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칠복아 엄마 아퍼
21. 칠복아 엄마 아퍼
진홍색의 철쭉이 거뭇한 바위틈에 활짝 피어 있다. 아직 연두색으로 여린 길가 풀섶의 풀들은 이미 껑충하게 자라 진녹색으로 치장한 쑥부쟁이들 옆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새벽에 내릴 아침이슬의 영롱한 기운을 맞을 채비로 분주하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줄을 지어 먹을 것을 찾아 나선 개미떼는 죽은 꿀벌의 사체의 주변에 몰려 밀고 끌어당기기에 여념이 없다. 텃밭에 심어 놓은 배추는 이제 아이 손바닥만큼 자랐다. 무는 한 뼘 정도 자라나 열무김치를 담기에 적당하구나. 칠복이는 손바닥만큼 자란 배추쌈을 무척 좋아한다. 남편도 시아버님도 여린 배추를 쌈으로 먹을 때에는 한껏 입을 벌리고 눈은 보이지도 않는다. 조막손같이 여린 배춧잎을 여러 겹 겹쳐서 고추장과 된장을 적당히 섞고 마늘을 찧어 넣고 파를 종종종 썰어 넣은 위에 참기름으로 맛을 낸 쌈장을 듬뿍 발랐다. 그 위에 밥을 얹어 입이 터져라 한입에 넣고 우적우적 먹었다. 고소한 맛과 약간 쌉쌀한 맛이 어우러지며 그 맛이 낫낫하다. 아무래도 길쭉하고 대가 긴 조선배추 보다는 손바닥같이 활쫙 퍼진 이파리의 포두련 배추의 어린잎이 쌈으로 먹기에는 참 고소했다.
남편과 시아버님이 겨우내 익힌 두엄으로 만든 퇴비를 골마다 줄지어 뿌려 놓았었다. 거기에 한차례 봄비를 맞혀야 한다. 마침내 봄비가 마른 흙 위에 떨어지며 풀썩 먼지를 일으키더니 이내 마른 흙속으로 빨리듯 대지를 적시던 날, 씨 뿌릴 때가 되었구나 했다. “한 번 더 비를 맞히면 땅 골에 숨이 들 터인데”하며 시아버님은 흡족한 얼굴이 되었다. 바라던 대로 한 차례 봄비가 더 내려 주었다. 비가 내리고 난 다음 날 밭을 갈았다.
비를 맞은 토양은 뽀송뽀송하면서도 속에서 나오는 흙은 퇴비를 잘 먹어 찰기가 있었다. 아직 남아 있던 돌덩이와 떡처럼 뭉쳐 있는 흙을 부수어 곱게 만든 골 한쪽에는 배추씨를 한쪽에는 무씨를 정성껏 흩뿌려 놓았다. 흩뿌려 놓은 배추와 무의 싹은 함부로 자라나 이제 한 뼘 간격으로 솎아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오늘은 반공일이라 온 가족이 모여 점심을 함께 먹을 수 있으리라. 쌈장을 맛깔스럽게 만들어 놓고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는 여린 열무로는 열무김치를 담그고 배추쌈으로 풍요롭고 낫낫한 점심을 준비해야지. 정애는 소쿠리를 텃밭이 있는 둑에 놓고 배추와 무를 솎아냈다. 오늘 점심과 저녁 반찬거리로 벌써 넉넉한 양이다. 며칠을 두고 솎아서 싱싱한 배추쌈과 열무토장국으로 입맛을 돋우어 드려야겠다. 살짝 데쳐서 무쳐 놓으면 건건이로 이만한게 없다.
“어무이”
칠복이 벌써 학교에서 돌아오는구나. 칠복이 가방을 든 채로 정애를 부르며 달려온다.
정애는 칠복을 가슴에 안았다. 칠복은 금빛이 반짝이는 중학교 교모를 쓰고 정애에게 힘껏 달려와 안겼다. 어느새 칠순이도 함께 달려와 안겼다.
칠순이는 꽃신을 신고 흑단같이 길고 짙은 어여쁜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배시시 웃으며 칠복이와 함께 가슴에 안겼다.
갑자기 품에 안겼던 칠순이가 “엄마 가지마”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잠시 후에 꽉 잡았던 손을 풀고 몸을 돌려 뒤로 돌아 어디론가를 향해 살며시 사라져갔다. 아무리 불러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치맛자락을 끄는 소리만 들리며 아이는 사라져갔다.
“칠순아, 칠순아 어디가니? 엄마 여기있다. 칠순아~~”
꿈이었다. 혹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알지 못할 불안감에 휩싸여 몸을 떨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다.
언제나 칠복은 정애의 꿈에서 번듯한 중학생이었다.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칠복을 가슴에 안으려고 허우적거리다가 눈을 뜨면 가슴 사이로 삭풍이 일어나곤 했다. 그 삭풍은 텅 빈 긴 골목을 소용돌이치며 종이조각을 휘감아 남대문 이편과 저편으로 갈려 속절없이 사라져 버리는 허망하고 요망한 것이었다.
운명은 엇갈려 가는 것이런가. 칠복이 서울역전 앞에서 걸뱅이 생활을 하는 동안에 정애도 서울에 있었다. 칠복이 염천교 움막에서 설움살이를 할 때에 정애는 염천교 옆 양동 골목에서 손님을 받고 있었다.
*
남편과 시아버지를 졸지에 잃고 남편이 일구어낸 재산을 큰아버지에게 빼앗긴 정애가 칠복과 칠순을 큰 아버지 집에 남겨 놓고 떠나 왔을 때에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남편을 잃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돈 앞에서는 사람이라고 할 것도 없고 인정사정도 없는 큰 아주버니와 형님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그 배신감에 온몸을 떨며 정애는 자신의 손톱으로 생가슴을 후벼 파고는 자신의 심장을 꺼내 들고 하늘을 향하여 비통하게 웃어 제쳤다. 자식새끼들을 버리고 떠나게 만든 어미의 한이 얼마나 되는지 당신들도 알 때가 있으리라.
서울역에 도착하기까지 정애는 눈을 감았다가 이따금 눈을 떠서 차창 밖을 보며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만물을 향하여 눈을 치뜨고는 새파란 눈에 독기를 담아 독기를 뿜어내었다. 천안역에 도착할 즈음에서 하늘에 먹장구름이 깔리더니 이내 빗방울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서울역에 도착했다. 앞을 다투어 몰려나가는 승객들과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환영 인파들과 비닐우산을 파는 아이들이 우르르 뒤섞여서는 비늘우산을 팔고 사느라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어디로 가야할까. 어디로 가야할까.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는 역전앞 버스 정류장을 휘감아 들고나는 버스들을 바라보며 정애는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직면했다. 속에서부터 참아 두었던 설움이 북받쳐 올라온다. 정애는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눈을 질끈 감았다. 바르르 떨고 있는 눈꺼풀 사이로 이슬이 맺힌다.
정류장 앞에서 정애는 불광동으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길게 줄을 지어 있는 버스들 사이로 불광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데 정애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서울역에 내리기까지 정애는 자신의 친정을 생각했다. 홍제동 화장터 위에 오롯이 솟아 오른 구릉에 붙어 있는 판자촌이 있었다. 구릉 쪽을 윗목으로 삼고 아랫목 쪽으로 둥지를 튼 간신히 움막을 면한 판자촌이다. 게딱지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판잣집들은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사라지는 주검을 받아 산위에 다시 뿌려주는 일로 얼마간의 돈을 받아 생활하는 이들과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얻어 막일을 해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무악재 고개를 넘어가는 리어카를 밀어 주거나 새벽 일찍 지게를 받쳐 놓고 새벽일을 하는 장사꾼들의 짐을 지게로 날라주는 일을 하면서 입에 풀칠을 하는 이들도 상당했다.
아직 장작이랄 것도 없는 죽은 나무나 솔가지나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를 파서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는 집들이 많이 있었고 연탄을 때는 집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집이었다.
정애의 집은 연탄을 땠는데, 연탄이 귀했던 시절이니 연탄을 쌓아 놓고 땔 수가 없었다. 간신히 봉지쌀로 연명을 하는 처지에 자식들은 많았고 아버지의 지게벌이는 항상 부족했다. 어머니는 동생들을 이끌고 홍제동과 무악재 주변의 주택가의 쓰레기통을 뒤졌다. 이른 아침시간에 나가면 반쯤 탄 연탄을 가는 집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반쯤 탄 연탄의 타지 않은 부분을 못 쓰는 부엌칼이나 쇠붙이로 깨거나 긁어서 세수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돌아왔다. 그리고 얼추 모아지면 그것을 가져다가 연탄 집에 주었다.
연탄 집에서는 그것을 부수어 물에 개어 연탄 틀에 넣고는 커다란 나무 메로 쳐서 연탄을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하면 연탄 값이 절반이나 절약되었다. 그래서 연탄을 때는 달동네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동원해서 덜 탄 연탄을 캐러 다녔다. 연탄 한 장을 만들려면 세숫대야 한 대야 분량의 타다 남은 연탄이 필요했다. 이렇게 만든 연탄은 화력도 신통치 못했고 툭하면 꺼져서 어지간히 애를 먹였다. 특히 연탄가스도 많이 나왔다. 아래 화장터에서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처녀와 총각들의 죽음이 재로 변하고 있었고 위의 판잣집에서는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의 죽음을 초월한 목숨연명이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다.
동네에는 언제나 매캐하며 비릿한 죽음의 냄새가 온 동네를 휘감고 있었다. 인육이 타는 독특한 냄새는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지는 것이었다. 슬픔이라는 저승사자도 눈물을 한 줌 이나 뿌려 놓고야 겨우 이 고개를 넘어간다는 화장터 윗동네고개. 빨래를 널면 화장터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 인육의 재가 빨래를 하얗게 뒤덮었다. 기구한 죽음과 억울한 죽음으로 언제나 통곡이 멈추지 않는 동네. 술이 없으면 한 시간도 살 수 없다는 동네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않고 싸움을 벌였고 꽥꽥 고함을 질러대며 욕지거리를 해대는 그곳에서 인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조차 없었다. 그곳에 들어 와 살게 되면 인성은 함몰되었고 불과 1년이 채 못 되어서 똑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아침이 되면 아래에서는 사람 태우는 냄새와 함께 까만 연기가 높이 솟아 오른 화장터 굴뚝에서 긴 꼬리를 물고 하늘을 향해 피어올랐다. 위에서는 아침을 먹기 위해 밥하는 냄새와 솔가지나 죽은 나무의 삭정이를 태우는 연기가 굴뚝으로 피어올랐다. 삶과 죽음이 요란하게 교차하는 곳에서 정애는 자랐다. 슬피 울며 곡하는 소리와 요령 흔드는 음산한 소리를 들으며 초등학교를 다녀야 했다.
가끔 미군차가 오는 때가 있었는데 그 때에는 동네의 꼬마들이란 꼬마들은 죄다 몰려 미군차를 둘러싸고 미군들에게 두 손을 내밀며 “할로 쪼꼬래트 기부미”를 외쳤다. 인심이 후한 미군은 주머니에 있는 과자나 사탕 그리고 담배나 달러를 주는 때도 있었는데, 양담배를 받은 녀석은 횡재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양담배는 녀석의 아버지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양담배를 받은 아이는 즉시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불러댔고 아버지는 녀석이 벌어 온 양담배를 송구한 표정으로 받아 들고는 한 달음에 술친구들에게 달려가서 자랑을 늘어지게 하며 한 개비씩 돌려 피웠다. 달러를 받아 든 녀석은 그것을 들고 집으로 달려가서 아버지에게 드리며 칭찬을 기대하지만 달러는 남대문 시장에 가야 바꿀 수 있는 돈이었고 남대문 시장까지 가려면 차비가 있어야 했다. 대개의 경우 남대문 정도는 걸어서 다녔기 때문에 다리품을 팔아야 돈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인데 가끔 돈으로 주지 않고 비누로 바꾸어 주거나 인심이 좋은 달러상을 만나게 되면 양담배 한 갑을 받곤 했다. 당시 양담배 한 갑은 10센트로서 1달러는 10갑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도 1달러는 처치 곤란한 고민거리로 둔갑을 하곤 했다. 아이들이 구걸해 온 것으로 희비가 교차 하는 곳, 그곳이 정애의 친정이었다.
“아주머니 어디까지 가십니까?”
우산을 받쳐 들고 정애의 몸에 우산을 씌워주며 어떤 신사가 말을 붙여온다.
“네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버스가 오는 대로 타고 가렵니다.”
“버스가 많이 있는데 어디 가는 버스를 기다리시는지요. 제가 찾아 봐 드릴까요?”
“네 불광동 가는 버스를 타면 됩니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가실대로 가시지요.”
“불광동 가는 버스는 세대나 기다리고 있는데요. 혹시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까? 날씨도 춥고 한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차나 한 잔 사 드리고 싶습니다.”
“어머 아닙니다. 생각할 것이 있어서 이러고 있는 중입니다. 걱정해 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가실대로 가세요.”
정애는 다소 쌀쌀한 어투로 말했다. 이 때 어떤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가 기웃하더니 번개같이 정애가 가슴에 붙이고 있는 보퉁이를 채서 대로를 가로질러 달아났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정애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을 뿐, 대로를 가로질러 달리는 자가용들과 새나라 택시 사이를 곡예 하듯 피해 달아나고 있는 여인을 향해 손만 휘두르고 있다.
“저런저런, 아주머니 제 손을 꼭 잡으십시오. 저런 도둑년은 꼭 잡아서 아주머니 보퉁이를 찾아 드리겠습니다. 빨리 제 손을 잡으세요.”
신사는 우산을 접으며 정애의 손을 잡아 힘주어 끌었다. 얼떨결에 정애는 신사의 손에 이끌려 대로를 가로질러 달아나고 있는 여인의 뒤를 좇을 수밖에 없다. 여인은 재빨리 골목길로 도망을 갔고 신사는 그 길을 잘 아는 것처럼 정애의 손을 잡고 함께 달음질쳤다.
“이리이리 가야 합니다. 이쪽으로 도망갔어요.”
신사가 이끌며 가르키고 있는 골목의 끝에 보퉁이를 훔쳐 달아난 여인의 옷자락 끝이 보였다. 정애도 있는 힘을 다해 신사와 함께 뒤를 좇았다.
“벗어 이년아.”
신사가 정애에게 던진 말이다. 정애가 보퉁이를 훔쳐 골목으로 달아난 여인의 뒤를 좇아 골목 안을 들어섰을 때 열린 대문에서 남자 세 명이 나와 다짜고짜 정애의 뺨을 후려갈겼다. 사내의 손힘을 이기지 못한 정애가 쓰러지자 사내들은 정애를 들쳐 업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었다. 방안에는 침구가 깔려 있었고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정애를 들쳐 업고 온 사내는 마치 정애가 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침구 위에 내동이 쳤다. 정애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함께 온 신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사내 세 명이 정애를 내려다보며 음흉한 눈빛으로 정애의 몸을 샅샅이 훑었다. 그 중의 한 사내가 다시 말했다.
“벗어 이 년아”...
깜짝 놀란 정애가 사내들에게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애원했으나 사내들은 정애를 올라타고는 옷을 벗겼다. 옷고름이 뜯겨져 나가고 치마 단이 뜯겨지며 정애의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사내들의 완력은 거세어졌고 이미 한 사내는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며 바지를 벗고 있는 중이다.
“어쭈 이 년 몸 봐라. 괜찮은데, 아주 잘 익었는데 흐흐흐”
“오래 간만에 물건 건졌수다. 형님”
“형님 빨리 맛 보슈. 근질거립니다. 하하”
형님으로 불린 자가 정애의 몸을 손으로 훑어 내렸다.
“아아 하나님 한 번만 살려 주세요.”
정애는 두 눈을 감고 스물스물 훑어 내리는 사내의 손에 진저리를 치면서 부르짖었다.
“어라 이 년이 예수쟁이인 모양인데, 야 이 년아 똑똑히 봐라. 오늘부터 네 서방이다. 우라질년아 하나님? 내 좆 맛을 보면 하나님이고 뭐고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내 좆이 네 하나님이다. 이 년아”
사내는 정애의 젖가슴을 함부로 주무르며 유두를 비틀었다. 그리고 정애가 힘주어 잔뜩 오무린 두 다리 위를 스물스물 굼뜬 동작으로 애무해 나갔다. 가끔 손을 비집고 정애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으며 정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도리질을 하며 피하는 정애를 바라보면서 사내는 고양이가 잡은 쥐를 희롱하듯 양손으로 정애의 몸을 쓰다듬고 주물렀다. 사내는 몸을 내려 정애의 유두를 잘근잘근 깨물며 손으로 정애의 샅을 주물렀다. 음모를 간질이듯 섬세한 손길로 터치해 들어오는 얼마의 순간에 정애는 그만 그 손이 남편의 손인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래 그래야지 좀 더 쏟아라. 그래야 안 아프지. 흐흐흐”
정애는 낯선 사내의 음흉한 웃음소리에 깜빡 제 정신으로 돌아와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남편의 손길로 착각하는 동안에 정애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사내의 다리가 들어와 있었다. 정애가 있는 힘을 다해 다리를 오므리려고 애를 쓰는 동안, 사내의 남성이 정애의 몸을 침입하고 있었다.
“하악”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애의 가녀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엉덩이가 힘차게 내려 찍히는 순간 정애는 자신의 몸을 뚫고 들어온 이물질을 감각하며 뇌리에 규칙적으로 쿵쿵 전해오는 낯익은 충격을 받으며 서서히 온 몸의 힘을 풀고 늘어져 버렸다.
두 명 째인가 세 명 째인가, 의식의 줄을 놓아버린 정애는 자신의 몸에 전달되어 오는 다른 남자의 체취와 자신의 몸 안에 들어 와 있는 또 다른 감각에 의지의 줄마저 던져 놓고 서서히 절망의 늪 속으로 침전되고 있었다.
“칠복아...”
가슴 한 켠에 묻어 두었던 자식의 이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다문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정애의 몸 위에서는 낯 설은 사내의 몸놀림이 계속되고 있었고 술 냄새와 담배 냄새에 찌든 거친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정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주루룩 눈가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는 눈물 사이로 지나간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사라져 간다.
반딧불이의 꽁지에서 나오는 빛을 보고 칠복은 어지간히 신기해했다. 칠복은 그것을 “귀진불 귀진불” 하고 불렀다. 아직 발음도 정확하지 못한 칠복은 세살이 되도록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말끄럼이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보고 싶다. 우리 칠복이, 칠복아 에미를 용서해라.’
입으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말은 허공에 흩어져 버렸고 정애의 머리칼도 허공에 흩어져 사지는 늘어져 버렸다. 힘도 의식도 의지도,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망치 형님 우리는 다 끝났수”
문을 열고 마지막 사내가 나가고 난 뒤에 잠시 후에 문이 다시 열렸다. 또 다시 들어선 사내를 간신히 눈을 떠서 바라본 정애는 말을 잃었다. 들어선 사내는 정애에게 우산을 받쳐 주었던 그 사내였다. 사내는 함부로 헤쳐져 있는 정애의 몸을 들여다보며 서서히 옷을 벗었다.
“자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잖아. 이제 돈이나 벌어서 많이 모아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게 해 줄게. 그 동안 우리와 함께 있어.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안 해도 되도록 해 줄테니까 말이야.”
고개를 외로 꼬고 있는 정애의 몸을 주무르면서 사내는 정애를 구슬렀다.
“자자 퍼져 있지 말고 우리 재미 좀 보자. 하루 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도 있지 않어. 다리 좀 벌려.”
사내는 함부로 정애의 두 다리를 벌리더니 정애의 음부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정애가 움찔하자 사내는 손가락 하나를 더해 정애의 음부에 집어넣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침내 준비가 되었는지 정애의 몸에 올라타고 자신의 성기를 정애의 음부에 몇 번 문지르더니 이윽고 허리를 움직여 엉덩이를 곧추 세워 내리 찍었다.
“아윽”
정애의 입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오자 만족한 듯 사내는 몸놀림을 반복하며 정애의 몸 깊숙이 침입해 들어갔다. 정애는 무리한 것이 자신의 몸을 뚫고 들어오는 아픔에 두 다리에서 경련이 일었다. 정애의 몸을 통해서 감각되는 사내의 몸에는 마치 무엇을 감아 둔 것처럼 이질감이 있었고 속을 훑어내는 괴로움을 주었다.
이물감이 느껴지는 사내의 펌프질로 인해 정애는 자신의 자궁을 칼로 베어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어지는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입술을 악물고 있던 정애의 눈에 일순 살기가 번뜩였다. 정애는 온 힘을 아랫배에 모았다. 찢어지고 발겨진 몸뚱이로 살 자신도 없고 자식들 얼굴을 볼 용기도 없어진 이상 살아 있을 이유조차 없다. 후아 후아 숨을 몇 번 몰아쉬면서 아랫배에 힘을 가득 모은 채로 정애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단 한 번에 끝장을 내야 한다. 단 한 번에 온힘을 다해 사내로 인해 상처가 생긴 자궁을 터뜨려야 죽는다. 정애가 숨을 몇 번 몰아쉬는 동안에 정애의 몸속에서 움직임이 있었는데 사내는 그것을 마침내 정애가 자신의 정력에 반응하는 것으로 알았는지 눈을 게슴츠레 뜨며 거칠게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윽 으으으윽”
정애는 단발마의 비명소리와 함께 온 몸의 힘을 자궁에 모았다. 한꺼번에 힘을 몰아서 자궁을 압박하니 일순 사내의 몸짓이 멈추었다.
“죽어”
정애는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몸과 하나가 되어 있는 사내를 싸늘하게 쏘아보며 있는 대로 힘을 주어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터뜨려 버렸다. 뜨거운 기운이 자궁 쪽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끼며 정애는 눈을 감았다.
사내는 갑자기 자신의 성기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꽉 조여 오는 감각에 잠시 황홀해 졌으나 정애의 질속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오자 깜짝 놀랐다. 이어서 자신의 하복부 쪽으로부터 피비린내가 올라오며 구역질을 느꼈다.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양쪽 무릎에 뜨끈한 감각이 느껴지며 진득한 감촉의 물질이 무릎을 감돌고 있는 섬뜩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 튕겨져 일어났다. 이미 온 방안은 피비린내로 진동하고 있었다.
“주모 주모 일났네 일났어”
사내는 옷도 입지 못하고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 포주를 불러댔다.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업고 뛰고 있다고 느끼며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정애의 정신은 봄날에 눈이 녹아 없어지듯 소멸되어 갔다.
정애가 눈을 뜨고 처음으로 마주친 얼굴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찍어 누르듯 하는 포주의 얼굴이었다. 그 포주의 얼굴을 보니 자신의 보퉁이를 빼앗아 도망을 쳤던 도둑년이 분명하다. 정애는 증오심으로 가득 채워진 야멸찬 눈빛으로 포주의 얼굴을 쏘아 보다가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정애의 마음은 포주의 뻔뻔한 낯빤대기를 갈갈이 찢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이년아 속창아리 없는 년아. 앞날이 창창하다 못해 구만리 같은 년이 왜 죽어. 나 같은 인간도 살아 있는데 네가 왜 죽어. 에라이 병신 같은 년아”
정애는 코웃음으로 냉소를 치며 외면한 채로 눈을 감아 버렸다. 단 한 번에 죽었어야 했는데 왜 살아나서 이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저 지긋지긋한 쌍통에 비수를 꼽지 못하는 힘이 빠져버린 팔이 원망스러웠다. 링거를 팔에 맞고 있으면서도 꼼짝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정애의 눈에 살기가 번뜩이는 것을 보고 포주는 할 말을 잃었다.
“독한 년, 이 독한 년아. 자궁까지 떼어내고 여자구실도 못하는 년, 이 병신아 나를 물어뜯어 죽이고 싶지? 그래 봐라 이년아”
포주는 진하디 진한 눈물을 폭포수같이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 이 년아 내 아랫도리도 보여줄까? 나도 앞날이 창창할 때 일본군에게 잡혀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까지 끌려가서 내**가 걸레가 되도록 일본놈들 요강으로 살았던 년이다. 간신히 살아 돌아와서 나도 여기서 ** 팔면서 살았어. 네깢년들은 그래도 한국놈들 상대하지, 돈 받고 상대하지. 나처럼 좆같은 년들은 이유도 모르면서 일본놈 요강이 되었다. 이년아 그래도 부모가 물려준 생목숨을 끊는다는 생각은 못하고 살았다. 개씨발년아 네가 뭐가 잘나서 ** 한 번 대 준거 가지고 지랄발광을 떠냐. 어엉 엉엉엉 차라리 나를 죽여라 이 년아”
정애는 악악거리며 울어대는 포주의 악 받친 울음과 그 소리에 귀를 틀어막았다.
“이년아 네까짓 것이 어딜갈래? 갈데나 있냐? 기껏해야 술집 작부야 이년아. 술집작부는 고급 년이더냐? 똑같이 ** 팔아먹고 사는 년들이여. 이 베라먹을 년아. 너도 자식새끼 있지? 동생도 있고 부모도 있지? 서방 있는 년은 너처럼 빌빌거리면서 어디로 갈까 하고 빙글거리지 않어 이년아. 우리가 이 장사 하루 이틀한지 아냐? 이 때갈 년아. 한 삼년 나 죽었소 하고 벌려주고 벌면 네 집 식구들 번듯한 집이라도 한 칸 만들 수 있어 이 멍청한 년아. 서울에서 하루에 굶어 죽어 나가는 송장이 얼마나 되는지나 아냐? 이 베라먹을 년아”
“그러면 좋아서 하는 사람이나 하지 왜 나 같은 사람을 이리 만들어 놔요? 뭘 잘했다고 욕을 해? 내가 무슨 욕 얻어먹을 일을 했다고 이렇게 험한 욕을 해. 입 닫고 있어요.”
“그래 이 년아 뚫어진 입이라고 말도 조잘조잘 잘도 나오는구나. 이 독한 년아. 한 번 해 볼래?”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보아 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은근히 가슴속에 저며 드는 말이 있다. ‘갈 데가 없는 년이 결국은 술집작부로 가지 술집작부는 고급 년이냐? 똑같이 ** 팔아먹고 사는 년들이여’ 그래 어디 가서 빌어먹을 데도 없고 식모살이도 아는 사람이 있어야 식모살이를 하지. ‘삼년 나 죽었소 하고 죽은 듯 살면 집 한 칸 번듯하게 장만할 수 있어 이년아’. 그렇다면 그렇게 빨리 집을 장만할 수 있는 돈이 벌린다는 말이겠는데, 그 돈을 과연 나에게 줄까? 그렇다면 시험을 해 보자. 내 보퉁이를 순순히 내어주면 믿어보자.
“내 보퉁이는 어쨌소?”
“시방 보퉁이는 왜 찾고 지랄이여? 자빠져 있는 년이, 그 고린내 나는 보퉁인지 지랄인지 니 방에 두었다 이년아. 돈 몇 푼 있는 것은 방세 보증금으로 받았다.”
“아니 뭐가 이런 사람이 있대. 누가 언제 방을 빌렸다고 보증금이래요?”
“그래 이 잘난 년아. 그렇게 말해 줘도 모른다면, 병 낳는 대로 가고 싶은 대로 가거라. 이년아. 고린내 나는 보퉁이 줄테니까 맘대로 혀 이년아. 니 병원비는 내가 다리 벌려서 벌어서 벌충을 할테니까. 퇴원하는 대로 꺼져라 이 년아. 이 뒈질 년아”
“거 욕 좀 하지 말아요.”
“뭐라? 욕하지 말아? 이 년아 내가 욕하는데 네년이 보태준 것 있어? 핏덩어리 같은 년이 까불고 있어”
병실 문이 열리고 빼꼼하고 고개를 기웃하며 들이미는 사내는 망치로 불렸던 그 사내였다.
“어라 정신이 들었나 보네. 그럴 맘은 없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다.”
사내가 정애를 보고는 뒤 꼭지를 긁으면서 미안해했다. 가까이 보니 30대 후반이거나 아니면 40대 초반이나 되었겠다. 부러 신사로 분장해서 나이가 지긋해 보이도록 꾸몄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정애는 그만 그 자의 얼굴을 보는데 설움이 북받쳐 올라왔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데 그리 울면 내가 더 미안해지지 그만 울음 그쳐요.”
정애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며 그가 위로해 왔다. 내가 왜 이러지? 정애는 자신에게 물어 보며 증오와 원망이 살며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내가 왜 이러지.
사내는 정애의 눈가에 흐른 눈물을 정성껏 닦아 주며 살며시 정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운명이런가. 내 팔자가 이런 것인가. 어느덧 정애는 자신의 운명으로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시 눈을 떠서 포주의 얼굴을 보니 기구한 운명에 있는 힘을 다해 반항하며 싸워온 흔적이 얼굴에 보인다. 마치 사람이 옆에서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과 같아 보였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보니 시대의 역행자요, 역사의 희생양이었던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의 사람으로 다가와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그렇지 여자를 납치해서 강제로 폭행을 하고 남자들 노리개로 제공하는 여자 장사를 인두겁을 쓰고야 어찌 할 수 있겠나. 자신의 부당한 일에 노예가 되어 버린 듯 한 포주의 얼굴을 향해 증오의 눈빛은 거두었으나 도무지 품을 수는 없다. 이제야 정애는 손을 뻗어 자신의 배를 만져 보았다.
링거병에는 아직 혈액이 담겨져 있었고 세 병째 수혈중이라 했다. 자신의 배는 붕대로 칭칭 동여매어 있었다. 과연 어떤 수술을 했고 수술의 경과는 어떤지 궁금해졌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던 지난 찰나의 시간대에 절망했던 절망의 무게 쪽에서 삶에 대한 소망의 무게 쪽으로 무게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중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희비의 쌍곡선이 꼭지점에서 멈추었다. 그것은 칠복이었다. 죽어도 칠복이 잘 자라난 모습을 보고 나서야 죽을 수 있겠다.
망치는 전문기계로 통했다. 망치는 성기에 한 주먹이나 되는 구슬을 넣었는데 5번 감옥살이에 칫솔을 깎아 구슬을 만들어 칫솔대를 갈아서 그걸로 성기의 표피에 구멍을 내고 구슬을 박아 넣었다고 했다. 웬만한 크기에 구슬을 한 주먹이나 넣었으니 표피가 울퉁불퉁 하고 속에서 구슬이 함부로 굴러 다녔다. 정애가 나중에 안 이야기로는 망치는 구멍을 넓혀서 양공주를 만들어 내는 기계구실을 하는 남자라고 했다. 망치가 손을 본 여자는 질 입구가 찢어지게 되어 있는데 찢어진 채로 아물면 미군도 상대할 수 있는 몸이 된다고 했다. 미군을 받아야 포주나 아가씨의 벌이에 도움이 되지 한국인만 받아서는 밥 먹고 살기에도 빠듯하다고 했다.
특히 양담배를 보루로 가져다주는 미군은 특대우를 받았고 미군들은 이 사실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어떤 미군은 담배를 한 보루 안겨 놓고는 아가씨 머리가 휘청거리고 눈에서 아지랑이가 일도록 성기를 빨게 하는 미군이 있었는데 이는 보편적이었다. 가끔 담배를 두 보루를 안겨 주고는 항문섹스를 요구하는 미군이 있어서 골치가 아팠다. 미연이는 설마 사람이야 잡겠나 싶은 마음에 담배 두 보루에 욕심을 내서 미군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가 항문이 찢어져 일주일 간이나 손님을 못 받고 몸져누워있어야 했다.
기껏해야 한 평 남짓한 방안에서 세상의 요지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가 가끔씩 필름이 끊긴 영화처럼 요지경의 장면이 끊기는 때도 있었다. 성의 욕구에 대한 배설은 사람의 얼굴이 각각 다른 것처럼 그 욕구나 욕구를 푸는 방법도 다양했다. 정애는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별의별 손님을 다 받으며 세상을 사는 질긴 방법에 대하여 하나 둘 터득해 나갔다.
병원에서 퇴원을 한 얼마 동안에도 질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핏줄이 하나 정도 터졌는데 아무리해도 찾아낼 수도 없고 설혹 찾아낸다고 해도 신경과 장이 복합되어 있는 극히 예민하고 복잡한 부분이라 핏줄 하나를 찾아내어도 연결할 수도 없으니 자연적으로 지혈 되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만약에 지혈이 되지 못하면 정기적으로 수혈을 해서 흘러내린 피의 양만큼 보충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며 자연히 치료가 될 수도 있으니 지켜보자고 했다. 얼마 후 다행히 피는 멈추었고 피가 멈추고 난 후부터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망치가 정애를 요구해서 정애가 응하기는 했으나 몇 번이나 시도해 보다가 서로 사이즈가 맞지 않아 애를 먹었다. 망치가 해 보라고 하는 대로 기침을 몇 번씩이나 하면서 강제로 삽입을 시도했으나 극심한 고통에 결국 포기를 하고 말았다. 망치가 구슬을 빼던지 정애가 손님을 많이 받아 질이 늘어나 삽입이 가능해 질 때까지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정애가 처음으로 미군을 받아들이던 날, 포주는 망치를 시켜 잔뜩 술에 취하게 했고 정애가 하복부를 후벼 파는 듯한 고통과 압박감에 눈을 떴을 때에는 난생 처음 보는 흑인이 독한 노린내와 냄새나는 거친 숨을 내어 쉬면서 정애의 배 위에서 삽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마침내 삽입에 성공했을 때 정애는 눈을 뒤집을 만큼 고통스러움과 사지를 꼼짝 달싹도 할 수 없이 내려 누르는 바위 같은 압박감에 정신을 잃었다. 흑인의 성기는 정애의 질을 통과하여 대장의 벽을 내리찍었고 정애는 뱃속의 창자가 흔들리는 고통과 뒤통수를 두들기는 듯 한 리듬을 타고 간헐적으로 엄습해 오는 고통에 숨이 막혀 가끔씩 숨까지도 멈추었다. 그 고통은 마치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간신히 누가 자신의 뺨을 때리고 있다는 정도의 감각이 어설프게 느껴지고 이내 텅 비어 버린 머릿속이 지끈지끈 쑤셔 오는듯한 고통과 같았다.
정애는 미군을 받고 난 뒤에 며칠 동안 하혈을 했다. 뭉글뭉글한 핏덩이가 탯줄처럼 흘러 나왔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녹초가 되었다. 흑인 사병은 100달러와 담배 두 보루를 놓고 갔단다. 포주는 이거야 말로 횡재를 한 것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흑인사병을 추켜세웠고 그 사병을 단골로 잡으라고 정애를 코치했으나 정애는 그 얼굴만 봐도 구역질과 함께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흑인사병의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닌 거대한 동물의 성기와 같았다. 정애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얼마 후 정애는 망치의 욕구를 들어 주었고 망치와의 결합에서 여인의 황홀경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남대문 위로 해는 떠올랐고 염천교 아래로 해가 떨어지는 동안 정애의 배 위에는 무수한 남성이 희열을 느끼며 갈증을 해갈했다.
정애는 아예 명주라는 이름으로 명찰을 바꾸어 달았다. 명주는 기교가 좋은 년, 물건이 좋은 긴자꾸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가끔 돈 없는 군바리가 술에 취해 찾아와 여기저기에서 구박 받고 쫓겨나면 슬며시 그를 끌어들이고 자신의 배를 내어 주었다. 군바리는 고마운 마음에 있는 힘을 다했고 명주는 안쓰럽게 여기며 등을 애무해 주었다. 배와 배가 떨어져 둘이 되었을 때에 군바리는 명주의 얼굴을 보며 고마워했고 명주는 그가 돌아 갈 때에 차비하라고 얼마의 돈을 찔러 주었다. 극구 사양하다가 겸연쩍어하며 있는 대로 경례를 붙이며 군바리는 돌아갔다. 명주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 몸을 바치고 있는 군인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모양만 다르지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 한 몸을 바치고 있는 것이야 같은 것이 아니겠나.
명주는 군인을 통해 자그만 애국심을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그 애국심은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돈 없는 군인을 상대해 주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몸이라 감히 숭고한 국가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럽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를 위해 무언가는 해야 했다. 그래서 그것으로라도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되어야 했다. 정애는 군인을 받을 때면 마치 보시를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받들어 모셨다. 이 작은 정성을 하늘에서 알아주시고 한 번 더 불쌍히 여겨 주사 온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 하는 소원을 담아 군인을 받는 동안 천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기도했다. 정애에게 있어 군인은 애국심의 발로였으며 신께 기도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제사장이었다. 아아 우리 칠복이는 언제 의젓한 군인이 되어 어미에게 경계를 붙여 줄까나. 명주는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손님을 받는 것이 온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날을 앞당겨 주리라.
명주의 한 평 반 되는 방에서는 한탄과 한숨 그리고 희열에 가득 찬 괴성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날이 갈수록 명주의 온몸은 하나의 성기로 화해지고 있었다. 명주의 배 위를 지나간 남성들 중에 왕초도 섞여 있었던들 그것이 무에 그리 대수이겠나. 명주의 한 평 반 남짓 되는 방에서는 연신 한탄과 한숨 그리고 희열에 가득 찬 괴성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날이 갈수록 명주의 온몸은 하나의 성기로 화해지고 있었다. 정애가 마음을 바꾸어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선선히 받아들이게 되니 자신을 찾아 주는 뭇 남성들의 정액으로 온 몸에 떡칠이 되어졌어도 견딜만했다.
동공도 치마끈도 풀려졌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에 오직 자식들과의 행복한 나날을 소망하며 억척스럽게 한 사람의 손님이라도 더 받으려고 애를 쓰며 교태를 부리는 명주라는 이름은 현실이었다. 입에 넣고 앙하고 깨물고 싶도록 귀엽고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개똥벌레를 가리키며 "귀진불" "귀진불"하며 아장걸음으로 주척주척 개똥벌레의 뒤를 따라가던 칠복과의 옛 이야기는 가슴에 담아 두고 빛바랜 사진이 되어 추억이라는 이름의 보석함에 넣어두고는 자물쇠를 채웠다. 명주와 정애라는 이름의 개체는 별개의 개체로 각각 독립되어 한 인식 속에 둥지를 틀고 각각의 영역을 가진 채로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제각각의 인격으로 따로 활동하고 있었다. 혼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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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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