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통나무 별장이 서다
“빠아앙”
“어구매 귀청 떨어지겄네”
“저 마한놈이 워느 안전에 대고 빵빵거리는겨 쥑일눔 같으니 에허 에허”
덤프트럭이 울리는 에어혼의 경적소리에 평화롭던 우산리 주민들은 신작로를 지나는 것이 고통스럽다. 간신히 경운기 두 대가 교차하여 지나가기에도 빠듯한 농로를 겨우 면한 마을 진입로를 거쳐 가는 덤프트럭은 보기에도 기가 질릴 만 했는데, 경운기나 소를 끌고 가다가 덤프트럭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젊은 덤프트럭의 운전사는 가차 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에어 혼에서 공기를 터뜨릴 때 터져 나오는 파열음으로 경적을 울리는 덤프트럭의 경적소리는 얼마나 큰지 경적이 한 번 울릴 때 마다 소가 놀라 뛰고 동네 개들은 일제히 짖어댔다. 어린 아이들은 놀라서 울었다. 더구나 아침을 먹기 전부터 급살을 더럭더럭 맞아도 시원찮을 덤프트럭이 들고 날 때 마다 내는 굉음소리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촌사람들의 혼을 빼 놓기에 충분했다. 몇 번 경적소리로 애를 먹고 난 뒤에 참다 못한 이장과 마을 주민들은 트럭의 출입을 경운기로 막았다. 덤프트럭 기사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고 트럭의 출입제안을 풀었으나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는 흉측한 몰골로 탱크와 같이 돌진하는 덤프트럭은 여전히 공포스럽기만 하다.
2월 하순인데 아직도 야산의 응달진 곳에는 쌓인 눈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계곡의 물은 종잇장처럼 얇아진 얼음 아래로 숨을 죽이며 흐르고 있다. 그렇다고 양지쪽에는 봄이 왔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양지라고 해도 아직은 서리가 내리는 때라 이른 아침에는 서리로 인해 땅은 솟아올랐다가 햇볕이 좋은 낮에는 솟았던 땅이 내려앉았다. 마치 시원찮은 잇몸으로 풍치를 앓듯 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꼴 같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아닌가. 땅은 봄바람을 맞았는지 부기가 오른 어멈의 얼굴처럼 부석부석하다. 우산리에는 아직 아침밥을 짓고 있었고 아침밥을 짓는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 낮게 사방으로 퍼졌다.
금강강변의 풍치가 좋은 명당자리에 통나무 별장이 들어선단다. 서울의 큰 부자 회사의 사장이 별장 터로 사 두었던 땅이라는데 여기에 통나무로 그림같이 근사한 별장을 짓는다 했다. 건설을 맡을 건축업자는 이장을 찾아와 마을 주민들에게 식용유 1.8L 짜리 두개가 들어 있는 식용유 선물세트를 돌렸다. 마을회관에서 마을 어른들을 초대하여 한 상 가득 거하게 대접했다. 건축업자는 이장과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덤프트럭을 제지했던 일에 대한 보고를 들었노라고 마을 주민들께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공사를 잘 마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당부를 연신 허리를 굽혀가며 극진하게 했다.
막걸리와 제육 등으로 거하게 대접 받는 마을 어른들은 서로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염려 말고 자신을 믿고 훌륭하게 해 보라고 큰 소리를 쳐 댔다. 건축업자는 잡부로 일해 줄 인부를 구한다면서 후한 일당을 제시했다. 하루에 8만원씩 일당으로 15일마다 현금으로 지급하고 점심을 제공해 주겠다는 제안은 촌에서 상당한 금액이었다.
당시 건축기사의 월급은 300만원을 호가하고 있었고 1등급 목수의 경우 일당은 15만 원 선이었고 철근과 미장 등 질통을 지는 잡부의 경우에는 일당이 10만 원 선까지 올랐다.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로 건설현장에서 잡부로 일하고 일당을 받아 등록금을 해결했다. 대학생의 경우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조달할 수 있는 일은 아파트 건설현장 뿐 아니라 지하철 현장 등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방학 때마다 일을 해서 가계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암벽이 병풍처럼 둘려 있고 금빛 모래사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별장 터는 누구나 탐을 내는 명당자리였다. 별장 터는 어린아이 허리 정도는 됨직한 소나무 군락지에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강릉의 해송 군락지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위치상 우산리를 끼고 중앙에 돌출된 가장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어서 마치 우산리 전체가 떠받들고 있는 형국과 같이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다. 이 자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조령리 이지만 우산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원래는 우산리였는데 서울 부자가 이 땅을 사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령리로 편입이 되었다 한다. 우산리 쪽에서 볼 때에도 가장 끝자락이었고 조령리 쪽에서 볼 때에도 가장 끝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쪽으로 붙던 저쪽으로 붙던 이유야 충분했다. 우산리 이장은 서울부자가 땅을 사서 별장을 짓기 위해 수를 써 둔 것이라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과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고도의 수작이라고 수군거리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하지만 결국 통나무 별장이 세워진단다.
이른 아침부터 흙먼지는 날리며 들고 나는 덤프트럭과 기초를 다지는 공사로 인해 우산리의 신작로는 몸살을 앓았다. 칠복은 마을 이장으로부터 잡부 모집의 십장 격으로 천거를 받아 일당 10만원을 받기로 하고 공사장으로 출근했다. 기초를 다지는 작업은 포크레인 한 대와 도자 한 대가 투입되어 소나무를 뿌리 채 뽑아내어 뿌리를 새끼줄로 갈무리 하여 정원수로 활용하기 위해 옮겼다. 산림청 직원과 군청직원이 나와 나무 한그루마다 표시를 하고 장부에 기입을 하고 확인도장을 받았다.
“앵앵앵앵”
점심시간을 알리는 기사의 메가폰에서 싸이렌 소리가 들리자, 작업을 하고 있던 인부들의 손길이 작업도구를 바삐 정돈한다. 삽이며 곡괭이이며 함마 등이 한 자리로 치워지고 포크레인의 엔진도 멈췄다. 작업장 끝 한적한 곳에 함바집이 있다. 기름이 칠해져 있는 두꺼운 베니아판으로 지은 함바집에서는 점심 식사 준비를 마치고 식판에 밥을 배식 중이다. 밥은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고 반찬과 국도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다. 튀겨낸 고등어 한 토막과 쇠고기가 들어간 무국에 김치와 시금치 나물, 콩나물 무침과 봄동 무침에 제육볶음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별장터가 이렇게 넓은 것을 보면 큰 집을 지을 건가벼”
“긍게 서울사는 사장이 엄청 부자라고 하더구먼, 시방 감독하고 기사도 다 거기 사람이라네”
“어쨋든 대우는 참 좋아, 시간 되면 딱딱 마쳐주고 말이지”
“반장님 많이 드소, 나를 뽑아 줘서 참말로 고마운겨”
금자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둘이나 낳은 최 서방이 칠복이 앞에서 식사를 하며 말을 건넨다. 칠복은 최 서방에게 빙긋 미소를 보냈다. 나이가 동갑이라 오랜 세월을 벗으로 삼아 티격태격하면서도 늘 가슴 속에 고여둔 친구이다. 심성이 착하고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서 인기가 많은 친구이다. 이 친구는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동안 철도공무원으로 영동역에 근무를 했다. 군대에 다녀 오고 난 뒤에 연로하신 부모님이 포도농사와 논농사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고민을 많이 했던 친구이다. 마침내 농사를 짓기로 결심을 했는데, 현대식 농사로 하우스 재배를 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고 하우스 재배로 포도를 생산하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의 판단은 적중하였다. 하여 영동지역에서 출하되는 포도는 절반은 노지포도로 출하되고 절반은 하우스 포도로 조기에 출하되어 수입이 꽤나 짭짤했다.
“성구 자네야 뭐를 하든 꼼꼼하고 야물게 하는데 뉘라서 안 좋아하겠는가. 함께 일하게 되어 내가 더 고마워.”
“그런디 자네 장가는 안 가는겨? 워찌 혼자 살 수 있겠나. 그러지 말고 선을 좀 보게.”
“때가 되면 가것지. 나는 서울 부잣집 외동 딸이 아니면 장가 들 마음이 없으니께”
“하이고 자네는 그러니까 여즉 장가를 못 가는 것이여”
“그려 즘심이나 먹세”
성구는 칠복이 늘 걸렸다. 그것은 금자 때문이었다.
원래 이 동리사람들의 내력은,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를 막론하고 쎄가 빠지도록 맡겨진 일에 힘을 다하는 사람들이었다. 백 만원 월급을 받으면 최소한 삼백만원 어치의 일을 해놓고 월급을 받아야 심간이 편한 사람들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공사 감독은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순박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들이나 일에 있어서는 도무지 꾀를 부릴 줄 몰랐다. 담배 한 대를 피워도 꼭 쉬는 시간이나 화장실에서 피웠지 부러 담배를 피우기 위해 쉬는 사람은 없었다. 감독은 오래 전의 일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1968년 2월 1일에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었다. 총연장 428㎞에 노폭만 22.4m로 건설 되었다. 총건설비는 421억 100만 원이었으며 도로건설에 동원된 연인원은 약 900만 명에 이르렀다. 교량 346개소, 터널 6개소(총연장 4.1㎞) 등이 설치되었고 부대시설로 휴게소 30개소, 버스정류장 83개소가 시설되었다.
특히 산이 많아서 첫번째 터널과 연이어 두번째 터널이 관통하는 지역이며 금강까지 통과하고 있어서 공사기간 내내 가장 힘이 들었던 구간이었다. 애초에 이 구역은 3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 봤다. 그러나 2년 만에 타 구간 공사와 함께 끝마칠 수 있었던 기적의 구역이었다. 당시 이 구간은 현대건설에서 맡았는데 워낙 난공사 지역이라 토목 전문가들이 투입되었었다. 잡부에 한해서 이 지역 사람들의 극소수를 선발하여 허드레 일을 맡겼다. 예상 외로 공사진척이 늦어지자 박정희 대통령까지 내려와서 독려를 하고 책임자는 불려가서 브리핑을 하면서 혼줄이 나곤 했다. 연일 이어지는 폭파작업과 착암작업에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이쪽 공사장에 지원을 해 오는 사람이 없어서 충원도 되지 않아 죽을 맛이었다. 이 때 감독과 기사가 함께 괴로워 하는 소리를 듣고 이 지역에서 충원된 잡부들이 물었다. 터널 공사에 투입되면 일당은 얼마나 주는지와 몇 명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현재의 임금 중에 두배가 된다는 말과 힘과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데리고 오라는 말을 듣고 다음날에 12명을 데리고 왔단다.
이들은 착암기 조작법과 착암작업에 대한 요령을 학습 받고 실습조로 투입되어 기사들의 보조로 채용되었다. 대개가 군대를 다녀 왔기 때문에 학습시간과 실습시간도 빨랐다. 이들이 투입되고 난 뒤에도 부상자는 속출했다. 착암기가 원인모를 강한 암석과 부딪쳐서 튀는 바람에 암석 조각에 눈을 다친 기사도 나왔다. 착암기에 물을 뿌려 주는 보조작업을 하고 있던 이 사람들은 착암기 기사가 부상을 입고 퇴장하자 착암기 전체가 작업을 중단하는 것에 매우 곤혼스러워 했다. 몇 시간씩이나 착암기가 돌아가지 멈춰 있자 이들은 자신들의 익힌 착암기술로 조금씩 착암기를 돌렸다. 깜짝 놀란 현장 감독이 야단을 치자 착암기를 내려 놓고 답답한 표정으로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장 감독은 이들 외에는 모두가 터널 밖으로 나갔다는 것과 이들만이 터널 안에서 다음 작업을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감독은 몇몇의 기사와 함께 이 문제를 숙의한 끝에 길이가 짧은 착암기를 시험적으로 줘 보자는데 합의를 했다. 무엇보다 작업인부가 현장을 떠나지 않고 현장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신뢰감이 갔다. 이들은 손발이 아주 잘 맞았다. 또 뛰어난 협동심으로 힘든 작업을 녹여냈다.
이들에게 맡겨지는 착암기의 길이가 점점 길어졌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손발이 잘 맞는 인부들을 대거 충원해 왔다. 감독은 이들을 조장으로 선발하고 각 조는 조장과 손발이 맞는 일꾼들로 조가 편성이 되었다. 애초에 3년 이상 갈 것이라는 난공사가 다른 공사 구간과 같이 끝났다. 대성공이었다. 감독은 눈을 깊이 감았다. 바로 이들이 그들이었다.
감독은 이 공사야 말로 이들에게 얼만큼 맡겨 주느냐에 따라 완공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음을 알았다. 감독은 전체 목수가 붙어야 할 일 외에는 이들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이 기사, 작업을 마치는대로 십장을 불러 오고 기사들 전체 모이라고 해 주게. 함바집으로 모이게”
“예 알겠습니다. 감독님”
함바집에는 막걸리 한 짝과 닭을 몇 마리 잡아 닭도리탕으로 요리를 해 달라 일렀다.
“대장,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하겠소. 여름 전까지 완공하고 조경까지 다 마쳐야 하는데 수가 있소?”
“그야 감독님께서 하라고 하는대로 하면 되겠지요.”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일당을 더 받고 목수를 조여댈 수 있도록 일을 해 주겠느냐는 말이오.”
칠복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일당을 더 주신다면 보름 정도는 쉽게 단축 될 수 있겄습니다.”
“아니 보름이 아니라 한달을 단축시킬 수 있겠소?”
“한 달이나요? 그건 인부들하고 이야기를 해 봐야 답이 나오겄습니다.”
“그러면 내일 모여서 의논들 해 보시고 모레 아침에 답을 주시오”
“예 알겄습니다”
인부들은 새벽밥을 지어 먹고 새마을 노래가 확성기에서 퍼지기 한 시간 전에 모여서 일을 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마쳤던 일을 해가 지기 전까지 작업을 해서 작업 시간을 3시간을 늘였다. 어지간히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해내는 우산리 사람들이었으나 작업시간이 늘어나니 몸에 부칠 정도로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일당은 절반이나 뛰어서 간조날에는 봉투가 제법했다.
통나무 집은 모심기를 하기 전 5월 중순에 완공되었다. 담장에는 넝쿨 장미가 둘렸고 정원에는 해송 몇 그루가 그대로 터를 잡고 서 있는 형태로 정원이 꾸며졌다. 잔디밭 중앙에는 강가의 돌을 깔아 길을 냈다. 통나무집 처마 주변으로는 동백꽃과 주목을 골고루 심었다. 대문 양쪽으로는 뾰족감을 심어 두었다. 집 중앙으로는 줄 지어 후박나무를 심었고 집 주변으로는 목련과 라일락을 심었다. 유실수로는 자두나무와 복숭아를 심었다. 등나무가 있는 벤치 옆으로는 포도나무를 심어 등나무와 같이 이웃하며 넝쿨을 뻗도록 철봉으로 지붕을 만들어 두었다. 몇개의 보안등 겸용으로 가로등을 설치했다. 강가 쪽으로 커다란 나무 대문을 달았고 반대편 마을 쪽으로는 중문을 달았다. 대문 옆에는 넓직한 차고를 냈다.
마침내 동이면 우산리와 이웃하고 있는 조령리 금강변 소나무 숲에 통나무집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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