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루터기 인생
14. 그루터기 인생
드디어 기별이 왔다. 박 초시는 박 선생이 전해 준 통신표를 받아 들고 칠복을 불렀다. 야학 신청을 받으니 기일 안에 등록신청을 하라는 통지서이다. 통지에는 주민등록 등본과 사진 2매 그리고 교재 및 야학 1년 치 등록금으로 보리쌀 두말이나 쌀 한말을 가져오라고 되어 있다. 야학은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3시간 동안 공부하는 방식으로 커리큐럼이 짜여 있다.
칠복이 쌀 한 말이라는 말과 주민등록등본과 사진이라는 말에 코를 댓발이나 빼고 있음을 보고 박 초시는 아차 싶었다. 사진과 쌀 한 말은 자신이 준비해 주기로 내심 작정을 했으니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주민등록등본에 있다.
“칠복아 민증은 어찌 되어 있느냐”
박 초시가 코를 빼고 있는 칠복을 향해 물었다. 아무래도 주민등록등본이 허공에 떠 있다거나 아니면 김천에 있다는 큰 아버지가 부러 칠복의 주민등록을 말소시키기 위해 행방불명자로 신고해 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르신 그게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구만유. 하도 오래 전에 집을 나와서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슈”
“험험 그려 집 떠나온 지 상구 오래 되었다는디 그걸 니가 어찌 알겠느냐. 알았다. 내가 알아보마”
박 초시는 동이면사무소에 가서 알아 볼 요량을 하다가 아무래도 박 선생이 알아 봐 주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하겠다 싶었는데, 군청에 있는 고등학교 동창생인 김 과장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그래 김 과장이 알아 봐 준다면 두말 할 필요가 없겠다는 판단이 선다. 군청에 갔다가 버스를 타고 영동장에 댕겨 와야겠다. 아무래도 주모와의 관계를 청산해야할까 싶다.
“아니 이 사람이 뉘여. 박 초시께서 여기까지 뭔 바람이 불어 행차를 다 하셨남. 어서 오시게”
“잘 있었던가. 내 부탁이 있어서 잠시 들렀는디”
김 과장은 부러 군청에 들른 박 초시의 손을 잡으며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옥천 군청 행정과장인 김 과장은 충남 대를 졸업하고 당시 7급 공무원 공채를 통해 옥천군청의 행정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위인 됨이 소탈하고 고학으로 공부하여 4년제 대학을 마친 사람이라 고린내가 날 정도로 씀씀이가 짰으나 규모가 있는 생활로 집과 논을 장만해 두었고 일찌감치 사둔 밭뙈기도 있는데 군청의 영농자금을 빌어 포도과수원으로 만들어서 재미를 쏠쏠 보는 친구이다. 김 과장과 박 초시는 옥천실고 출신으로 같은 반의 친구였는데 박 초시의 그림자와 같았고 언제나 박 초시를 두호해 주었던 친구이다. 그리 오랜만에 만난 사이도 아니건만 배짱이 맞았던 두 친구는 서로를 반겨하며 서둘러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마주 앉았다.
“김 과장 내게 아들과 같이 생각하고 있는 아이를 거두었는데 그 아이의 주민등록을 동이면에 올리려 하는데 김 과장이 좀 봐 주어야겄네”
“그려? 아들같은 아이? 그람 데릴사위라도 얻었단 말이여?”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이나 처음 듣는 이야기이니 김 과장의 눈썹이 꿈틀해지며 바짝 다가앉는다.
“아니여. 시방이 어떤 세상이라고 남사스럽게 데릴사위 운운한단 말이여. 그게 아니고 아들이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눈에 박히는 아이가 장터에서 떠돌기에 사정을 들어 보니 부모도 없는 고아에다 큰 아버지 집에 얹혀살았던 모양이여. 눈치 밥 먹다가 집을 나와서 떠돌고 있는 아이인데, 내가 거두어서 지켜보니 내 아들이라면 좋을 그런 아이여”
“그려? 그렇다면 행불처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것구만, 알았네 그 정도의 일이야 일이나 되겠는가. 걱정 마시게. 내가 면에 지시해서 빨리 처리해 주라고 하겠네”
“그려 자네가 힘써 준다면 일이 빨리 되겠구먼 고마우이. 이제 염려 안 해도 되겠네”
김 과장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박 초시는 시외버스를 타고 영동장터에 내렸다. 영동장터에 내려 주막을 보니 텔레비전 안테나가 쭈욱 올라가 있고 고추잠자리들이 안테나에 앉아 있다. 벌써 보름이 넘었나 보다. 박 초시는 후욱하고 숨을 들이마시고는 주막의 문을 열었다.
“주모 계신가”
문을 열고 들어섰으나 홀에는 아무도 없다. 하긴 점심때는 훌쩍 지났고 저녁 까지는 한참 남은 시간이다. 혹시 정지에 있나 해서 기웃거렸으나 정지에도 주모는 없었다.
“아니 문을 열어 놓고 방에서 낮잠을 자나, 원 세상이 어떤 세상인디”
속으로 꾸지람 하면서 방문을 열어 보았으나 주모는 없었다. 대신 박 초시를 반기는 것은 반짝이는 자개미닫이서랍장과 멋진 텔레비전이었다. 그렇다고 주인도 없는데 방안에 떠억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경우이니 방문을 닫고 멋쩍은 모습으로 식탁 의자에 앉았다. 무료함과 어색함을 달래려는 듯 외출 시에 피우는 권련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박 초시는 외출 시에는 권련을 피웠고 집안에서는 할머니와 함께 봉초 담배를 담뱃대에 넣어 피웠다. 독하기는 해도 봉초 담배를 피워야 담배 맛이 제대로 나는 터이다.
박 초시와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는데 박 초시는 모친의 담뱃대가 항상 반짝거리도록 잘 닦아 드렸고 정기적으로 담뱃진을 제거해 드렸는데 상당한 고역이었으나 박 초시는 단 마음으로 이 작업을 계속해왔다.
모친의 담뱃대는 “오죽초룡대”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진귀한 담뱃대이다. 이 담뱃대는 부친이 살아 계실 때에 모친의 회갑선물로 쌀 열 가마 값이나 주고 한양에서 사온 담뱃대이다. 담뱃대의 머리통과 빨뿌리는 은으로 만들어졌는데, 당대의 유명한 화가가 밑그림을 그려 넣고 이를 은 세공가가 세공한 후에 다시 화가가 색을 넣어 완성한 작품이다. 담뱃대의 대는 오죽이라 하여 까마귀의 깃털과 같은 색이 나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은으로 만든 대통에는 용의 머리가 새겨져 있고 오죽으로 만들어진 담뱃대에는 용의 몸통이 새겨져 있었으며 빨뿌리에는 용의 꼬리가 음각되어져 있다. 몸통 부분에 해당하는 오죽담뱃대는 속은 좁고 두꺼워서 두꺼운 표면에 세밀하게 음각해 넣을 수가 있었는데 용의 비늘 하나하나에도 색을 입혀 넣어서 담뱃대가 아니라 무슨 진귀한 예술작품을 보는 듯 했다. 보통 담뱃대보다 두 배나 길고 웅장해 보이는 담뱃대는 값만큼이나 묵직했으며 집에서 귀한 손님이 오실 때에나 사용하곤 했다. “오죽초용대”는 값도 값이려니와 사대부 이상이 아니면 담뱃대를 만들어 주지도 팔지도 않았다.
당시 부친은 한양에서 서책 몇 권을 사러 갔다가 들른 현재의 인사동 골목의 사대부 집안의 용품을 파는 한 점방에서 “오죽초용대”를 보고 한 눈에 반해 버렸다. 한일합방으로 인해 대과가 없어졌으나 박 초시 부친의 선친이 진사초시에 장원급제를 한만큼 박 초시 부친도 진사로 불렸다. 박 초시 가문은 양반 중의 양반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고 이는 우산리 마을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박 초시는 모친의 담뱃대를 어루만지며 부친 생각에 잠시 상념에 빠져들곤 했다.
모친은 부친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부친이 생각나면 피우곤 했다. 이제는 인이 박혀서 하루에 대 여섯 번 정도 이 담뱃대에 봉초 담배를 꾸욱꾸욱 눌러 담아 피우시곤 한다. 박 초시는 모친의 담뱃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담았다. 빨뿌리로 쭈욱하고 빨면 헛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담뱃대 통에 담배를 채워 넣어 불을 붙여 드리곤 했는데, 모친은 박 초시가 담아 주는 담배를 아주 좋아했다. 아마도 남편과 사별하고 난 뒤에 생긴 유일한 낙이려니 박 초시는 측은한 마음에 더욱 공을 들여 모친의 담뱃대에 담배를 꾹꾹 야물게 눌러 담아 드린다.
권련을 피우고 있는 박 초시의 손이 잠깐 흔들렸다. 집에 계시는 노모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모친은 아들을 끔찍이 생각했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큰일이 나는 줄로 알고 조바심을 내곤 했다. 물론 며느리와 칠복이가 불편함이 없이 건사해 드릴 것이 자명하나 그래도 노모는 늘 아들의 빈자리를 못 견뎌 했다. 연세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그 정도가 심해진 듯 하다.
“어머 어머 어른 오셨시유. 이년 어른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 뻔 봤시유”
주모가 들어서며 교태를 부리며 짐짓 앵토라진 얼굴로 박 초시의 손을 덥석 잡는다.
“그려 이제 오나. 어딜 그리 댕겨 온거여. 점방꺼정 비워두고...”
박 초시가 연지를 보며 환한 얼굴로 반기며 연지에게 잡힌 손등에 손을 얹었다. 감촉이 따스하고 매끄럽다.
“어여 어여 방으로 들어가시잖구, 여긴 왜 나와 계셔유”
주모가 박 초시의 손을 잡아 방으로 이끈다. 박 초시는 주모가 이끄는 대로 방으로 들어가 좌정을 하니 고만 주모가 박 초시의 무릎을 안고 푸욱 안긴다. 박 초시는 안겨 오는 주모의 등을 따사로이 감싸 안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박 초시 어른 테레비 들여 놨시유, 안테나를 잘 뽑아서 아주 잘 나오는구먼유. 고마워유”
“그려 잘 나와? 고마운 일일세, 그래 무엇 더 들어간 것은 없던가?”
“테레비 들여 놓을 때 안테나 뽑아 주는게 당연한 것이지유. 마당에 대나무 봉을 세워놓고 이짝 저짝으로 비틀어 보면서 한참 맞추었는디유. 더 달라고 한 것 없시유. 지가 사이다 한 병 사비스 해 주었구유”
“그랬네? 잘 혔어 아암 잘 혔구 말구.”
박 초시가 턱수염을 쓸며 장한 표정을 짓자 주모는 신이 나서 자개미닫이장을 가리킨다.
“박 초시 어른, 미닫이장이 엄청 좋은 것이구만유, 밤에 전등불이 없어도 환하게 빛이 나더라구유. 고마워유”
“그려 주모가 기쁘다고 하니 나두 엄청 기쁘네, 그려 잘했네 잘혔어”
“진지 자셨시유? 안 자셨으면 일벙 해 드릴텡게 잠 기둘려 주셔유”
“아녀, 아녀 점심은 군청 김 과장하고 했네. 그러니 걱정 말게”
주모는 옻칠이 아주 잘 되어 반들반들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원형 밥상을 꺼내어 다리 4개 중에 3개째를 펴고 있는 중이다. 잠시 주모는 어쩔까 하다가 이내 남은 한 쪽 다리를 마저 폈다.
“그람 일벙 술상 봐 올테니께 잠 기둘려 주시유”
박 초시의 만류에도 주모는 신바람이 나는지 훨훨 날아다니며 술상을 차려 박 초시 앞에 올렸다. 차림을 보니 어지간히 박 초시를 기다렸다는 듯 상차림이 거창하다. 알배기 굴비이며 어지간하면 보기 힘든 육포하며 명란젓에 숭어알을 참기름을 발라 말리기를 거듭하여 오랫동안 공을 들여 임금님 수랏상에만 오른다는 어란까지 올라왔다.
“아니 무얼 이리 차린겨. 탁배기 한 주전자에 술국만 내어 놓아도 되는디 말이여”
박 초시가 감탄하며 겸양의 말을 내어 놓으니 주모는 박 초시의 옆구리에 착 붙어 앉아서 요건 어떻게 구했고 조건 어떻게 구했는지 사근사근한 말투로 설명을 곁들이며 한 손으로는 술을 치고 한 손으로는 저분을 들고 박 초시의 입에 들이민다.
‘허어 이것 참 이런 사람에게 내 어찌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말을 내어 놓는단 말인가’ 주모의 살가운 손길에 담뿍 담은 정성과 애정이 눈에 환히 보이니 박 초시는 그만 하고 싶었던 말을 목구멍 속으로 꿀꺽하고 특주 한 사발과 함께 삼켜 버렸다.
특주를 반 되나 마셨을까 벌써 불콰하게 오른 취기와 주모의 살내음에 취해 몽롱해졌다. 주모는 재빨리 상을 밀어 놓고 자리를 펴 준다. 박 초시는 녹작지근한 몸을 자리에 뉘었다. 주모는 상을 치워놓고 주점의 출입구에 발을 늘여 놓고 잠갔다. 그리고는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가득 담아 정갈한 수건과 함께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속옷 차림으로 자리에 누워 있던 박 초시가 눈을 둥그렇게 뜬다.
“어른 발 좀 내밀어 주셔유 시원하게 씻쳐 드릴께유”
“어허 발을? 냄새 날틴디”
“괜찮아유. 뭐 어때유. 더한 것도 씻어 드릴 수 있는디유 뭐”
주모는 몸을 배시시 꼬면서 박 초시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허허 그려, 그려”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정성들여 닦아 주더니 다시 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좀 누워 보셔유”
주모는 박 초시의 속옷을 벗기고는 물수건으로 박 초시의 몸을 구석구석 정결하게 닦는다. 뒤집어 놓고 등부터 닦기 시작하더니 엎드려 놓고 닦아 주더니 마지막에는 박 초시를 뒷물까지 시켜 주었다. 박 초시는 시원한 맛에 저절로 눈이 감긴다. 걷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에 부채가 없이는 잠시도 견뎌낼 수도 없는 7월초의 무더위이다. 그렇잖아도 등물을 했으면 하던 차에 예쁜 짓만 골라 하는 주모의 교태에 온 몸이 노골노골해 지는 박 초시이다.
주모는 옷을 훌러덩 벗어 던져놓고 시원해진 박 초시의 온 몸을 입술과 혀 그리고 손과 가슴으로 애무한다. 홀 안에 있던 선풍기는 연지의 손에 방안으로 옮겨져 좁은 방안에서 비행기 소리를 내며 힘찬 바람을 불어대고 있다.
손님맞이 용도의 큰 선풍기는 박초시의 집에 있는 선풍기보다 인치수가 더 큰 것인데 색깔이 회색인 것을 보니 대구 동촌의 k-2에서 흘러나온 선풍기인 듯 하다. 전원 줄만 빼놓고는 몽땅 쇠로 만들어져 있다. 회색으로 칠해진 선풍기 날개는 세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쇠로 만들어진 프로펠러라 돌아가는 소리가 상당히 컸다. 소리가 커도 시원한데 어쩔 것인가. 하도 물자가 귀한 시절이니 웬만하면 참고 살았다. 귀한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온다면 그야 말로 운이 좋은 것이며 돈을 주고도 못 사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하다못해 미군부대에서 청소를 하는 사람이라도 알아 두어야 요긴한 물품을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웬만큼 사는 사람이라면 미군군속 하나 알아 두기 위해서 용을 쓰곤 했다. 미군부대에서 근무한다면 무조건 프리패스였다. 그리고 이 땅의 국민들은 그것을 마땅한 것으로 여겼다. 빨간 줄이 두개 가 있는 신분증에는 패스라고 써 있었는데 그 패스는 어디든지 패스였다. 그 패스는 처녀의 속곳도 패스였다.
미군이 입다가 빨래하기가 싫어서 버린 미군내복도 없어서 못 팔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것은 쓰레기가 되었던 아니면 좋은 것이 되었던 모두가 돈이 되었다. 그 중에 미군복과 워카 그리고 우비는 인기절정이었다. 미군복을 검정물로 염색을 해서 입고 다니는 축은 중산층 이상이나 입고 다닐 수 있었고 아주 훌륭한 외출복으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웬만한 대학생들은 4년 동안 염색한 미군복을 입고 다녔다. 남녀의 경계가 유별했던 시절이니 남자가 입었던 옷을 여인네가 입을 수는 없고 해서 여인네들은 구제품을 사서 입었다. 구제품을 입는 정도는 그래도 유행깨나 타는 층이었고 대개가 무명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다.
가끔씩 미군 소독차가 바드등 소리를 내며 연막 소독을 하고 다니는 때가 있었는데 그 때에는 동네 아이들이 연막차 뒤를 하루 종일 따라 다녔다. 초등학교에는 배급품이 지급되었는데 우유물이나 돌같이 굳어 있는 분유 혹은 강냉이 죽이 반공일마다 나왔다.
미군이 먹다 처리한 찌꺼기는 그대로 모아져 꿀꿀이죽이라는 이름을 달고 서울 남대문과 동대문 그리고 서대문 안쪽에서 인기리에 팔렸다. 시대는 암울했고 가난했으며 무엇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없어 빈곤에 허덕였다. 제대로 된 것은 있는 집이나 가세가 등등한 양반 후손들의 차지가 되었고 일제에 빌붙어 부를 축적한 처세술이 좋은 자들의 손에서나 볼 수 있었다. 보릿고개를 견디지 못하고 굶어 죽어가는 목숨이 전국적으로 한 해에 수천 명에 달했다. 그래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이었다.
겨울이면 미군 앞에 줄줄이 줄을 서서 머리와 가슴 그리고 하복부에 미군이 뿌려주는 디디티를 맞았다. 털북숭이 미군의 고무장갑을 낀 큰 손은 처녀의 가슴이고 하복부이고 샅이고 간에 디디티를 뿌린다는 명목 하에 거침이 없었고 가끔 샅을 잡힌 처녀는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모르며 얼굴을 가리고 쩔쩔맸다. 가끔 흉물스런 녀석들은 그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는 곳에서 거침없이 처녀의 샅을 손으로 훑곤 했다. 그래도 미군은 어디에서든지 프리패스였고 두려움과 함께 가까이 하면 좋은 것이 생기는 존재였다. 얼마 후에 이 문제가 미군 내부에서 정식으로 문제화 되면서 군과 읍 그리고 면의 직원들과 보건소 직원들이 직접 맡게 되어 이런 저런 폐단은 사라졌다.
“어른 얼마나 재미가 좋았으면 이년을 잊어 버리셨단 말여유 서운혀유”
“어허 내가 어찌 임자를 잊어버린단 말여. 하는 일도 없이 좀 바빳네”
“자주 안 오시면 알지유 알지유”
주모는 박 초시의 특정부위를 붙잡고 애무하면서 박 초시를 얼러대었다. 잠시 후에 주모가 박 초시의 배 위에 올라앉은 자세로 박 초시의 몸을 집어 삼키더니 부러지라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박 초시를 녹여 놓았다. 박 초시는 누운 채로 연지의 몸짓에 따라 하아 하아 가빠지는 숨을 쉬며 ‘이 맛에 조상 어른들이 기방 출입을 하고 첩을 들이고 한 모양이구나’ 생각하며 연지의 몸짓에 따라 출렁이고 있다. 뜨거운 날씨에 온힘을 다하는 정사는 체력소모가 상당했다. 주모는 박 초시를 배려하고 박 초시는 주모 연지를 배려했다.
촉촉한 입맞춤에서 서로는 서로에게 충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 받았다는 고마움과 대견함으로 두 사람은 살을 떨었다. 뜨거운 열정의 시간 동안 둘은 염천에 숯가마 속에 들어간 양 육신은 절절 끓었고 흐르는 땀으로 푸욱 젖었다. 이윽고 거친 숨소리가 정지되고 두 육체가 경직된 짧은 순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으로 기왕의 희열이 두배가 되는 것을 느꼈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강렬하고 자극적인 체취와 함께 촉촉하고 깊은 눈 속에 서로를 박아 넣었다.
“고마워유 박 초시 어른”
“나야 말로 임자가 고마우이. 수고했네”
“야”
주모는 콧소리로 높이 대답을 하며 그제야 수줍은 듯 수건으로 샅을 가렸다. 샅을 가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주모는 정지에 나가 재빨리 뒷물을 하고 대야에 담긴 차가운 물과 물수건을 준비해 왔다.
“임자도 힘들었을텐디...”
주모의 살가운 손길을 받으며 박 초시는 행복에 겨운 듯 주모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벌려 주고 들어주면서 진정으로 고마워했다. 주모는 정지에 나가 수정과를 대접에 담아 내왔다. 상주곶감 세 개와 한 수저 정도 되는 가평 잣을 띄웠고 속리산 특산인 옹골찬 대추를 얇게 저며 고명으로 띄워 얼음 한 조각을 담아 내왔다.
“허어 이 귀한 것을 어찌 준비했는가. 참 심성이 고우이. 잘 먹겠네”
박 초시는 막 갈증을 느끼던 차에 얼음수정과를 받아 들고 쭈욱 들이키고 난 뒤에 수저로 곶감을 찍었다. 찍은 곶감을 주모의 입에 넣어주니 황급히 입을 벌려 받으며 주모는 몸을 꼰다.
“아이~ 어르신이나 자시지 않구유. 고마워유”
잠시 동안 주모의 살뜰한 살핌을 받고 난 후에 저녁 해 걸음이 길어지는 것을 보고 박 초시는 의관을 갖추었다.
“박 초시 어른. 더 두 말구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곁을 주서유. 이 년 목이 빠지는구먼유”
“아니 우리 연지 목이 빠져서야 되겠는가. 알았네 일간 또 들를 것이네. 몸 간수 잘하고 있게. 문단속 잘하고 말이여”
신을 신고 일어나다 말고 박 초시가 뒤를 돌아보며 주모에게 단단히 일러둔다.
“요즘 상이용사들, 강짜가 부쩍 심하다는디 돈 받을 생각 말고 달라는 대로 주고 일벙 보내야 혀. 알아듣겠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내가 짬짬이 보아 줄테니 걱정하들 말고 말이여”
“야 알아 듣겄시유. 해가 늘어지는디 해찰되겠구먼유 일벙 댕겨 가셔유”
“그려 잘 있게”
단장을 짚고 박 초시가 휘적휘적 동구를 벗어나기까지 주모의 눈은 박 초시가 걸음하는 대로 뒤를 좇고 박 초시의 뒤로 긴 그림자가 끌렸다.
“어르신 잘 댕겨 오시는감유”
박 초시가 대문에 들어서자 칠복이 마당에서 두엄을 갈무리하고 있다가 반가이 맞으며 인사를 꾸뻑한다.
“아부지 잘 댕겨 오셨슈”
일찍 들어와 있던 딸들이 마루에 앉아 있다가 박 초시를 보고 일어나며 반가이 맞으며 인사를 드린다.
“흠흠 아범 인자 들어오는가” 박초시의 모친이 아들을 뾰로통하게 반기며 댓바람에 담뱃대부터 챙겨든다. 어지간히 담배를 피우시고 싶었던 모양이다.
“잘 댕겨 오시는규. 일벙 오신다더니 좀 해찰되었구먼. 어서 씻으시유” 아내가 박 초시를 보며 나무라는 듯 반긴다. 아마 어머니께 재촉을 받은 모양이다.
박 초시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는 의관을 벗어 놓고 어머니 담뱃대부터 챙겨든다. 꼬옹꼬옹 야무진 솜씨로 봉초 담배를 “오죽초용대”에 다져 넣는 것을 보고 박 초시의 모친은 흡족한 듯 얼굴까지 빛내며 사뭇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꽁꽁 다져 넣은 담뱃대에 불을 붙여 주자 길게 한 모금을 쭈욱 하고 빨아 보더니 양양해 하신다. 그제야 박 초시는 대야에 물을 떠놓고 기다리고 있는 뒤란으로 나가 아내의 손길을 받으며 등에 물을 끼얹었다.
“에효 시원햐, 에효 시원햐”
뼈골까지 시린 듯 얼음장 같이 차가운 우물물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시방 길은 물로 등줄기에 부어대니 오뉴월 뙤약볕에 달구어졌던 몸이 일순간에 식어 버렸다.
“좀 가만 계슈. 허리 속으로 물 들어가니께”
박 초시의 아내는 남편의 등에 비누칠을 하고는 양손으로 벅벅 문질렀다. 모시적삼 안으로 사정없이 비집고 들어온 햇볕으로 인해 박 초시의 어깨와 등은 벌겋게 달아 있던 참이다. 벌겋게 달아 있는 등줄기를 사정없이 벅벅 문질러대는 통에 쓰라린 것을 참자니 자연이 몸이 삐뚤빼뚤해진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 박 초시는 칠복을 불러 주민등록이 자신의 집에 올려질 것과 이 일을 위하여 군청의 김 과장이 애를 써 주고 있다는 것까지 두루 일의 자초지종을 말하며 수고해 준 어른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야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후일을 도모해야 할 것을 주문해 두었다.
잠자리에 들어와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칠복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부랑아로 떠돌던 시절이 떠오른다. 힘겹고 지쳤던 그 날들이 다시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이제 그 과거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까지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는 서글픔으로 인하여 언제나 칠복의 슬픔과 아픔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며칠 후, 김 과장의 특별한 배려로 3 년 동안이나 가출 및 행방불명자의 명단에 올라 있던 칠복이의 주민등록이 복원되었다. 칠복은 박 초시의 주민등록에 동거인으로 올려졌다. 이로써 부랑아로 떠돌던 칠복이 명실상부한 주민으로 주민등록법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주민등록법의 보호가 별 것이 있겠는가마는 주소지가 확실하다는 것으로 인하여 신원보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이지만 칠복에게 있어 그것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밑둥까지 잘렸어도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돋아 나오는 법이다. 칠뜨기의 인생이 그러했다. 박 초시라는 뿌리에 걸뱅이 칠뜨기라는 이름이 잘리고 그루터기에서 칠복이라는 원래 이름이 돋아 나오고 있는 중이다.
“이제 나도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 이제 나도 사내대장부가 되었다.”
산날망에 올라 목이 터져라 외쳐 보고 싶었다. 칠복은 밤을 뒤채이며 자신이 저만치 밀어 놓고 있던 장래가 슬며시 자신에게 다가와 자신의 어깨에 기대고 있음을 보았다. 도대체 무얼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노력하고 살아야 자신에게 흡족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답은 없었고 그 문제는 도무지 풀어지지 않는 3차 방정식이었다. 잠시 눈꺼풀이 까뭇까뭇해 지더니 이내 잠이 들어 내처 새벽까지 달게 잤다. 고민 끝에 간신히 붙인 칠복의 눈꺼풀에 달빛이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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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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