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사는 재미
19. 사는 재미
“여그도 착착 발라 넣어야 혀”
“알았어 시방 할라구 그렷어”
노가다 십장이나 된 양 동숙은 겨우 돌맹이 몇 개를 주워다 놓고는 칠복이 구덩이를 만드는 것을 일일이 참견하며 손가락으로 요기조기 하며 가르킨다. 종숙과 금자는 말없이 돌맹이를 가져다가 칠복이 앞에 놓았다.
바께쓰에 절반이나 잡힌 고기는 양이 상당해서 한꺼번에 다 먹을 수가 없다. 궁리 끝에 강가에 고여 있는 물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적당한 웅덩이가 있어 거기에 돌맹이로 담장을 쌓았다. 담장은 물고기가 튀어 나가지 못하도록 돌맹이로 급조해서 쌓았지만 문제는 구멍을 파고 들어가는 놈들이 문제였다. 미꾸리와 메기 거기에 모레무지까지 이것들만 해도 서너 사발은 넉넉히 될 분량인데 구멍을 파고 도망을 가면 아까운 일이다. 하여 돌맹이로 담을 쌓은 곳에 모레를 가득 퍼서 부어 틈을 틈실하게 메꾸었다. 작업을 해 놓고 고기를 풀어 보니 물 반, 고기 반이다. 마치 양어장을 얻은 것처럼 흐뭇하다. 남은 물고기로는 동리 잔치를 열어도 되겠다 싶다.
“어머 어머 예는 벌써 죽었나벼, 배를 희뜩 까고 있네”
동숙이 흰 배를 드러내고 뻐끔거리던 눈치의 배통을 코옥하고 손가락으로 찍으니 눈치가 깜짝 놀라 웅덩이 속으로 푸드득 헤엄쳐 들어간다. 깜짝 놀라 손가락을 거두던 동숙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엇비슷하게 썰어 놓은 호박과 양파 그리고 감자를 벗겨 통째로 바가지에 담아 놓았다. 칠복이 땀을 흘리며 장작불로 끓이고 있는 양은솥에는 이미 국물이 잡혀져 끓고 있다. 우거지로 쓸 무청줄거리와 고추장과 된장을 약간 넣어 비린내가 없도록 잘 풀려있는데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서 맛있게 부글부글 끓고 있다. 거기에 한 바가지 가득 와글와글 가득 차 있는 양념거리를 넣고 동숙이가 잡아 큼직하게 잘라 놓은 큰 눈치 한 마리와 그 동안에 성질이 급해 죽은 한 바가지 정도나 되는 배를 딴 피라미들과 맛나라고 고명으로 메기 몇 마리를 넣었다. 별로 넣은 것도 없어 보이는데도 작은 가마솥에 버금갈 정도의 큰 양은솥단지는 만원이었다.
종숙이와 금자는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수제비를 떼어 넣을 준비까지 마쳤다. 여기에서 동숙이가 제외된 것은 손에서 생선 비린내가 난다는 이유 때문이다. 비린내가 난다는 말을 듣고 손을 벅벅 씻고 온 동숙이 참견을 하려고 하자 다시 구박이 쏟아진다. 그리하여 동숙은 장작불을 때고 있는 칠복이 옆으로 슬며시 다가가서는 장작불을 참견하기 시작했다.
“오빠 시방 술 취했지? 내가 다 알어”
“내가 뭔 술에 취했다구 그려 하나도 안 취했는디”
“안 취하기는 뭐시가 안 취혀 비틀거림서”
“봐봐 손까정 흔들고 있음서”
동숙은 아예 칠복이 옆에 낙지처럼 딱 늘러 붙어서 요리조리 잔소리를 하며 슬쩍슬쩍 칠복의 손과 다리를 건드렸다. 칠복은 그럴 때마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아야 했다.
“부글부글”
양은 솥단지에서는 내용물이 끓으면서 절묘한 조화를 이룬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종숙과 금자가 수제비를 떼어 넣는 동안에 어느덧 장작불은 동숙이 차지가 되어 있었는데 동숙은 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자연발생적인지는 몰라도 매운 연기가 꾸역꾸역 나서 종숙과 금자는 눈이 따가워 쩔쩔매며 수제비를 떼어 넣었다. 칠복이 보니 동숙이 잘 타고 있는 장작불 두어개를 꺼내 슬며시 물을 부어서 꺼뜨려 놓더니 재빨리 그걸 다시 넣는 것이 보였다.
상이 차려졌다. 명절 때에만 먹던 포기김치와 열무김치 그리고 물김치까지 커다란 보시기에 가득 내어져 있고 조밀 조밀한 밑반찬이 가득하다. 된장에 박아 넣었던 깻잎 장아찌와 마늘쫑 장아찌도 나와 있고 박 초시가 꼭 한 번씩은 찍어 먹는 명란젓까지 나와 있다. 박 초시 댁에서는 상구(언제나) 포기김치를 담가 먹고 있었다.
“동숙아 탁배기 좀 꺼내 오니라”
“야 아부지”
동숙은 얼른 막걸리를 담가 둔 곳으로 달렸다. 마치 종숙이나 금자가 먼저 가서 꺼내오기나 하는 것처럼 뒤까지 보면서 잰 걸음으로 물속에 들어가 광주리를 눌러 두었던 돌을 들어내고는 손을 슬며시 넣어서 막걸리 통을 꺼냈다. 그리고 끈을 풀어 막걸리 한 통만 손에 꺼내들고 나머지 4통은 다시 광주리 안에 넣어 두었다.
쫘악 둘러앉았다. 오늘은 칠복이도 박 선생의 호의에 의해 대장부로 대접을 받았다. 어디 머슴이 주인어른과 함께 막걸리를 마실 수 있겠는가. 박 선생은 칠복이가 수고 많이 했노라고 치하해 주면서 박 초시의 동의를 얻어 차가운 강물 속에서 시원해진 막걸리 한 대접을 칠복에게 권했다.
“옛다 칠복이도 어엿한 사회인인디 한 잔 받거라.”
“그려 박 선상이 부러 권하는 것인디 한 잔 받어라.”
손사래를 치면서 극구 사양하는 칠복에게 박 초시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박 선생이 권하는 술잔을 받으라고 권했다. 칠복은 일순 당황하였으나 주인어른의 명으로 알고 뒤로 돌아 술잔을 입에 대고 텁텁한 막걸리를 마셔야 했다. 입을 닦고 공손히 감사하다는 사례의 말씀을 드리는데 금자 어머니와 동숙 어머니의 눈이 일시에 칠복을 향하며 빛을 내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자기 어머니의 표정을 살펴보던 금자의 고개가 슬며시 바닥으로 떨어지고 동숙의 날카로운 눈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마을마다 혹은 가문마다 술에 대한 풍습은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의미는 같다. 대작하는 경우에는 차이가 없으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술잔에 대한 의미는 경우에 따라 해석되는 바가 약간씩 다르다. 아비가 아들에게 처음으로 권하는 술잔의 의미가 있고, 술을 마실만한 나이가 되었으나 이제 윗사람에 의하여 처음으로 술잔을 받는 의미가 있다. 아직 어린 사람에게 술잔을 주는 것은 이제부터 어른으로 대우해 주겠다는 뜻이며 통념적으로 인정되는 술의 문화였다. 만약에 제사를 모실 장손이거나 혹은 상주의 신분을 가졌다면 어린 나이에도 음복을 해야 하기 때문에 꽁지머리를 면하면 (초등학생 정도) 술잔을 내리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며 보통 15살 정도가 되면 술잔을 내리게 되었고 술잔이 내려지면 받아야 했다. 유교의 풍습은 제사권을 중심으로 확실한 경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조상을 모실 수 있는 효가 강조되었다. 칠복의 나이는 이제 16살이다.
박 선생이 칠복에게 술을 권한 것은 대장부로서 인정하겠다는 뜻이며 동시에 가족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내용으로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딸 가진 어머니는 남편이 딸이 인사시키기 위해 데리고 온 사위 감에게 술을 권하면 사윗감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받아 들였고, 오늘의 경우에는 칠복을 예사롭게 보지 않겠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칠복이 박 선생에게 받은 술 한 잔으로 인해 좌중에는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동숙 어머니는 이미 칠복을 사윗감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딸자식을 가진 박 선생이 칠복에게 처음으로 내린 술잔이라는 의미를 박 선생이 단순히 흥에 겨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술잔을 칠복에게 인심을 쓴 것이거니 할 수만은 없다. 넌지시 금자 어머니에게 시선을 주어 표정을 살펴본다. 보니 금자 어머니는 마치 사윗감을 얻었다는 듯 만면에 득의한 표정이 역력하다. 동숙의 표정을 살펴보니 동숙의 표정이 굳어 있다.
박 초시의 아내는 칠복에게 눈길을 주어 찬찬히 뜯어보았다. 밀양 박 씨라면 왕손이다. 비록 부모의 슬하에서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부모를 잃어 돌봄을 받지 못해 학업도 포기한 채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다고는 하나 칠복의 태에는 귀티가 흐르고 있다. 막걸리를 한 잔 해서 붉으레한 얼굴은 아직 동안으로 장부의 기골의 형태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나 대장부의 기개가 곧 피어날 기세이며 그 기상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귀족의 피는 역시 다른가 보다.
박 초시도 칠복을 자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로 이미 사윗감으로 낙점을 한 것이 분명한데, 박 선생이 경쟁자로 나섰지 않은가. 박 선생도 마음만 먹으면 칠복을 거두어 가르치고 뒤를 봐줄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다. 칠복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머슴 살던 주인집 딸을 부인으로 거두어서 껄끄럽게 사느니 박 선생의 집에 사위가 된다면 당당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난 뒤에 박 초시의 부인은 고개를 흔들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어 쉬었다. 칠복이는 내 집 사람이며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 영감인 박 초시도 그리고 나에게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죽 쑤어서 남 좋은 일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굳히는 동안에 어죽탕이 완성 되었다.
한 대접씩 할당을 받았다. 대주마님부터 박 초시 그리고 박 선생 순으로 돌아갔다.
“오늘 수고가 참으로 많았구먼 많이 먹고 힘 좀 써 봐아 칠복아”
주인마님은 칠복에게 덥석 대접을 내어 민다. 많이 먹고 힘 좀 쓰라고 웃으며 주는 대접에는 눈치의 커다란 머리통이 담겨져 있다. 칠복은 막걸리 한 잔에 얼굴이 붉어져 송구스럽기 짝이 없는 터에 박초시의 부인이 담아 주는 푸짐한 대접에 백골이 난망이다. 어른들을 돌아 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고개로 하면서 대접을 받아 들었다.
“엄니 저두 한그릇 더 주셔유”
얼마나 맛이 있는지 비린 것을 좋아하지 않는 종숙이까지 한 사발씩 더했다. 박 초시와 박 선생은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 한 잔의 기쁨으로 천하를 다 얻은 듯하구나. 박 선생은 자신이 투망질로 잡은 고기로 끓인 어죽이니 대견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해서 기념하는 뜻으로 한 사발을 더했다. 이왕 권한 것 칠복에게 한 잔 더 권했지만 벌써 칠복은 한 잔의 막걸리에 취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다. 박 선생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윽한 눈빛으로 칠복을 바라본다.
식사를 마치고 두 부인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 동숙이 종숙과 금자 그리고 낮술에 취해 아직까지도 취기가 남아 있는 칠복을 재촉하여 올갱이잡이에 나섰다. 정구지적을 부치려면 서둘러야 했다. 올갱이를 빨리 잡아서 삶고 삶은 올갱이를 바늘로 알맹이를 꺼내야 정구지적을 부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상류로 흘러드는 몇 개의 여울물에는 높낮이가 각각 다른 짙푸른 숲으로 감돌려 있는 산자락이 있다. 산자락 사이사이의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계곡의 물은 여러 가락이 합쳐져 여울이 되어 계곡의 청정한 물 그대로 만들어진 여울물은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여울물에는 아직 깨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그래서 울퉁불퉁하고 표면이 고르지 못한 자갈들이 깔려 있고 커다란 바위 주위에는 바닥이 패어나가며 만들어진 거북이 형상의 바위와 토끼 형상의 바위가 만들어져 있다. 고운 바위의 표면에는 물이끼가 자라고 있었고 물이끼 사이사이에 시커멓게 박혀 있는 것은 올갱이였다. 올갱이로 불리기도 하며 도실비로 불리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민물고동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원래의 이름은 다슬기이다.
“오빠 여기는 깊겄어.”
낮술에 취해 물색을 보며 비틀걸음으로 걷고 있는 칠복이 뒤에서 처녀들은 재미가 있어 죽을 맛인 모양이다. 칠복이 물을 보니 깊은 곳은 허리 정도나 찰까 싶고 무릎 높이의 물깊이라 올갱이 잡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칠복이 성큼성큼 들어가니 동숙이 금자 종숙이가 뒤를 따른다. 각자 흩어져서 올갱이 잡이에 여념이 없다. 이것은 잡는 것이 아니라 아예 건지는 것이다. 손을 바위에 대고 훑기만 하면 많게는 한줌이요 적게는 대 여섯 마리의 올갱이가 잡혀지니 그냥 물속에서 건져내는 것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칠복은 얼개미로 올갱이들이 떼로 몰려 있는 바위의 표면을 박박 긁어서 얼개미 안에 잡힌 올갱이를 바께쓰에 담았다. 처자들은 비닐봉지를 옆구리에 하나씩 차고 거기에 손으로 잡은 올갱이를 담았다. 종숙이와 금자는 무릎도 차지 않는 깊이의 물에 앉은걸음으로 주저앉아서 올갱이를 잡고 있는데, 동숙이는 두 다리를 뻗치고 잡는다. 칠복이 눈앞에서 말만한 처녀의 엉덩이가 춤을 추며 올갱이를 잡고 있다.
“금자야 많이 잡았네?”
“응 여기 아주 많어.”
“히히 재밌다.”
“종숙이 언니는 많이 잡았누?”
“응 그려 말시키지 말어. 올갱이들이 도망갈지도 몰러”
동숙은 여기저기 참견하며 물탕까지 튀겨가며 바쁘다. 세 명 다 체육복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칠복이 바로 앞에서 올갱이를 잡고 있는 동숙이의 물에 젖은 반바지는 팬티의 고무줄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무명 고쟁이의 허리는 노란 기저귀 고무줄을 넣었고 고쟁이의 가랑이는 찰 고무줄을 넣어서 가랑이를 벌릴 때에 속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 입은 팬티이다. 처녀고 총각이고 힘으로 살았던 때이니만큼 힘쓸 일이 오죽 많았는데 배퉁에 힘이 많이 가는 일을 하거나 혹은 고무줄을 끼워 넣은지가 좀 오래 되거나 하면 힘을 쓸 때마다 툭툭하고 끓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보통 멋쟁이가 아니고는 고무줄을 두개씩 끼워 넣어 입었다. 고무줄을 너무 바짝 졸라서 묶어 입으면 화장실에서 고생을 해야 했고 너무 살짝 묶어 입으면 자신도 모르게 살살 내려가는 고무줄 무명 팬티는 어지간히 속을 썩혔다. 고무줄을 두개씩 끼워 넣은 팬티는 설사를 만나기만 하면 원수단지로 둔갑을 하는 애물단지였으며 항상 배꼽 아래에는 고무줄을 묶은 자리가 선명하게 도장자국처럼 박혀 있었다.
동숙의 무릎 위 약간 올라간 반바지 사이로 하얀 맨살에 파르스름한 정맥이 지나가고 그 사이에 까만 솜털의 티를 벗어난 다리털이 물살에 비치는 햇빛에 어른거리며 가지런히 물살에 흔들리는 듯하다. 아무도 없다면 꼭 끼어 안고 입맞춤이라도 해 주고 싶다. 동숙이 존재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어디를 가도 자신의 곁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붙어 있어 줌이 고맙다. 칠복의 눈가에 핑글하며 눈물이 맺히며 눈자위가 빨개진다.
결국 일을 만들었다. 칠복의 주변에 어슬렁거리며 물탕을 튀겨가며 올갱이를 따고 있던 동숙이 이끼가 끼어 있는 바위에 붙어 있던 올갱이를 잡는다고 칠복이 쪽으로 다가오더니 칠복이 앞에 와서 알짱거리다가 미끄덩하고 칠복이 쪽으로 넘어져 버렸다. 얼떨결에 동숙을 받쳐주려고 손을 내밀어 동숙이 몸을 받치기는 받쳤는데 동숙이 오히려 힘을 주어 넘어지는 바람에 칠복도 함께 주저앉았다. 칠복이가 동숙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고 물속에 주저앉는 바람에 동숙이 가슴을 칠복이가 뒤에서 끌어안은 형국이 되었다.
“어머어머 오빠아 이게 뭐여”
하이톤으로 동숙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올갱이 잡이에 여념이 없던 종숙이와 금자가 고개를 돌려보니 아뿔싸 칠복이가 동숙이를 물속에서 끌어안고 있다. 그것도 어깨를 안은 것이 아니라 동숙의 젖가슴을 꽈악 끌어안고 있다. 칠복은 얼떨결에 동숙의 가슴을 끌어안았으나 포도밭 애정사건이 일어나고 난 뒤로는 시간과 틈만 주어지면 끌어안고 싶었던 터이다. 짐짓 모르는 체 우연을 가장하여 조금만 더 그대로 있으려 하였으나 동숙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손을 풀었다.
“어멋”
극히 짧은 시간 금자의 눈이 샐쭉해지더니 표독스러워졌다가 스치는 듯 사라졌다. 약이 올라서 올갱이고 뭐고 다 싫다. 금자는 아버지인 박 선생이 칠복이를 칭찬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꼭 공부시켜서 성공시켜보고 싶은 아이라고 칠복이가 야학을 하게 되면 금자가 보았던 책이라도 가져다주고 힘을 북돋아 주라는 말씀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물가 사건이 있고 난 뒤로는 어떻게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이 부끄러워서 피해 왔지만 살금살금 칠복이를 향하여 마음이 가는 것을 자신도 느끼고 있던 터이다. 오늘 아버지는 칠복이에게 술잔을 권함으로 남자로 인정한다는 확실한 뜻을 밝혔다. 여성의 직감으로 그것은 딸 가진 아버지로서 금자의 신랑감으로도 생각해 보겠다는 인정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 간신히 칠복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칠복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눈이 부셔왔다. 동숙이도 금자의 신랑은 칠복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유야 어찌되었던지 간에 둘이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심히 불쾌하다. 금자는 분에 못 이겨 눈물을 두어 방울 떨어뜨렸다.
“오마나”
금자와 함께 올갱이를 잡고 있던 종숙도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깜짝 놀라 동숙이쪽을 보았더니 무릎 밖에 안 차는 얕은 물에 둘이 요상한 형국으로 얼켜 있다. 칠복이 동숙이를 자빠뜨려 끌어안았는지 아니면 동숙이 미끄러진 것을 칠복이 뒤에서 얼떨결에 받치다가 둘이 함께 넘어졌는지는 몰라도 시방 보이는 형국은 칠복이 동숙을 자기 무릎 위에 끌어안고 사랑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몰골이다. 종숙이 놀라 입을 벌린 채로 옆에 있는 금자를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에 금자의 눈에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짙은 실망감이 교차하여 스쳐가는 복잡한 표정이 나타나며 금시로 표정이 일그러지며 금자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종숙도 덩달아 가슴이 찡해진다.
잡은 올갱이를 한데 모으니 상당한 양이다. 엄청 잡았다. 올갱이 속 알맹이만 큰 됫박으로 대여섯 정도는 족히 될 만하다. 이만 하면 되었다 싶어 올갱이 잡이를 마쳤다. 흠뻑 젖은 청춘들이 물가 섶을 헤치며 물가로 나와 젖은 옷을 잡아당겨 비틀어 짠다. 동숙과 함께 물속에 잠겼던 칠복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있었고 동숙은 칠복의 꼴을 보며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키드득거리며 입은 웃옷을 여기저기 잡아 당겨 짰다. 일행들이 옷매무새에 신경을 쓰며 줄줄 흘러내리는 물기를 되는대로 털고 있는데 동숙은 칠복에게 다가가 등 부분의 물기를 털어주고 젖은 옷을 짜주고 바쁘다. 어이없어 하는 금자와 종숙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숙은 그 일에 열심이다.
일행은 올갱이 잡이를 마치고 서둘러 그늘 막으로 돌아 왔다. 둑길에는 자갈이 깔려 있었는데 자갈 옆에는 한줌씩 풀이 돋아 있었고 얼추 섶을 만들어 놓고 있다. 깔끔한 모래사장에 가까이 밀려와 있는 물에서는 언뜻 작은 고기의 비늘이 번쩍하더니 이내 물속으로 사라진다. 아주 작은 물고기의 텀벙거림이 신선하고 살짝 비치는 비늘에서 무지개빛이 영롱하다. 일행이 그늘 막으로 돌아오는 동안에 염천지하의 태양은 이들의 옷을 서서히 말리고 있다.
“어여 오너라. 그래 많이 잡았더냐”
박 초시의 반깃하는 말과 박 선생의 반가워하는 눈과 얼굴에는 어느만큼 취기가 남아 있다. 하도 더워서 술 마시는 것도 힘겨운 모양이다.
“그려 많이 잡았네?”
참외를 한 쪽 입에 넣고 있던 박 초시 부인도 반깃하며 묻는다. 부인들은 대주마님과 함께 참외와 포도, 복숭과 자두를 한 보시기 가득 담아 과일을 먹고 있는 중이다.
“야 대여섯 됫박 택은 되겄슈”
“그래 그럼 박박 문질러서 큰 냄비에 넣어라. 시방 물 끓여 놨으니께”
“야 알았슈”
올갱이와 정구지(부추)를 넣어 적을 부쳤다. 정구지적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풍겨지며 구워지는 대로 하도 맛있게 먹는 바람에 금방 동이 나는데 먹는 사람이나 적을 부치는 사람이나 신이 나는 것은 매일반이다. 잠시 후에 기웃기웃하며 슬며시 피서객 몇이 나타났다.
“참 맛있겠습니다. 이것 좀 파십시오.”
피서객 몇이 기웃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아닙니다. 이것은 먹으려고 부치는 것이지 파는 것이 아니유. 생각이 있으시면 이리 오시지유. 함께 나눕시다.”
박 초시의 말에 고맙다고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는 피서객이 네 명인데 좀 떨어진 곳에서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은 이들의 가족인 모양이다. 눈치를 보며 손짓을 하니 금방 온 가족들이 앞을 다투어 오는데 그늘 막 주변으로 십여 명이나 모였다. 난처해진 두 부인들과 박 초시와 박 선생이 난색을 표하는 표정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잠시 자리에 앉았던 피서객 몇이 막걸리 한 사발씩과 한 젓가락씩 맛을 본 정구지 적을 극찬하며 뒤를 대어 온 가족들에게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여보 어쩌겠소. 파는 것이 아니라는데 맛은 기가 막히다”
“그래요? 어쩜 그래 당신만 맛을 본다우. 우리 입은 입도 아닌 모양이에요. 호호호”
가지도 않고 서서 참견을 하며 구워지고 있는 정구지 적에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 큰일이다. 하여 한 장씩 맛보기로 드리기로 하고 크기를 작게 해서 한꺼번에 몇 장씩 굽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들까지 입맛을 다시며 정구지 적을 부치는 솥뚜껑 주위로 모여 에워싸고 있으니 애들 아버지는 심사가 편할 길이 없다. 심사가 편할 길이 없는 아버지가 막걸리를 마시며 안주로 먹을 정구지적을 떼어 슬며시 아이에게 눈짓하여 부른다. 눈치로 먹고 살았는지 아이는 쪼르르 달려 제 아버지 앞으로 와서 제비가 입을 벌리듯 아 하고 있는 대로 입을 벌리고는 받아먹었다. 사이에 몇 장이 구워지고 구워진 적은 가족별로 한 장씩 돌렸다. 그늘 막에는 어른들이 자리를 하고 그늘 막 밖에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정구지적에 정신을 팔렸다. 처음에는 정구지 적에 올갱이를 한줌씩 넣었던 것을 이제는 작전을 바꾸어서 반 줌씩으로 넣었다. 처음으로 올갱이를 넣은 정구지적을 맛 본 이들은 어느새 다 먹고 젓가락으로 그릇을 긁는다.
흐뭇한 마음으로 정구지적을 부쳤다. 뜨거운 불 앞에서 정구지 적을 부치는 것도 큰일인지라 벌써 두 부인의 앞섶에는 땀이 흘러 가슴을 적시고 흘러내린다. 맛있게 먹은 피서객들이 고마운 마음으로 한사코 건네주는 지전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반 협박조로 눙치며 억지로 맡기는 지전을 받았다. 감사의 표시로 돈을 건넨 피서객 몇 가족은 박 초시 부인이 마지못해 지전을 받자 그제야 고개를 몇 번씩이나 조아리며 사례를 하고는 돌아갔다. 서울 사람들이 건넨 지전은 꽤 큰돈이 되었다.
문제는 이장이다. 어느덧 이장이 도착할 시간은 되어 가는데 정구지적은 끝장이 나고 어죽탕도 끝장이 났다. 안 되겠다 싶어 어죽탕을 끓이려하나 박 초시와 박 선생은 이미 불콰한 얼굴이 되어 더 이상 약주를 하면 안 되겠다 싶어 두 부인은 의논 끝에 동리에 들어가서 이장을 위한 어죽탕을 끓여 드리기로 결론을 내렸다.
텅~텅~텅~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장이 경운기를 운전하여 도착하였다. 일행은 그늘 막을 철수하고 잡은 고기를 바께쓰에 담고 이것저것 가지고 왔던 짐들을 챙기고 쓰레기는 따로 모아 쓰레기 장에 버렸다.
“어이쿠”
하마터면 박 초시가 굴러 떨어질 뻔 봤다. 경운기가 덜컹거리며 움푹 패인 길에서 삐끗하자 취기가 오른 박 초시가 그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 하는 것을 칠복이 몸을 날려 박초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자칫 다리를 잡았다가는 허리가 휘청하고 넘어가서 동강이 날 뻔 봤으나 용케 어깨를 감싸 쥐는 바람에 겨우 중심을 잡았다.
“박 초시 어른 괜찮으시유”
경운기를 운전하던 이장이 깜짝 놀라 속도를 줄이며 뒤를 보고 걱정 어린 말투로 물어왔다.
“나는 괜찮으이 염려마시게”
잠깐 동안에 박 초시는 아득했으나 칠복이 자신을 껴안고 중심을 잡아 주는 바람에 큰일을 면할 수 있었다는 것과 칠복과 가장 가까이 몸을 댈 수 있었다는 것이 자못 괜찮다. 마치 아들자식이 아비를 위험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몸을 던지는 것처럼 덜컹거리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 준 것이 고맙다. 박 초시는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잠시 얼굴이 붉어졌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고 칠복에게 “고맙다” 했다.
가슴이 철렁했던 일행은 다시 평정을 되찾고 잠시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주인어른을 챙기고 있는 칠복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작은 것 하나에 함께 했던 일행은 칠복을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 참으로 작은 행동 하나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사실과 사람에 대한 평가는 절대로 우연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박 선생이다. 박 선생의 눈이 안경 속에서 반짝하고 빛났다.
어죽탕으로 동리잔치를 벌인 두 집의 안주인들은 흐뭇하기만 하다. 찬사란 찬사는 다 받았고 박 초시는 포도와 복숭 그리고 참외를 한 상자씩이나 내어 놓았다. 동리 아이들까지 잔치를 벌였다. 박 초시는 고마움의 표시로 이장 댁에 칠복을 시켜 포도를 한 상자 보냈으나 이장은 마을회관에 있는 여대생들에게 내어 놓고 여대생들의 환호와 살가운 찬사를 듣고 팔뚝에 소름이 돋을만큼 기뻐했다.
평강은 흐뭇한 우산리 온 자락에 금구슬 은구슬을 뿌려 놓듯 밤하늘의 별들을 영롱하게 빛내며 찾아왔다. 반딧불이는 마을 개울가까지 찾아와 파아란 사파이어 빛을 발산하며 도시에서 온 여대생들을 황홀하게 만들며 새벽까지 춤사위를 펼쳐대고 있고 단잠에 빠져든 청춘들의 가슴에서는 사랑이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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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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