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에 담긴 철학
맑고 정결한 물에 깨끗이 씻고 불려 가마솥에 앉혀 놓고 치성을 드리듯 불의 높낮이를 살펴 일정한 불로 은근히 쪄낸다. 이윽고 김이 나기 시작하면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바가지와 함께 대령해 놓고 콩물이 넘치지 않도록 불을 조정하는데 장작 두어개를 넣었다 뺏다 하면서 요술을 부리듯 불을 조절한다. 그래도 넘치면 솥뚜껑에 물을 한 바가지를 부어 성을 가라앉히고 계속 불을 주어 푸욱 쪄낸다. 콩물이 졸아 바닥에 깔리면 불을 다 꺼내놓고 숯불의 훈기로 조금 더 열을 준 후에 솥뚜껑을 열고 커다란 대광주리에 퍼 담아 내어 식힌다. 대광주리 안에는 정결한 하얀 무명천이 깔려 있다. 얼마나 콩물을 흘리지 않았느냐가 청국장 맛을 결정하기 때문에 한 방울의 콩물도 안 넘치게 졸여내야 최고의 청국장이 만들어진다. 아직 뜨거울 때에 무명천을 꽁꽁 여미고 그 위에 군용담요를 덮고 솜이불로 말아 아랫목에 모신다.
사흘밤을 자면서 따끈한 아랫목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아야만 청국장은 찰진 맛을 내어준다. 적당선이라는 타협은 애초에 없다. 따끈한 아랫목을 차지하고는 담요로 둘러싸이고 그 위에 두꺼운 이불로 온몸 말이를 한 채로, 아야 눈도 함부로 흘기지 말어. 부정 탈라. 아버지 발 냄새보다 더 고린 냄새가 진동을 하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도 눈길을 함부로 주지 못하겠다.
오줌 마려워 깨어 일어나 마루에 있는 요강에 오줌을 눌 양으로 방문을 열고 마루에 나가보니 떴다 감았다 하는 시린 눈에 사박사박 함박눈이 내리며 천지사방을 밝히고 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오줌을 누며 마당을 보니 할머니는 어머니를 옆에 대동하고는 장독대에서 정한수를 떠 놓고 치성을 드리고 있다. 아하 이 밤을 자고 나면 두부를 가득 넣고 신김치를 찢어 넣고 보골보골 오래 끓인 냠냠한 청국장을 먹겠구나.
지고추를 종종 썰어 간장종지에 담고 그 위에 참기름을 두른 양념장도 나올테지. 손이야 발이야 싹싹 비벼대며 치성을 드려야 청국장 귀신이 요술을 부려 맛을 내주나 보다. 청국장 귀신은 냄새도 고약하니 아마 성질머리도 더럽게 생겨 먹었을거야. 그러니 손이야 발이야 치성을 드려서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이지.
광주리를 둘러싸고 있던 솜이불과 군용담요가 마당 바지랑대에 높이 매달렸다. 광주리 안에는 폭싹 발효된 콩들이 서로 엉켜 붙어 있는데, 제 몸에서 끈끈이 같은 것들을 내어 서로가 엿가락처럼 찍찍 늘어나며 엉켜 붙어 있다.
마루에는 절구가 놓여 있고 절구에는 이만큼씩 청국장이 담긴다. 어머니는 절구공이를 잡고 할머니는 소금과 고춧가루를 섞으며 맛내기에 공을 들여 두 분이 합작하여 착착 찧어낸다. 찧어 낸 청국장은 배불뚝이 중국빵처럼 둥글넙적하게 모양을 만들고 가운데에는 대추를 박아 넣는다. 할머니 그게 뭐여. 요건 우리집 등록상표여. 우리 가문만 요렇게 하는겨. 기냥 먹는게 나은디. 아야 고거 빼먹지 말어. 부정 타.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비닐을 두르고 하나 둘 우리집표 청국장을 내려놓는다. 아무래도 표면이 꾸들꾸들 말라야 보관이 편하다. 장모님 작년에는 25개였는데 올해는 30개나 되네요. 콩 농사가 잘 되었나 봐요. 올해는 영감이 세 바가지를 더 부어 주더라. 이고 오느라 죽을 뻔 봤어.
요거는 누구네 줄 거. 저거는 누구네 줄 거. 어머니와 아버지는 연신 수를 세어보며 셈을 맞춘다. 앞집, 옆집, 뒷집, 목사님, 여전도사님, 구역장님 드릴 것을 점찍고 몇 몇 친구 분들과 고마운 분들께 드릴 것을 눈으로 챙긴다. 나는 옆에서 몇 집이나 심부름을 해야 하나 속으로 계산해 본다.
아허 아허 이 맛이여, 아효 시원 햐. 아버지의 입에 청국장이 한 수저 들어가면 눈이 감기고 눈이 떠지면 감탄사가 연발한다. 나도 해 봐야지. 아허 아허 뜨거라. 눈물이 뺄꼼 나온다.
밥 한 사발과 청국장이 지고추 양념장과 함께 냉면 그릇에서 섞인다. 어머니가 들고 온 냉면그릇 밑바닥에는 노란한 참기름이 한 수저 깔려 있다. 어머니 나도 나도 냉면그릇에 비벼 먹게. 내게 온 냉면그릇 바닥에는 아무 것도 안 깔렸다. 흥 심부름을 하나 봐라. 그래도 장남인데 반 숟가락이라도 깔아 주면 어뗘.
할머니와 어머니의 눈에 무지개가 걸렸다. 냠냠 맛있게 먹고 있는 사위이며 남편이며 자식들이 달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지난 밤에 치성을 드릴 때 함박눈이 오셨더랬지. 할머니는 조상신께 감사한 마음이고 교회에 나간지 얼마 안 되는 어머니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야 하나님,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청국장님까지 죄다 고맙다. 유리창 문에는 훈김이 서려있고 창밖에는 그쳤던 함박눈이 사박사박 소리를 내며 다시 내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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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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