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무니
홍시를 먹다 말고
정성껏 홍시 껍질을 벗겨
입안에 넣어 주시던 할머니의 손길이
생각나다.
어느날 불현듯 홀로되신 할머니는
웃음을 잃었다.
그토록 귀애하던 손자의 응석에도
휘휘 손을 내젓는다.
오는 자리는 틈이 안 나도
가는 자리는 빈틈이 보인다고
말없이 효자손으로 등을 긁고
흰머리를 뽑아 달라는 주문도 없어졌다.
감기걸려 앓기라도 할라치면
머리 띠로 이마를 질끈 동이고
골이 흔들리기 때문에 묶어 두어야 하는게다
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 보내 놓고는 머리띠도 찾지 않는다.
칼칼한 갈치조림을 올려 드려도
푸성귀를 가득 넣고 참기름 고추장에 비빈
바가지 비빔밥도 몇술 못 뜨시고
멍하니 뜨락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지더니
어느 고얀 날에 힘없이 드러누워
잠꼬대가 많아 지더니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하셨다.
오싹 소름 돋는 이야기에
모두들 슬금슬금 피하는데
아버지 어머니 불러 앉혀 놓고 이런저런 말끝에
내가 죽거든으로 시작되는 유언을 남기셨다.
형형하던 눈빛은 간 데 없고
누워계신 자리 밑에 손을 넣어 보니
꼬장꼬장 하던 등줄기가 바닥에 늘러 붙어
손바닥 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슬픔이 비처럼 내리던 날, 고얀 날에
할머니는 고운 꽃가마를 타고
할아버지 옆으로 간다
꺼이꺼이 하는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하늘하늘 하늘로 올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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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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