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정구지와 도실비
16. 정구지와 도실비
방학이란다. 반나절 수업하고 방학하기 위해 등교하는 얼굴들에는 신바람이 가득하고 출근하는 얼굴에는 괜한 심술이 가득하다. 방학이라거나 말거나 칠복은 요즘 밤마다 우물가로 출근도장을 찍는 관계로 피곤한 상태이다. 따라서 정숙이, 종숙이, 동숙이의 방학 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밤새 푹푹 찌는 지열과 모기장 밖에서 진을 치고 왱왱거리는 모기들과 우물가 야간경비로 자는 둥 마는 둥 했더니 눈꺼풀 무게가 한 짐 택이나 되었고 걸음을 걸을 때에도 강시가 걸어 다니는 듯 도무지 의식이 가물가물하다.
그제 박 초시 어른이 결국 암송아지 한 마리를 팔았다. 끌고 나가서 판 것이 아니라, 마을 이장님이 부러 와서 박 초시와 흥정을 하고는 뭉칫돈을 내어 놓고 고삐를 잡고 끌어갔다. 박 초시는 후한 값을 받아서 흐뭇했고 이장은 이장대로 기름진 암송아지, 그것도 이제는 제법 중소 모양이 나는 실한 암 송아지를 송아지 값 보다 조금 더 주고 샀다는 흐뭇함에 마당에는 덕담과 찬사가 가득 널렸다.
이장은 칠복이 암 송아지 두 마리를 어떻게 건사했는지를 익히 잘 알고 있던 터라, 생각하고 있던 액수보다 좀 더 불러도 값만 흥정이 되면 두말도 없이 사려고 작심을 하고 돈을 준비해 왔다. 박 초시가 다음 장에 암송아지를 판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내심 조바심이 나서 여기저기 급히 돈을 끌어 모았다. 사람이라는 것이 돈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달라지게 되어있다. 아예 돈을 준비해서 ‘여깃슈’ 하고 들이밀면 내 송아지가 되지 않겠는가. 혹여 중소값을 달라고 하면 어쩌나... 준비된 액수는 중소 값 보다 조금 덜친 값으로 준비가 되었다. 그저 흥정을 하게 되면 어차피 좀 빠지는 액수에서 서로 절충되는 것이었기에 흥정만 잘 되면 좋은 수가 나리라고 생각했던 이장은 박 초시에게 송아지 값 보다 조금 더 쳐서 드릴테니 제게 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흥정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그러마고 흔쾌한 박 초시의 대답에 이장은 좋아서 입이 벌어졌다. 어깨춤까지 덩실덩실 나오는데 ‘주책을 떨어서야 되겠는가’ 억지로 참았다. 대신 박 초시에 대한 찬사를 늘어질 대로 늘여서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여기에 칠복이 여간 부지런하고 소를 먹이는 것이나 건사하는 것이나 일하는 것이 마음에 쏙 든다는 말까지 곁가지로 붙였다.
박 초시는 부러 장까지 나가서 팔아야 할 송아지를 앉아서 판다는 것과 헐한 값으로 사 들였던 송아지 값을 어지간히 쳐서 주겠다는 이장의 청에 여간 흐뭇한 것이 아니어서 조금 더 받을 수 있었던 흥정인줄 뻔히 알면서도 기분 좋게 송아지 고삐를 넘겨주었다. 이장이 칠복이의 칭찬을 늘어지게 하지 않아도 암송아지 두 마리는 칠복의 공이 컸다. 칠복의 살뜰하고 부지런한 손에서 살핌을 받은 암송아지 두 마리는 아주 실하고 기름지게 자라났다. 칠복의 위인 됨을 익히 알고 있는 박 초시에게 칠복은 머슴이 아니라 장차 사위가 될 귀한 그릇이었다. 자연 마음이 쓰여 지고 몸이 쓰여 지며 정겨운 눈빛이 한 번 더 가곤 했다. 잘 공부해서 후일을 도모한다면 쓸 만한 거목이 될 수도 있겠다는 박 초시의 기대는 칠복을 바라 볼 때마다 흐뭇하고 그 마음이 유해졌다.
쿵쿵쿵쿵
지축을 흔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 발자국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논 물고에 이상이 없는지 나락에 혹시 도열병이나 멸구가 올라오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포도밭에서 탱글탱글 영글어 가는 포도송이를 살펴보고 나서 송아지에게 줄 꼴을 한 짐 벼서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 왔다. 마당 한편에 지게를 고여 놓고 손과 발을 씻었다. 씻고 나서 점심을 먹으려고 정지에서 밥을 차리고 있던 칠복이 지축을 허물어뜨리려는 듯 용감무쌍한 발자국 소리에 저절로 눈썹이 찡그려진다.
“오빠 점심 차리는겨?”
가방을 마루에 홱 집어 던지듯 올려놓고는 배가 고픈지 반쯤 열려 있는 정지문을 열고 동숙이 머리를 디민다.
“응 벌써 핵교 댕겨 오는겨? 그려 점심 먹을라구”
“어머 엄니는 어디가신겨? 오빠가 점심을 다 차리고 그려. 남정네가 정지출입을 하면 뭐가 떨어진다든디”
거참, 말하는 뽐새하고는... 입을 쩌업하고 다시면서 칠복이 양은밥상에 총각김치를 올려놓는데 동숙이 채가듯 채가면서 말한다.
“냅둬 오빠 내가 할텡게. 오빠는 기냥 마루에 가서 좌정혀”
뭣까지 떨어진다는 데야 그런 말을 들으면서까지 기웃거리고 있을 수도 없고 난처한 김에 동숙에게 뺏긴 양은밥상이 고맙기만 하다.
‘어쩔뻔 봤어 설마 뒤란까지 보지는 않았을겨, 봤으면 어쪄 남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진 동숙이 살며시 뒤란쪽문을 열고 빨래 줄에 널려 있는 빨래를 보았다. 칠복이 오기 전까지는 뒤란에 널어 말리는 빨래에 신경조차 쓸 필요가 없었으나 칠복이 오고 난 후에는 부쩍 뒤란에 널어놓은 빨래에 신경이 쓰인다. 언니들 속옷 사이에 감추듯 널어놓은 무명천은 동숙이 것이었는데 남들 것 보다 팔 하나 길이가 더 길다.
동숙이 생리양이 많아 여간 고민이 아니었는데, 기간도 길고 양도 많은지라 동숙이가 쓰고 있는 개짐은 생리를 하는 집안 여자들 것 중에 길이가 제일 길었다. 그렇다고 뭉쳐 놓을 수도 없는 것이고, 하루에 두 세 개씩 사용하다 보면 그것 빨아대는 것도 일이었다. 여름 날씨에 조금이라도 늦게 빨면 벌써 상한 냄새가 났고 잿물을 내린 빨래비누로 박박 문질러 빨아도 시원하게 빨리지가 않았다. 하여 내어 놓기가 바쁘게 즉시즉시 빨아야 했다.
칠복이 오기 전에 어머니는 딸들을 앉혀 놓고 개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빨아서 잘 보관해 두어야 한다고 누누이 일러두었었다.
“옛날에 엉큼한 머슴놈이 있었더란다. 그 놈이 주인 딸을 사모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사람을 만들어 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어느 날 딸이 빨아서 널어놓은 개짐을 보고는 슬쩍 걷어 제 방 고리짝 깊숙이 넣어 두었더란다. 없어졌어도 문제가 개짐인 탓에 여기저기 남사스럽게 수소문해서 찾을 수도 없는 것이고 해서 딸은 개짐을 잃어버렸다는 말도 못하고 다른 개짐을 꺼내서 사용했단다.
어느 날 밤에 이 산 도~적같은 머슴놈이 딸이 잠자고 있는 방에 몰래 들어 와서 딸의 옆자리에 누웠단다. 자다가 뭐가 살살 더듬는 느낌에 벌떡 일어난 딸은 머슴이 자기 옆자리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비명을 지르니 온 가족들이 놀라서 일어나게 되었던겨. 어지간히 흉물스러운 놈이지. 그 놈이.
집안이 발칵 뒤집혀지고 딸의 방에서 끌려 나와 마당에 꿇린 머슴놈을 문초를 하니 글쎄 아가씨하고 자기하고 눈이 맞아서 이미 달포 전에 잠자리를 같이 했고 비명을 지른 것은 비명이 아니라 흥에 겨워서 자기도 모르게 내지른 소리였다는겨.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딸이 아니라고 해도 시방 머슴놈이 홀랑 벗은 채로 마당에 꿇려 앉아 있는 증거가 있으니, 일이 커지기 전에 자초지종을 대라고 문초를 했네. 했는디...
글쎄 머슴놈이 아가씨가 자기를 좋아해서 함께 잔 증거가 제 방 고리짝에 있다는겨. 그래서 주인마님이 깜짝 놀라서 휴웅물 스런 머슴놈 고리짝을 뒤져 보니 아뿔싸 딸 아이 개짐이 거기에서 불쑥 나온겨. 그런디 그 개짐에 피가 묻혀져 있었네.“
“어머 어머 숭한놈이여 그 놈이.” 첫째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듣고 있는디 조용혀, 엄니 그래서 그 다음이 어찌 된겨?” 요건 동숙이 말이다.
옆에 있던 종숙이 동숙이를 째린다. 째린다고 해서 찔끔할 동숙도 아니지만 그 다음 말이 어지간히 궁금하니 침을 꼴딱 삼키며 어머니의 입을 바라본다.
“그러니 그걸 어떡한댜. 두 양주가 서로 마주 보며 고민 고민을 하다가 일단 머슴놈 옷부터 입으라고 해 놓고 머슴방으로 보냈지. 두 양주가 이번에는 딸 방에 가서 딸아이를 문초한겨. 그러니 딸아이는 황당스럽고 무섭고 도무지 뭐가 뭔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니 창피하고 억울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눈물만 빼고 있더랴. 딸의 이런 몰골을 보고서 주인마님은 체념한 듯 힘없는 얼굴이 되어서 영감을 눈짓으로 불러냈어. 안방으로 들어와서 두 양주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으나 뾰족한 답이 없는디 어떡햐. 해서는 할 수 없이 둘을 비밀리에 결혼시켜서 멀리 가서 살라고 했댜. 논문서하고 밭문서하고 패물하고 족보까지 줘서 보냈다는겨. 그러니께 개짐 보관을 잘 못해서 머슴 마누라가 되어 버린겨.
지금이야 빤쓰도 나오고 했지만 옛날에는 여염집 아낙은 가랑이 속곳을 안 입고 속에 개짐을 기저귀처럼 차고 살았으니께. 개짐이 속옷인겨.“
“엄니 그럼 그 개짐에 묻은 피는 뭐여. 깨깟하게 빨았담서. 그 머슴놈이 부러 묻힌겨?”
동숙이 턱밑에 다가서 도발적으로 질문을 하니 어머니는 깨끔(그럴줄 알고 있다가 당한 찔끔으로 찔끔보다 눈감았다 뜨는 시간이 짧다)하고 눈을 떴다 감았다를 한 번 더하며 동숙을 향하여 눈도끼를 한 방 날렸다.
“긍게 숭한 머슴놈이라고 했잖여. 그 놈이 닭 벼슬에서 부러 피를 받아서 발라 놓은겨.”
“근디 엄니 개짐은 개짐인디 빤쓰로 입으면 찝찝할 것 아녀?”
“이 지저바야 니는 뭐시가 그리 궁금한게 많어.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들어야제. 이 촉새같은 지저바야”
결국 동숙의 말에 어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역정을 내고 말았다. 이쯤 해서 단단히 박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딸들의 귀에 못을 쳤다.
“그러니께 개짐 간수는 물론이고 몸 간수도 잘 해야 하는겨. 남자는 머슴놈이나 양반이나 다 똑같은 남정네이니께. 알아서 제 몸 간수를 잘 해야 하는겨. 종다리도 함부로 보이지 말고, 알아 들은겨? 단단히 알아 들었네?”
“야 엄니”
큰 딸들은 이미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기이니 시쿤둥하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케케 묵은 소리를 하고 있냐는 표정이다.
“엄니 지는 말이유. 그런 숭한 놈이 수작을 부리면 패 죽이고 말규”
동숙의 말에 어머니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걱정이 앞선다. ‘저노무 지저바가 대체 뭐시가 되려고 그러는지 모르것어’ 하는 표정으로 동숙을 바라보고는 안방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마루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박 초시는 이제 끝났느냐는 얼굴로 아내를 맞았다. 아내가 떨떠름한 얼굴로 동숙이 이야기를 꺼내자 박 초시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너털웃음을 웃었다. 불과 칠복이 들어오기 한 달 전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딸자식을 여럿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년한 딸자식의 신랑감에 대하여 눈이 가는 박 초시의 아내는 칠복이 걸뱅이 모습으로 들어섰을 때에 측은함 보다도 더러운 거지라는 인식으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보니 저절로 눈길이 가는 것이 싹싹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위임됨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다는 것과 체구가 왜소하기는 해도 웬만한 장정보다 훨씬 일을 잘한다는 것에 점수를 많이 주게 되었다.
속마음은 박 초시가 칠복이의 자랑이 늘어질 때마다 제 딸들 자랑은 아니하고 남의 자식 자랑에 늘어지는가 싶어 달갑지는 않았으나 몇 달이 못 가 박 초시의 아내도 박 초시와 같은 생각을 품게 되었다. 칠복의 나이에 맞는 종순이나 동숙이를 짝 지워 주고 자식으로 거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되었다. 문제는 칠복이가 종순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아니면 동숙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박 초시의 아내가 며칠 전에 넌지시 동숙이와 종숙이에게 지나가는 말로 칠복이 같은 사위감을 얻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로 동숙이와 종숙이의 속내를 떠 보았다. 동숙이는 벌써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칠복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흔적을 나타냈고 종숙이는 아직 칠복을 마음에 두고 있지는 않는 듯 보였다. 그렇잖아도 동숙이 신랑감은 누가 될지 은근히 걱정이 태산 같았던 터에 동숙이가 칠복을 마음에 두고 있는 눈치를 보이니 썩 잘 되었다 싶기도 하다. 가끔 보면 동숙이가 칠복을 닭 몰 듯 하나 칠복은 밀리면서도 동숙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포용해 주는 듯 너그러워 듬직해 보였다. 오히려 칠복이도 동숙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은 눈치이다. 동숙이 성격과 칠복의 무던한 성격이 서로 어울리는 원앙과 같아 보여 더욱 둘의 사이를 눈 여겨 보고 있는 중이다. 사춘기를 막 넘기고 있는 청춘남녀가 한 집에 살고 있으니 무슨 일이 나도 날 것이렷다. 일이 나면 즉시로 둘을 묶어 놓을 심산을 단단히 하고 박 초시의 아내는 부러 우연을 가장하여 둘만이 있을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무런 일이 없는 눈치이다. 칠복이를 생각하니 고연이 마음이 달다. 내 속으로 낳은 아들이라면 며느리에게 뺏길 터인데 칠복이는 생모의 소식도 모르는 고아 아닌 고아가 아니던가. 형식상으로야 딸을 주는 것이지만 딸을 주어서 아들을 생으로 얻는 것 아니냐 말이지. ‘내일부터는 동숙이를 불러서 칠복이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어야겠다.’ 박 초시의 아내는 동숙을 곁눈으로 보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오빠 나 방학했는디 오빠는 안 좋아?”
동숙이 마루에 칠복이의 상을 봐 주면서 던지는 말이다. 집안에는 박 초시의 아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포도밭으로 가서 잘 익은 후무샤(자두)를 따 드리기로 했다. 마침 종숙이도 데리고 포도밭으로 올라갔다. 칠복은 논에 있다가 포도밭을 둘러보고 좀 늦게 내려 와서 손과 발을 씻고 정지에서 밥상을 차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쨌든 머슴과 주인마님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있어 머슴 상을 차려 주기에는 이래저래 사납다. 칠복이도 영 불편해 하는지라 먹을 때만큼은 먹는 이가 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도록 제 편한 대로 하라고 두었다. 그래도 마음은 불편하여 할머니를 모시고 포도원에 가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 싶어 포도원을 핑계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
자기가 방학을 했다는 말을 콧등으로 날리고 있는 칠복이를 향하여 동숙이 한방 날리려고 폼을 잡는 중이다. 칠복은 어지간히 동숙에게 당한 터라, 동숙이 어떤 말을 기대하고 낸 말인지 이미 알고 있다. 마치 시험에 어느 문제가 나올 것이라고 예제를 내어 주고 문제지에 그대로 문제를 낸 것처럼 말이지.
“그려어~? 방학을 한겨? 동숙이 좋겠다.”
"흥 좋기는 뭐가 좋아, 재밌는 일도 없는디...“
“재밌는 일을 만들면 되지 뭐가 걱정이여, 걱정도 팔자다”
“그려어? 그람 뭐가 재밌는 일인지 오빠가 만들어 볼텨?”
“뭐여? 지일은 지가 만들어야지, 암 상관도 없는 내가 워찌 맹글어”
“흐음”
동숙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눈치이다. 동숙이 혀가 요만큼 빠져 있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가 보다. 동숙이가 혀를 빼물고 무슨 생각을 깊이 하면 기발한 발상이 튀어 나오곤 했다. 대부분이 칠복이 골탕 먹이기 거나 아니면 금자나 종숙이를 엮어 들여서 뭔 수작을 꾸미는 그런 잔머리에 불과 했으나 당하는 쪽에서는 어지간한 충격이 왔다. 칠복이 동숙이 모습을 보고는 은근히 뒤가 캥긴다. 하여 국사발에 밥을 말아서는 부지런히 밥을 몰아넣었다.
“오빠 칠복이 오빠~”
막 밥수저를 놓고 일어서려는데 동숙이 칠복을 향하여 아양 떠는 목소리로 부른다. 이거 왜 이러나. ‘빨리 밥 먹고 이 자리를 벗어나는게 상수다’ 했던 속내를 들킨 것 같이 찔끔 놀란 칠복이 엉덩이가 반쯤 일어났다가 고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혀졌다.
“어어 응”
“무슨 대답이 그려, 오빠 정구지적 먹고 시프지?”
마치 번개가 번뜩 하고 잠깐의 틈을 주었다가 뒤이어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찰나의 시간에 칠복의 머리에서는 비상 깜빡이를 켜며 레이다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요것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가는 후환이 두렵고, 곧이곧대로 먹고 싶다고 했다가는 무슨 일이 얻어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정구지 정도야 마당 한 켠에도 잔뜩 성난 듯 자라고 있는데 낫 한 번만 주면 정구지적을 부칠 정도야 충분하다.
“응 먹고 싶어. 내가 정구지 베어다 줄게”
“그런디 오빠 정구지적에는 도실비를 넣어야 맛이 제대로 나는겨, 알지?”
당장에 모른다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쳐 올라오는 것을 제대로 참았다.
“그란디 도실비 잡으려면 개울로 가야 하는디...”
“아녀 오빠 개울에 있는 것은 죄다 새깽이들이니께 손만 많이 가구 저어기 강으로 가야 혀”
“뭐여? 강까지 가서 도실비를 잡네? 그람 어느 시절에 정구지적을 먹는겨?”
“오빠도 차암, 도실비 잡아서 삶아서 껍질을 까야 먹지 그냥 먹을 수 있간디, 냘 먹어두 되는겨, 그란디 꼭 도실비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여”
내 그럴 줄 알았다. 이건 어떻게 된 인간머리통이 나만 보면 살쿨일이라던지 아니면 골탕을 먹일 일을 어떻게 그리 잘 생산해 내냐. 2키로나 되는 길을 염천에 소금밭 같은 길을 땀 흘리며 갈 것을 생각하니 아찔한 것이 현기증까지 나는 칠복이 한숨부터 쉬었다.
“그려 알았어. 그람 내가 소쿠래미 하고 바께스 찾아 놓을께”
“응 오빠, 내가 정구지적을 냠냠하게 부쳐 줄테니께 기대혀 봐”
칠복이 대답을 듣고 나서 동숙이 부지런히 일어나더니 대문으로 나간다.
“워딜 가는겨?”
“응 금자네 집에 가는겨”
“뭐여? 금자네? 금자네는 왜?”
칠복이 금자라는 소리를 듣더니 고만 자지러지듯 놀랐다. 칠복이가 놀라던지 말던지 벌써 동숙이 발걸음은 금자네 마당에 들어섰다.
“금자야이~”
“응 동숙아 어서 와”
금자는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마쳤는지 수건으로 손을 닦고 있는 중이다.
“금자야 시방 강으로 도실비 잡으러 갈겨. 싸게 준비 혀”
“뭐여? 무슨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소리여. 시방 가긴 어딜 간다고 그려”
“응 정구지적 부쳐 먹을라고 도실비 잡으러 가는디, 칠복이 오빠가 너도 꼭 데려 오랴”
“뭐여? 칠복이 오빠가?”
금자는 칠복이 오빠라는 말을 듣고 두 다리가 풀렸는지 그만 마루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려 우리만 가면 찝쩍대는 애들이 있을까 모르니께 칠복이 오빠하고 함께 가는겨”
“아녀 나는 못가 너나 댕겨와”
“뭐여? 금자 너~”
칠복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금자였다. 우물가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로는 얼굴도 똑바로 보지 못하겠고 길을 가도 혹시 칠복이와 마주칠까 겁이 나서 부러 먼 길인 줄 알면서도 돌아서 다니곤 했다. 그런데 함께 가자니 고만 가슴이 두근거려서 못살겠다.
“너 칠복이 오빠가 함께 가자고 하는디 안 가면 큰 낭패 본다”
“응 뭐여? 뭔 낭패?”
“칠복이 오빠가 자기 말 안 듣는다고 금자 니 몸 봤다고 소문내면 어쩔겨, 대책이라도 있는감?”
금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말이요, 겁내 하는 말이요, 혹시나 하는 말이요, 설마 하는 말이 동숙이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불린 콩을 한 국자 넣고 빙빙 돌리면 콩국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처럼 남의 약점이 저리 힘도 없이 줄줄 나오다니...... 그나저나 큰 일 났다. 하지만 어쩔손가. 동숙이 말대로 대책이란 것도 없는 터에 그저 나 죽었소 하고 동숙이 뒤만 따라 댕기면 될 일이지 하는 생각에 쓰디쓴 탕약을 한 모금 마신 얼굴을 하고 마지못해 금자가 동행하겠다고 한다.
“알았어. 대신 동숙이 니가 카바를 잘 해 주어야 혀, 알았지?”
“그려 그려 걱정하지 말어. 내가 누구여. 그런 걱정일랑 하들 말어”
“응 동숙이만 믿것어”
“그람 수건만 준비하고 있어. 칠복이 오빠가 바께스하고 삼태기하고 준비한다고 했으니께”
“그려 그럼 체육복 입고 있을께”
동숙이의 잰 걸음은 벌써 제 집 마당에 들어서 있다. 칠복은 삼태기와 얼개미를 바께쓰에 담아 두었고 수건과 비누도 담아 두었다. 동숙은 방으로 들어가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칠복이 마당에 서서 마루에 올라 서 있는 동숙이 모습을 보니 눈앞에 아찔하다. 칠복이 눈앞에 떠억 버티고 서 있는데 고만 거기에 뭐를 넣었는지 불룩한 것이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다. 일순 숨이 컥 막히는데 동숙이 댓돌에 내려서며 신을 신었다.
나간다. 동숙이 앞장을 서서 제비몰러 가는 듯 올갱이 몰러 나간다. 비슬비슬 그 뒤를 따르는 칠복의 손에는 삼태기와 얼개미가 포개서 들려 있는데 언제 손을 바꾸어 들었는지 금자의 손에는 바께스가 들려진 채로 칠복과 내외하면서 동숙이 뒤를 따른다.
폭염이 내리꽂히고 있는 우산리 논둑길을 따라 동숙이와 금자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칠복이 셋이서 올갱이 잡으러 금강으로 납신다. 논둑길 좌우에 검푸른 벼의 끝이 백만대군의 창이 도열하여 있는 듯 질서정연하게 서서 청춘남녀의 금강 진출을 환영해 주고 있다. 대견하게 자랐다. 장하게 자랐다. 벌써 파란 이삭이 매달려 있는 나락의 줄기에서는 강한 쌀 내음이 풍겨 나오는 듯 하다.
칠복, 금자, 동숙 셋이서 중동볼기짝까지 젖어 가면서 잡은 올갱이는 어지간히 많이도 잡아서 바께스의 절반 정도나 차게 잡았다. 거기에 동숙과 금자는 몰고 칠복은 삼태기를 대고 해서 잡은 붕어와 미꾸리 그리고 눈먼 피라미들이 솔찮이 잡혀 올갱이 위에서 피라미는 튀다가 뻗고 붕어는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데 미꾸리는 수염을 쭈욱 늘인채로 올갱이 틈 속에 거품을 만들어 내면서 비비적거리고 있다. 특히 금자 아버지 박 선생은 민물고기매운탕을 좋아했으므로 올갱이 절반과 민물고기를 죄다 금자 손에 보냈다. 잠시 후에 금자가 다시 왔는데 올갱이는 한꺼번에 다 삶아서 까야 하니 이리저리 번거롭게 두 집에서 할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삶아서 두 집이 나누어서 까되 정구지적은 동숙이와 금자가 함께 부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전갈이 왔다. 하여 저녁을 먹자마자 그 많은 올갱이를 삶아서 까느라고 양쪽 가족들이 죄다 달라붙었다. 출출하기도 한 터에 올갱이를 까고 있으니 대주 할머니께서 입맛을 다신다.
박 초시는 평상 위에 자리를 펴라고 하고는 정구지적을 부치라고 했다. 두 집 식구가 다 모이니 평상이 모자라 평상 아래에 멍석도 폈다. 두 집 식구 모두가 신바람이 절로 난다. 칠복은 모깃불을 넉넉히 놓았다. 동숙과 금자는 둘이서 가마솥뚜껑을 낑낑거리고 내 왔다. 드디어 솥뚜껑을 마당 한 편에 있는 가설부뚜막에 올렸다. 첫째와 둘째는 우물가에서 정구지와 대파를 씻고 감자도 깠다. 셋째와 넷째는 밀가루를 양푼에 퍼서 어머니의 감독 하에 소금과 설탕 그리고 달걀도 풀어 넣어 휘휘 저었다. 정숙이와 종숙이는 큼직한 무를 깎아 거기에 들기름을 듬뿍 발라서 솥뚜껑에 기름칠을 했다. 첫째가 박 초시가 건네주는 돈을 받아 큰 주전자를 들고 점방으로 내달렸다. 잠시 후에 첫째는 탁배기가 하나 가득 담긴 주전자를 평상에 내려놓고 다시 올갱이 까기에 몰두한다.
들기름 냄새가 솔솔 풍겨지는데 치이익 하고 올린 정구지적은 올갱이를 듬뿍듬뿍 넣어서 두툼하게 부쳐지고 있다. 다 익은 정구지적은 가장자리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있고 가운데에는 두툼하니 고소한 들기름 냄새와 어울려 어찌나 맛이 있던지 내려놓기가 무섭게 입천장을 데어 가면서까지 입에 넣기에 바빴다. 밀가루 반죽 통이 금새 바닥을 드러내는 통에 다시 반죽을 새로 했다. 이번에는 칠복이까지 함께 앉아 바늘을 손에 쥐고는 올갱이 까기에 투입되었다. 입안에 들어와서는 잠시 까실한 감촉을 내나 어금니로 깨물면 싸아한 맛이 도는 올갱이는 씹을 때마다 알갱이 하나 혹은 두어 개가 함께 씹히면서 쌉쌀, 짭쪼롬한 맛이 숨골까지 그 맛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어 고만 머릿속까지 올갱이의 진한 맛으로 흠뻑 젖어드는 것이다.
맛도 맛이려니와 두 집 가족들이 모두 함께 모여 정구지적을 먹는 평안함과 달콤한 분위기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만족감과 포만감을 동시에 부여해 주었다. 사람 사는 재미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나. 서로가 서로를 기꺼워하고 함께 하기를 즐거워하는 바로 이런 맛이 아니겠나. 작은 것을 서로 나누어도 사람 사는 재미가 이리 고소한데 큰 것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 기쁨과 즐거움은 얼마나 클까. 한국인의 문화의 근저에 깔려 있는 情은 올갱이를 삶은 국물 보다 진해서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해 주어서 공동체를 이루었다. 먹을 것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슬픔까지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문화를 이루어냈다. 피보다 더 진한 정이라는 촉매는 한국인의 문화권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낸 원인이었다. 고향이란 정으로 묶여진 공동체에서만 나오는 독특한 냄새이며 이 냄새는 회유하는 모든 동물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연어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정이라는 촉매로 용해되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한국인은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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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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