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작성자 안형식목사
작성일 2008-11-28 (금)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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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경로 (프롤로그)
이동경로


(프롤로그)

인류의 기원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는 4대 강 유역을 중심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하나의 횡선에 위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가 이동한 경로는 어느 한 정점에서 시작하여 좌우로 퍼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재까지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문명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 문명(B.C 7000~6000)이며 그 다음으로 나일문명(B.C 6000~ ) 그 다음으로 황하 문명 (B.C 5000년 ∼ 4000년경부터 신석기 문화) 마지막으로 인더스 문명 (B.C 3000~2000)이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인류의 기원으로 간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여 성을 쌓은 문명을 벗어나 좌우로 퍼졌을까? 인간은 구박을 받아도 인간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고 사회성이 강하다. 더구나 새로운 환경에는 두려움과 공포까지 느끼게 되어 있는 지적인 존재들이다. 따라서 인류가 좌우로 퍼져 4대 문명을 이루었다는 결과에 도달하기에는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 왜 이들이 퍼져 동토의 땅 러시아까지 갔고 알레스카까지 가서 에스키모가 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  

설득력이 있는 이론을 만들기 위해 진화론은 나름대로의 애를 썼으나 현재까지 설득력 있는 이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이론은 창조론과 진화론을 절충한 형태의 사회적 진화론으로 바뀌고 있다. 생태적 진화론으로는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는 사회적 구조로 진화되었다는 이론으로 설득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주의 기원, 인간의 기원을 풀지 못하는 진화론의 절대한계는 이미 설득력을 상실했다. 영국은 국영방송인 BBC를 통해 진화론을 확산시켜 왔다. 하지만 수많은 진화론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기원은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양분되어 논란 중에 있다.  

인류가 번성하여 문명을 발생시키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4대 문명의 사이에는 최소 1000년이라는 시간대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1000년을 사이에 두고 인류가 이동을 시작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이동한 곳에서 번성하여 문명이 발생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최초의 문명지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인류가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면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지진인가 아니면 화산폭발인가? 진화론에서는 인류초기에 수많은 화산 폭발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인류가 어쩔 수 없이 이동했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만약에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의 환경적 요인이 인류를 흩어지게 만든 원인이라면 신체적으로 나약한 인류가 그 엄청난 자연의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세계를 4등분하는 4대강 유역에 거대한 문명을 1000년 단위로 4개나 세울 수는 없다. 천재지변을 피해 언제 번성하고 언제 문명을 세울 것인가? 따라서 이런 빈약한 이론 말고 다른 이론이 필요하다.

BBC 인터넷 판은 아프리카를 떠난 현생인류의 새 이동 경로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영국과 리비아 과학자들은 한때 사하라 사막 중심부의 분수령으로부터 지중해를 향해 흘렀던 강들이 현재의 리비아를 지나면서 `물의 회랑'을 형성했으며 이 길을 따라 고대인들이 아프리카를 떠났을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현재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 살고 있는 인류는 7만~6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 동부에서 출발한 이민 선구자들의 후예임이 밝혀졌다고 보도한 BBC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바벨 만답 해협에서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반도를 건넜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2008-10-15 11:38)

두산백과에 소개되어 있는 진화론에 대한 해설에 의하면, 현대인의 조상은 호모사피엔스로서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Epoch) 중기인 15만~25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났다.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급에 해당하는 유골을 통해 인류과학자들이 내린 이론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후 4만~5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널리 분포되어 후기 구석기문화(舊石器文化)를 발달시킨 존재로서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기원설이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은 15만 년전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이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근거로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는 이론이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들이 5만~10만 년 전부터 중동, 아시아, 유럽 등으로 이동하여 각 지역에 살고 있던 기존의 인류를 대체하여 오늘날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까지 네안데르탈인을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었으나, 최근에는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서로 다른 종(種)으로 보아야 한다는 학설이 다시 유력해지고 있다. (두산 백과, “인류학” 항목, 네이버.)

그러나 이것뿐이다. 상식에 접근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론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고 인류의 행적을 추적한 노력도 찾아 볼 수 없다.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여 최소 15만 년 전에 출현했다는 현대인의 조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호모사피엔스가 인류의 조상이라면 수만 년씩이나 구석기 시대를 지낼 수는 없다. 서두에 지적한 바와 같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이집트 문명이 세워지는데 불과 1000년 밖에 안 걸렸다. 4대 문명의 발생 후의 인류는 불과 1만 년 사이에 아폴로 13호를 보내 마침내 달에 인류의 족적을 찍을 수 있는 정도의 지혜를 가진 존재들이다.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가는 기간이 무려 수만 년이 걸렸다는 진화론의 이론은 이미 논리적인 한계를 떠난 망상가들의 허상일 뿐이다. 이런 논리나 이론으로는 우리를 설득할 수 없다.

바벨탑 사건과 민족기원론

현존하는  4대 문명 발생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이론은 바벨탑 사건 이후의 민족 기원론이다. 이 이론은 언어학 측면에서 접근되어 문명의 발생까지를 추적하는 이론으로 그 기원을 바벨탑 사건에서부터 찾고 있다. 각 민족의 어원을 추적하면 민족과 민족의 발생 기원이 나온다. 이들 민족이 어디에서 갈라졌는지를 추적하면 바벨탑 사건과 만나게 되어 있고 그 이상으로 가게 되면 창조론과 만나게 되어 있다.

인간의 위대함은 우주의 핵심이며 중심이라는 것과 우주의 주인이라는 사실에 있다. 이는 간단히 미생물에서부터 출발하여 고등동물로 진화를 거듭한 끝에 인류가 발생했다는 진화론의 근간과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창조주의 세밀한 계획 하에서 인류가 탄생했다고 보는 창조론은 과학과 벗어난 막연한 추상이 아니다. 인간은 우주를 포함한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다. 그 존재의 실존적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

종교적으로 들어가 보면, 성경 상에 기록되어 있는 인류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맞설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와가 그러했고 가인이 그러했고 라멕도 그러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눈길을 벗어나 있는 동안에는 스스로 하나님의 대적이 될 만한 수준으로 하나님과 맞선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다. 결국 하나님은 노아의 방주사건으로 특정된 홍수로 해결해야 했다.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 160년 밖에 되지 않았을 때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명령은 노아와 노아의 후손들에게 온 지면에 흩어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인류에게 주셨으나 노아의 후손들은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하늘까지 닿는 대를 세워 흩어짐을 면하자는 독립적인 제안을 내놓고 대역사를 시작했다.

“혼잡” 혹은 “신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바벨탑(Babel)의 유적지는 현재 바그다드 남쪽 50km, 힐라 북쪽 8km 지점에 있으며 890ha에 걸쳐 있다. 이 유적지 북쪽에는 바빌 언덕, 중앙에는 카츠르 언덕, 남쪽에는 메르케스, 암란 이븐 알리찬 언덕 및 호메라 언덕들이 있다. 살아 있는 역사유적지이다. (두산백과, “바벨탑” 항목, 네이버.)

이 탑의 크기와 규모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등의 여러 고증을 토대로 하면 대략적인 그림이 나온다. 언덕 위에 세운 바벨탑은 1층이 길이 90m에 너비가 90m로 정사각형의 형태로 높이는 33m에 달했다. 2층은 길이 78m에 너비는 78m이고 높이는 18m로 1층 보다 줄여서 지었다. 3층은 길이 60m에 너비 60m이며 높이 6m이다. 4층은 길이 51m에 너비가 51m이며 높이는 6m이다. 5층은 길이 42m에 너비는 42m이고 높이는 6m이다. 6층은 길이 33m에 너비가 33m이며 높이는 6m이다. 7층은 길이 24m에 너비는 24m이고 높이는 15m로 알려져 있다. 높이만 90M이다. 현대식 건축 양식으로 계산해 보자. 1층의 높이를 2M로 계산해도 벌써 45층이나 되는 고층빌딩이다. 고대인이 45층이나 되는 고층빌딩을 건축했다면 이는 어설픈 진화론으로 설명을 해서 풀어질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바벨탑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독일의 콜데바이다. 그는 1913년 바빌론을 발굴하던 중 도시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탑 유적의 토대에서 기원전 229년에 새겨진 점토판을 발견했다. 점토판에 따르면 탑은 7층이고 그 위에 사당이 설치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몇 가지 자료를 종합해 조사한 결과 바벨탑을 세우는데 모두 8천5백만 개의 벽돌이 사용됐으며, 건물의 규모는 가로와 세로, 그리고 높이가 약 90m에 달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바벨탑 사건에 대해 성경에서 연대를 추출하여 계산한 결과에 의하면 노아의 대홍수 사건은 BC 2348년에 끝나고 방주에서 모두 8명이 나왔다. 100년 후인 BC 2247년에 벨렉이 태어났고 5년 뒤 BC 2242년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부터 54년이 흐른 BC 2188년에 이집트 문명이 역사에 등장한다. 이후 약 100년 후인 BC 2089년에 그리스문명이 탄생했다.(출처:창조과학회)

노아의 방주에서 나온 8명의 인류는 106년이 지난 어느 날 하늘까지 닿을 수 있는 높이의 탑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번창했다. 고작 8명의 인류가 얼마나 번성하였기에 현대의 건축기술로도 수십 년이 걸릴 건축물을 축조할 수 있었을까. 바벨탑은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철저히 파괴됐다.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을 점령했을 때 폐허가 된 바벨탑을 재건하려 했지만, 너무나 거창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해야 했다. 1만여 명의 인원이 2개월 간 투입되었으나 도무지 진척이 되지 않아서 중도에 포기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려면 진화론적인 지식이나 상식에 의한 선입관을 버려야 비로소 접근된다. 왜냐하면 진화론에 의한 지식과 상식으로 볼 때 인간은 열등한 미생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고등한 문명을 창출해 내려면 수십만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년대는 불과 8명의 인류가 106년이 지난 후에 바벨탑을 건축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바벨탑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건축물을 짓다가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바벨탑 짓기를 중단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민족의 기원이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는 가짜라는 말이다. 진화론을 과학의 기본으로 채택한 지식인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세의 기록이 잘 못 되었거나 혹은 허위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며, 성경의 기록을 확실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지식인들은 진화론이 허구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에 일단의 선입견을 뒤로 물려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초기의 인류는 성을 축조한 문화인

사실상 성경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아들 가인이 벌써 자신의 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성의 이름은 아들인 에녹의 이름을 딴 에녹성으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라멕도 자신의 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당대의 족장들은 자신의 성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으며 주변과의 경계점을 가지고 있었고 독립적으로 발전을 했음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평균 연령이 700살을 넘게 살았으며 무려 10대 이상의  후손을 보았다. 그렇다면 가인의 성에는 가인을 중심하여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을 족장으로 하는 가족들의 수가 최소 수백에서 수천 명을 넘었을 터이다. 이를 가문이라고 하자.

가문의 단위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확장되어 수만 명이 수십만 명으로 늘어났을 것이며 잠시 후에는 수백만 명으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또 가문별로 수천 명이 넘는 한 가문이 거주하는 공간이라면 부부 단위의 주거지가 필요하고 각 주거지가 차지하는 면적도 상당했을 것이다. 따라서 가문과 가문의 경계점이 있어야 했고 이 경계점은 성을 쌓는 것으로서 해결되었다. 독립적인 성이 축조되었다면 성을 중심한 문화권이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가인은 에녹을 낳았을 때 자신의 가문을 위해 성(城)을 쌓고 독자적인 부족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이 부족문화이지 실상 성을 축조할 수 있는 정도라면 국가로 보던지 아니면 하나의 문명으로 보아도 충분하다. 이들은 이미 철기를 사용하고 있었고 각종 악기를 만들었으며 문하생을 두고 음악을 전수할 정도의 문화를 영위한 문화인들이었다. 두발가은은 각종 동과 철을 사용하여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지경에 도달했다.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만들어 음악을 즐겼으며 수금과 퉁소를 널리 보급했다. 현악기와 관악기의 출현이다. 이 시기는 아담과 가인이 함께 살아 있던 인류기원의 시기였다. 인류기원의 시기에 이미 완전한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인해 초기 인류가 궤멸되고 노아의 후손들로 인해 번창한 현대 인류의 사이에는 바벨탑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언어가 복잡해지자 노아의 후손들은 셈(동양인), 함(흑인), 야벳(서구인)으로 갈라지고 가족단위로 헤쳐 모였다. 헤쳐 모인 이유는 언어권이 같은 족속들과의 연합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문자가 없었고 또 문자의 필요성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최소 700년 이상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살아있는 컴퓨터(조상)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거주 형태였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야 할 중대한 권리에 대한 내용도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록의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에 글자에 대한 필요성도 없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의 수령은 절반으로 줄어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에 노아는 950세를 향수하고 죽었다. 노아의 아들 셈은 600세를 향수하고 죽었고 셈의 아들 아르박삿은 438세 셀라는 433세로 에벨은 464세로 모두 400세 이상을 살았다.

그러나 바벨탑 사건을 5세의 나이에 겪었던 벨렉은 239세, 르우는 237세, 스룩은 230세, 나흘은 139세, 데라는 205세, 아브라함은 175세를 향수했다. 바벨탑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 세대의 절반 정도의 수명에 해당한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수명이 절반이나 단축되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에녹의 성이나 라멕의 성 등, 초기 인류의 성이 유적지로 존재할 수 없었던 원인

역사적 유물로 남아 있는 바벨탑 유적과 상대적으로 가인의 성이나 라멕의 성이 유적지로 남아 있을 수 없었던 원인은 노아의 홍수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바벨탑의 유적에서 보듯 바벨탑은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축조된 성이다. 진흙을 구워 돌을 대신하여 성과 대를 쌓았다. 그러나 진흙벽돌은 물에 약하기 때문에 진흙벽돌을 사용한 가인(에녹)의 성이나 라멕의 성은 노아의 홍수사건 이후에 붕괴되었거나 방치됨으로 인해 소멸되고 말았다. 혹시 퇴적물로 덮여 원형이 보존된 채로 지구의 어디엔 가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바벨탑 사건 이후에도 “지구라트”로 불리는 피라밋 형태의 유적이 바벨로니아, 우르크, 우르 지역에 30여개가 존재한다. 이들 역시 진흙벽돌을 사용하여 축조된 고대의 구조물들이다. 바벨탑을 비롯하여 이들 구조물들이 현재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원인은 노아의 홍수와 같은 재해가 없었다는 뜻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니므롯의 나라가 근원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셈, 함, 야벳이다. 함의 아들은 가나안이며 가나안의 아들은 구스이며 구스의 아들은 니므롯이다. 니므롯은 거인이며 당대의 영걸이었고 특이한 사냥꾼이었다. 니므롯은 그의 나라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갈라와 니느웨 사이의 큰 성 레센을 건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창 10:10~12)

니므롯은 번성한 노아의 후손들을 이끌고 동방으로 진출했다. 유브라데강 유역의 기름진 시날 평야를 발견한 니므롯과 노아의 후손들은 시날 평야에 거주하기로 작정을 하고 가족 단위의 부족들의 거주지를 할당해 주었다. 약 890ha에 이르는 거대한 땅이었다. 앞에는 유브라데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바빌 언덕, 중앙에는 카츠르 언덕, 남쪽에는 메르케스, 암란 이븐 알리찬 언덕 및 호메라 언덕이 있어서 각각의 가족단위의 부족들에게 땅을 분할하기에 용이했다. 그러나 문제는 언덕에 가로막혀 이쪽과 저쪽이 소통하는데 지장이 있었고 전 부족이 모여야 하는 연합행사와 일 년마다 한 번 씩 드려야 하는 제사 문제는 골칫거리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니므롯이 부족회의를 소집했다. 니므롯에 의해 소집된 부족회의에서 니므롯은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다”(창 11: 4)

지도자 니므롯의 선동에 니므롯의 직계 후예들이 앞장섰다. 안정과 평안을 통한 번영을 원하고 있던 부족들은 니므롯의 선동을 일제히 환영하여 바벨탑 건축을 시작했다. 바닥 넓이만 정사각형으로 90미터에 1층의 높이만 33미터가 되는 거대한 성을 축조했다. 이들은 벽돌을 구워 돌을 대신하고 벽돌사이를 모르타르 대신에 역청으로 대체하여 높이가 1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탑을 쌓아 수천 년 동안이나 무너지지 않는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노아와 그 아들들을 통해 전수된 지혜와 지식은 바벨탑에 적용되어 과거 에녹의 성이나 라멕의 성보다 더 크고 화려하며 견고하게 건축되었다. 노아와 그 아들들을 통해 전수된 능력은 그 후손들의 지혜와 합쳐지고 현장에서 터득된 기술은 노하우로 축적되며 결국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켜 세웠다.

언어의 혼잡으로 인해 더 이상 함께 거주할 수 없게 된 부족들은 다시 동방으로 떠나갔고 니므롯과 함께 남아 있던 부족들은 니므롯의 통솔 하에 바벨탑을 중심한 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했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 앗수르의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까지였다. 니므롯은 갈라와 니느웨 사이의 큰 성 레센을 건축하고 바빌로니아 제국의 중심으로 삼았다.

현재의 바벨탑 주변으로는 성곽에 해당되는 경계 탑들이 둘려 있다. 바벨탑의 규모는 다른 지구라트보다 훨씬 크다. 이런 거대한 규모를 갖게 된 것은 바빌론이 다른 도시들을 압도할 정도로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바빌론의 외곽 둘레의 길이는 16km에 이르렀고, 폭 27m에 달하는 도시의 내벽을 따라 경계 탑들을 세웠다. 도시 한편으로는 유프라테스강이 흘러 천연의 방어선을 이룬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도시 안에 화려한 궁전이 수없이 지어졌고,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공중정원도 바빌로니아 성 안에 있었다.

어떤 학자는 바벨탑의 중단에 대해 당시 건설 중이던 바벨탑 위로 혜성이 떨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 당하여 중단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학자는 외계인이 지구라트를 건설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바벨탑 유적이나 바빌로니아에서 출토된 노아의 홍수사건에 대한 기록 등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 그대로 이며 오히려 역사학이나 고고학이 발견하지 못한 내용까지도 서술되어 있다. 인류의 기원과 민족의 기원, 언어의 기원을 명확히 밝혀주는 문헌이나 단서 혹은 정보는 성경이 유일하다.  

진화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인류의 시대별 구분은 오히려 근거가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분되는 선사시대에 대한 구분은 진화론의 이론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논리일 뿐 설득력조차 없다. 인류는 태어나자마자 불을 사용해 왔다. 불을 사용하여 철광석이 있는 곳에서는 철기를 제련했으며 철광석이 없는 곳에서는 돌을 사용했을 뿐이다.

인간이 문명권에서 벗어나 씨족단위로 거주하며 생활하게 되면 철기 등을 사용할 이유는 전혀 사라진다. 식량은 널려 있는 것을 거두거나 편한 데로 돌칼이나 돌화살을 만들어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아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인간은 필요에 따라 무엇을 만들어 사용했으며 필요치 않은 것을 일부러 만들지는 않았다. 현재 아프리카 원주민들이나 남태평양의 토인들이 구석기 시대인과 같은 양태의 삶을 살고 있다. 인류는 불편하면 편리를 위해 무엇이 되었든지 만들어 냈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면 그대로의 삶을 사는 존재들이다. 진화론대로 말하면 아프리카 원주민이나 남태평양에 살고 있는 토인들은 아직 진화가 덜 되어서 그런 것인가? 인류는 상고시대부터 살아왔고 진화론은 겨우 18세기에 만들어진 이론일 뿐이다.

나는 고조선, 그 위대한 국가의 발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인류의 기원과 고조선은 어떤 경로로 맞물려 있는지를 밝혀 보고 싶었다. 진화론이 해명하지 못하는 4대 문명의 기원을 더듬고 찾아내서 “이것이다”라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는 결론에 도달하고 싶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인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인지, 한국의 상고사 위로 거슬러 올라가 한국의 태고사를 찾아보고 싶었다.

접근에 대한 시각의 방향은 문화적 시각과 역사적 시각의 입장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접근 방식은 왜? 라는 학문의 기본 틀에서부터 시작했다. 플라톤의 이원론에서 이데아의 세계는 신의 영역이라고 갈파한 것과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적 방법인 왜? 라는 질문을 통해 끝까지 올라가면 결국은 신이 등장하게 되어 있다는 철학의 사유방식에 동의하고 이를 접근의 방법으로 채택했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표현되는 양식은 펙션이다. 펙트(fact)와 픽션(fiction)을 결합한 형태의 창작 양식 외에 고대사와 태고사를 엮어 낼 방법은 없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펙트로 채용하고 여기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펙션으로 만들어냈다. 덴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이후에 부쩍 펙션이라는 용어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데 대한 불만도 있다. 소설 자체가 이미 펙션이기 때문이다.

줄거리 요약

미래학자인 박칠복 교수는 언어학을 부전공했다. UCLA 시절 토플러 교수에게서 사사를 받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러 역사발굴단이 러시아의 바라바시에서 고조선의 유물을 발굴하는 중에 출토된 점토판과 모스크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점토판 파편들에 새겨진 고대어를 비교 해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모스크바로 달려갔다. 박 교수는 아무르 강 유역에서 출토되었다는 점토판의 파편들과 바라바시에서 출토된 점토판이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양쪽의 점토판에 새겨져 있는 물고기 문양과 고대어가 일치하고 있어 양쪽의 문화가 동일 문화임을 증명하는 뚜렷한 단서였다. 이것은 상형문자가 아니라 한자의 고대어였다. 황허 문명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자보다 최소 500년 이상을 앞서 있었다. 박 교수는 점토판에 새겨져 있는 고대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고조선 이전에 환국이 아무르 강 유역에 세워져 있었으며 이들이 고조선을 세운 원류임을 알게 되었다.

환국은 황허 문명보다 500년 이상 앞선 문명으로 황허문명을 탄생시킨 배후 문명이다. 고조선의 역사와 합칠 경우 세계4대 문명의 발상지는 황허문명이 아니라 아무르 문명으로 바뀌어야 한다. 적어도 4대 문명이 아니라 5대 문명으로 수정되어야 하고 아무르 문명의 위상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다음에 위치해야 한다.  심증은 굳건했다. 다만 실체를 입증할 증거가 필요했다. 박 교수는 양쪽 점토판에 새겨져 있는 물고기 문양에 집중했다. 고대인의 습관상 문양은 가문 혹은 그 이상의 신분을 밝혀주는 인장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교수는 물고기 문양에 Key가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발굴 결과 보고는 러시아 학계와 한국의 학계에 보고되었다.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보고회가 개최되었고 한국에서는 부경대학에서 개최되었다. 내용과 사안이 중대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는 양국의 문화부 차관이 배석하였고 세계의 언론사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취재했다. 보고 발표회를 통해 박 교수는 결과론적으로 환국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세계의 5대 문명의 출현 가능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발표 후, 문화부와 교육부는 즉각 박 교수의 연구에 정부 지원금을 배정했다. 박 교수는 정부의 지원 아래 한국의 상고사에 대한 연구 과제를 부여 받았다. 팀이 만들어지는 대로 연구지로 출발하여 박 교수의 이론을 체계화 하여 세계학계에 보고해야 했다.  

박 교수는 아내 선영과 함께 두 사람으로 팀을 구성했다. 정부의 지원금은 충분했으나 국민의 세금이 아니던가. 최대한 줄이기 위해 두 사람으로 팀을 구성했다. 아내 선영은 UCLA에서 함께 미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는 인류학을 연구했다. 따라서 이 연구에 있어서 최상의 파트너였다.

박 교수 부부는 울산에서 출발했다. 울산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씰크로드를 따라 터키의 앙카라와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연구의 실마리를 찾는 작업을 1차 연구 목표로 세웠다. 2차 목표는 말레이시아에서 쿤 교수와 만나 말레이시아에 축적되어 있는 이동경로의 중요한 단서들을 취합하여 이론의 전개방향을 설정하는 작업이었다. 3차 작업은 취합된 단서들과 황허문명과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일이며 4차 작업은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아무르 강 유역에 세워졌던 환국에 대한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이며 5차 작업은 러시아 연해주의 하바롭스크, 바라바시, 블라디보스톡까지 분포되어 있는 고조선의 유물과 유적을 토대로 고조선의 발원과정을 추적하여 환국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작업이었다. 여기까지는 정부에서 요구하는 작업이었으나 박 교수는 6차 작업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6차 작업은 물고기 문양의 특징을 가진 아르박삿의 후예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알레스카까지 퍼져 나간 것인지 까지 밝혀 보고 싶었다.  

박 교수는 동문수학한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쿤 교수의 도움을 받아 환국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에 열정을 쏟는다. 연구 과정 중에 우연히 오랑 아슬리 족 대추장을 방문하게 되고 대추장의 뜻에 의해 그의 사위가 되고 말았다. 대추장은 사위에게 징표를 선물했다. 선물로 받은 징표는 박 교수가 찾아 헤맸던 물고기 문양의 원형대로 만들어진 단검이었다. 단검을 통해 물고기 문양의 이동경로를 더듬으며 확인해 나갔다. 단검은 대추장의 신물로서 오랑 아슬리 족에게는 절대적이었다. 이 신물로 인해 세계 각국의 공항에까지 퍼져 있는 오랑 아슬리 족의 후예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환국의 실체를 입증하게 된다.

박 교수 일행은 황허 유역의 유적지와 박물관을 샅샅이 뒤지면서 고산족의 도움을 받아 환국을 세운 옥 장군 환의 실체에 접근한다. 옥 장군 환은 노아의 후손이며 셈의 아들인 아르박삿의 10대 손이었다. 바벨탑 사건 이후 노아는 후손들에게 명령했다. 해가 뜨는 곳 동방에 신의 나라를 세우라는 명령이었다. 셈의 후손들은 노아의 명령을 받고 동방으로 떠났다. 가나안의 후손들과 야벳의 후손들도 함께 했다. 머나먼 여정 끝에 가나안의 후손들은 열대지방에 정착하게 되었다. 보르네오 섬에 정착하고 인도의 겐지즈강 유역에 인더스 문명을 세웠다. 이들이 오랑 아슬리 족이다. 야벳의 후손들은 기온이 일정하고 목축하기에 적합하며 포도가 잘 자라나는 유럽지역에 정착하여 독일과 프랑스 영국을 세웠다. 셈의 후손들은 동방의 끝까지 나아가며 중국과 조선을 세웠으며 알레스카 지역까지 퍼져 나가 저들의 선조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는 이 소설에 내 개인적인 두 가지의 소원을 담았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대로 인류는 창조주의 소생들이며 전 우주의 중심이며 완벽한 존재로 탄생된 위대한 존재임을 확인해 줌으로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함으로 자연스럽게 복음을 확장시키는 일이다. 둘째는 내 조국의 확장이다. 영국의 여류작가 롤링이 헤리포터 시리즈로 연간 영국에 5조원에 달하는 부를 몰아주고 있으며 미국의 월트 디즈니는 연간 35조원에 달하는 부를 몰아주고 있다.

한국 문학이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노벨문학상 수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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