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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안형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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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08-03-20 (목) 2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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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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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IP: 61.xxx.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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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새벽 예배 가는 길
37. 새벽 예배 가는 길
"힘들지 않아요? 나는 좋은데 헤헤"
"대간해 죽겠는데 말 시키지 말어 히히"
흠흠 온몸의 세포를 다 열어 폐부 깊숙이 초록을 마셨다. 싸아한 초록의 향기는 온몸 가득 퍼졌다. 옆으로는 금강의 물이 햇볕에 반사하며 반짝거리고 있고 강변의 모래는 황금색으로 빛이 났다. 길가에 자라나 있는 쑥부쟁이는 큰 키를 자랑하며 훌쩍 커 키다리 신사가 되어 있다. 사방을 둘러 눈에 익은 아름다운 것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들을 눈에 박아 넣었다. 칠복의 목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칠복의 등에 업혀 외출을 하고 있다니 꿈만 같다. 친구들이 해 봤다는 "오빠 달려"를 해 보고 싶다. 그래 나라고 못해 볼 것도 아니지. 코로는 콧노래가 저절로 흥얼흥얼 나온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칠복의 두 귀를 잡아 당겼다.
"오빠 달려"
"그래 좋다. 오호호홍"
칠복이 말 흉내를 내면서 내달렸다. 깃털처럼 가볍다. 사람이 이렇게 가볍다니, 어린 아이를 등에 업은 것과 같아 못내 가슴이 쓰렸다. 그런데 오빠 달려라니, 환장하겠다. 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그 힘으로 내달렸다. 숨이 차온다. 그나 저나 이거 매일 이렇게 달려야 하는 것 아닌게벼 하는 생각이 든다.
"오빠 인제 그만 달려"
달리는 동안 칠복의 등에 가슴을 꼬옥 붙이고 칠복의 목에 머리를 기댔다. 칠복의 목에 땀방울이 돋는다. 6월 중순으로 가는 길목이다. 하루 종일 태양의 열기를 받은 땅은 아직 성질을 부리는 듯 발걸음이 닿는 대로 먼지를 피워내고 있다. 살짝 혀를 내밀어 칠복의 목에 송글송글 맺혀 있는 땀방울을 핥았다. 찔끔 놀란 칠복이 확인해 보려고 했으나 반쯤 밖에 고개가 돌아가지 못한다. 대신 선영의 엉덩이에 둘린 팔을 추석 였다. 저 멀리 교회의 십자가가 눈에 보인다. 땀을 좀 식혀야겠다.
"선영아 잠시 내려서 땀 좀 식히자"
"웅 오빠 수고했어요."
아침에 부는 산들바람이 불었다. 땀으로 젖어있던 등줄기를 스쳐가며 맺혀 있던 땀방울을 불어냈다. 등줄기가 시원해지니 붉게 달아 오른 얼굴도 시원해진다.
"어머 나 좀 봐. 양산이 백 속에 있는데 그걸 잊다니..."
백에서 양산을 꺼내 재빨리 칠복의 머리 위에 씌워준다. 양산은 두 사람을 바짝 끌어 앉히는 효과를 발휘했다.
"제가 무거웠지요?"
생글거리며 칠복의 얼굴에 제 얼굴을 들이댄다.
"그려 많이 묵직해졌어."
"어머 이를 어째 울 오빠를 힘들게 하다니"
"너무 너무 고마워요. 이렇게까지 저를 위해 줘서"
맑고 투명한 눈으로 칠복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말하고 있다. 그 자태가 참으로 곱고 사랑스럽다.
교회 앞에 도착했다. 교회 안까지 업고 들어갈까 아니면 걸어서 들어가자고 할까를 내심 망설이고 있는데 선영은 내려 달라고 했다. 제 발로 교회에 들어가고 싶단다. 새벽예배는 마쳤고 교인들은 개인 기도를 마치고 돌아간 이후이다.
담장이 없는 교회 옆 사택 앞에 있는 텃밭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목사님이 열심히 고구마 순에 물을 주고 있다. 가지이며 고추이며 토마토까지 키가 있는 푸성귀는 죄다 모아 놓았나 싶다. 들깨도 있다. 들깨는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깻잎에서 윤기가 흐르고 있다. 키가 있는 채소들 아래로 지금 한참 맛있는 열무와 배추 상추 부추가 잘 자라나고 있다. 토마토는 아직 토마토라 하기에 멋 적은 푸르둥둥한 방울들이 꼭지에 매달려 있었고 가지는 꽃이 진지 얼마 안 되는 듯 꽃 바퀴에 겨우 모양을 잡고 보라색을 익히고 있는 중이다. 텃밭 가운데에는 무슨 멋인지 장미가 여 나문 그루 심겨져 있는데 빨간 장미와 노란 장미 그리고 흰 장미였다. 사택 담장 쪽으로는 한참 넝쿨을 뻗고 있는 호박이 눈에 뜨인다. 넝쿨이 잘 올라가라고 철사 몇 줄기를 가로로 하고 농업용 고무줄을 세로로 묶어 그물 형태로 받침대를 세워 놓았다. 그 아래로는 참외들이 넝쿨을 이리저리 뻗어내며 푸른 잎사귀를 한껏 키우고 있다. 이네들도 경쟁을 하나 싶었다. 코딱지 만 한 텃밭에 이리저리 많이도 심어 놨다. 모두가 채소였다. 아마도 목사님 댁은 푸성귀 정도는 자급자족을 하는가 보다.
선영에게는 낯 설은 풍경이었다. 신기했다. 목사님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각종 채소를 저리 알뜰하게 심어서 키우고 있는 정성에도 탄복했다. 더구나 채소밭에 어울리지 않게 장미를 심어 놓은 것도 인상이 참 깊었다. 목사님은 무언중에 "나는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멋도 있어요. 멋도...."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신선했다.
물을 주고 있어도 온통 신경은 교회에 두고 있는지 칠복과 선영이 교회 앞으로 오자 목사님은 칠복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반가워한다.
"목사님 벌써 토마토가 탱글해졌네요."
"왜 아니겠소. 박 선생. 요즘은 부쩍부쩍 자라. 그런데 이 분은 박 선생이 말하던 그 분인가?"
"네 목사님. 통나무집 별장 사장님 따님입니다. 목사님께 인사 드려요."
"박 선영입니다. 목사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양쪽 치마를 쥐고 무릎을 살짝 굽히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영광은 무슨 영광, 과찬입니다. 시골 목사일 뿐이지요."
손사래를 치며 정색을 했다. 그리고는 건강의 상태를 살펴보는 의사와 같이 예리한 눈으로 선영을 살펴보았다. 곱게 땋은 머리 위에 얹혀 있는 채양이 있는 흰색 실크 모자가 돋보인다. 흰색 원피스는 어깨에 주름을 많이 주어 풍성하게 장식을 했고 어깨 조금 아래에는 보라색 띠를 둘러 마감을 했다. 목부터 가슴까지는 사각형으로 파고 띠를 둘러 강조했다. 보라색 바탕에 빨간 장미가 파란 잎과 대조되는 작은 장미꽃들로 채운 띠는 순결한 이미지를 던져주고 있다. 원피스 아랫단까지 보라색 띠가 정성스럽게 둘려 있다. 청초한 느낌과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목이 길고 턱 선이 분명해 선망의 대상이 될 만한 미인이었다. 원피스의 허리는 까만 비단 띠로 매듭을 주어 묶었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순결하고 우아했다. 많이 말랐다는 것과 손의 색깔이 아주 희다는 것 외에 병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날씨가 뜨겁기 때문에 뺨이 달아올라서 그런지 적당히 붉어져 있어 얼굴색에서 병색은 찾아 볼 수 없다. 열심히 기도해 주면 고쳐질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누구 부인이 될지 남편이 되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따라 붙었다.
"내 곧 따라 갈터이니 먼저 들어가서 기도하고 있어요."
"네 그럼 다시 뵙겠습니다."
목사님은 강대상 바로 아래로 불러 수연의 머리에 손을 얹고 병 낫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 준다. 그리고는 강단으로 올라가 강대상 의자에 손을 의지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칠복과 선영은 자리로 돌아와 책걸이에 두 손을 올려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얼마 후 기도를 마친 목사님은 강단에서 내려 와 두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간절히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 두 사람의 어깨를 살며시 두들겨 주고는 텃밭으로 다시 나갔다.
"천천히 걸으면 걸어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텃밭에서 물주기를 하고 있는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교회를 나온 선영이 등을 내어 미는 칠복에게 말했다.
"그려, 숨차면 업혀"
"얼마 만에 걷는지 몰라요. 이 기쁨이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큰일인지 오빠는 상상도 못 할거예요."
"휴우"
몇 발자국이나 걸었나, 몇 미터나 걸었나. 땅에서는 지열이 올라오고 볕은 따갑게 내려 쪼이기 시작했다. 벅찬 듯 멈춰 섰다. 이윽고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 얼른 등을 내어 주었다. 축 늘어지듯 업힌다.
교회에서 얼마나 힘주어 기도했는지 모른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리도록 두 손을 억세게 잡고 기도했다. 병과 맞서서 싸움을 시작한 선영의 간절한 기도에 칠복의 깍지 낀 두 손은 더욱 힘을 주어야 했다. 얼만큼 기도했을까. 목사님이 어깨를 두드려 주고 나갔다. 선영의 기도가 더욱 악착스러워졌다. 필사적인 싸움. 가끔씩 기침이 나오는 것을 억눌러 참아냈다. 그 때마다 두 발에 힘을 주어 안간힘을 쓰며 기침을 눌렀다. 슬며시 선영의 손이 칠복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칠복의 손을 끌어 당겨 안으며 애절하게 기도했다. 간간히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는 아버지, 아버지, 살려 주세요, 뜻을 알고 싶어요, 그대로 할께요 등등.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단어들은 조합이 되지 않는 단발마적인 것이었다.
"오빠 아까 목사님이 기도해 주실 때,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가는 환상이 보였어요. 그걸 보니 아주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사실 예수님 얼굴을 뵈었으면 했는데, 아직 안 보여 주셔서 서운해요."
칠복의 등에서 선영은 꿈을 꾸는 음성으로 말했다. 칠복은 내려가는 선영의 엉덩이를 추석이며 팔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슬며시 선영의 손수건이 칠복의 이마에 맺혀 있는 땀을 닦아 준다.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가는 풍경을 보여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평강을 지켜 주신다고 하는 뜻으로 알고 더욱 기도 혀"
"똑 같이 또 보여 주셨어."
"두 번이나?"
"네 오빠 손 꽉 끌어안고 기도할 때, 한 번 더 보여 주셨어요. 근데 이번에는 그 뭉게구름이 하나님의 손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무슨 뜻인가 생각 중이예요. 홍홍"
잠시 늘어져 있던 수연에게 기운이 돌아왔나 보다. 콧노래를 부른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넘치네."
돌아가는 길, 길 옆 풀 섶에는 키가 쑥 커버린 쑥부쟁이에서 짙은 한약 냄새가 풍겨지고 있다. 개구리 한 마리가 풀쩍 뛰어 목울대를 불룩거린다. 어디로 뛰려고 하는지 뛸 자리를 찾는가 보다.
"나는 가끔 이런 때에는 아이스께끼가 생각이 나."
"아이스께끼? 하드 말이지요?"
"하드 보다는 딱딱한데 가끔 녹아서 줄줄 흐르는 것을 사서 먹을 때가 있거든 그 때는 참 아까운 마음이 들곤 했지. 가령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이구나 하는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 말이여"
"그랬을 것 같아요. 그런데 목사님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던데 주일학교 선생님이셔요?"
"응, 주일학교 부장선생님이야."
"부장 선생님은 집사님이나 장로님이 하는 것 아녀요?"
"아직 총각이라고 집사 직분은 못 준대요. 친구들은 다 집사님이야"
"그러시구나. 홍홍"
"선생님 저어기 모래사장으로 내려가고 싶어요."
모래사장에 도착하니 선영은 신을 벗어 들고는 이리 저리 걸으며 강아지처럼 좋아 했다. 눈부신 햇빛이 강 물 위에 쏟아지며 여름의 색깔을 전해주고 있다. 빛을 받은 수면은 흰빛으로 반사되는데 깊은 물은 초록빛을 발산하고 있다. 이쪽에서 보면 흰빛이 나고 저쪽에서 보면 초록빛이 났다. 물 위에는 촘벙촘벙 소리가 나도록 물고기가 뛰어 놀았다. 선영은 신기한 듯 물 속 작은 돌 밑을 살폈다. 깜짝 놀란 모래무지이며 미꾸라지 등이 이리저리 내 달리는 모습을 보며 까르륵 하고 웃었다.
"어떤 여자가 좋으세요?"
칠복이 들고 있는 양산을 한 손으로 살며시 감싸며 선영이 물어 왔다.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여자? 여자라면 어떤 여자를 말하는겨?"
"먼저는 결혼할 여자가 어떤 여자였으면 좋을지, 다음으로는 평소에 바라는 여자의 상 그런 것 말이예요."
"결혼할 여자라... 뚜렷이 생각해 보지는 않어. 내 처지가 아직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아니구"
가슴 속에 눈보라가 몰아친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 구멍으로 삭풍이 몰아치며 할퀴고 지나간다. 따갑고 시리고 아프다.
"지금까지 여자를 안 사귀어 봤을 리는 없겠구, 이전에 사귀었던 분은 어떤 분이었나요?"
흥미로운 듯, 지난 여인이 어떤 여인이었는지 알면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내놓은 말이었다. 예리한 칼로 살을 찔린 듯 아프다. 그것은 잊고 살아야 했던 수많은 세월 속에 남은 사라지지 않는 앙금이었고 삶의 자취로 남은 역사였다. 동숙의 죽음. 새로운 사람과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뭉개진 심연에 내주하고 있는 절망이었다. 신앙으로 승화시켜 내려고 무던히 애를 쓰면서도 절대로 풀리지 않는, 다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덮어져 있는 피인 숯불과 같았다. 생각이라는 바람으로 후후 불면 이내 불꽃이 살아났다. 불꽃이 살아나면 걷잡을 수 없는 고통으로 연결되었다. 왜 자신이 이토록 커다란 고통 속에 방치 되어야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마치 눈보라 치는 허허벌판에 발가숭이로 내 버려져 있는 어린 것과 같아 오직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죽을 때까지 울어 예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울다 지치면 동태처럼 얼어 죽어가겠지. 내가 왜 이런 모진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지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남들과 같이 무탈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어린 것을 낳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행복이라는 정원을 잘 가꾸며 철따라 꽃이 피는 그런 정도의 행복을 꿈꾸었다. 운명이라는 것이 야차와 같이 큰 입을 벌리고 달려들어 아버지와 칠순이를 삼켜 갔을 때에도 그렇게 꿈을 꾸었다. 그러나 동숙이와 어머니까지 움켜 갔을 때, 세상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천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는 천사들이었다. 그런데 왜 이들이 그토록 악랄하고 야비한 운명의 희생물이 되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저주를 받은 것일까. 그래서 내가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은 죽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남아있는가. 차라리 나 하나를 데려 가는 편이 더 빠르고 정확한 것이 아니겠는가.
동숙이와 사랑을 시작했을 때,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다. 사랑하던 동숙이와 이별을 했을 때, 어떻게 치유하고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준 사람도 없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어떤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감정처리는 어떻게 해야 서로에게 유익한 것인지에 가르침 받은 적도 없다. 그것들은 다만 칠복의 주변에 부딪쳐지는 환경과 만나지는 사람 그리고 읽은 책을 통해 꾸역꾸역 목 안으로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것들이 몸 안에 들어가서 유익한 영양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머리속은 백짓장같이 희어질 뿐, 아무런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다.
이 여인. 보석같이 아름답고 유리그릇처럼 가냘픈 이 여인. 만약 내가 사랑하게 된다면 이 여인도 불행해지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두렵다. 만약 이 여인을 살려 주신다면 나를 향하신 뜻이 무엇이든지간에 순종하겠다고 기도했다. 나는 어찌 되던지 이 여인은 살려 주시라고 기도했다. 슬픔에 이골이 나고 아픔에 대해 면역이 생겼다. 질곡의 세월 그 캄캄한 절벽의 세월이 얼마던가. 끝도 보이지 않는 계곡으로 던져진 것처럼 아득한 세월을 살아 왔다. 아직도 감당해야 할 슬픔의 분량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으나 뼈만 남아 앙상한 이 여인을 온 몸을 던져서라도 보호해 주고 싶다. 다만 그것뿐이었다. 혹시 나중에 사랑으로 연결되던지 인연으로 연결될지 알지는 못하나 거기까지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이 아픔과 고통이 해결되어질 것이겠고 잊혀 져야 할 사람을 잊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래도 가슴에 피어 있는 숯불은 재가 된다고 해도 아픔은 그대로 남아 있을 터이다.
칠복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먼 산을 바라보며 아파하는 모습을 본 선영은 지독한 고독의 냄새를 맡았다. 절대로 치유되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상처가 있는 것을 직감했다. 어떤 사랑을 했을까. 어떻게 헤어졌을까. 절망에서 흘러나온 남자의 짙은 고독의 냄새는 선영의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서둘러 대화를 바꾸었다.
"어디에서 고기를 잡아 오나요?"
묵묵히 먼 산을 바라보던 초점을 잃은 칠복의 눈이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슬며시 선영의 시선을 피하며 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쪽 산자락을 돌면 웅덩이 같이 물이 모이는 곳이 있어. 거기에서 잡어"
"그럼 자라도 거기에서 잡은거야요?"
재빨리 말꼬리를 잡아챘다.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누가 생각의 주인인지 각인시켜 주려는 듯 칠복의 팔을 잡으며 자라 이야기를 들이댔다.
"그럼 거기에서 잡았지. 이짝에서는 거기가 제일 나아."
"그럼 또 잡아 올 수 있어요?"
"자라를? 그거 먹고 놀라서 체할 뻔 했다며"
"구렁이도 먹어 본 걸 뭐. 구렁이 보담 자라가 나아요"
"꽥, 구렁이를? 하긴 그 병에는 능구리가 제일 좋대더라."
"먹으라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먹었는데, 나중에 뱀인줄 알았어요. 몇 백 마리는 먹었을거야요. 아이 징그러"
소름이 끼친다는 듯 큰 동작으로 몸을 떨며 칠복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온다. 가까이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요기두 아이 시원해"
외출에서 돌아오고 난 뒤에 팔과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보챈다. 땀을 흘렸으니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오겠다는데도 자기 방에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란다. 하긴 전혀 가능성도 없는 사이이며 남녀 관계도 아닌데 구태여 내외할 처지도 아니다. 옷을 입고 들어가려는데 입은 옷은 밖에 내 놓으란다. 홀랑 벗은 몸으로 어떻게 옷을 밖에 내 놓느냐고 하니 어때요 한다. 고급스런 욕조에 여러 가지 비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쪽에는 물방울무늬가 있는 무난한 아직 덜 마른 펜티와 브레지어가 스테인레스 봉에 널려 있다. 유리창으로 되어 있는 수납장에는 속옷이 색깔별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화장실에 또 다른 문이 하나 더 있다. 다른 방과 연결되는 문인가 보다. 열어 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샤워를 하고 아랫도리를 수건으로 감싸고는 화장실 문을 열어 더듬거리며 벗어 놓은 옷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손에 걸리지 않는다. 하여 할 수 없이 반쯤 문을 열고 목을 늘였다. 화장실 문 뒤에 숨어 있던 선영이 깍꿍하며 새 옷을 내민다. 속옷이며 가뿐한 실내복이다.
"어어 내 옷은 어디간겨?"
"그건 빨아야 해요. 냄시나서"
"그럼 빨라고 이 안에 넣어주지 그랬어."
"아저씨가 시내 나간다고 해서 새 옷을 몇 벌 사다 달라고 했어요. 오빠 옷은 할머니가 빨아 준다고 가지고 갔어요."
"내가 빨아도 되는디, 신세지면 어쪄"
"나 여기저기 쑤셔요. 주물러 줘요"
"그랴 대간하기도 했을겨. 이리 누워"
부었나. 아니면 살이 조금 올랐나. 제법 주무를 만하다. 가시 같은 뼈마디가 부석부석한 느낌으로 잡혔는데 감촉이 달라졌다.
"오빠 나아 업고 새벽 예배 댕길려면 피곤할거야. 그렇지?"
"아녀 이따가 집에 가서 일 보면서 한 잠 자면 되는겨"
"농사 일?"
"웅 밭일도 하고 논일도 하고 포도도 손 봐야 혀"
"포도 많이 열려요?"
"대충 작황이 좋은 편이지"
"그럼 이번 여름에는 오빠가 따다 준 포도 맛을 보겠네. 아이 좋아"
"포도 좋아 혀? 그람 광주리로 따다 줄텡게 실컷 먹어 봐"
"어머 좋아라, 근데 오빠 여기에서 살면 안 되어? 오빠 집에 안 가구 여기서 왔다 갔다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녀 그럼 선영이가 피곤해서 안 되는겨. 사람이 하나 더 있으면 많이 불편해지게 되어 있어."
입술을 쫑긋한다. 원하는 답이 안 나올 때 나오는 선영의 버릇이다. 그나저나 옷이 올 때까지는 꼼짝도 못하게 생겼다. 여름인데다 농사일을 하는 촌이니 그저 반바지 하나만 입고 다녀도 흉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주일학교 선생님이니 어디를 가든지 입성은 제대로 갖추어야 했다. 비록 작업복을 입더라도 위와 아래는 갖추어야 했다.
"오빠 나 인제 각혈 안 해. 다 오빠 덕분이야요."
"그려? 아이고 참말로 잘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선영의 눈에 핑글하고 이슬이 맺힌다. 선영이 칠복의 손을 살며시 가져다가 제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뭉클한 감촉에 화들짝 놀란 칠복이 손을 치우려고 하니 선영의 손이 더욱 힘주어 꽈악 누른다.
"오빠 내 심장의 박동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확인해 보셔요. 손바닥으로 가만히 누르고 있으면 감촉이 느껴질 거예요."
"웅 그려, 뚝딱거리는 박동이 느껴진다. 힘이 있는 것 같어"
"오빠 앞으로는 가슴도 주물러 주세요. 오빠 손이 가는 데는 다 좋아지는 것 같아요."
"아니 그게 그래도 가슴인디..."
"어머 어때요. 병이 빨리 나으면 그만이지, 흥 오빠는 나를 여자로 보지도 않으면서..."
"아니 뭔 예기랴 어찌 여자를 여자로 안 본다고 그려. 다 큰 처자인디"
"정말? 그럼 앞으로 여자로 봐 주세용"
칠복이 다리를 주무를 때마다 시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 아예 눈을 질끈 감고 주무르고 있는 것을 할금할금 바라보면서 내심 이런 남자라면 마음을 주어도 되겠다 싶었다. 눈을 감고 주무르다가 좀 깊이 들어갔다 싶으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고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글거렸던 수연이었다. 벌써 20일이 지났나. 한 달은 지난 것 같다. 어느 날 부터인가 칠복의 손길이 도무지 변함이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은연중에 서운해졌다. 여자를 여자로 봐 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점점 슬픔으로 다가왔다. 이 사람도 나를 죽을 여자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서글픔이 슬픔을 불러왔다. 여자를 여자로 보지 않는 칠복의 시선은 그렇다고 해도 칠복의 손길이 자신을 버리고 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여자라는 것,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은 이제 마음을 주고 있는 남자에게 여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바램이었다. 그래서 부러 여인의 심볼인 가슴을 만지게 했다. 적어도 칠복의 손길이 자신의 가슴을 주물러주게 되면 가슴에 남아 있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폐병이 물러 갈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이 사람은 아무리 자극을 주어도 자신을 함부로 할 사람이 아니다 라는 확신이 섰다. 가슴 한 편에서는 이 사람을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남자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도전의식 같은 것도 생겼다. 복잡해졌다.
마침내 곱게 포장된 옷이 올라왔다. 옷을 갈아입고는 서운해 하는 선영을 뒤로 하고 내려 왔다.
"선생님 드릴 말이 있는데요. 잠시 짬을 좀 내 주세요."
"그러세요. 할머니"
혹시 이제 그만 와 달라고 하는 말인가 싶어 일순 긴장이 되었다. 할머니가 가르키는 대로 소파에 앉았다. 무슨 말인가 싶어 할머니의 말을 기다리니 환한 표정으로 할머니는 말했다.
"오늘 새벽예배에 다녀오고 난 뒤에 아가씨 표정이 아주 환해졌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사정이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아가씨 방 옆에 빈방에서 지내 주시면 어떨까 싶어서요."
"갑자기 들은 말씀이라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유. 아가씨도 그런 이야기를 해서 불편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어유."
"그러면 이따가 저녁에 오셔서 아가씨가 해달라는 대로 해 주셔요."
"무슨 말씀이신지..."
"아가씨가 밤을 무서워해요. 처음에는 할 수 없어서 제가 며칠 동안 함께 자고 했는데, 노인들은 면역력이 떨어져서 언제 병이 옮을지 모른다고 간호사가 말렸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여기에 오시기 전까지는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잤답니다. 선생님이 오시고 난 뒤에는 수면제를 안 먹고도 곧잘 잠을 주무시곤 했는데 요 며칠 잠이 안 온다고 함께 자자고 하네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러면 제가 며칠에 한 번씩이라도 침대를 지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선생님. 선생님이 오시고 난 뒤부터는 우리 아가씨 병이 낫는 것이 눈에 뜨일 정도로 좋아지고 있답니다. 혹시나 일이 있어서 못 오시게 되는 날이 있을까봐 아가씨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관리인도 쩔쩔매고 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딴 마음 먹으면 안 됩니다."
"아녀유 . 오히려 지가 고맙지유. 너무 후한 대우에 지가 어쩔 줄 모르겠어유."
"선생님 그럼 빨리 일 보시고 부리나케 와 주셔요. 그리고 아가씨가 선생님을 무척 의지하고 좋아하고 있어요. 이런 모습 처음 봅니다. 그저 아가씨가 뭐를 해달라고 하던지 다 해 주셔요. 우리 아가씨 경우가 없는 일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하겠어유. 할머니"
할머니가 칠복이 가까이로 몸을 구푸려 은근히 말했다.
"선생님 아가씨가 한 침대에서 자자고 해도 그렇게 해주세요. 젊은 사람은 결핵예방 주사를 맞으면 절대로 병이 옮지 않는데요. "
"....."
당황스러워서 빨리 인사를 하고 나왔다. 옛날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처녀귀신 이야기와 몽달귀신 이야기였다. 사대부 집에서 늦은 밤에 길을 가던 길손을 보쌈해서는 한상 그득히 차려주고 엽전도 후하게 주어 문둥병이 들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딸의 침소에 구겨 넣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또 씨내리라고 같은 방법으로 보쌈을 해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대부 부인의 침소에 넣어 후손을 보게 했다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칠복이 돌아가고 난 뒤에 선영은 심사가 허전해졌다. 허전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 정원이나 산책해 볼까. 계단 난간을 잡고 난간에 의지하여 하나 둘 계단을 세며 1층으로 내려왔다. 유모가 환한 얼굴로 선영을 반긴다.
"아가씨 힘이 불쑥불쑥 나는가 보우. 1층까지 내려 오시구"
"유모두 참, 아까 새벽예배 갈 때에도 내려 왔잖우"
"그거야 교회 가려고 내려 온 것이구, 선생님 부축 받고 내려 왔잖우"
"그렇지? 유모 내가 혼자 계단을 내려 온게 맞지? 맞지?"
유모는 대견하다는 듯 선영의 모습을 보면서 눈부셔하고 선영은 폴짝폴짝 뛰었다. 이제야 사람 꼴이 되가나 싶다. 유모는 아가씨가 마산결핵요양소에서 치료가 되지 않아 이 별장으로 유배를 당하듯 격리되었을 때에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국립마산결핵요양원에서는 미국에서 직송된 결핵약과 주사약을 공급받아 선영을 특별히 관리하며 치료했었다. 그래도 죽을 사람은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있듯 그 좋은 약들이 선영을 구원하지 못하고 강한 약에 의한 부작용까지 발생하자 손을 들고 말았다. 병원장은 금번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여당후보로 출마한 박 성철 사장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 사장은 이미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할 것이 예견되어 있었다.
병원장은 보호자 신분인 박 사장과 일대일로 면담을 하고 있었다. 전담 의사는 매일의 치료와 예후까지 매일 보고를 하고 있었다. 박 사장은 치료비 외에 병원 의료진들에게 사례를 했고 전담의사와 간호사에게는 특별히 사례했다. 뿐만 아니라 병동 전체의 티브이를 최신형 대형 티브이로 바꿔주기까지 했다. 고민 끝에 병원장은 박 사장에게 최후의 통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박 사장님 이런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입장이 심히 괴롭습니다. 따님의 병세에 대해 전체 의료진이 모여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현대 의학으로는 더 이상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입니다. 이제는 기적을 믿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특히 따님은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못 견뎌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합해서 말씀드리면 공기가 좋은 곳에서 전담의사를 두고 치료와 요양을 하는 것이 최후의 방법입니다. 불행히도 따님은 이 병원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약을 먹으면 토해내는 지경이며 위장과 간장 그리고 신장까지도 상당히 나빠져 있습니다. "
"원장님의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이 병원도 공기가 좋기로 소문이 나있는 전문병원인데 아이가 두려워 할 정도로 싫어하고 있다면 어떤 치료도 소용이 없겠지요. 휴우~"
"박 사장님 시일이 촉박합니다. 약 6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 환자는 거동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영양제 투여와 수혈로는 오래 못 견딥니다."
박 사장은 머리를 감싸고 깊은 고민과 슬픔에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차라리 자신이 아팠으면 했다. 그 어리고 예민하고 연약한 것이 무서워하는 병원에서 혼자의 몸으로 어찌 하루하루를 지냈을까. 한 주먹이나 되는 약을 먹고 토해냈을 때 속이 얼마나 따갑고 아팠을까. 천형이나 다름없는 결핵이라고는 하나 스트렙토마이신으로 치료하면 완쾌 율이 높았다. 더구나 미국에서 가장 좋은 약으로 처방하여 처치를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되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면, 무슨 수로 이 병을 고쳐 줄 것인가. 총재와 저녁 약속이 잡혀 있어 지금 움직여야 했다. 딸은 생사가 불투명한데 아비가 되어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자신의 몰골이 추레하게 느껴진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박 사장은 김 감독에게 전화로 지시했다. 옥천에 있는 별장 터에 별장을 서둘러 지으라고 지시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금강변의 별장 터는 박 사장이 한 눈에 보고 반해 버린 곳이다. 박 사장이 경부고속도로 구간별 공사에 입찰하여 할당 받은 곳이 바로 이 지역을 통과하는 구간이었다. 그 때에는 이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해가 질 무렵의 금강은 하늘에서 은가루, 금가루를 가득 뿌리는 것처럼 찬란한 눈부심을 토해냈다. 처음으로 마주친 그 광경에 박 사장은 숨이 막혀왔다.
금강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대지를 굽어보며 기지개를 켜는 신의 모습과 같았다. 신이 기지개를 켜며 빨아들이는 숨은 안 사장이 내쉬는 숨을 강하게 빨아갔다. 숨을 빼앗긴 박 사장은 잠시 숨을 멈춰야 했다. 꿀꺽 침을 삼켰다. 이제야 숨이 쉬어진다. 새벽에 마주 대하는 금강은 뽀얀 운무에 덮여 하늘을 향해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광경은 깊은 수면 아래에서 잠을 자고 있던 용이 용트림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르기 전, 용의 입에서 내뿜는 입김 같았다. 그 위를 낮게 비행하는 왜가리의 비행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도도함과 웅장함 태곳적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금강은 깊은 물과 낮은 물을 가지고 있다. 깊은 물과 낮은 물에서 나는 소리는 음악과 같이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다. 깊은 물에는 수많은 과거지사의 역사가 침전되어 있어 비밀을 담고 있는 듯 둔중하고 묵직한 한 소리를 냈다. 낮은 물에서는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며 남겨놓은 현실적 삶의 물장구치는 소리를 냈다. 말없이 고요히 흐르는 금강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고요한 것도 아니었다. 깊이 사고하면 할수록 깊은 소리로 응답했고 스쳐가는 생각에는 스쳐가는 물소리로 응답해 왔다. 새삼 자연의 위용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구나.
박 사장은 현장 사무실에 비치되어 있는 지적도를 가져다 놓고 금강의 강줄기를 살펴보았다. 자신이 보았던 곳을 찾아보았다. 한눈에 들어오는 지역이 있었다. 여러 날 동안 생각하다가 김 감독을 불러 함께 차를 몰고 현지를 찾아 일일이 확인했다. 강변 주위의 음식점에서 팔고 있는 토종닭이나 매운탕을 먹으며 주민들의 인심이 어떤지도 확인해 보았다. 강변의 음식점들은 천막들이었다. 이는 이 주변 땅이 국가의 소유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일주일째 같은 일이 반복되자 김 감독은 박 사장의 의중을 물어 왔다. 그제야 박 사장은 자신의 의중을 밝혔다. 김 감독은 박 사장의 심중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다면 별장 터만 살 것이 아니라, 나중을 위해 주변지역까지 구입해 두는 것이 어떠냐 했다. 김 감독의 말이 가슴에 확 들어 왔다. 김 감독은 지리적 여건과 교통 사정 그리고 주변 환경을 감안해 볼 때 향후 관광종합레져타운으로 건설하게 되면 지역경제에도 상당한 유익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박 사장의 생각과 일치했다.
다음 날 김 감독과 함께 군에 들어가 확인을 한 결과 마을을 경계로 하여 모래사장이 있는 사방 1km에 달하는 땅은 군에서 지정된 준용하천부지였다. 박 사장은 옥천군에서 요구하는 대로 고속도로와 함께 건설하고 있는 금강휴게소 운영권의 지분을 30% 기부하는 조건을 받아 들였다. 동시에 운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옥천에서 금강유원지로 직접 들어가고 나올 수 있도록 별도의 길을 건설해 주기로 합의했다. 정식 합의서에 싸인을 하고 옥천군에서는 하천부지를 풀고 박 사장은 불하대금을 지불하여 사유지로 등기를 마쳤다. 별장 터와 함께 내수면 모래사장까지 각각 1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땅이었다. 나중에 딸을 결혼시키고 난 뒤에 이곳에 별장을 지어 사위와 딸에게 선물로 주리라. 그 옆에 아내와 자신을 위하여 "별이 빛나는 집"을 근사하게 짓자. 강변주위로 종합관광레저타운을 지으면 별천지와 같은 굉장한 작품이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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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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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