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동숙이 사고치다
잠자리에 들기 전인데 한숨부터 나온다. 작고 여린 가슴에 학구열만 해도 감당을 못하겠는데, 이쪽 집 눈치도, 저쪽 집 눈치도 수상하다. 하물하물 눈꺼풀은 감겨드는데 정신은 말똥하다.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 참”
달빛이 뿌옇게 내려 앉은 밤, 소쩍이의 소리와 저 멀리 늑대의 울음소리가 지면에 깔렸다. 다시 눈을 감으니 이제는 굴곡진 동숙이 몸매가 아른거린다. 동숙이 몸매가 아른거리면 칠복이 숨도 가빠졌다. 한 번도 동숙이 맨몸을 본 적이 없는데도, 아른거릴 때는 꼭 맨몸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그림이 지나간다. 금자의 목욕하던 모습이 아른거리면 칠복의 마음에는 무언가 모를 여유가 생기고 그윽한 마음이 되었다. 아무래도 금자가 편한가 보다.
“이게 대체 뭐여 에효”
칠복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방문 창호지를 뛰어넘어 마당을 가로질러 동숙의 귀에 꽂혔다. 잠시 뒤 방문이 소리도 없이 열리더니 검은 물체가 도둑괭이처럼 할금할금 마당을 기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숨도 참아가며 걷는듯 기는듯 댓돌 앞에 멈춰 ‘어빠’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너만 들어라 야옹’하듯 불렀다. 긴가민가하여 잠시 머뭇거리자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칠복 어빠 나여 싸게 문 열어 봐”
숨소리마저 참으며 살며시 뱉어내느라고 숨이 막혀 죽겠다 보다. 재빨리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마자 훗딱하는 소리가 들리게 검은 그림자는 빨려 들어왔다.
“뭐여 동숙이 아녀”
“웅 나여 어빠”
머리를 반쯤 내밀고 댓돌에 놓인 신발을 손에 들고 재빨리 문을 닫고 동숙이 말했다.
“이 밤중에 어르신이 알면 어쩔려구 그려어 어이구 어이구”
“암말 말어용 걱정 없응게. 죄자 주무시는 거 확인하고 오는 길이여”
“워메 간도 크다. 끄응”
“그란디 뭔 일이여”
그제야 동숙이 칠복을 그윽한 눈빛으로 마주보며 슬며시 발을 이불속에 들이 밀었다.
“내가 잘라구 허는디 오빠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게 귀에 들려서 뭔일인가 하고 와 본겨”
“니 귀는 나발이 달렸다벼. 내 혼잣말도 들리는 것을 보니께”
칠복이 화들짝 놀라서 동숙이 눈을 보며 말했다. 동숙이 눈에 반달이 걸렸다. 달빛은 소리없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동숙이 눈에 반쯤 걸려있다.
“어빠아”
동숙이 눈에 걸린 반달을 바라보고 있는 칠복의 눈길에 동숙의 얼굴이 빨개진다. 이내 칠복의 품에 안겨들었다. 뒤뚱 하며 뒤로 넘어간 칠복의 품에 안긴채로 동숙의 숨이 가빠진다. 칠복이 반쯤 놀라 아직 등이 방바닥에 닿기 전 상태로 주춤거리고 있는데 칠복의 얼굴로 동숙의 입에서 단내가 후욱 끼쳐 왔다. 달달하면서도 비린듯, 노릇한 향기가 끼쳐 오면서 칠복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가까운 거리였다. 어느 한쪽에서 얼굴을 돌렸다가 다시 오면 두 사람의 입술이 만나게 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로 밀착되었다.
칠복은 가끔 꿈을 꾸었다. 걸뱅이 생활을 하던 때의 꿈이다. 두 블록 택쯤 될까.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마침내 잡힌듯, 멍청하고 한심한 몰골로 순경에게 멱살을 잡히고 마는 그런 꿈이었다. 순경에게 멱살을 잡히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폭삭 주저 앉는 싫은 꿈이었다.
칠복은 동숙의 입에서 나는 단내를 맡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하고 꿈에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하고 똑 같은 아득함이라고 생각했다. 이내 동숙의 팔이 감겨 오고 동숙의 입술이 열렸다. 혀가 감겨온다. 그대로 엉겨 들었다.
동숙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동숙의 스웨터가 말아 올려져 드러난 맨살이 칠복의 손에 묻어나듯 감촉된다. 동숙이 스웨터를 벗었다. 그리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칠복의 손을 잡아 이끈다. 칠복은 내복을 입은 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이불은 두 사람이 덮기에 좋을만큼 넉넉했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옷을 벗었다. 칠복의 내복이 벗겨져 이불끝으로 밀려났다. 동숙의 솜바지가 벗겨지고 알몸이 드러났다. 두 사람이 한 이불 속에 드니 훈기에 온몸이 가려울 정도로 더워졌다.
마침내 알몸이 되어 서로를 끌어 안았다. 덜덜 떨리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잠시 그러고 있었다. 동숙이 칠복의 손을 끌어 자신의 가슴에 올려 놓았다. 봉긋한 가슴의 뭉클한 감촉에 슬며시 떠지던 눈이 저절로 감긴다. 칠복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동숙은 아래턱까지 떨렸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달달 떨려온다. 동숙의 매끈한 하체에 칠복의 부자연스러운 하체가 밀착되어 감각되는 낯설은 감촉은 점점 커졌다.
가렵다. 온 몸이 근질거린다. 칠복이 동숙의 탐스런 젖가슴을 만지작 거리다가 입으로 덥석 물었다. 깜짝 놀란 동숙이 제 다리로 칠복의 다리를 감고 힘을 주고 말았다. 동숙이 힘을 주는 바람에 칠복의 두 다리가 동숙의 두 다리 속으로 감겨졌다. 동숙의 다리가 열리자 칠복의 돌기도 방향을 찾았다. 두 남녀는 각자의 치골을 통해 생전 처음으로 이성의 까실까실한 감촉을 느끼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성은 오장육부 속으로 스며들고 대신 부자연스러운 본능이 이성의 자리를 치고 들어 왔다. 서로 마주보며 옆으로 누워 있던 자세가 언제 바뀌었는지 모른다. 칠복은 어정쩡한 자세로 누워 있는 동숙의 몸 위에 포개져 있었고 동숙은 칠복의 체중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칠복의 등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따뜻함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아이 따뜻해. 기분 좋다”
“......”
칠복의 가슴에 불이 당겨졌다. 치골을 통해 전달되는 까실한 감촉이 적응되며 돌기를 통해 전달되는 촉촉하고 미끄러운 감촉이 불을 질렀다. 방향은 찾았으나 입구는 찾지 못해 애를 먹는다.
“꺄악”
동숙이 낮고 짧게 비명을 지르는 순간, 칠복의 돌기는 무엇엔가에 빨려 들어가듯 미끌하고 미끄러져 들어갔다. 마침내 두 개의 성은 하나가 되었다. 동숙이 파과의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입을 앙다물고 소리를 죽였으나 이빨 사이로 새어나가는 신음소리를 어쩌지는 못 한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파고가 높아짐에 동숙의 신음소리에도 파고가 생겼다.
방문 밖, 안절부절 하며 오랫동안 기웃하고 있던 그림자가 슬며시 사라졌다. 한참 후 방문이 살짝 열리며 동숙의 얼굴이 빠꼼하고 보인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방문을 살짝 열었다. 재빨리 신을 신었다. 도둑고양이처럼 바닥을 핥듯 할곰할곰 걸어 마당을 가로질렀다. 연기처럼 제 방으로 살며시 빨려 들어갔다. 손에는 피가 살짝 묻어 있는 흰 무명천을 꽉 쥐고 있었다.
“어머 어머 이게 워쩐 일이여”
세수를 하는데 칠복의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흘러 나왔다. 동숙이 칠복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어쩔 줄 몰라한다. 종숙이 방에 들어가서 약상자를 들고 나와 솜을 꺼내 칠복이 코를 막아 주었다. 정지에서 뜸을 들이고 있던 마나님이 깜짝 놀라 달려왔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온 집안이 떠들썩하다.
“영감, 칠복이가 대간한 모양이우. 뭔 조처를 해야겠슈”
“그려 그려 임자가 알아서 해주시게.”
“오널 부텀은 칠복이 밥상을 영감 옆 자리로 옮기면 좋것슈. 남정네들이 함께 밥을 먹으면 보기에도 좋구 말이유”
“그려? 임자 생각 잘했네.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여. 오널부터 당장 그리해요”
“암 말 없이 들어줘서 고마워유”
“임자 마음이 곱구먼 그랴, 그리 혀요. 어머니께 말씀 드릴테니께”
툇마루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대주 마님도 칠복이가 코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어지간히 놀랐다.
“아범 아무래도 섭생이 부족한듯 하네. 남정네가 섭생이 부족하면 힘을 못 쓰는 벱이여. 내 밥상으로 데려다 놓도록 햐. ”
칠복이 밥상이 대주마님과 박 초시 부부의 밥상으로 옮겨 차려졌다. 남정네라는 이유로 밥상이 옮겨지기는 했으나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다. 눈치는 눈치대로 보이고 마음은 도무지 편할 수가 없는데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이것 저것 좋은 것으로 챙겨 주시는데 도무지 모래를 씹는 것과 같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딸들은 모두 칠복이의 밥상 옮김을 전격적으로 환영하였다는 정도이다.
“칠복이 이것도 좀 먹어 봐라. 요즘 많이 대간한 모양인디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해야 조처를 취할 것 아니것냐. 앞으로 불편하거나 아프거나 하면 꼭 말혀라.”
계란 프라이 한 개를 칠복이 밥 위에 얹어 주며 마나님은 넌지시 말했다. 이리저리 눈길을 피하는 칠복이의 눈을 들여다 보듯 맞추며 무언가의 확신이 필요하다는듯 은근한 목소리였다.
“야 그렇게 하것슈”
칠복이의 목구멍으로 간신히 밥이 넘어 가는데 고만 몇번씩이나 목에 걸린다. 아무리 한 식구이니 편히 먹으라고 하지만 갑자기 하루 만에 달라진 밥상을 앞에 두고 칠복이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속으로 캥기는 것이 있지 아니한가. 동숙이를 보내 놓고 밤새 잠 한 숨을 자지 못했다. 어지간히 복잡한 심사를 뉘가 알리요. 머슴과 주인 딸과의 경계를 뛰어 넘는 로멘스인데 어찌 두렵고 떨리지 않을까. 어린 가슴에 너무 큰 일을 저질렀다는 두려움과 혹시나 하는 공포 때문에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지난 밤. 아침이 되니 동숙이와 마주치는 것도 두려웠다. 특히나 대주마님과 박 초시 부부와 마주치는 것은 공포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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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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