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일본군 헌병 중위
26. 독사 곤도
나까무라 경부보는 일본군 대전 헌병대에서 파견 근무 중인 곤도 중위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곤도는 날카로운 눈매에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로 한 번 추적한 사람은 누가 되었던지 놓치는 법이 없는 자로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곤도는 식민지 국가 중의 하나인 조선이 과거에 일본의 문화를 주도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심각할 정도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천황제일주의 사상에 깊이 심취한 자였다. 곤도는 일본 군인에게 있어서 가장 명예로운 순간은 일본 천황을 위하여 할복하는 것이 최고의 명예로 알았다. 곤도는 잠자리에 들거나 아침에 눈을 뜨게 되면 일본 천황이 살고 있는 황궁을 향하여 삼배를 올리며 천황폐하만세를 외쳤다.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옥천과 보은 일대에서는 절대로 반일본제국주의자나 불순분자 그리고 명예로운 황군 입대를 거부하는 반역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곤도는 군복을 입기 전에 군도를 예리한 눈으로 관찰했다. 새파랗게 날이 서 있는 곤도의 군도는 예리한 섬광을 번득이며 단 한 줄기의 백색 선으로 나타났다. 그제야 만족한 듯 칼집에 군도를 집어넣고 길게 늘여 가죽장화를 신고 주재소 옆 헌병대로 출근했다. 불과 5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관사에 헌병대장 전용의 삼륜오토바이를 대기해 놓고 옥천시내를 한 바퀴 돌고 출근을 했는데 이는 곤도의 습관이었다. 그것은 마치 땅 다지기와 같아서 곤도의 영역 안에서 어떤 불미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면 삼륜오토바이로 깔아뭉개 버린다는 시위와도 같았다.
옥천 시내의 시민들은 드러내놓고 불만하지는 못했으나 곤도의 시위성이 있는 삼륜오토바이가 지나가면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이내 집에 들어가 굵은 소금을 한 바가지 퍼서 문 앞과 길가에 뿌렸다. 그래서였을까, 영동 쪽에서는 의병운동이 일어날 조짐이 감지되었다는 보고와 함께 일본군강제징집을 피해 산으로 도망간 일당들이 의병운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밀정의 보고에 곤도는 이를 갈며 아침에 한 번씩 운행하면 삼륜오토바이를 일몰 시간에 한 번 더 운행하며 옥천시내를 감아 돌며 먼지를 날렸다.
당시 보은과 옥천 그리고 영동을 중심으로 행세깨나 하던 양반들은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하나 둘 친일을 맹세하고 맹세의 증거로 창씨개명과 재산의 일부를 헌납하고 자식의 징집을 면제 받았다. 양반의 자제들은 재물을 바치고 징집면제를 받았으나 그 외의 가정에서는 저승사자와 같이 악착같이 찾아내어 끌고 가는 곤도의 추적으로부터 일본군의 징집을 피할 수 없었다. 곤도는 도망간 자가 돌아올 때까지 온 가족을 옥에 가두고 문초와 고문을 했다. 혹시나 하여 집안의 소식을 들은 자식들은 제 발로 하나 둘 주재소로 찾아와 자수를 했고 고문을 통해 함께 도망을 했던 동무의 이름을 팔아 넘겨야 했다. 곤도는 한 명이 자수를 하면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이름을 불도록 했다. 곤도 중위와 나까무라 경부보의 손에 잡혀 일본군으로 끌려간 장정의 수가 일백 명을 넘기며 곤도 중위와 나까무라 경부보의 악명은 조선팔도에 악마라는 별명으로 혹은 독사라는 별명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칙쇼”
항문을 파고드는 예리한 아픔에 혼비백산한 채옥은 짧은 비명을 지르며 엉덩이를 옴쳤다. 마치 예상이나 하고 있었다는 듯 곤도의 손은 채옥의 뺨을 거세게 후렸다. 항문을 파고드는 예리한 아픔과 뒤따를 고통의 두려움에 깜짝 놀란 그녀는 펄쩍 뛰어 올랐다가 호되게 맞은 뺨이 얼떨떨해지며 그제야 두려움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온몸을 떨었다. 창을 타고 넘어오는 달빛은 순백색의 채옥의 나신을 희미하게 비추며 굴곡진 나신에 신비로운 음영을 만들어내고는 짙은 여인의 체취를 슬며시 희석시켜 주었다. 달달하면서도 비린 듯한 체취가 여운으로 남아 곤도의 코를 넘나들며 자극했다.
곤도는 오들오들 떨며 맞은 뺨에 손을 대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눈부신 채옥의 나신을 바라보며 내심 감탄을 연발했다. 그 감탄은 곧 부수어 버리고 싶은 충동과 고통에 몸부림치며 쏟아낼 채옥의 복숭아 빛 입술에서 터져 나올 신음소리와 연결되어 곤도의 욕정에 불을 붙였다. 채옥은 곤도의 입술이 다가가면 언제나 입술을 앙다물었고 마지못해 입술을 열어 주었다. 불행히도 채옥은 자신의 앙다물었다 열어 주는 마지못한 태도로 인해 곤도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채옥은 곤도와 잠자리에 들면 곤도의 성적인 욕망만을 채워 주어야 하는 발정 난 암컷이 되어야 했다. 그는 제왕이었고 독재자였으며 그 앞에서는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곤도는 나까무라 경부보가 소장으로 있는 옥천경찰서에서 채옥을 처음으로 보았다. 작은 보퉁이를 가슴에 안고 주재소에 갇혀 있는 오빠를 면회 왔다 했다. 채옥을 바라본 순간 곤도는 “앗”하는 비명을 지르며 숨이 멈출 듯 가슴에 뻐근한 진통이 왔다. 흰무명 저고리와 깜장 깡통치마를 입고 머리를 고르게 빗어 땋아 내린 머릿결 끝에는 빨간 댕기가 매어져 있다. 얄상한 얼굴의 선은 희고 긴 목과 뚜렷한 턱의 경계선으로 이어져 있었고 살짝 드러나 있는 귀밑머리는 파란정맥이 드러날 정도로 투명했다. 아무리 여미었어도 봉긋한 가슴은 풍만했으며 여느 남성의 손길이 닿지 않은 팽팽함을 감추고 있었다. 버선 위로 살짝 드러나 있는 종아리는 대리석을 깎아 만든 듯 투명해 보였으며 솜털이 보송보송한 사이로 정맥이 살며시 드러나 보여 대조를 이루며 투명함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눈을 내리 깔고 있는 채옥의 얼굴에 다시 눈길이 가고 찬찬히 얼굴을 살펴보니 곤도의 가슴에 격랑이 인다.
너른 아미는 우유 빛처럼 투명하며 팽팽했고 고왔다. 초생달을 그려 넣은 듯 눈썹은 검고 짙으며 눈썹의 끝까지 선명하다. 내리깔고 있는 눈은 오히려 속눈썹의 숱은 많았고 그 색이 짙고 가지런하게 뻗어 있어 잠자리에서의 열정과 격정적인 율동을 능히 짐작케 했다. 꿀꺽 곤도의 입으로 생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목울대 사이로 들려 왔다.
길게 뻗은 산맥과 같은 콧잔등과 오똑한 코에는 도도함이 배어 있다. 오똑한 코와 적당한 인중 아래에는 복숭아 빛으로 물들어 있는 입술이 보인다. 도톰한 아랫입술 위로 살포시 물려 있는 윗입술은 선이 분명했고 입술선이 끝나는 점이 분명하다. 입술 바로 옆에는 보조개가 파여 있다. 곤도는 마치 여인의 옷을 벗기고 뽀얀 나신의 정중앙에 수줍게 패여 있는 배꼽을 보는 듯 연상되어져 심장의 박동이 급격히 변하는 것을 감각했다. 사슴의 목처럼 긴 목은 턱선 과의 경계가 분명하며 선이 명쾌하고 고왔다. 곤도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전율을 느끼며 안면에 끼쳐지는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그 뜨거운 기운은 안면에서 다시 전신으로 흘러내려갔다.
“흐음. 이 처녀가 오늘 밤 나까무라의 제물이 된다는 말이지.”
이미 나까무라 경부보의 배려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오늘 밤 안에 나까무라의 밥이 될 것이 자명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호색한에게 유린당하도록 방치해 둘 수는 없다. 곤도는 자신이 이 여인을 보호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는 명분이 곤도의 뇌리 속에서 만들어졌다. 뇌리에서 만들어진 명분은 다시 심장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발동시켰고 곤도의 눈은 ‘호색한에게서의 처녀구원’이라는 결의로 안광이 빛나기 시작했다. 문제가 없이 가장 효과적으로 구출할 수 있는 묘수는? 곤도의 눈은 이미 체옥의 호수처럼 너른 아미와 초롱한 바다같은 눈 속에 급속히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이 여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먼저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나까무라 경부보와 대화를 통해서 만들어 보자.
깊이 숨을 들이켠 곤도는 나까무라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제야 곤도는 나까무라가 안경을 쓴 채 빛나는 눈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나까무라 경부보는 작달막한 키에 배가 나왔으며 큰칼을 허리에 차고 있었는데 칼집의 끝은 닳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가끔 긴 칼을 끌고 다니는 듯 했다. 혈색 좋은 얼굴에는 개기름으로 덮여 있어 등잔불의 희미한 빛에도 반사되고 있다. 호색가다운 특징이 박혀 있는 얼굴은 사각이었고 짧은 콧수염에 꽉 다물고 있는 입은 모략에 능한 인품임을 짐작케 했다.
나까무라는 곤도의 태도를 보고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 챘다. 곤도의 날카로운 눈매에서 빛이 뿜어 나오는 것을 직감하고 있던 나까무라는 속으로 이해타산을 맞추어 보았다. 이미 자신의 발톱에 잡혀 있는 처녀를 간단히 포기할 수는 없다. 도꾜에 가도 이런 순진무구한 미인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진주 중의 진주이며 순금중의 최상급 금덩어리이다. 그에 걸 맞는 정도를 요구해야 하는데... 퍼뜩 곤도의 등에 올라탄다면 경부로 진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다.
“흐흐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전광석화와 같이 스쳐가는 절대조건. 나까무라는 채옥을 통해서 곤도와 거래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진급이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제발로 진급의 기회가 스스로 찾아오다니, 나까무라는 자신의 운이 활짝 열려 금장이 두툼한 경부견장과 금장으로 둘린 칼이며 제복을 눈에 그려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까무라는 눈을 지그시 감고 감정을 통제했다.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안면근육에 잔 떨림이 느껴지고 붉은 얼굴이 더욱 붉어진다.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그래야 반대급부를 받아낼 수 있다. 가슴 속에는 이미 팽팽한 긴장감으로 마치 튀어 오르기 전의 용수철처럼 수축되어 있다. 독사처럼 차디찬 곤도에게 기 싸움에서 밀리면 끝장이다. 감정 따위를 표출해서 먼저 거래목적물을 내어 놓았다가는 자칫 산통이 박살날 우려가 있다. 최대한 진중한 자세로 곤도가 먼저 말을 내어 놓도록 기다려야 한다.
나까무라는 곤도의 표정을 보고 동물적 직감으로 자신이 곤도의 약점을 움켜쥐고 있음을 깨달았다. 곤도는 자신을 부를 때에 나까무라 경부보라는 직책에 힘을 주어서 부르곤 했다. 이는 자신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음을 암중에 확인하는 의도임을 나까무라 자신이 모를 리 없다. 보 자에 힘을 주고 부르는 곤도의 호칭에 어금니를 깨물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까무라 경부보. 이 여인은 어떤 죄목으로 잡혀 왔는가?”
곤도는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를 최대한 눌렀다. 애써 평정을 되찾은 곤도는 나까무라 경부보에게 질문을 던지며 빈틈을 찾았다. 상대에게 잽을 날려 반응하는 동작에 따라 결정타를 꽂아 넣을 빈틈을 찾는 권투선수와 같이 곤도는 나까무라의 빈틈을 찾았다.
“하이. 저 여자는 김만배라는 자의 누이동생으로 영광스러운 황군으로 소집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을 치다가 잡혀서 현재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는데 면회를 왔습니다.”
“면회를 왔다면 유치장으로 데리고 가야지 경부보의 사무실로 데리고 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예상했던 대로 곤도는 자신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 그것도 한 박자 빠르거나 혹은 반 박자라도 늘어지는 잽이 아니라 뒷머리가 띵할 정도로 유효한 잽을 자신의 턱에 떨어뜨리고 있는 곤도. 이 자와 한 판의 드잡이를 통해 반드시 승진이라는 보장을 받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단과 예측 그리고 최대한의 가치를 부여하여 최상의 선물로 포장을 하여 단단히 다짐을 받고 나서 기꺼이 바치는 모양새를 갖추어야 한다. 나까무라의 비상한 머리는 급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하이 곤도상 이 여자를 추궁하면 김 만배 라는 자의 뒤에 있는 다른 불순분자들을 소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고문을 해서라도 반드시 찾아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고문을 해서라는 말에 흠칫 곤도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이며 안색이 변한다. 나까무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곤도의 의중을 확인한 이상 곤도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이쯤에서 선수를 치고 나가야 목적을 이룰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나까무라는 책상에 두 손을 얹고 힘을 주어 누르며 벌떡 일어났다. 명령체계에 익숙해져 있는 나까무라의 습관은 판단에서 결행까지 0.5초의 시간이면 족했다. 책상을 짚고 일어서는 동작은 이왕 주는 것 시원하게 주겠다는 표현으로 나까무라의 호기어린 습관이었다. 자신이 뒷일을 책임지고 시원하게 주겠다는 결행을 하고 나면 상대에게서 시원한 보답이 돌아왔다. 그 결과로 나까무라는 경부보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다. 기분 좋게 주라, 그러면 기분 좋게 돌아온다. 나까무라가 경찰계에 투신하면서 일찍부터 깨우친 철학이었다.
“곤도 상께서 이 여인을 추국하신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판단됩니다. 곤도상의 숙소로 제 내자와 함께 이 여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숙소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흠칫 곤도의 어깨가 움찔했다. 곤도는 나까무라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호오 기분 좋게 준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으렷다.’ 곤도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인다. ‘흐음 이 자가 경부를 꿈꾸는구나. 내 힘으로는 벅찬 일인데, 흐음 경무총감 아들이 나와 동기이니 그 친구에게 부탁하면 가능한 일이지. 호오’
마주친 나까무라의 눈에서는 ‘기대하고 있겠다’라는 메시지가 떠 있다. 결국 암묵의 거래가 성사 되었다.
채옥은 이내 보퉁이를 가슴에 안은 채 나까무라 경부보의 관용차에 실려 나까무라 경부보의 사택으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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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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