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절망의 세월 끝자락에서
34. 절망의 세월 끝자락
칠복은 금강 계곡 으슥한 곳에 쵸크를 쳤다. 친구들도 가끔 쵸크를 치거나 투망으로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곤 했다. 농사일이 바쁘고 가정사에 바쁘다 보니 짬도 낼 수가 없는 친구들은 가끔 지나가는 소낙비가 오는 날에 투망질을 하고 잡힌 고기로 천렵을 하곤 했다.
헝클어지고 비틀어졌던 절망의 세월에서 기적처럼 선영과 만났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인연이다. 선영이 지금은 비록 폐병쟁이가 되어 몰골이 사나워졌지만 감히 쳐다 볼 수도 없는 서울 사장집의 귀하디귀한 외동딸이다. 공주와 같이 컸을 것이며 공주와 같이 살았으리라. 어쩌면 화장실도 가지 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자꾸만 옷 매무새와 외양에 신경이 쓰인다. 내일은 이발소에 다녀와야겠다. 그 사람에게 추레한 모습으로 보였을까 봐 걱정이다. 첫인상이 참 중요한데, 내가 너무 관리를 못하고 살았나 보다. 내심 후회가 되었다.
첼로 연주곡을 들었다. 4줄의 현과 휭거보드의 사이를 나비가 날듯 가볍게 오가며 눌러주고 풀어주며 온음에서는 떨어주면서 바이브레이션을 만들어냈다. 미세한 떨림의 바이브레이션은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파고들었다. 첼로의 연주 소리가 방안에 가득 찼다. 미세한 진동이 일어나며 파동을 일으켰다. 온음에서 내는 바이브레이션은 가슴을 저미듯 호소하고 단음의 연속은 가슴을 후벼 파듯 진동시켰다.
눈을 감았다. 선영이, 선영이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첼로를 연주한다. 왼손의 하얀 손가락은 현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나풀거리며 휭거보드 위에서 나비가 꽃을 희롱하듯, 오른손으로는 활을 잡고 현 위를 오가며 미끄러지듯 혹은 쥐어짜듯 할퀴며 오묘한 음색을 가진 멋진 가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첼로의 선율은 호소하는 듯, 타이르는 듯, 사람의 목소리와 같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사람의 목소리와 같은 주파수 대역폭을 가진 첼로의 독특한 음색은 묵직한 목소리와 같아서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첼로는 묵직하고 웅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러운 세월, 슬픔의 세월, 아픔의 세월은 다 지나갔느니 이제 그대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리라. 칠복의 가슴에 위로의 목소리로 들려 왔다. 웅장한 음률은 권위를 가진 신의 목소리와 같이 가슴에 감동을 주고 새로운 소망이 생겨나도록 자극했다. 오오 선영이라고 했던가요. 당신에게도 신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칠복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떨며 말했다. 묘한 감동이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눈을 떴다.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선영은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둥실 떠있는 모습으로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다. 다행히 칠복이 나지막이 부르짖었던 소리를 못 들었나 보다. 핏기도 없는 얼굴로 눈을 감은 선영의 눈에 슬며시 이슬이 비쳤다.
새벽 일찍 자전거를 타고 휭하니 조령리에 있는 장로교회로 달렸다. 칠복은 조령장로교회의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이었다. 아직 총각이라는 이유로 집사 임명은 보류한다고 했다. 새벽 예배에 참석을 하고는 선영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부리나케 금강으로 달렸다. 밤에 쳐 둔 쵸크에 실한 잉어가 두어 마리 잡혔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페달을 힘주어 밟았다.
새벽밥을 지어 먹고 통학을 하는 학생들의 자전거가 오고 간다. 대개는 영동과 이원에 있는 학교로 통학했으나 옥천으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도 꽤 되었다. 먼 길을 가는 학생들은 여럿이 모여 함께 출발을 했다. 출발은 느티나무 정자가 있는 마을회관 앞에 모여서 출발을 했는데 꼴찌로 나오는 녀석은 여럿에게 한 마디씩 얻어맞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비를 입고 학생모자는 우비 모자 속에 갈무리를 해서 테이프로 단단히 붙여야 했다. 가끔 얼굴 정면으로 비가 들이칠 때를 대비해야 했다. 얼굴 정면으로 비가 들이치면 찻길에서 자전거를 운전해야 하는 학생들이기에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애를 먹어야 했다.
새벽 금강은 검은 색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그 위를 물안개가 뽀얗게 덮고 있었다. 풀 섶에서는 잠을 자고 있던 배짱이이며 방아깨비이며 메뚜기들이 사람의 발길이 닿는 대로 깜짝 놀라 이리저리 풀쩍 뛰어 오르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아직 날개가 덜 자란 탓에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다. 풀 섶에서 풀냄새가 짙게 올라오며 코를 자극한다. 이슬이 내려 물방울이 뭉쳐 있는 풀잎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혀로 핥아 먹고 싶은 생각이 슬며시 일어난다.
바삐 손을 움직이며 쵸크를 거뒀다. 쵸크를 거두는데 감촉이 묵직하다. 틈실한 잉어 두 마리와 꽤 큰 쏘가리와 메기가 잡혀 있고 잡고기가 쵸크에 걸려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다가 꽁꽁 묶인 꼴로 잡혀 있다. 산란기철이라 알이 가득 들었다. 알이 가득 들어 있는 잉어 한 마리는 놓아 주었다. 30cm는 됨직한 잉어와 20cm는 족히 되는 쏘가리를 초크에서 따냈다. 메기와 빠가사리 눈치 불거지 붕어 등속도 따내 바께스에 담았다. 꿈틀거리며 뻐끔거리며 거품을 쏟아낸다. 숨을 쉴 수 있을 만큼 물을 담아 이내 통나무 별장을 향했다.
저런, 어제 밤에 창문의 커튼을 열어 두고 잔 모양이다. 아닌데 어제 저녁에 가서 결핵예방주사를 맞고 올 때에는 창문에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쯧쯧 사람이 저렇게 허약해서 워쩌"
말해놓고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허약이 뭔가. 생과 사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인데, 가슴이 미어져 온다. 얼마나 친구가 없으면 나 같은 사람에게 자주 놀러 와 달라는 말을 했을꼬. 휘적휘적 가슴 속에서 도포자락이 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늦은 가을, 누렇게 탈색된 낙엽이 이는 바람에 날려 휭하니 정처 없이 떠도는 유령과 같아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가슴에 모진 삭풍이 한차례 훑고 지나간다. 힘이 빠지고 넋이 풀린다.
"오빠 나 내일 아침에 수학여행 다녀 오는겨. 무슨 선물 사다 줄까?"
"냅사 둬, 게우 수학여행 댕겨 오면서 뭔 선물이랴"
"엄머머 게우라니, 나를 물로 봤다 이거지, 뎀벼 뎀벼 한 판 뜨자구"
동숙이 두 주먹을 제 딴에는 야물딱스럽게 쥐긴 했는데 어설프기가 한량없는 주먹을 쥐고는 뎀벼 뎀벼 한다. 하는 꼴이 우스워서 피식 하고 실소가 터졌으나 뎀벼 뎀벼하면서 뎀비는게 얄미워서 에라 꼴밤을 한 대 앵겼다.
"어머 어머 진짜로 쳤다 이거지. 오냐 잘 걸렸다. 한 번 죽어봐라"
하더니 달려들어서 칠복이 팔뚝을 앙하고 물어뜯었다. 화들짝 놀란 칠복이 뒤로 주춤하고 물러나려는데 얼마나 번개같이 덤벼들었는지 벌써 물렸다. 온몸을 내던지며 달려드는데 피할 재주도 피할 공간도 없다.
"뭐 사다 줄건지 말할겨 안 할겨 잉잉"
"아고 아고 알았어. 아무거나 사다 줘. 다 좋으니께"
"그렇단 말이지. 그람 내가 사다주는 대로 잘 써야 하는겨"
"그려 그려 알아들었어"
어느새 물고 늘어지던 팔뚝을 걷어 부치고는 호호 하고 불어 주고 있는 동숙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칠복이 와락 껴안았다. 동숙이 도둑괭이처럼 할금할금 칠복이 처소에 드나드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 있었다. 박 초시 어른은 모른체하고 있었고 마님은 가끔 의미 있는 묵직한 말로 주의를 주곤 했다. 그 주의란 남정네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장부라는 것이며 장부는 입이 무거워야 하고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가끔 부인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남자가 성공하고 출세한다는 말도 강조하곤 했다.
"히히 홀애비니깐 효자손이 좋을겨, 등 갈굴 때 벅벅 긁으면 좋으니께"
"등 갈구면 담벼락에 등을 대고 문지르면 괜찮여"
"고람 라이타를 하나 사다 줄까? 담배는 안 펴두 라이타는 있으면 좋잖여"
"웅 그려 그게 좋것어."
"알았슈. 아이고 이뽀라. 이뻐 죽겠어. 우리 신랑 히히"
"애고 남사스럽게 신랑이 뭐여 신랑이"
깜짝 놀라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방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런디 금자가 독감에 걸려 같이 못가서 서운혀."
"그러게 말이여, 드러누워서 꿍꿍 앓고 있다는디 수학여행을 어떻게 가누"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날, 경부 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영동 여고 수학여행단 버스가 빗길에 과속으로 달리던 중 추풍령 구간에서 추락 사고를 일으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가 라디오을 통해 흘러나왔다. 얼마 후, 마을 이장이 달려 왔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학교로 오시면 학부형들과 함께 병원으로 출발하겠다는 통보였다. 라디오에서는 속보로 사망자 명단이 방송되고 있었다. 사망자, 박동숙 김천 중앙 병원 영안실. 1969년 추색이 짙은 10월 13일이었다. 칠복이 이 집에 들어와 산지 만 3년 만의 일이다.
동숙의 유품에서는 라이타와 효자손 옥 목걸이 두개와 경주법주와 경주국화빵과 옷가지들이 나왔다. 장례를 마치고 난 뒤에 한줌의 재가 되어 금강에 뿌려졌다. 칠복과 함께 올갱이를 잡으며 놀았던 바위가 많이 모여 있는 맑은 물에 종숙이와 칠복의 손으로 뿌려졌다. 금자도 한줌의 재로 변한 동숙의 죽음 앞에서 넋을 놓았다.
"좋은 곳으로 가렴, 좋은 곳으로... "
실의에 빠져 있던 칠복은 한 동안 말을 잃었다. 밥을 먹고 일을 하는 것 뿐, 누구하고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눈빛은 처연했고 늘 고개를 땅에 박고 다니거나 아니면 하늘을 바라보고 다녔다.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누가 부르면 동공이 없는 눈으로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얼마가 지나고 부터 실성을 한듯 하늘을 보며 중얼중얼 거렸다. 사정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칠복을 볼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했다. 그토록 금자가 애원을 하며 제정신을 찾도록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금자도 지쳤다. 애를 끓이며 괴로워하는 금자를 보며 금자를 사모했던 성구가 위로해 주려고 애를 썼다. 차츰 성구에게 마음을 연 금자는 어느 고운 날에 성구와 결혼을 했다. 수년 동안이나 계속된 칠복의 실성에 마을 사람들은 피했고 어린아이들은 무서운 나머지 칠복을 보면 엉엉 울면서 돌을 던지기까지 했다. 마을 사람들은 칠복을 칠뜨기로 불렀다. 한 번 넋을 놓으니 나락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칠복이 하늘을 보면 동숙이의 해맑은 얼굴이 보이곤 했다. 동숙이와 지냈던 날들의 기억은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하늘에서 동숙은 두 팔을 벌리고는 칠복의 가슴에 안겨 들었다. 동숙이 나타날 때에는 언제나 눈이 부셨다. 동숙을 보내고 이태가 지났을 때, 옥천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 정애의 유골을 받아가라는 통지였다. 유골 상자를 받으러 간 칠복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어찌 된거냐고 박 초시가 걱정스럽게 물으니 다만 잘 보내 드렸다고 했다. 그래도 칠복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비참할 정도의 슬픔이 오면 올수록 이를 악물고 그 충격과 온 몸으로 부딪쳤다. 넋을 놓고 살았던 시절은 자신에게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불행과 그 충격파로 인한 내적인 갈등과 싸우는 시기였다. 칠복은 죽은 소 보다, 살아 있는 피라미 한 마리가 더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낙조가 떨어지고 어둠이 오기 전에 피라미는 일정한 수량을 담아 두기 위해 축조한 보를 훌쩍 뛰어넘어 상류로 치고 올라갔다. 보에는 차마 뛰어넘지 못한 피라미들이 숨을 할딱이며 흥건한 물에 걸쳐 있었는데 잠시 후에는 용을 써서 보를 벗어나 상류로 곤두박질치며 헤엄쳐 갔다. 칠복은 다만 살아 있다는 것에 가치를 두었고 너른 가슴에 꿈을 담았다. 꿈을 키우며 우직한 황소와 같이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곤 했다. 그래도 동숙의 죽음은 칠복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슬픔이었고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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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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