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그녀의 창
35. 그녀의 창
칠복이 자건거를 타고 나타나자 새카만 도베르만 두 마리가 쾅쾅소리가 나게 짖었다. 슬며시 창문을 보고는 페달에 힘을 주어 집으로 돌아왔다. 잉어는 흙냄새가 나기 때문에 약간의 토장을 넣고 마늘을 듬뿍 넣고 생강을 조금 넣어 흙냄새를 중화시켜 주어야 했다. 또 잉어만 넣고 끓이면 비린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먹기에 곤욕스러웠다. 여기에 약간의 토장을 풀고 우거지를 넣어주면 좋았다. 우거지는 김장철에 수확한 무우청을 말린 무청씨레기가 최고였다. 이리저리 생각 끝에 자신이 직접 만들어다 주기로 했다. 약이란 식전에 먹어야 하는 법이다.
칠복은 잉어를 잡아 무청씨레기를 넣고 마늘을 넉넉히 넣고 한 조각의 생강을 넣어 가마솥에 장작을 피워 1시간 남짓을 고았다. 가마솥 뚜껑을 여니 잉어는 형체도 없이 풀어져 있었다. 뼈와 가시를 추려내고 휘휘 잘 저어 다시 한소쿰 만큼의 시간을 더 끓였다.
집 뒤에 있는 텃밭으로 가서 깻잎을 따고 부추를 베어 왔다.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무청씨레기를 끌어내 이것을 비닐봉지에 담아 갈무리를 했다. 수연과 함께 있는 분들에게 매운탕을 끓여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가마솥을 열어 잉어를 냄비에 담았다. 찹쌀만 넣어 다시 끓이면 죽으로 먹을 수 있도록 무청씨레기는 잘게 잘라 넣어서 끓였다. 국물이 흘리지 않도록 비닐로 꽁꽁 동여 매어 자전거 뒤에 잘 비끄러맸다.
멀리에서 보니 창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중문도 반쯤 열려 있다. 혹시 그새 손님이 오셨는지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창문 가까이 가니 어제 들었던 첼로 연주곡이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칠복을 발견한 선영이 손을 흔들어 들어 오라고 한다. 관리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칠복이 도착하자 중문을 열고 맞이해 주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유"
"어서 오세요. 반장님. 우리 아가씨가 오랫동안 기다렸나 봐요. 어서 올라가 보세요."
"저기유, 잉어를 과 왔는디 아가씨가 드시면 좋을 것 같아서유."
"아 그래요. 좋고 말구지요. 고마워요."
"그리고 이건 아침이나 점심 때 매운탕을 끓여서 드시라고 민물괴기를 가져 왔구먼유"
칠복이 자전거 뒤에 비끄러맨 것을 풀어 관리인에게 주었다. 관리인은 부인과 할멈을 불러 아가씨 식탁을 차리게 했다.
"이따가 이거로 매운탕 해서 점심 드시고 막걸리 한 사발 하십시다. 반장님"
관리인이 입맛을 다시며 칠복에게 권했다. 칼칼한 매운탕에 한 잔 할 생각에 벌써 기분이 낫낫해지는 관리인이었다.
"그러셔유. 좋지유"
식탁을 차린 할멈이 앞을 서고 칠복이 뒤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선영이 칠복을 보고 방긋 웃으며 목례를 한다. 칠복도 미소를 지으며 목례로 답했다.
"아가씨 반장님이 잉어 탕을 손수 끓여 오셨네요. 어서 맛을 보셔요. 냄새가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요"
잉어탕이라고 하니 벌써 비린내가 생각되어졌나 보다. 살풋 아미가 찡그러진다.
"어머 고마워요. 직접 잡아서 끓여 오신거야요?"
"그랬슈. 별거 아녀유. 비리지 말라고 수단을 부렸는디 맛은 어쩐지 모르겠네유"
선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저기 고기 잡는데 나도 데려가 주셔요. 으음 걸어 다닐 수 있을 때요"
"걱정 마셔유. 제가 업고라도 갈 수 있으니께 건강해지시면 되유"
업고 간다는 말이 참 좋다. 살짝 얼굴이 붉혀진다. 어릴 때부터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곤 했다. 사춘기 시절에는 오빠와 함께 여행도 가고 물가에 가서 오빠에게 업혀 징검다리를 건넜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급우 가운데에서 오빠가 있는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했었다.
"아가씨 어서 수저를 들어 보세요."
"네, 잘먹을께요. 고마워요."
수저를 드는 선영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기껏 몇 숟가락 밖에 못 먹는데, 밥을 담은 공기가 커 보인다. 잉어 탕을 목에 넘기는 순간 혀에 감겨오는 미각이 새롭다. 혀에 감기는 씨래기가 부드럽게 입에서 씹히는 동안 말랐던 침샘이 반응했다. 명란젓이니 김치니 장조림에도 손이 간다. 꽈리고추로 볶은 멸치볶음에서 젓가락이 간다. 먹다 보니 꼬약 꼬약 반 공기를 먹었다. 할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칠복은 애초에 밥공기를 보고 불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서울사람이라고 해도 어찌 저걸 밥이라고 먹나 몇 숟가락이나 된다고. 칠복의 수저로는 세 수저면 없어질 분량의 밥이었다. 사람이 밥 심이 있어야 힘을 쓰지.
밥을 먹고 나서 힘이 들었나 보다. 숭늉을 마시고 난 뒤에 선영이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는 선영의 목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마치 폐부를 다 끌어내듯 힘겹게 기침을 하는 선영을 보고 할멈과 칠복은 눈을 감았다.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억지로 기침을 하는 선영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저기요 선생님. 혹시 교회 나가시나요."
"예 교회에 나가고 있어유"
"그럼 저를 새벽기도회에 데려다 주실 수 있으면...."
뒷말을 잇지 못했다. 말을 꺼내면서 생각해 보니 자신의 몰골로 어찌 교회를 나갈 수 있을까 해서 뒷말을 잇지 못했다.
"저기 기침 때문에 새벽예배에 참석하기가 곤란하면 새벽 예배를 마치고 난 뒤에는 언제든지 데려다 드릴 수 있어유"
"그렇게 해 주신다니 고마워요. 그런데 교회는 여기에서 먼가요?"
"조령리 초입에 있는 교회이니께 여기에서 샛길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되것슈"
10분 정도나 걸어가야 한다는 칠복의 말에 선영의 얼굴에 그림자가 생겼다. 방안에서 움직이는 것도 힘이 드는데, 외출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리였다. 선영이 낙심을 하는 동안에 칠복의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교회에 간다는데 업어서라도 데려다 주고 싶다. 함께 기도하면 위에 계시는 분께서 더 잘 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걸어서 10분이면 업고서는 넉넉잡아 30분이면 가지 않겠는가. 다행히 뒷길로 가면 금강줄기로 이어지는 외길이라 마을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가씨 이것 좀 드셔유"
할멈이 박하사탕이 들어 있는 상자를 내어 놓았다. 선영은 눈으로 칠복에게도 권하며 박하사탕을 입에 넣었다.
"할머니 홍차를 타 주세요. 위스키를 두 방울 넣어 주세요. 선생님은?"
"저도 똑 같이 타 주셔유. 고마워요. 할머니"
선영이 밥을 반 공기나 먹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풍경에 할멈은 눈시울조차 빨개질 정도로 감격했다. 이 사람 여직 총각이라는데 심성도 착하고 잘해준다. 아가씨 곁에서 동무를 해주며 말벗이라도 되어준다면 아가씨에게 자극이 되어서 병과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겠다. 만약 운명이 그것 밖에 안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해도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이 총각이 처녀귀신을 면케 해 주면 좋겠다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도 일어났다. 할멈은 칠복을 곁눈질 하며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있었다. 선영이 홍차를 타다 달라는 말에 1층으로 내려온 할멈은 양과이며 과일을 쟁반에 듬뿍 담았다. 칠복이 돌아가는 길에 냉장고에 있는 소갈비를 좀 싸 줘야겠다. 홍차를 타는 할멈의 입에서 흥얼흥얼 유행가가 흘러 나왔다.
"한 번 만나 줘요. 울랄랄라 제발부탁해요 울랄랄라..."
아니 이게 뭔 노래야. 서수남 하청일이 기타를 치면서 불렀던 유행가가 내 입속에서 나오다니 별일도 많아 별일도, 그래도 노래가 재밌다. "잠깐 잠깐만이라도 시간 좀 내 줘요. 울랄랄라" 노래가 참 꼬숩다. 언젠가 아가씨가 첼로를 찾거든 그래서 첼로를 연주하게 되거든 이 노래를 꼭 연주해 달라고 해야겠다.
"아가씨, 선생님 홍차 드셔요."
유쾌해진 할멈이 양과와 과일이 가득 담긴 큰 쟁반을 찻상에 놓아 주었다. 줄 것이 있다는 것이 이리도 마음을 넉넉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구나. 선영의 마음도 흐뭇해졌다.
"고마워요. 할머니"
"선생님, 앞으로는 우리 아가씨를 선생님이 맡아 주세요." 뜨악한 표정을 짓는 선영과 칠복을 보며 할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할망구가 되어 놔서 우리 아가씨를 잘 보살피지를 못해요. 그러니 선생님이 자주 오셔서 제 대신 아가씨 팔과 다리가 뻣뻣해지면 주물러서 풀어 주고 동무도 해 주세요. 물론 공짜로 해 달라는 것은 아니고 서울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수고비는 넉넉히 드리도록 할께요. 그럼 맛있게 많이 드세요"
할머니는 말을 마치자 답을 듣지도 않고는 서둘러 내려갔다. 선영의 얼굴이 빨갛게 부었다. 칠복의 뺨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민망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둘의 시선이 한동안 마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서로 얼굴을 붉히며 외로 꼬았다. 수연의 가슴이, 여기가 그래 바로 여기가 콩닥콩닥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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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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