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운명
39. 운명
박 사장은 보궐 선서의 유세로 진이 다 빠졌다. 만나도, 만나도 만나야 할 사람은 늘어났고 가도 가도 가야할 지역은 끝이 없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 머리싸움을 하는 일이 견딜 수 없이 피곤했다. 정치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피를 말리는 것인 줄은 몰랐다. 며칠 유세에 목은 쉬고 사람은 파김치가 되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같은 대형공사판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공사전체를 지휘했던 박 사장이었다. 험하다고 소문난 시멘트 밥을 먹으면서 험악한 인부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터널 공사에서 터널이 무너져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인부들이 데모를 일으켜 삽과 곡괭이를 들고 죽이겠다고 덤벼들었을 때에도 꿈쩍하지 않고 그 일을 다 처리해 냈다. 휘발유를 온몸에 붓고 분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인부와 1시간 동안의 피를 말리는 대화로 설득시켜 돌려보낸 일도 있었다. 운전하던 차가 벼랑에서 굴러 죽을 뻔 했던 일도 있었다. 철야작업은 밥 먹는 것처럼 지겹도록 해봤다. 꼬박 철야작업을 하고 퇴근하는 인부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해장국으로 안주로 해장술을 마셨다. 아침 일찍 출근한 직원들과 마라톤 회의를 진행하고 퇴근했던 야근조가 다시 출근하여 얼굴을 보고 나서야 몇 시간의 자투리 잠을 잤다. 그래도 견뎌냈고 탈이 없었다.
“많이 지쳐 보입니다. 쉬셔야 하는 것 아니예요?”
“당신과 함께 이렇게 와인 잔을 기울이며 별을 보았던 때가 해를 넘긴 것 같아.”
“겨우 일주일 전이예요. 당신 참 많이 힘든가 봐요.”
“그래요. 쉬운 일은 아닙디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타고 난 사람들인 모양이요.”
“당신 별명이 철인이었는데, 철인이 그런 말을 다 하다니 어지간히 힘든가 보군요.”
“그래, 참 선영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답디까? 보고는 받았어요?”
“네 유모하고도 선영이하고도 통화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데요. 뭐”
“그래 그 아이는 어떻답디까?”
박 사장의 몸이 부인 쪽으로 기울어지며 바짝 다가앉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나간 며칠 동안 아픈 딸이 어찌 지내고 있는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참 서글퍼진다. 인생이란 것이 틀에 짜여 있어 무슨 공식과 같이 그렇게 살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예기치 않았던 일이 불쑥불쑥 솟구쳐 나올 때에는 온몸의 진액이 다 빠지는 듯하다. 딸의 병 이 죽음이 되어 덮쳐 올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어야 하는 아비의 심정은 참담했다. 조물주를 향하여 분노가 일어날 만큼 절망감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딸 아이의 병을 통해 인간의 한계와 도무지 넘을 수 없는 절벽 앞에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딸과 그것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분노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이 조물주의 각본이라고 해도 이것만큼은 받아들일 수도 또 받아 들여서도 안 되는 각본이었다. 박 사장은 딸 선영의 문제로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심히 고뇌했다.
“많이 좋아졌대요. 아빠 일 때문에 못 내려가고 있다고 했더니 꼭 아빠의 소원이 이뤄지게 해 달라고 기도 중이래요.”
“원 자기 병이 먼저지 국회의원이 먼저인가.”
“아주 명랑해졌어요. 오늘은 새벽기도회도 다녀왔대요.”
“뭐라? 그 몸으로 어떻게 새벽기도회를 다녀왔대?”
박 사장이 화들짝 놀라 펄쩍 뛰듯 앞으로 다가왔다.
“박 반장이 선영이를 업어서 교회에 데리고 갔다 왔대요. 박 반장이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이래요.”
“그래? 이거야 원, 어쨌든 외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니 천만다행이요. 한시름 놓을 처지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아이가 좋아졌다니 내 기분도 좋아지는구려.”
“선영이가 아빠께 꼭 약속을 받아야 할 일이 있대요.”
“그게 뭐랍디까?”
“선영이가 자기 병이 나으면 자기가 소원하는 한 가지 소원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빠의 명예를 걸고 들어 주셔야 한다고 단단히 못질을 하네요. 그래서 제가 아빠 대신해서 약속한다고 했어요.”
“잘했어요. 병만 나으라고 해요. 뭐든지 들어 준다고 해요. 뭐든지”
“그럼 약속하신 거예요. 다른 말 없는 거지요?”
“그렇고말고, 내가 직접 약속했다고 전해 줘요.”
“네, 그럼 내일 전화로 그렇게 전할께요. 당신은 이번에 꼭 승리하셔야 해요. 선영이 걱정은 당분간 하시지 말고 제게 맡겨 주세요.”
“고맙소 여보, 사실 내가 선영이에게 전화 한 통화 넣을 시간이 없어. 미안해요. 당신에게 걱정거리만 맡겨주는 것 같아 미안해요.”
“그런 말씀 말아요. 선영이가 어디 당신만의 딸이우. 우리가 낳은 우리 딸이지”
두 사람의 눈이 서로의 눈을 놓지 못한다. 두 사람의 손도 얽혔다. 두 사람의 뺨에 홍조가 피어난다.
“이만 잡시다.”
“네 여보”
부부가 손을 잡고 침실로 향했다. 입맞춤이 달고 진하다.
에버랜드에는 튜울립 축제가 한창이었다. 색색의 왕관과 같은 꽃 봉우리를 자랑하는 귀족적인 튜울립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한창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튜울립 밭은 그것이 마치 양귀비 꽃밭으로 착각이 되는 것이다. 그 길을 따라 가는데 왼쪽으로 또 다른 정원이 나타났다. 정원에는 백합이 밭을 이루며 피어 있었다. 그 중앙에는 큰 키의 목련나무가 하얀 목련을 가득 피우고 우아한 자태로 그윽한 향기를 뿜어냈다. 정원에 가득 둘려 있는 향기는 백합에서 나는 향기였고 목련의 향기는 다만 코끝에서 맴 돌 뿐이었다. 갑자기 눈앞에서 하얀 백합의 목이 부러졌다. 박 사장은 목이 부러진 백합이 안타까워 가까이 가서 목을 부축해 주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를 쓰고 손을 뻗어도 백합에 닿지 않았다. 애가 탔다. 하지만 아무리 손으로 잡으려 해도 백합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대신 손에 잡힌 것이 엉뚱하게도 금줄이 달린 박사모 였다.
“여보 여보”
아내가 흔들며 부르는 소리가 설핏 들려오면서 박 사장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많이 고단하셨나 봐요. 꿈까지 꾸시고”
“그랬나 꿈이었나. 휴우~”
“악몽을 꾸셨나 봐요.”
“그러게 혹시 선영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아이에게요?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박 사장은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불안한 마음으로 꿈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선영이 주문했던 약속 이야기를 재차 꺼냈다. 박 사장은 그제야 딸과 엄마 둘이서만 아는 무슨 교감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요. 선영이가 지금까지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는데, 이번 부탁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부탁인 것 같아. 대체 무슨 소원인지 혹시 당신은 아시오?”
“아니예요. 아직 저도 몰라요. 병이 나으면 아빠에게 직접 소원을 말한다고 했어요.”
“그래도 딸과 엄마는 직접적인 교감도 있고 눈치도 있을 터인데 혹시 당신이 알고 있거나 짐작이 가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를 해 봐요.”
“저기요. 혹시 이건 혹시예요. 전혀 아닐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겠지예요. 제 짐작으로 하는 말인데... ”
“뜸 들이지 말고 이야기 해 봐요. 아이가 낫는다고 하는데 무언들 못 들어 주겠소. 아이를 허망하게 보내면 내가 어찌 살겠소. 아무리 못된 것이라고 해도 아이를 잃는 것 보다는 나은 일이요. 만약에 선영이가 유학을 간다고 해도 이제는 보낼 수 있소.”
“혹시 박 반장인가 하는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면 어쩌실 거예요?”
잠이 확 달아났다. 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전혀 생각해 본 일도 없는 쪽으로 이야기가 터져 나오고 있다. 결혼이라니, 뒤통수를 쇠망치로 맞은 것처럼 둔중한 충격이 왔다.
“뭐요?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울컥하고 무언가가 치밀어 오른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고, 해도 좋을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아내의 말은 그 어느 쪽으로도 해당되지 않는 핵심을 빼버린 말이다. 겨우 그 말을 하려고 거창하게 소원이니 뭐니 하면서 당연히 나올 아비의 말을 입막음 한 것이던가. 박 반장은 유모가 필요하다고 해서 들인 사람이 아니던가.
“으으음 그 이야기는 아이 병이 다 낫거든 이야기 합시다.”
등을 돌려 누우며 박 사장이 냉정한 표정으로 아내의 다음 말을 막았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모가 했던 말이 마음에 남는다. 그렇다면 유모와 아내가 처녀귀신이라도 면케 해주려고 했던 일이 빌미가 되어 박 반장이 선영이의 남자가 되었다는 말인가. 그 외에 자신이 모르게 일어날 일은 없다. 관리인 부부는 혹시나 불행한 일이 생기면 그 일을 처리해 달라는 뜻으로 입주를 시켰던 것이고 유모는 마지막으로 가는 길까지 말동무를 해 달라는 간곡한 의미로 별장에 보냈었다. 관리인 부부에게서 보고가 없다면 관리인 부부가 해야 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그것은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외에 선영에 대한 일체를 유모에게 일임을 해 두었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자신이 나설 게재도 아니다. 또 나서서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정말로 선영이의 병이 완쾌가 된다면 이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일단은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아이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 외에 그 어느 것도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마음을 편히 가졌다. 유모가 처녀귀신 이야기를 아내를 통해 전달되었을 때, 무척 마음이 상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니 처녀귀신 따위의 이야기는 아예 믿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행위가 병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이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줄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게 해 놓고 아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남아 있는 그 남자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 될 것인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해를 주는 그런 행위는 할 일이 아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던지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면 상대방에게도 유익이 되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자신을 위해서 남을 유익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악한 일이다. 더구나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남을 희생시키는 일까지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사악한 사람이다. 처녀귀신을 면하기 위한 섹스라면 그것은 주술적인 행위에 불과할 뿐,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악한 행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유모의 말을 듣고 은근히 유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눈치를 보였다. 어쨌든 선영에 관한 일은 일체 자신에게 일임을 해 주어야 내려간다고 해서 고민 끝에 동의를 해 주었다. 자신의 뜻은 분명히 아니라고 해 두었다. 하지만 아내와 유모가 한 통속이 되어 은밀히 추진한다면 그 또한 말릴 수도 없게 되었다. 모른 체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여자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그 고통이 만만치 않은 고통일텐데 그래도 그 일에 집착을 하는 것을 보면 묘하다. 하긴 아이를 낳는 고통도 참아내는 존재가 여자들인데 아이를 만들기 위한 고통이라는데 그런 고통쯤이야 고통으로 여기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라는 존재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존재야. 하긴 여자도 남자라는 존재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존재라고 하더라. 박 사장이 뒤채이며 다시 돌아누웠다.
“여보 그 박 반장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아오?”
“글쎄요. 유모 말을 들으니 귀골이고 진실한데다가 선하고 헌신적이랍니다.”
“그래, 괜찮은 사람인가 보구먼, 그럼 아는 대로 이야기를 해 봐요.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다고 해요?”
“학교는 야학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검정고시를 봤다고 해요. 대학은 못 갔구요. 군대는 방위로 군청에서 근무를 했대요. 논농사와 포도농사를 짓는데 마을에서도 그렇고 인근에서도 칭찬이 자자하답니다. 인격이 되어 있대요.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이구요.”
“그래 그러면 나이 차이가 있겠구먼.”
“글세 그게 띠 동갑이래요. 36살 노총각이래요.”
“뭐요? 참내... 그렇다면 과거는 없대요?”
“좋아하던 처녀가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죽고 지금까지 혼자 지냈답니다.”
“흐음 저런”
“여보 관심이 생기나 보군요.”
“왜 아니겠소. 선영이가 평생에 처음으로 부탁하는 부탁인데 그것도 소원이라고 하니 그게 무얼까 하고 자꾸 생각이 되지요.”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실수를 할 아이가 아니잖아요.”
“아이는 믿는데 어른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어머, 어머 무슨 말씀을 그리 하셔욧.”
“허허허”
아내가 박 사장의 넓은 가슴에 두 방망이질을 해댄다. 처녀 때부터 했던 버릇인데 지금까지도 가끔씩 한다. 꽃으로 때려도 아파할 여자. 어질고 착하고 센스가 있는 죽고도 못살 매력덩어리이다. 아내의 교태에 짐짓 마음이 유해진다. 딸아이가 좋아져 새벽기도회를 다녀왔단다.
“오래 만에 웃으시는군요. 좋아라. 여보. 선영이 살이 통통하게 올라오는 중이래요.”
“그래? 식사를 잘 하나 보구나. 뭐를 좋아 한답디까?”
“실은 박 반장이라는 사람이 매일 아침 잉어나 쏘가리, 가물치를 잡아다가 아침으로 어죽을 쑤어 준대요. 그저께인가는 자라를 잡아서 자라탕을 끓여다 먹였대요. 그 사람이 선영이를 살린다고 지극정성이랍니다. 선영이도 무척 따르고 좋아한대요.”
“으음 운명이라면 할 수 없지”
“지금은 잘 지켜 봐 주자구요. 응, 여보”
아내가 안겨 오며 그윽한 시선을 준다. 허리를 끌어안으며 입맞춤을 했다. 그래 얼마 만에 웃어 본 웃음인가. 지금 마음 같아서는 뭐든지 들어주고 뭐든지 다 해주고 싶다. 하긴 아이의 병만 낫는다고 하면 어떤 신랑감인들 어떻겠냐 싶다. 아이가 명석하고 분별력이 있고 판단력도 탄탄한데다 누구에게라도 쉽게 마음을 열어 준 일이 없는 아이이다. 그 아이가 평생을 함께 할 자기의 짝을 선택했다면 행복을 위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꿈이 묘하다. 박사모가 잡히다니... 그렇다면 선영이가 유학을 가서 박사가 되어 돌아오는 것 아닐까. 병원에서조차 포기한 시한부 인생인 선영이가 살아나서 박사가 되어 돌아온다? 그것 참 멋지다. 멋져. 그래 일단은 병부터 고쳐야 해. 나머지는 다 그 다음에 나올 이야기들이지. 그제야 졸음이 밀려온다. 박 사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단잠에 빠져 들었다.
운명. 오랜만에 코까지 골면서 잠들어 있는 남편 옆에서 아내 애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채고 있다. 이것이 딸아이의 운명인가. 평생을 함께 하는 짝은 하늘에서 낸다고 했다. 아이가 그런 병이 든 것도 그리고 백약이 무효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별장으로 보낸 것도 그리고 그 별장에서 박 반장을 만난 것도 다 아이의 운명이란 말인가. 그토록 눈물을 빼게 하고 그토록 하늘을 노랗게 만들어 놓은 것이 결국은 박 반장과 만날 운명이라서 그런 것인가. 과연 그 운명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며칠 전, 유모와의 은밀한 통화를 통해 박 반장의 거처를 선영의 옆방으로 옮기도록 조처를 하고 거처에는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고 일러두었다. 혹시 모르니 침대는 킹사이즈로 들여 놓으라고 했다. 아늑한 침실분위기로 꾸며서 선영이 그 방을 좋아하고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을 쓰라고 넌지시 일러두었다. 만약 그것이 선영의 운명이 그것밖에 안 된다면 원이라도 없이 보낼 수 있도록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유모는 걱정 말라고 신방같이 꾸며 놓겠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가 사랑의 힘으로 병을 이겨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아이의 운명일진대 온 가족이 함께 그 짐을 져야 하지 않겠나.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우리 아가가 힘겨운 병과 싸워서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일이 최우선이다. 아이가 천만다행으로 병이 낫고 그 남자를 소원해서 결혼하겠다면 남편과 맞서서라도 아이 편을 들어 주리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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