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여인천하
17. 여인 천하
갑자기 동네가 소란스러워졌다. 동숙이가 수선을 피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따라서 마을 회관 앞에 가서 보니 이화여자대학교 버스가 마을회관 앞에 정차해 있고 버스에서는 여대생들이 짐을 내리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화여대에서 여름방학 기간 중에 우산리 마을로 농촌봉사를 왔다고 한다. 동숙은 서울에서 내려온 세련된 여대생들을 이것저것 살펴보느라 정신을 쏙 빼놓고 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 있는 땀을 수건으로 딱는 여학생의 손길이 얼마나 뽀얗고 흰지 모르겠다. 약간 긴 생머리를 휘익 감아 올려 귀밑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목선이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한 것이 마을 총각들의 넋을 빼앗아간다. 벌써 사방에서 생침을 넘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마을 이장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버스와 여대생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리 사람들을 한자리로 모았다.
“에 오늘 우리 마음에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서울에서 최고봉으로 유명한 이화여자대학교 학상들이 농촌봉사를 오셨구만유. 숙소는 우덜 마을회관에서 묵기로 되어 있으니께유. 혹여 불편한 일이 없도록 우덜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아 주시기를 청하구유. 혹시라도 마을 청년들과 4H회원 덜은 혹시라도 모르니께 이웃 마을에서 시비거는 청년이 없도록 잘 보살펴야것슈. 어이 회장 알아 들었남? 에 또 아무캐도 촌이니께 불편한 점이 한 둘이 아닐 것이구만유. 여러분들께서 보는 대로 긴요허것다 싶으면 이것저것 협조해 주시면 고맙것습니다유. 인자 서울에서 오신 이화여자대학교 회장님이 나와서 한자리 말씀이 있겄습니다. 일루 나와유. 여서 말씀하시면 되유”
외모 상으로 풍기는 맛이 아주 똑떨어지게 야무질 것 같은 여학생이 만면에 미소를 띄며 인사부터 꾸뻑한다. 간단하게 뒤로 넘겨 묶은 머리가 칠흑단처럼 까맣고 얼굴은 조막만한데 목이 길고 늘씬한 여학생이다. 마치 몇 꺼풀 벗겨낸 양파와 같이 야물딱스럽고 지적으로 생겼는데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 화장기도 없는 맨 얼굴인데도 입술이 붉고 윤기가 나는데 입술에 주름이 있어 상당히 육감적으로 보이는데도 화장실에도 안 갈 것 같은 인상이다.
“우산리 이장님과 마음 어르신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화여대 하기 농촌봉사대장을 맡은 김정신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놀러 온 것이 아니고 몸소 농촌의 생활을 경험하여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봉사하러 온 것입니다. 그러니 어르신들께서 시키실 일이 있으면 이장님을 통해서 시켜 주시는 대로 열심히 할 것입니다.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겠으니 저희가 있는 일주일 동안 힘껏 부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봉사대원 차렷. 경례”
여학생들의 인사에 마을 주민들은 어정쩡한 자세로 꾸뻑하고 함께 인사를 했다. 밀짚모자를 쓰고 있던 주민들은 부리나케 밀짚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아이들도 얼떨결에 인사를 하고 나서 히죽 하고 웃었다. 까까머리에 얼굴이 꼬질꼬질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여학생들의 긴장이 풀리고 아이들의 모습에 한 학생이 까르르하고 웃자 일시에 까르르 하고 웃는 여학생들의 하얀이가 옥수수알을 박아 놓은 것처럼 신선하다.
여학생들이 짐을 풀자 마을은 이편저편으로 새끼줄이 쳐진 것처럼 마음회관을 중심으로 선이 그어졌다. 이제부터 마을회관은 4H 회원이나 청년이나 노인들이라도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특히 화장실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어른들로부터 엄명이 내려졌다. 마을 아낙들은 개구쟁이들을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교육을 시켰다. 눈을 있는대로 부라리며 주먹을 들어 쥐어박는 시늉을 하면서 마을회관의 화장실 부근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마을회관 앞의 우물물은 이제 여대생들 차지가 되었다. 그래도 마을 아낙들은 박 초시 집의 우물물은 사용하지 않았고 마을 초입에 있는 우물을 사용한다.
집으로 돌아온 동숙의 입이 한 발이나 삐져나왔다. 칠복은 동숙의 나온 입을 보고 살살 뒷걸음질을 치며 무슨 일을 만들어서라도 동숙이를 피할 심산이다. 그런 칠복을 보고 동숙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오빠, 서울 여자들 겁나게 이쁘지?”
“응? 아녀 별 거 아니더구먼, 뭐어”
“가짓말, 순 거짓뿌렁이여, 안 이쁘기는 뭐시가 안 이뻐. 그래서 오빠 눈이 홀랑 홀켜서 서울 학생 얼굴을 그렇게 뚫어지게 봤네?”
“어라, 뭔 소리여 그런 소리 말어. 이래 뵈도 내가 서울에서 살다 온 놈이여, 서울에는 그런 여자들 쌔고 밀렸응게”
“뭐여? 오빠가 서울에서 살다 왔어? 그람 서울에서 뭐하다가 왔는디 꼴이 그랬던겨? 혹여 걸뱅이질 하다가 온 것은 아녀?”
“허읔”
설마 박 초시 어른이 그런 말을 내실 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동숙이에게 그 분이 오셨다거나 아니면 무슨 초능력같은 선견지명이 있다거나 뭐가 있기는 있을 것 같다. 칠복은 콰악하고 막혔던 숨통을 후욱하고 크게 내쉬어서 간신히 뚫었다.
“누가 그려? 내가 걸뱅이질 했다고 누가 그려?”
“오빠는 누가 그래서 아남? 입성 입은 꼴하며 봉두난발한 꼴하구 반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해가지고 우리 집에 왔을 때가 생각이 나서 그런거지. 오빠 나는 오빠가 걸뱅이질을 할 사람으로는 안 보여. 긍게 걱정하지 말여”
“그려 동숙이가 고맙구먼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께”
“그란디 오빠 서울에서 뭐했어? 서울에서 돈 벌었어?”
마루에 철퍼덕 앉아서 칠복의 턱 아래에서 물어 보는 동숙이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 있던 칠복이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응 서울 이야기는 나중에 해 줄텡게 그리 알어. 시방은 옥수수 대궁을 벼 와야 허니께”
“그려? 그람 나도 데려가”
“데려가긴 워딜 데려가라고 그려, 널랑은 여기 있어”
칠복이 지게를 지고 지게에 낫을 걸고 지갯대를 지고 일어나자 동숙이도 어느 틈에 따라 나온다. 칠복은 자신의 말을 콧등으로 날리고 뒤를 따라오는 동숙이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닌데 혹시나 서울생활을 이야기 해 달라고 조를 것 같아 여간 신경이 쓰인다. 동숙은 마을회관 앞에서는 여대생에게 시선을 빼앗기더니 신작로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하거나 몇 마디씩 주고받으면서 어지간히 해찰을 하며 칠복의 신경을 있는 대로 긁고 있다. 때는 요 때다. 칠복이 다리에 힘을 주어 걸음을 빨리 했다. 생각 같아서는 뛰어가고 싶었으나 반드시 보복성 후환이 따를 일인지라 꾹 눌러 참고 걸음을 빨리했다.
“오빠~ 거기 좀 서 봐~”
‘서 봐? 아나 여깃다. 내가 파리약 먹은 줄 아냐? 못 선다. 못 서. 설 것 같았으면 천천히 갔지. 내가 왜 빨리 가는지 모른단 말여?’ 속으로 중얼거리나 이미 입속에까지 걸어 나온 중얼거림이다. 부러 더 빨리 걸음을 걷다가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논둑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때다. 뭐가 흰 것이 휘익 하고 날라 오는 것 같은데 하는 사이에 칠복이 쓰고 있던 밀짚모자에 뭣이 철퍼덕하고 맞았다. 날라서 떨어진 밀짚모자에는 동숙이 신었던 흰고무신 한 짝이 뒹굴고 있다.
“저 저 저 저 ~” 이 마한 년아~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러 올라왔으나 이번에도 제대로 참았다. 꿀꺽.
“오빠 거기 안 서네?”
나머지 흰 고무신 한 짝을 손에 야물딱스럽게 쥐고 동숙이 탱크와 같이 돌진해 온다.
“시방 서서 기둘리고 있잖여”
씩씩거리며 칠복이 한 대 올려붙일 듯한 표정으로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있는 모습을 보고 동숙이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
“오빠아~ 그러니께 기둘려 달라고 사정을 혔잖여. 혔어 안 혔어?”
“혓어”
“그럼 잠 기둘려 주어야지, 부러 나 골탕 맥일라고 그런거지? 그려 안 그려?”
“안 그렇다”
볼멘소리로 칠복은 고무신 신은발로 논둑바닥을 파면서 껄렁하게 말했다.
“그람 되엇어 되었으니께 싸게 가 오빠”
동숙이 칠복의 팔을 잡아 이끄는 것 같은 자세에서 팔을 조금 깊이 넣으니 마치 팔짱을 끼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물컹하는 감촉에 깜짝 놀란 칠복이 팔을 빼려고 하자 동숙이 팔을 뺄 생각은 아니하고 짐짓 팔에 힘을 주어 칠복의 팔을 얼켜 잡았다. 일순 짧은 순간에 전기가 흐르는 듯 전신이 짜르르하고 몽롱해진다. 그 자리에서 석상이 되어 버린 듯 경직되어 있는 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숙이 주위를 살피며 살며시 칠복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었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동숙이 칠복을 눈이 부신 듯 눈을 깔고 쳐다보며 말한다.
“오빠 나는 포도밭으로 갈테니께, 오빠는 옥수수 대궁 벼서 포도밭으로 와, 내가 자두 몇 개 감춘게 있으니께”
“응 그려, 일벙 갈게”
둘은 이쪽저쪽으로 갈라진 길에서 이쪽저쪽으로 갈렸다. 동숙은 길을 걷다가 살며시 뒤를 돌아보니 마침 칠복이도 뒤를 보다가 둘의 눈이 따악 하고 마주쳤다. 뭐가 그리 좋은지 둘은 서로 손짓으로 먼저 가라고 서너 번 재촉을 하다 둘이 동시에 뒤 돌아서 이어진 논둑길을 걸었다.
칠복이 옥수수가 시원치 않게 달린 옥수수 대궁을 선별하여 낫으로 썩썩 베어 지게에 담고 포도밭에 도착하니 먼저 와서 포도송이에 봉지를 입히고 있던 박 초시 내외는 내려갔고 동숙이 혼자서 포도밭 여기저기를 서성거리며 잘 익은 포도송이를 찾고 있는 중이다.
“포도송이 찾네? 언제 감춰둔 송이가 있는겨?”
“응 오빠 내가 오빠 줄라구 막 익은 송이를 포도이파리로 감추어 두었는디 시방 그거 찾아 보는 중이여”
“그려어? 나를 줄라구? 히히”
“흥 오빠는 내가 오빠를 얼매나 생각하고 있는지 알어, 몰러?”
동숙은 동숙이 찾고 있는 포도송이를 찾아주기 위해 가까이 온 칠복을 살며시 흘겨보며 앙살맞게 말하며 칠복의 어깨에 살며시 자신의 얼굴을 기댔다. 난처해진 칠복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동숙이 꿈꾸는 듯 말한다.
“엄니가 칠복이 오빠한티 잘 해 주라고 혔어. 오빠는 엄니한티두 점수를 옳게 딴 모양이여. 오빠한티 잘 해 주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께”
“그려어? 나는 암것도 잘 한 것이 없는디 아주머니가 이쁘게 봐 주신 모양이지. 나는 어르신께서 나를 거두어 주신 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찌르르하게 감사혀”
“오빠두...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께 슬퍼져”
동숙이 얼굴이 칠복의 가슴을 파고들며 아양을 부린다. 그 바람에 주춤하고 뒤로 기우뚱하던 칠복이 두 손으로 동숙을 잡는다는 것이 끌어안고 말았다.
“흐읔”
둘의 가슴에서 동시에 깊은 숨이 터져 나왔다. 잠시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리가 텅비며 아득해졌다. 먼저 동숙의 다리가 풀리며 스스르 주저앉자 칠복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동숙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저녁 때가 다 되어 가는디 빨리 내려가야겄어.”
“그려 오빠”
간신히 반쯤 눈을 뜬 채로 겨우 입을 열었다. 도대체 뭐가 이런 기분이 있단 말인가. 동숙은 꿈인 듯 생시인 듯 모두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오빠 나 잠깐만 이대로 두어봐, 어지러워 죽것어”
자꾸만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를 못하는 동숙이를 보며 쩔쩔매는 칠복을 향해 동숙이 말한다. 칠복이 동숙이를 보니 눈은 시린 듯 제대로 뜨지 못하고 사지는 몸살을 되게 앓다가 일어나는 사람처럼 사지에 힘이 쪼옥 빠져 있다. 간신히 말하는 입은 반쯤 열려 침이 흘러나오려고 한다. 동숙의 이 모양을 보고 칠복이 하복부에서 불기둥이 일어나며 호흡이 가빠졌다.
꿈을 꾸는 듯 아득히 저 먼 자락으로 이성과 의지는 물러가고 있다.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데도 이성과 의식은 저 멀리 달아난다. 방어를 할 수도 방어를 할 의식조차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동숙의 온 몸이 열려진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쪼그리고 있던 두 다리마져 쭉 펴지려고 한다. 온 몸에 무언가가 굼실거리며 기어가고 있는 듯 하고 샅은 근질근질하며 촉촉해졌다. 두 손은 자꾸만 들려지며 허공에 있는 그 무언가를 찾는 듯 허우적거리며 무엇이 걸리던 손에 잡히면 꽉 끌어안고 싶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동숙의 표정을 살피던 칠복이 동숙의 두 손이 허우적거리자 자신을 찾는 줄로 알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는데 허우적거리던 동숙의 두 손에 칠복의 목이 감겨들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모르겠다. 칠복의 목이 동숙이 손에 잡히자 동숙이 확 끌어 당겨 안아 버렸다. 묵직한 칠복의 몸이 자신 위에 포개지자 기다렸다는 듯 동숙의 두 다리가 쭉 펴지며 힘이 빠진 두 무릎은 그냥 벌려지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칠복은 뭐가 어찌 된 심판인지도 모르는 채로 동숙의 몸 위로 포개졌고 동숙의 두 다리 사이에 칠복의 두 다리가 끼어졌다. 찰나에 일어난 일이다.
“아야 아퍼 오빠 살살해”
칠복이 제정신을 차린 것은 동숙이의 낮은 비명을 듣고 나서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시방의 모습에 정신이 아찔하다. 동숙은 포도밭 아래 맨땅에 자신의 몸에 깔려 있고 자신은 동숙이 입고 있는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동숙의 젖가슴을 잔뜩 움켜쥐고 있다. 자신의 하체와 동숙이 하체가 밀착되어 있는 채로 성에 안 찬 듯 칠복의 하체가 동숙의 하체를 비벼대고 있었고 동숙의 두 다리는 벌려져 있어 칠복의 하체가 움직이는 대로 동숙의 하복부와 허벅지가 출렁거리고 있다. 동숙의 두 팔은 칠복의 목을 꽉 끌어당기고 있고 칠복의 입은 동숙의 목덜미와 귓불에 닿아 있다. 여기에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두 남녀는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의 불만스러운 헛헛함으로 옷을 입은 채 서로 끌어안고 비비고 있으나 헛헛함은 더해만 갔다. 마침내 칠복은 동숙의 젖가슴을 터뜨리려는 듯 꽉 움켜잡았고 동시에 칠복의 하복부가 뜨끈해지면서 일순 경직되더니 후욱하고 내어 뿜는 숨소리와 함께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이제 어찌 얼굴을 보아야 하는가. 둘의 몸이 서로 떨어지기 전에 둘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하여 둘은 서로 외면을 하고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문제는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는 동숙이 엉덩이에 황토물이 들었다는 것인데 둘이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으나 별 뾰족한 수가 나오지 못한다. 결국 어두워 질 때까지 기다리던지 아니면 가리던지 해야 하는데 어쩔 것이냐. 이제야 제 정신을 돌아온 동숙이 잠깐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칠복에게 답을 내어 놓는다.
“오빠 정지문을 열고 뒤란으로 가면 종숙이 언니 체육복 널어 놓은게 있을겨. 시방 다 말랐을테니께 그거 걷어 가지고 이리 와 줘”
‘이리 와 줘’ 하면서 얼굴을 붉히는 동숙의 표정이 여간 사랑스럽다. 칠복은 동숙의 빨개진 볼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맞춤을 했다. 동숙은 또 다시 화끈거리는지 고개를 무릎 속에 파묻었다.
“빨리 댕겨 올테니께 기둘려”
“응 오빠 빠알리 와야 혀, 늦게 오면 이러고 댕길테여”
“그려 알았어 알았으니께 꼼짝하지 말고 있어”
마루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던 할머니와 동숙이 어머니가 부리나케 대문으로 들어오는 땀투성이가 된 칠복을 보았다. 꾸뻑 하고 인사를 하더니 정지 쪽으로 들어간다. 물이라도 마시는가 보다. 하고는 슬며시 할머니와 함께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종숙이 체육복 바지를 윗도리 안에 숨겨 넣은 칠복이 마당과 방문 쪽을 살피더니 자신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꽁지가 빠지게 뛰어서 한 걸음에 포도원에 도착을 했다.
“오빠 빨리 왔네 어머 땀 좀 봐, 미안해서 어쪄”
“괜찮어 수건도 가져 왔으니께 얼굴도 닦고 그려”
“고마워 오빠아, 칠복이 오빠가 최고여”
동숙이 뭐가 그리 흥겨운지 홍홍거리며 이쪽저쪽을 다니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더니 칠복을 불러 포도밭 깊숙한 곳으로 손을 잡아 이끈다. 은근히 겁도 나고 뒤도 캥기고 바지 속은 찝찝하고 영 기분이 사납고 우울하다.
포도밭 깊숙이 들어오니 수확을 열흘 남짓 남겨둔 포도밭은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크게 자라난 포도잎사귀에 가려 어두컴컴하다. 사방을 힐끗 살펴보던 동숙이 저쪽 길가 쪽을 향해 칠복을 세워 놓았다.
“오빠 뒤 돌아 보면 안 되는겨, 후딱 갈아 입을텡게”
“응 그려”
옷을 벗을 때 살을 스치는 소리와 옷을 입을 때 살을 스치는 소리가 이처럼 묘하게 아름다운 소리로 들려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칠복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잠시 전의 일이 떠올랐다. 도무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조차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꿈결에 들은 것 같고 꿈결에 뭐가 지나간 것 같다. 그래도 동숙이 젖가슴에 대한 감촉과 동숙이 샅을 부벼대었던 감촉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감촉의 여운이 남아 있다는 것이 묘하다. 칠복은 아직도 거기가 뻐근하다.
“오빠아 뒤 돌아 봐도 되여. 다 갈아입었어.”
“응 그려”
칠복이 뒤로 돌아서자 바로 턱밑에서 동숙이 얼굴이 쏘옥하고 나타난다. 그리고는 칠복을 덥석 끼어 안고는 칠복의 입술에 제 입술을 대고는 힘을 주어 꾸욱 누른다. 얼떨결에 동숙의 입술을 받은 칠복은 동숙을 끌어안은 채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이제는 다리도 아까처럼 벌벌 떨리지 않았다. 대신 칠복을 향한 사랑스런 마음이 가슴 샘으로부터 솟구쳐 올라 칠복을 향하여 주체할 수 없이 밀려갈 뿐이다.
“오빠 이거 내가 오빠 줄려구 감춰 두었던겨 얼렁 입에 넣어 봐”
동숙이 자두나무 쪽으로 가더니 이리저리 헤치고 나서 큼직하고 새까맣게 익은 후무샤를 따서 제 옷으로 잘 닦아 칠복의 입에 들이 민다.
“아녀 아녀 이건 동숙이가 먹어야 혀. 크구 이쁜 것은 동숙이가 먹어야 더 이뻐지구 그러는거니께”
흐뭇한 마음으로 칠복이 사양을 하며 동숙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이윽히 바라보았다. 동숙은 칠복의 시선을 받고 잠시 얼굴이 빨개졌다.
“오빠야가 이거 안 먹으면 나는 울겨”
참말로 동숙이 눈에 눈물이 핑글 돌고 있다. 칠복은 놀라서 동숙이 입에 넣어주는 대로 받아 한입 베어 무니 입안에 자두향과 함께 단맛이 가득하다. 칠복이 베어 문 큼직한 자두는 작은 복숭아만큼 컸다.
“이건 동숙이가 꼭 먹어야 혀. 너무 맛나다”
동숙은 자신의 입에 넣어주는 칠복의 눈을 깊숙이 응시하며 달게 먹었다. 칠복의 눈에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이대로 시간이 정지되었으면 좋겠다. 이대로, 지금 이대로 머물고 싶다...
둘은 집으로 내려갈 준비로 포도원 저쪽에 있는 열 그루 남짓한 자두나무에서 잘 익은 후무샤를 골라 따서 바구니에 담고 포도원 가장자리에서 잘 익은 참외를 따서 담았다. 끝물이기는 하나 딸기밭에서 마지막 영근 딸기를 정성껏 따서 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대주 마님과 박 초시 내외 거기에 딸 7명과 칠복까지 합하면 11명이나 되는 대 식구이다. 어지간히 따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정도로 먹성이 좋은 때이니 배불리 먹고 싶으면 포도원으로 행차를 해서 먹고 가곤 했는데, 포도원에 들러 먹고 싶을만큼 배불리 먹은 사람은 식구들을 위해서 바구니에 가득 채워 가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칠복이 손길까지 갔으니 바구니에 가득 채워 가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둘은 포도밭이 다하는 곳까지 손을 잡고는 깍지를 낀 채로 걸어 나왔다. 포도가 익어가면서 은은히 퍼지는 달콤한 향이 두 남녀를 감싸며 콧가에 맴돌고 둘은 아직 영글어 가는 포도알갱이를 돌보듯 서로의 가슴에 서로를 품어 넣은 채로 밖의 동정을 살펴보며 아쉬운 듯 깍지손을 풀었다.
마을 어귀로 내려가는 얕은 구릉과 밭 사이로 구릉을 깎아 만든 작은 길이 있고 길옆에는 구릉에서 깨어진 바위틈과 돌을 올려 쌓은 밭과의 사이에 맑은 시내가 흐른다. 함부로 깨어진 바위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구르고 있는 시냇물 옆 섶에는 드문드문 길게 자라난 풀과 길옆의 풀이 어울려 짙은 풀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약간 비린 듯 콧속의 점막을 자극하며 짙게 풍겨져 들어오는 풀내음이 새롭다. 저 아래 마을회관 앞에서는 여학생들이 저녁 준비를 하는 듯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앞에 가까이 보이는 듯 하고 어디선가에서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낮게 깔리며 들려온다.
새롭다. 눈에 보이는 모든 만물이 눈이 부시고 귀에 들리는 소리가 정겹다. 풀냄새 하나에 가슴이 저려 오고 처음 본 서울에서 내려온 여대생들이 정겹고 만물이 새롭게 가슴에 박힌다. 잠시 길을 걸으면서도 서로의 얼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서로의 얼굴을 훔쳐보며 얼굴을 붉히고 고연히 입에서는 휘파람 소리와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어느덧 집 대문 앞에 가까이까지 걸음이 줄어있었다.
여인은 만드는 존재이다. 자신의 세계와 자신의 것을 만드는 일에 탁월하다. 여성은 언제나 자신의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비상한 존재이다. 이는 여성만의 특별한 본질적인 능력으로서 자신의 것에 대하여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는 특별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창조된 세계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신께로부터 하명 받은 후로 자신의 세계를 이루며 거기에 이름을 붙였다. 자신의 세계에 들어오는 여인에게 애니 희니 아가야니 등등의 특별한 이름을 붙여 특별한 관계의 사람이라는 영역을 표시해 놓는다. 자식의 이름을 짓는 것도 자기 차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자기 집 대문에 문패를 붙이는 것도 남성이기에 익숙하다. 창조주로부터 이름을 붙이는 일을 하명 받았기 때문이다.
평강공주는 바보 온달을 온달장군으로 만들어냈다. 이로 보건데 여성은 마음만 먹으면 바보남편도 장군남편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이다. 반면 남성은 여성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없다. 근본적으로 남성은 자신의 가정 밖의 영역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존재인 반면에 여성은 가정을 발판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무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료가 주어진다면 그것으로 꾸미고 입히고 해서 그럴듯한 걸작으로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남편을 비롯한 자식들의 장래에 평생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여성이라는 결론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여성에게 세계관이나 국가관이 바로 정립이 되어 있을 때에는 국가를 가슴에 품은 남편과 자식을 만들어 낸다.
여성은 자신의 것이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라면 자신의 성을 내어 주어 남성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릴 줄 아는 불가사리와 같은 특이한 존재이다. 여성은 그 때가 언제쯤 될 것이라는 것의 구체적인 때까지 직감으로 안다.
어린 계집아이들은 자잘한 인형놀이와 소꿉놀이를 통해서 자신이 이상 하는 가정의 모양을 이리저리 만들었다 부수었다를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낸다. 그 가상의 모형은 언제나 가변적인데 이것으로 만들고 꾸미고의 반복으로 자신의 원하는 모양이 만들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된다.
만들기와 꾸미기의 반복은 여성이 성장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여성특유의 깊은 감수성과 풍부한 감정에서 유발된 유별난 직감과 예감까지 더해져 원숙해져간다. 여기에 세월의 익은만큼의 성숙함으로 터득되어진 섬세함까지 더해진다.
마침내 여성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자신의 세계는 가정이라는 틀 안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물로 규정한다. 그것이 자신의 세계이며 그 울타리라 할 수 있는 경계선은 없다. 만약에 그 경계선이 시댁이라는 울타리로서 자신의 영역인 가정 울타리와 중첩이 되어 진다면 비록 같은 여성인 시어머니에게 종종 밀리기는 해도 최후의 방편으로 남편을 움직여 독립해 버리는 독함도 가지고 있다.
여성은 법률이 되었던 권위가 되었던 그 무엇이든지 남의 울타리까지도 넘볼 수 있는 직감적이며 예리한 눈을 가졌다. 그 직감은 신데렐라를 꿈꾸는 공주의 직감이며 그 직감과 예리한 눈으로 촉수하여보고 자신의 울타리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 지체 없이 울타리를 형성한다. 여기에는 법률이나 윤리 도덕이나 권위가 통하지 못한다. 일단 자신의 울타리만 형성이 되어 지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어떤 세계(대개의 경우 다른 여인이다)가 침범하여 결국 자신의 세계를 잃었다거나 포기해야 할 때에는 가차 없이 자신의 세계를 허물어 버린다.
여인에게 있어 자신의 세계는 자신의 자궁에서 출산한 자식들이 그 핵심이며 자식이란 여성의 세계를 구체화시켜 주는 울타리와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절망에 빠진 어머니들이 자신의 세계를 허물어뜨릴 때에는 자신만 허물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식까지 포함하여 허물어뜨린다. 만약에 자식이 성장하여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자식과 남편을 떠나 버리나 자식이 어릴 때에는 어린 자식들과 더불어 자살을 선택한다. 이는 자식들이 자신의 세계를 지탱해 주는 울타리라는 개념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여 어머니들이 어린 자식과 함께 자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출산의 경험이 있는 여인의 마음이 정해지면 자신 스스로 바꾸지 않는 한 외부적인 요소에 의하여는 바꿔지지 않는다. 만약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사랑이라는 명제에 가두어 둔 경우에 그 사랑이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에는 자신과 함께 자식을 해치는 반인륜적인 작태까지 서슴지 않고 행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자신의 손으로 허문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여성은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서라면 남편이 가정을 위하여 땀 흘려 벌어온 돈인 줄 뻔히 알면서도 조금도 아깝지 않게 애인을 위하여 쓸 수 있는 존재이다. 이처럼 반도덕적이며 반윤리적인 행태는 자신의 세계를 사랑이라는 고상한 개념으로 포장하여 자신이 하는 짓은 사랑으로 남이 하는 짓은 불륜으로 만들어 버리는 억지도 곧잘 부리곤 하는 신비로운 존재이다.
지금 칠복은 이 신비로운 존재와 정면으로 맞서게 되었다. 가끔씩 동숙에 의하여 묵이 되고 풀이 되면서 동숙의 세계와 충돌하기도 했으나 이내 화합하곤 했다. 화합의 조건은 암묵 혹은 묵시라는 적당한 타협을 통해서 서로의 중첩된 경계점을 서로가 열어 놓는 것으로 중첩된 경계점은 누가 촉수를 하던지 서로가 불편해하지 않고 용인한다는 묵시적인 타협이었다.
묵시적인 타협이 점점 늘어갈 수록 칠복의 경계점은 동숙에 의하여 침식되어졌고 어떤 경우에는 동숙이 칠복을 주장하는 요상한 사태까지도 묵인하게 되었다. 동숙은 칠복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내어 걸며 칠복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하여 보고를 받는 지휘관의 위치로 부상하였고 칠복은 보고를 철저히 해야 하는 일등병 정도에 해당하는 자유만 보장받게 되었다. 하긴 동숙이 앞에서 일등병이면 어떻고 상등병이면 어떠랴. 어차피 쫄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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