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모녀지교
22. 모녀지교
정애가 명주라는 이름으로 명찰을 달고 현실과 이상의 혼돈에서 행복한 가정으로의 전이를 마지막 소망으로 꿈꾸고 있는 동안에 서서히 불청객은 명주라는 이름 위로 덮쳐왔다. 길고 긴 터널과 같은 슬픔과 절망에서 간신히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명주에게 매독이라는 불청객은 찾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몸이 서서히 죽음의 늪으로 침전되고 있는 사이에 명주는 몸의 이상을 알아챘다.
화류병이라고 불린 매독은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불린 미군 상대의 여성들에게 가끔씩 나타나는 성병으로 국내의 치료약은 없었고 전량 미군 병원에서만 취급되고 있었다. 가끔 페니실린으로 완치를 했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페니실린조차 구하기 어려운 형편에 매독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
“칠복이 있느냐”
저녁 준비에 여념이 없는 딸 부잣집의 대문을 들어서며 박 선생은 댓바람에 칠복이 부터 찾았다. 정지(부엌)에 땔감을 내어 놓고 쇠죽을 끓이고 있던 칠복이 깜짝 놀라 댓바람에 일어섰다. 마루에 걸터앉아 오죽초룡대에 담배를 꾸욱꾸욱 눌러 담아 맛나게 피우고 있던 대주마님과 박 초시가 무슨 일인가 싶어 일제히 고개를 내어 밀다가 마당에 들어서는 박 선생을 반겼다.
“어르신 안녕하셨시유. 오날 칠복이 야학통지서가 나와서 들렀네유”
“그려? 참 반가운 일이구먼. 어서 들어오시게 박 선상”
박 선생이 전해 주는 야학통지서를 받아 들고 박 초시는 자신의 통지서를 받은 것처럼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내심 야학통지서를 기다렸음이 분명하다. 박 선생은 야학 통지서를 전해 주고 저녁 식사 후에 집으로 들러 달라는 주문을 내고 돌아갔다.
야학 통지서가 나왔다. 동이초등학교우산분교에 8월 1일 오후 6시까지 등교하라는 입학통지서가 나왔다. 칠복은 오매불망 야학 통지서를 내심 기다려왔다. 통지서는 금자 아버지인 박 선생이 당직의 번을 서고 나서 오는 길에 가지고 온 것인데 댓바람에 들러준 것을 보면 어지간히 칠복을 귀애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녁부터 먹자"
박 초시의 말에 저녁상이 차려졌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박 초시는 칠복에게 야학 입학 통지서를 내어 주었다. 야학입학통지서를 받아 든 칠복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었다. 마침내 아껴 두었던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다.
“칠복아 열심히 공부해라. 뒤는 내가 다 봐 주마”
“야 어르신 워찌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모르것구먼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마움과 북받치는 서러움의 한이 한꺼번에 풀리는 듯 봇물이 터져 나오듯 하는 칠복을 바라보는 박 초시는 가만히 칠복의 어깨를 감싸 안고는 등을 토닥여 주었다. 박 초시의 엄한 눈에도 눈물방울이 맺히고 있다.
“오빠는 왜 울고 그려, 나두 눈물이 나잖여”
숙연해진 좌중에서 동숙도 눈물을 훔치며 칠복을 향하여 이쁜 눈짓으로 격려한다. 대주마님과 동숙이 어머니 그리고 딸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진정으로 기뻐해마지 않는다. 정이란 이런 것일까. 다 주고 싶고 그것도 모자라 더 줄 것이 없나를 찾는 정. 사랑보다 지독한 것이 정이라는 것 아니던가. 사랑이란 돌아서면 남이지만, 정이란 돌아 서도 끝내 놓지 못하고 줄 것을 찾아내서는 손에 꼭 들려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정이 많은 사람들. 칠복이 머슴살이를 살고 있는 주인집의 온 가족들이 그랬다.
“이걸루 닦어”
눈물 콧물을 쏟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울고 있는 칠복이 앞에 슬며시 종숙의 손수건이 디밀어져 왔다. 칠복이 눈물을 찔끔 짜며 손수건을 확인하는 그 짧은 시간에 종숙의 손수건이 뒤로 밀려지며 동숙의 손수건이 칠복이 손에 얹혀졌다. 이 꼴을 보고 언니들은 감탄을 하는데 대주마님과 어머니는 깜짝 놀라 말도 못하겠다. 동숙이에게 내리꽂히는 눈총세례를 온몸으로 느끼던 동숙이 사태파악을 위해 살곰살곰 눈치를 보다가 어머니의 눈과 딱 마주쳤다. 동숙은 어머니의 눈도끼에 사정없이 찍혀서는 찍하고는 슬금슬금 무릎걸음으로 제 자리에 슬며시 박혀 들어갔다. 물론 종숙이 엉덩이를 제 엉덩이로 슬쩍 밀어내면서 말이지.
“허허 참내”
박 초시는 자신의 무릎에 허물어지듯 엎드려서 울고 있는 칠복이 손에 무엇인가가 들려지는 듯 하더니 잠깐 동안에 뒤바뀌는 것의 정체가 손수건이라는 것을 보고는 혀를 찼다. 동숙의 동작이 재빨라서 혀를 찬 것인지 아니면 종숙이가 용기를 내서 제 손수건을 꺼내 칠복에게 주는 것을 보고 감탄을 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쩝쩝 하고 입맛을 다신 것은 확실하다.
칠복이 손수건을 받아 들고 눈물을 훔쳐냈는데 감히 코까지는 풀지를 못하겠다. 쭈뼛거리고 있는 사이에 방바닥까지 칠복의 코가 늘어졌나 보다.
“오빠 코도 팽 풀어 내가 빨텡게”
고새를 못 참고 동숙이 칠복을 향하여 말을 날리자 칠복이가 용기를 내서 코를 훔친다. 동숙의 얼굴과 등짝 그리고 팔뚝에는 언니들과 대주마님 그리고 어머니의 눈 도끼가 사정없이 날아들고 박 초시는 어쩔 줄을 몰라 입맛만 다시고 있다.
“에잉 요즘 것들은 남사스러운 줄도 모른단 말이지 쩟쩟”
마침내 박 초시의 입에서 밉지는 않다는 듯, 하지만 떫은 매실을 한 입 베어 문 것과 같은 표정에서 끌탕소리가 슬며시 터져 나왔다. 아버지와 남편의 눈치만 할곰할곰 살피던 여인들은 동숙을 향하여 있는 대로 눈을 흘기며 무언의 경고를 발했다. 칠복은 울다가 말고 얼굴이 빨개져서는 내뺄 궁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동숙은 칠복의 손에 들려 있는 손수건을 뺏어 들고 나가서 정지 문을 열고 우물에서 정성껏 비누빨래를 하더니 이내 들어 와서 칠복이 얼굴을 닦으라고 건네준다. 모두들 할 말을 잃고 눈만 멀뚱거리고 있는데......
“에허 칠복아 얼굴 씻고 박 선생 댁에 댕겨 오니라”
“야 어르신”
동숙에게서 물수건을 받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칠복을 향해 박 초시가 한 마디로 교통정리를 해 준다. 칠복은 동숙이 전해준 물수건으로 따끈따끈한 얼굴을 감추며 얼굴을 닦았다. 별로 크지도 않은 손수건이 얼굴을 가리기에는 그만 이라는 사실에 칠복은 감탄까지 하는 마음이 되었다. 칠복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동안에도 민망해서 죽을 뻔 봤다.
칠복이 나가고 난 뒤에 동숙은 큰 언니 방에 불려 들어가 언니들과 어머니에게 닦달을 당했다. 하지만 손수건 문제로 닦달을 할 재료로는 충분치 않은 터에 마땅히 닦달을 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언니들이나 어머니는 동숙을 불러 놓고도 잠시 갈등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적어도 두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는 알아야 하겠다는 심산으로 굳어졌다.
“아니 이 지저바가 제정신이여, 아버지 앞에서 그게 뭐여”
큰 언니의 닦달에 동숙이 뒷말을 이었다.
“언니는 뭐, 언니두 울었잖여. 콧물이 방바닥에 떨어지는디 그걸 어쪄, 빨랑 닦아야지”
언니도 어머니도 할 말을 잃었다. 뭐라고 다음 말이 나가야 하는데 나갈 말이 없다.
“이 마한 눔의 지저바가 뭔 할 말이 그리 도도햐. 아버지 앞에서 그게 남사스러우니께 그렇다는 것이지, 시방 콧물 이야기가 아니잖여”
어머니의 반격에 동숙이 찔끔하며 고개를 쑥 들이 밀어 넣었다. 어머니의 성미 상 이것만 물어 볼 것이 아닌데 하며 살며시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는데 어머니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이 지저바야, 부부라고 해도 아버지 앞에서는 눈치껏 해야 하는 것인디, 워쪄 시방 칠복이가 니 서방이라도 되었다는겨? 어쩐겨? 이실직고 혀 봐. 워디까지 간겨?”
“아녀유, 암데도 안 갔시유. 과수원 간게 전부여유”
“그려? 과수원에서 뭔 짓을 한겨? 회초리 맞기 전에 죄다 불어”
어머니의 눈이 반짝했다. 그렇지 과수원에서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던 것이 확실하구먼. 조금 더 겁을 주면 술술 나오게 생겼다. 그런데 막상 우려했던 일이 있었다고 하면 어쩔 것이냐. 고등학교까지는 졸업을 시켜 놓고 식을 올려도 올려 주어야 하는데 그 동안에 사고를 쳐서 배라도 불러지면 이 노릇을 어쩔 것이냐. 숨이 칵 하고 막혔다. 아무래도 동숙이하고 둘이서만 이야기를 해 볼 것을 잘 못 했나 싶다.
동숙은 아랫입술을 지긋이 물었다 놓으며 칠복과 함께 과수원에서 손잡고 걷다가 입을 맞추었다는 것까지만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그 다음 이야기는 절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안 했다. 잘 못 해서 칠복이 쫓겨나기라도 하면 어쩔 것이냐. 죽어도 말 못 한다.
동숙의 말을 듣고 큰 언니는 선생답게 일장연설로 들어간다. 기초 성교육을 하는 것인데, 이건 어머니의 뜻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큰 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떡이다가 동숙을 따로 불러내어 뒤란으로 나갔다.
“동숙아 니가 칠복이 좋아 하는 것 이 엄니가 다 알어. 글구 나도 칠복이가 내 사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는 것이구 아버지도 그려. 그런디 말이여. 고등핵교까정은 졸업을 해야 식을 올려 줄 수 있는 겨. 긍게 그 안에 사고치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께 그것은 절대로 조심하겠다고 약속혀”
“응 엄니 잘 알았어유. 근디 그것은 절대로 조심하라고 혔는디 그게 뭐여?”
어머니의 목소리 톤이 아주 작아지면서 주위까지 살펴보더니 속삭이듯 말을 낸다.
“이 지저바야 임신하지 말란 말이여. 배가 불러지면 산통 다 깨지니께, 알아 듣겄어?”
“응 긍게 칠복이 오빠하구 연애는 해도 자지는 말란 말이지?”
“어이구 그게 아니구, 임신만 하지 말란 말이여”
“그럼 엄니 큰 언니 말은 남자하구 자면 임신한다고 했잖여. 그러니께 자지 말라는 말이지?”
“아니 아니 그게 아니구”
어머니는 가슴을 펑펑 두들기다가 다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지저바야 달거리 할 때 말이여, 하기 전 3일 하구, 하구 난 다음 3일 까정은 남자하구 자도 임신이 안 되는겨. 뭔 말인지 알아 듣것자?”
동숙 어머니는 동숙의 손가락을 세 개씩 꼽아 주면서 단단히 일렀다. 동숙은 이게 웬일인지 무슨 말인지 하는 얼굴이나 아주 중요한 말이라는 사실을 감지했다. 눈을 깜빡거리며 진지하게 들으며 어머니의 말씀의 뜻을 새기고 있는 중이다.
“그럼 엄니 달거리 하기 전 3일 동안하구 하구 난 담 3일 동안은 칠복이 오빠하구 자도 된다는 말이여?”
단단히 쐐기를 박는 딸의 말에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안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어머니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자신의 붉어지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답을 재촉하는 딸이 얄밉기만 해서 동숙의 머리꼭지에 군밤을 한대 앵겼다. 하긴 가끔씩 뉘집 딸아이가 생각지도 못했던 불한당에게 당해 순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소식이 슬며시 흘러 나와 딸만 다섯을 둔 어머니로서 가슴이 벌렁벌렁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남정네들의 마음은 단순해서 싸게 몸도장을 찍어 두어야만 제 여자인줄 알지만 씨알도 안 맥히는 소리여. 여자는 마음이 가야 다 가게 되어 있는겨. 그리고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는 목도장(혼인신고서)을 먼저 요구하게 되어 있는겨. 마음까정 주었는디 몸이 뭐여. 마음에 비하면 몸은 암 것도 아닌겨. 증말로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지 목도장으로 증명해 달라 이거여. 증말로 자기를 사랑하고 목도장까지 찍어 준다면 몸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것이 여자여. 봐라,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의 씨를 받고는 목숨을 걸고 해산을 해서 옥동자를 바치잖여”
동숙 어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꿈을 꾸듯 말을 이어나갔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는 말이여, 아주 잠시 동안 한 눈을 팔 때가 있어. 결혼에 대한 환상 때문에 그런겨. 백말을 타고 오는 멋진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가 되어설랑 지금 만나는 남자가 진짜 백말을 탄 왕자인지 아닌지 초조하게 확인하고 싶어하는게지. 그 때는 스쳐가는 남자도 속 깊게 쳐다보아지게 되어 있는겨. 혹시 저 남자가 바로 백마를 탄 왕자님은 아닌가 하고 말이여. 그러다가 마음이 열리는 남정네를 만나게 되면 사랑에 빠져들고 몸도 주게 되어 있는겨. 하지만 만약에 그 처녀를 증말로 사랑하는 남정네가 그 처녀를 끝까지 기다려주면 처녀는 자기를 기다려 주는 남정네에게 가게 되어 있는겨. 그 남정네가 받아만 준다면 평생을 하루처럼 주인으로 받들면서 사는겨. 그게 진짜 행복이고 진실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겨. 심히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하니께. 더욱 잘해 주려고 노력을 하게 되어 있는겨.
나중에 그 남편이 만약에 바람을 피워서 집을 나가 딴 살림을 차린다고 해도 입술을 피나게 깨어 물고서라도 끝까지 기둘려. 여자 마음을 백퍼센트 얻었기 때문이여. 동숙아 여자는 그렇게 자신을 기다려주고 용서해 주는 남자가 있었으면 하구 바래구, 또 그런 남자라면 목숨을 바칠 각오로 그 남자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는겨. 그런디 남정네들은 여자를 이해 못 하구 마음이 변해 버린 줄로 알고 떠나 가는겨. 그러니 어쩌것냐, 남정네에게 맞추어야지”
담장이 둘려 있는 뒤란 화초밭에는 짙은 풀냄새가 가득한데, 찌르륵찌르륵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의 합창이 손이 닿을 듯 가까이에서 들려온다. 별은 하늘에서 내려 앉아 낮게 떠 있고 모녀는 장독가에 앉아 가끔씩 달려드는 모기를 쫒아내며 정담을 나누고 있다. 동숙의 맑고 투명한 까만 눈은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뼈에 새기는 듯 열심이 자못 진진하다. 동숙의 몸이 꿈틀거렸다. 이는 어머니의 말씀이 길어지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며 자신의 말을 못 참을 때 나오는 현상이다. 어머니는 동숙이 몸이 꿈틀하는 것을 보고 말을 끊고 잠시 사랑스러운 동숙이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참 맑다. 눈동자가 어찌 이리 맑으냐. 그 눈에 하늘을 담아 놓은 듯 하구나. 바다를 담아 놓은 듯 하구나. 초생달을 까만 먹물로 그려 넣은 듯 가지런한 눈썹도 어여쁘구나. 오똑한 콧날을 지나 입술까지 흘러내리는 콧날의 곡선은 다소 도도한 듯 깎아 만들어 붙인 듯 상큼하다. 도톰한 입술은 아랫입술 가운데 선이 확실한 것이 입술에 앵두를 먹다가 앵두물이 발려져 있는 것처럼 입술색이 상쾌하다. 아랫입술의 가운데 선은 마치 앵두를 먹다 씨를 발라 뱉어 내려고 입술에 물고 있는 듯, 어쩜 이리 사랑스러우냐. 목선은 학처럼 길고 희다 못해 투명한 젖무덤까지 흘러내리며 욕망을 불러일으키듯 한데, 봉긋하고 탱탱한 젖가슴은 야물대로 야물어 젖가슴의 곡선이 탐스럽다. 여자인 나도 만져보고 싶은데 남정네들이 만져보고 싶어 얼마나 애간장이 탈꼬. 언제 이리커서 여자가 되었니. 요 입술로 칠복이와 키쓰를 했단 말이지.
어머니는 참지 못하고 어깨에 살짝 기대고 있는 딸아이의 입술에 오른손 둘째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보았다.
“엄니, 남자하구 자려면 뭐를 어떻게 해야 하는겨?”
살몃 고개를 들며 당돌하게 물어 오는 동숙의 질문에 딸아이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있던 어머니의 엉덩이가 들썩했다. 잠시 동안 이리 곰곰 저리 곰곰 생각하던 어머니는 삽입의 과정과 임신의 과정까지 설명해 주었다. 자세히 들으며 감탄을 하다가 한숨을 쉬며 동숙이 물었다.
“엄니 처음에 할 때는 아프담서, 그게 얼마나 아픈겨?”
어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내친걸음이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숙의 질문에 답해 준다.
“응, 그게 처음에는 거기를 칼로 찢는 것같이 아픈데 충분히 참을 수 있는 아픔이여. 여러번 하면 그 다음 부텀은 하나도 안 아퍼”
“여러 번 하면?”
“그려 요것아 결혼하면 매일 하는겨”
“응 엄니 근디 할 때마다 아픈건 아니지?”
동숙은 그 아픔이 얼마나 될 것인지 상상이 되는 것처럼 이마를 찡그리며 물어 왔다. 별은 더 낮게 내려앉았고 어머니와 딸은 여자라는 공동운명에 대한 이야기로 장독가의 빈 공간을 채워 넣었다.
“어멋”
동숙이 느닷없이 엄마의 품으로 들며 비명을 질렀다. 함께 놀란 어머니가 딸을 가슴에 품으며 온몸에 소름이 끼치도록 긴장하고 있는 사이에 동숙이 치마 위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펄쩍 뛰어 장독간의 화초 사이로 몸을 숨긴다.
“게우 개구리 한 마린디 뭘 그리 놀래서 사람을 이리 놀래키는겨”
어머니의 꾸중서린 말에 포근한 엄마의 품에서 살짝 나온 동숙이 아주 놀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려두 갑자기 치마 위로 펄쩍 뛰어 오르는디 그람 놀라지 말란 말여? 엄청 놀랬구먼”
*
이 아이가... 어느덧 사랑을 알았구나. 갑자기 부쩍 커 버린 여인의 향취가 전해오는 듯 하다. 어머니는 이윽히 동숙을 내려다보았다. 까짓 개구리 한 마리에 놀랄 동숙이가 아니었다. 설혹 치마 속으로 개구리가 뛰어 들었다 손쳐도 놀랄 동숙이가 아니다. 이제 자신의 몸을 스치기만 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인 특유의 몸이 되었다. 이것은 사랑을 알았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이야. 남자와 여자는 사뭇 다르단다. 사고 구조도 다르고 이성에 대한 가치기준도 다르단다. 여성은 사랑하는 남성의 마지막 여인이 되기를 소망하고 남성은 사랑하는 여성의 첫 남성이기를 소망한단다. 그래서 첫 남성이며 첫 여성이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게 된다면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없단다. 만약에 말이지. 첫 사랑에 실패를 했다고 해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차분히 때를 기다리면 어느덧 내적인 성숙을 이루게 되고 성숙을 이룬 눈에 또 다시 사랑할 다른 남성이 보이게 된단다.
여자는 몸으로 남자를 알아가게 되고 남자는 가슴으로 여자를 알아가게 된단다. 가슴이 너른 남자는 여자를 몸으로 알려고 하지 않고 영혼으로 알려고 한단다. 품은 비젼과 사상 그리고 생각의 틀과 배짱이 어떤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영혼이 통하면 그 때에 가슴에 품는단다. 가슴에 품은 여인이 지조를 지켜 줄 것을 믿는단다. 만약에 운명적인 만남이라면 그 절차도 생략되고 가치관의 기준도 생략되고 영혼도 마음도 그리고 몸도 자동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지. 동숙아 나는 네가 칠복이 와의 사랑이 운명적인 것이라고 믿고 싶단다.
종숙이와 동숙이. 둘 다 배 아파서 난 자식이다. 야실한 종숙이와 야생마 같은 동숙이, 둘이 어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피부색도 다르다. 종숙이는 좀 가무잡잡한 편인데 동숙이는 해맑은 우유 빛이다. 동숙이는 성격도 야물고 적극적인 성품에 정열적이라 상처가 깊은 칠복이에게 적격이다. 칠복이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동숙은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칠복이의 원군이 되어 주었다. 매사에 적극적이며 예리한 상황판단 능력에 판단이 서면 즉시 행동에 옮기는 저돌적인 동숙이가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나, 둘이 맺어지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겠다. 반면 종숙이는 동숙이에게 비하면 좀 굼뜨고 감성이 예민하여 상처를 잘 받는다. 잘 자라 준 동숙이가 고맙고, 은근히 아들같이 여겨지는 칠복이에게 마음이 가고 정이 간다. 그래서 가장 아끼는 딸, 동숙이를 칠복에게 맺어주고 싶은가 보다. 부모를 잃고 천둥벌거숭이와 같이 거리로 내어 몰린 칠복이의 상처가 빨리 아물고 동숙이를 통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머니는 둘의 장래가 행복해지기를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하늘을 향해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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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 우리 뜸북새 불러 봤으면 좋것어”
“오냐”
뜸북 뜸북새 수웊에서 울고~
모녀는 서로 어깨를 기댄 채 노래를 부른다. 낮게 드리운 별은 반짝이는 빛으로 두 모녀의 어깨 위에 그림자를 드리워 살포시 별빛 숄을 덮어 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칠복이가 박 선생 댁에서 돌아 왔는지 대문소리가 삐꺽하고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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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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