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우물가
11. 우물가
박 초시의 집과 금자의 집은 위치상 마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고 작은 야산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공동우물은 세 개가 있으며 그 중의 하나는 정자나무가 있는 곳에 있었고 정자나무를 중심으로 신작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실개천이 있다. 마을의 우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우물로 빨래터와 함께 커다란 도르레와 제법 규모가 큰 두레박이 줄 양끝에 매달려 있어서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는데 있어 제격이었다.
또 다른 우물은 샘물을 파서 만든 것인데 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그다지 수량은 풍부하지 못했으나 어떤 가뭄에도 마르는 일이 없었고 물맛이 달아 마을의 식수로 으뜸이었다.
다음으로 박 초시의 집 뒤란과 금자의 집 뒤란이 맞대어 있는 곳에 우물이 있다. 물이 맑고 시원했으며 우물 중에서 가장 차가운 수온을 가지고 있는 우물로 우물 밑바닥에서는 퐁퐁하고 물이 솟아올랐다. 우물가에는 앵두가 몇 그루 심어져 있었는데 물가에 심겨져 있는 앵두나무인지라 맛이 달고 알갱이가 컸다. 하수가 나가는 하수길 양쪽에는 돌미나리가 자리 잡고 있어 그것만 뜯어도 얼추 나물거리나 찌개거리로 충분했다.
금자의 부친은 동이 초등학교의 서무 주임이다. 금자의 부친은 박 선생님으로 불렸고 마을 내에서는 상당한 존중을 받고 있었는데 박 초시 와는 항렬 상으로 먼 친척벌이 되었다. 딸 부잣집 옆집에 살고 있는데도 슬하에 금자 하나만 달랑 낳아서 외동딸을 금지옥엽으로 키우고 있다. 박초시의 선친은 구한말 시대에 진사초시에 장원을 했고 대과를 남겨 두었었다. 격변기에서 몰락하기는 했으나 양반 가문이었다. 몇 채 안 되는 기와집이 번듯했고 전답은 8.15 해방과 자유당정권 시절 그리고 6.25 동란을 겪는 와중에 빼앗기고 혹은 팔고 해서 남은 가산이 얼마 되지는 않으나 행세를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거기에 문중 땅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동숙과 금자의 집은 흉허물이 없는 사이로 지내고 있었고 우물 또한 두 집에서 사용하는데 불편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을 두 집의 우물로 알고 있었고 또 편한 마음으로 공유할 수 있는 우물이 두개나 되는 터에 구태여 이 우물을 사용할 이유조차 없었다. 마을의 아낙들은 길어온 물로 목간을 하거나 여름이면 조금 떨어진 금강지류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목간을 다녀오곤 했으나 동숙과 금자의 집 식구들은 구태여 금강지류까지 가서 목간을 할 필요가 없이 우물물을 길어서 사용하곤 했다.
칠복은 농사일을 하는 동안에는 물고에서 멱을 감았다. 산자락 아래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 박초시의 논은 그 위 문중 땅에 기웃해 있었고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샘물을 가두어 논물로 사용했음으로 물고의 물은 항상 깨끗하고 맑았다. 벌써 칠복이의 허리까지나 웃자란 피를 뽑고 나면 논이랑을 손 봤고 지고 온 지게를 받쳐 놓고 문중 산에서 꼴과 잡나무 등을 잘라 한 짐 가득 싣고 와서 잡목은 쇠죽 끓이는데 사용했고 풀은 쇠죽을 끓이거나 아니면 소에게 던져 주어 먹였다.
초복이 지나니 온 천지 사방이 불가마라도 되는 양 후끈후끈 달아 오른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목덜미로 땀이 줄줄 흐른다. 박초시의 집에는 미군들이 사용하던 선풍기가 있었는데 두 대나 되었지만 안방과 딸들 방에 놓여져 있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모기장을 쳐 놨어도 흙벽돌집이라 그런지 밤공기마저 후끈후끈해서 잠을 설치기 일쑤이다. 등줄기에 물이라도 끼얹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 눈치를 보아 하니 딸들은 뒤란에서 우물물을 길어 목간을 하는 모양이다. 시원하게 물을 들이 붓는 소리가 나는 것은 틀림없이 동숙이 목간을 하는 소리일 것이겠고 숨죽여서 살살 붓는 것은 칠복과 동갑내기인 종숙이가 목간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종숙이는 집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 분간을 못할 정도로 조신했는데 도무지 발자국 소리도 안 나게 다녔다.
동숙이. 그것은 마루를 걸을 때에는 장정이 걷는 것처럼 쿵쿵 소리를 내며 걸었다. 그렇게 주인아주머니가 핀잔을 주고 박초시가 닦달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잠시 후면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니 주인아주머니도 박초시도 손을 내젓고 말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저것을 임신했을 때 아들 낳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렸으나 정성이 부족한 부작용 탓에 고만 달릴 것이 못 달리고 민둥산이가 되어 나왔노라고 끌탕을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동숙은 입을 댓발이나 내밀고 쿵쾅거리며 걸었는데 그 발걸음 소리는 천둥치는 소리가 무색했다.
도무지 더워서 잠을 못 이루겠다. 그렇다고 이 밤에 논 물고에 가서 목간을 할 수도 없고 처녀들만 와글와글한 집에서 머슴주제에 내어 놓고 목간을 할 수도 없는 터이다. 칠복은 물소리가 그치고 난 뒤 얼마 후에 눈치를 보다가 수건을 들었다. 문을 살짝 열고 발걸음도 죽인 채 우물가로 갔다. 우물가에 가까이 왔는데 고만 두레박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목간을 덜 마친 딸이 있나 싶어 발걸음을 돌리려 하다가, 그저 다만 물을 길러 왔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싶어 우물가로 두어 발걸음을 옮겼다. 누가 물을 긷는가 해서 두레박이 있는 우물지붕을 언뜻 보았으나 우물지붕 아래에는 아무도 없다. 싱거운 일도 다 있다 하며 목을 쭈욱 뽑아 우물 뒤편을 보는데 아뿔싸 우물 뒤편에 막 옷을 벗고 있는 처자와 눈이 따악 마주쳤다. 금자였다. 금자는 우물 뒤편에 숨어서 시방 막 아래속옷을 발목까지 벗어 내리고 있던 참이다.
“애구머니나”
금자는 얼마나 놀랐는지 들릴 듯 말 듯 짧게 부르짖으며 발목에 걸려 있는 아래속옷을 벗지도 입지도 못한 채 발목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칠복도 어지간히 놀랐으나 눈앞에서 금자가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으니 깜짝 놀라 손을 뻗어 금자를 일으켜 세워 주려 하였다.
“저어리 저리 가윳”
잔뜩 웅크린 채로 금자는 자신의 몸에 뻗어오는 칠복의 손길을 홱 하니 뿌리쳤다.
“워쩐댜 금자야 미얀혀”
파뜩 정신을 차린 칠복은 금자의 몸에서 눈길을 거두지도 못한 채 황망히 손을 거두어들였다. 칠복이 사태를 파악하는데 잠깐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금숙은 잔뜩 웅크린 채로 민망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빠꼼” 정지 문이 살며시 열리며 동숙의 얼굴이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때이다.
“암마 암마 오빠 게서 뭣혀?”
동숙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잔뜩 웅크린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금자의 나신과 칠복이 손길을 거두고 있는 장면이었다.
“쉿 조용혀 목소리가 커 지저바야”
금자는 동숙의 말에 튕겨지듯 깜짝 놀라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소리를 강조하며 동숙을 나무랬다.
칠복은 슬며시 뒤로 돌아 섰고 금자는 다시 옷을 입었다. 살금살금 자리를 피해 내빼려는 칠복의 동작을 보고 동숙이 불러 세운다.
“오빠 나줌 봐유”
“뭐여 나는 암 것도 몰러”
동숙의 부름에 일순 동작금지를 당한 칠복이 간신히 대꾸를 하며 다시 돌아섰다. 동숙이 허리에 손을 올려 착 붙인 폼을 보아한즉슨 딱딱 을러댈 판이다.
“아녀 칠복이 오빠는 암 잘못도 안했어”
옷을 입은 금자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칠복을 두둔하고 나섰다.
“어머머 요것들 보게. 벌써 눈이 맞은겨?”
동숙이 기가 막히다 는 듯 칠복과 금자를 번갈아 보면서 닦아 세운다. 우물가의 앵두나무에는 금자가 벗어 놓은 양말 한 짝이 아직 걸려있다.
“아녀 내가 우물 뒤에서 옷을 벗고 목간을 하려고 하는디 그것도 모르고 칠복이 오빠가 목간하려구 수건들고 왔다가 나랑 눈이 마주쳐서 내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쪘는디, 오빠가 나를 일으켜 세워주려구 손을 내밀었는디 내가 부끄러워서 칠복이 오빠 손을 홱하고 밀쳤는디 그때 동숙이 니가 본겨”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것과 당황한 속내를 감추며 금자는 조곤조곤히 말을 이었다.
“그려? 이 지지배가 제 몸뚱이 안 보여 줄려구 혼자서 멱 감고 하더니 칠복이 오빠한티 몸뚱이 보여 주었네, 참 장하다 장혀”
동숙은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금자의 설명을 듣고는 한숨부터 나온다. 장차 이 일을 어쩔 것이냐. 계면쩍은데다가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칠복의 엉거주춤한 몰골을 보면서 동숙이 한 마디 내 뱉었다.
“그러니 어쩔겨 금자 너는 칠복이 오빠 색씨가 되는 수밖에 없는겨. 몸뚱이를 다 보여 주었으니께”
“어머, 어머 난 몰러”
칠복이 색씨가 되라는 말을 듣고 나서 금자는 제 집으로 꽁지가 빠져라 줄행랑을 쳤다.
동숙은 정지문으로 칠복은 삽작문으로 각각 돌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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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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