에게는 최적의 장소 허락하신 것이다. 땅 사고 집지으며(2003년에서 2005년까지) 사회복지사 자격증 따는데(2004년) 단 3개월 소요되었던 일, 사회사업 허가 받는 일 등 모든 일에 하나님 역사하신 것이다.

 

이 일 전에 아내가 먼저 사회사업 테이프를 끊었다. 결혼 전에 우석대를 다녔던바 그 경력으로 한일장신대 3학년에 편입한(1998년) 것이다. 그래서 먼저 사회복지사 되었고 소양 원암의집, 이곳 고산 국제재활원에 근무해 사회복지 경력 쌓았던 것이다.

 

아내 뒤이어 내가 사회복지사 되었다. 맨 날 놀고먹기 지겨워 다시 학창생활 하게 되었던바 전주대 대학원 다닐 때(2001년 입학) 인연으로 광주대 대학원에서 3달 만에 사회복지사 된 것이다.

 

셋, 그 전으로 올라가자면~

내 비록 마음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장애인 되었으나 나도 건강한 사람 못지않게 활동할 수 있다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팔도강산을 뒤지고 다녔던 것이다. 그땐 지팡이를 사용해 활동하던 때가 아니고 워커라는 4발 기구에 의지해 어렵게 활동하던 때였다. 최전방 비무장지대까지 올라가 철책을 만져 보았고, 중국에 가서 백두산에 올라가 천지 저쪽에 있는 북녘 땅을 바라 봤으며, 태국에도 다녀왔는데 몇 년 방콕생활에 질렸던바 진짜 방콕을 다녀 온 것이다.

 

내 비록 할 말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반벙어리 되었지만 나도 할 말 하고 산다는 자격지심에 글쓰기를 무척했다. 이것은 지금 나의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 주고 있는 것 같다.

 

넷, 교통사고 당할 때~

그때는 익산 용안 송산교회에 시무하고 있었다. 시골에 있을 때 여유로운 시간 있으므로 공부 더해두자는 마음으로 군산 호원대 했으며, 대학원은 당시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원광대 교육대학원을 하고 있었다. 1994년 가을학기 입학했으며 그 대학원 3학기 마치고 사고 당했다. 몇 학기 쉬고 졸업은 1998년에 했다.

 

다섯, 그러니까 나는~

一, 대학원을 4군대 했다.

Ⓐ제일 먼저는 서울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1987년에 마쳤으며 그 결과 목사가 된 것이다.

Ⓑ그 뒤는 원광대 교육대학원(전공-철학교육)을 했는데 이유는 학위 따두자는 마음이었다. 목회에 지장 받지 않기 위해서 야간에 수업이 있었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그 학교를 택한 것이었다.

Ⓒ1995년 교통사고 이후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아무 일 못하던 나~ 이런 나에게 아내가 권유했다. 학교 다녀볼 마음 없냐고~ 그래서 전주대 선교신학대학원(전공-교회사)을 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사람 잘 만났다. 시설 운영하던 동료 시설교회 협동목사 봉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인연되어 광주대 평생대학원(사회복지사양성과정)을 다니게 된 것이다.

Ⓓ광주대 평생대학원을 딱 3개월(2004년 9월-11월까지) 다녔다. 당시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사양성 특별과정으로 대졸자는 1학기, 그 이하는 2학기 수료하게 하여 자격증 준 것이다. 그때 몇 기 배출하고 지금은 폐지~

 

二, 4개 대학원 나온 결과~

㉮총신대 신학대학원 나와 1988년 목사, ㉯원광대 교육대학원 나와 1998년 교육학 석사, ㉰광주대 평생대학원 1학기 수료하여 2004년 사회복지사, ㉱전주대 선교신학대학원 나와 2010년 신학석사(입학 10년 만에)~

 

총신대, 전주대, 광주대 대학원을 나와 가지게 된 결과물은 나의 삶에 충분하게 쓰여 지고 있지만 원광대 교육대학원 나온 결과물은 아직까지 쓰여 지지 않고 있다.

 

여섯, 최근 나의 삶속에 있는 봉동율소교회~

내가 출석하게 되어 우연한 기회로 이 교회 반주를 아내가 하고 있는바 웬만한 일로는 떠나기 힘들 것 같다. 이 교회는 교인들 구성이 참 좋다. 젊은 목사 부부의 헌신과 요소요소에 배치된 교인들의 달란트~ 이대로만 계속 올인 한다면 어느 교회 못지않게 좋은 교회로 성장할 기질과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부디 원하기는 봉동율소교회 성도들이 더욱 더 한 마음 되어 지금처럼 안정된 분위기 속에 부흥과 발전 거듭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주님 손에 붙들려 귀히 쓰임 받는 교회 되어지길 바라면서 장문의 글 여기서 마치겠다.

 

*PS : 어제 봉동율소교회 교인들이 봉사해 주신 일거리를 보며 ‘나의 뇌리에 스쳐 가는 많은 생각’이라는 제하의 글을 썼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달란트가 있다. 그 달란트들이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처럼 어제 봉사도 그와 같았던 것이다. 그걸 보면서 세인들과 합력할 수 있는 나의 달란트는 무엇일까? 유전적으로 부여받는 달란트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후천적으로 개발된 나의 달란트는 무엇일까?

 

젊고 건강했을 땐 목사로 목회로 일관했고, 고교 졸업 후 최근까지 계속 학업 속에서 살았으며, 더구나 신체적으로 장애를 입은 처지에선 달란트가 없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내가 발휘 할 수 있는 달란트는 무엇일까? 있다면 사회복지사로서 복지시설 원장 되었으므로 그 사명 감당하고자 하는 열망뿐인 것이다. 그걸 생각하다보니 말이 길어졌던 것이다. 양해 바란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14 아동 그룹홈 조미영 2011-09-27 3034
513 15년 전 교통사고 현장을 다녀와서~ [3] 김윤봉 2010-03-28 3510
512 나의 뇌리에 스쳐 가는 많은 생각~ 김윤봉 2010-03-20 3802
511 육군본부를 다녀와서~ [1] 김윤봉 2010-03-14 4039
510 퇴직금에 대해서~ 사랑이가득한집 2010-03-03 2106
509 총신 80회 C반 동료 목사님들! 사랑이가득한집 2010-02-28 1849
508 사랑이가득한집 아동그룹홈 운영규정 [1] 사랑이가득한집 2010-02-23 2352
507 백제예술대에 입학하는 우리 딸~ 사랑이가득한집 2010-02-05 1966
506 총신 신학대학원 80회 동기여러분! 사랑이가득한집 2010-01-31 1804
505 자식 군대 보내며~ 사랑이가득한집 2010-01-05 3180
504 나의 자동차 역사와 사회사업 사랑이가득한집 2009-12-08 2116
503 전북신학교 정규대학 되기 위한 전초전 사랑이가득한집 2009-11-27 2831
502 목회 사임하게 되니 10년 백수건달 사랑이가득한집 2009-11-23 2005
501 '무법자' 멧돼지를 잡아라 김윤봉 2009-11-18 2516
500    Re..자연보호나 환경보호 단체에선 이와 같은 야생동물 포획에 대.. 김윤봉 2009-11-19 1602
499 평화전망대=재적봉=758 OP 김윤봉 2009-11-15 1410
123456789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