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거처
38. 거처
집으로 돌아오니 며칠 동안 미처 손길이 가지 않았던 것들이 반란을 일으킨 듯 몰골이 사나워져 있다. 마당에는 여기저기 풀들이 자라나 있는데 아무리 쥐어뜯고 뽑아내도 어디에서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지 그 생명력이 놀랍기만 하다. 특히 채송화가 속을 썩였다. 마음이 바빠진다. 마당이 이 모양인데 밭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아무래도 석회수로 약을 쳐야겠다. 칠복이 분무기와 고무장갑과 고무장화를 꺼내놓고 석회수를 희석하고 있는데 성구가 기척을 하며 삽짝에 들어선다.
"요즘 사무가 바쁜 모양이여. 당췌 볼 수가 없으니 말이여. 일벙 자네가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 들렀네"
"어서 오게, 오늘은 어쩐 바람이여. 반가우이"
"이거 받어"
"이게 뭐여. 뭐 이런 것을 다 들고 오나. 고맙네"
"집 사람이 메실즙을 담궜는데 잘 되었다고 자네 한 통 가져다주라고 해서 가져왔어. 혼자 사는데 꿉꿉한 것은 없는겨?"
"참 고마우이. 작년에도 이리 보내 주셔서 잘 먹었는데, 참말로 고맙다고 전해 드리게"
툇마루에 앉아서 성구가 가져온 메실 즙을 맛보았다. 진꿀에 매실을 담궈 40일을 숙성시키면 매실은 우메보시처럼 쪼골쪼골 해지고 매실의 영양성분은 꿀과 혼합이 되어져 매실즙이 된다. 성구는 바지런하여 제 작년에 3통으로 시작하여 벌써 벌통을 10개로 키워 냈다. 꿀을 뜨는 재미가 쌉싸롬하다나 어떻더나 하며 자랑이 늘어진다. 탱글탱글한 매실은 육서방 과수원에서 키운 것으로만 매실즙을 담는다. 육 서방네 매실은 서울에서도 찾는 이가 제법 생겼을 정도로 과육이 단단하고 씨알이 굵고 모양이 좋았다. 대형 백화점에서 납품해 달라고 사람이 내려 와서 사정을 했으나 조건도 까다롭고 이미 단골들이 다 맞춰 놓은 터에 다른 데로 돌릴 여분도 없고 해서 백화점 납품건은 무위로 돌아갔다.
칠복이도 성구와 같이 벌통을 3개 들여 놓았는데 성구네 벌들과 싸움질을 하고 어느 날 밤에 몰래 야반도주를 하듯 분봉을 해서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고 이럭저럭 3통의 벌통이 도무지 늘지를 않는다. 그래도 남아 있는 벌들은 싸움대장들이 되어서 말벌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말벌이 나타났다 하면 칠복은 고무줄 총으로 말벌을 잡았다. 젓가락으로 만든 고무줄총은 초등학생 때에 했던 놀이인데 파리나 곤충을 잡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칠복이 말벌을 잡을 요량을 하며 이리 궁리하고 저리 고민하다가 번쩍하고 떠 오른 처방이 바로 고무줄 총이었다. 고무줄 총으로 말벌을 잡는 꼴을 본 성구는 어린애들처럼 철딱서니 없이 고무줄 총 놀이가 다 뭐냐고 빈정댔으나 고무줄 총 한방에 말벌 목이 떨어지며 박살이 나는 모습을 보더니 슬며시 사라졌다. 성구도 고무줄 총으로 말벌을 잡는다. 고무줄총은 말벌이 떼로 몰켜오지 않는 한 말벌에게는 저승사자였다.
"참 맛있다 맛있어. 여간해서는 이런 맛이 나오지 못 혀. 성구 자네는 결혼을 아주 잘했네"
"허허 가끔 내가 자네 부인 감을 빼앗은 것은 아닌가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곤 혀"
"예끼 무슨 소리를 그리 하나. 금자 씨는 참 좋은 사람이야. 자네는 복을 넝쿨째 잡은거여"
"그려 그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그럼 이만 나는 가겠네"
"그려 고마우이, 일어나시게, 나도 벌통에 가 봐야겠네, 혹시나 말이지"
성구가 일어서는 길에 칠복도 고무줄 총을 들고 일어섰다. 벌통은 뒤란 쪽 양지바른 곳에 비닐로 모자를 씌워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조처를 해 두었다. 칠복이 벌통에 다가가니 몇 마리의 일벌들이 들고 나면서 앵앵거린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허공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근처에 있는 나무들을 세밀히 살피며 혹시 말벌집이 생겼는지도 살펴보았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그제야 농약 통을 짊어졌다. 한 손에 삽을 들고 마스크로 쓸 수건을 목에 걸고 밭으로 나섰다.
밭에는 포도넝쿨이 한창 뻗어나가며 푸르른 잎으로 둘렀다. 종이 봉지가 씌워져 있는 사이로 봉지가 벗겨진 파란 포도송이들이 보인다. 얼마 되지는 않으나 알이 굵고 실한 포도송이들이 매달렸다. 포도를 수확하는 때가 되면 상인들은 칠복의 포도밭으로 몰ㄹ 들었고 칠복의 포도는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원인은 칠복의 선견지명에 있었다. 칠복이 나이 30세에 박 초시가 세상을 뜨고 나서 가산을 정리할 때 칠복이 금싸라기와 같은 논을 팔아 돈으로 내어 놓았었다. 칠복의 선한 마음을 도무지 감당을 할 수 없었던 마님은 포도밭을 넘겨주었다. 포도나무만 200주가 심어져 있는 꽤 넓은 포도밭이었다. 그러나 시가로 따지면 칠복이 내 놓은 돈의 절반 정도에 해당되었다. 한사코 사양하는 칠복에게 마님은 동숙이와 첫사랑이 시작된 곳이 아니더냐고 이 밭은 꼭 칠복이 간수하고 있어야 한다고 목을 매었다. 칠복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 밭을 받았다. 동숙이는 이 밭에 있는 자두를 엄청 아꼈다. 칠복이 먹을 잘 익은 후무샤를 요리조리 감추어 두고는 아무도 모르도록 수를 써서 결국은 칠복의 입에 넣어주곤 했다. 가령 포도잎사귀로 꽁꽁 싸매 놓는다거나 까만 비닐봉지로 씌워 놓는다거나 아니면 포도송이에 씌워 놓았던 봉지를 빼내 자두에 씌워 놓는다거나 등등으로 꽤나 머리를 쓴 흔적이 역역이 드러나는 흔적을 남겨 놓았다. 하여 자매들에게는 그것이 칠복을 위한 동숙의 작품이라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 있었다. 물론 서운하기도 했으나 이쁜 사랑을 키워 가는 두 사람을 위하여 짐짓 모르는 척 하는 것이었다.
"호호 이거 꼭 누구꺼처럼 생겼다. 이거 먹어야 힘을 쓴대용"
"꽥 그대나 많이 먹어요"
"이거 안 먹으면 오늘 밤에 죽는다. 긍게 먹어용. 서방님"
"알았어 알았어. 먹을께"
"요렇게 잘 먹으면서 반항을 해요. 반항을... 아고 이뻐 죽겠어"
시꺼멓게 익은 자두는 한 주먹이나 되었는데 동숙이는 칠복의 것과 대 보려고 가끔 용을 쓰곤 했었다. 그때마다 칠복은 도망 다니느라고 땀을 빼야 했다.
칠복의 포도밭에 있는 포도나무는 수령이 다 되어 포도 알갱이가 매년 잘아지고 신맛이 나고 있었다. 이제는 어떤 품종의 묘목으로든지 교체를 해 주어야 했다. 칠복은 여러 날 고민 끝에 농업 진흥청에 도움을 얻기로 했다. 마침 대전에 있는 농업 진흥청에서는 알이 많이 달리는 경산포도와 알이 굵은 안성의 포도를 접목하여 새로운 품종의 켐벨 포도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묘목 200주는 2년째 성공적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이제는 농가에 분양하여 시험 재배를 통해 새로운 품종의 포도에 대한 특성을 보고서로 작성하여 보고할 일만 남았다. 농업 진흥청에서는 안성과 대구의 중간쯤인 옥천이나 이원 영동 지역 중에서 시험재배에 참여할 농가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칠복은 이것이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진 것이라고 믿고 시험 재배 농가로 지원했다. 양쪽의 입장이 맞아 떨어진 농가에서 시험재배를 지원하자 농업 진흥청에서는 시험재배 양식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줄 것을 조건으로 묘목 150주를 무상으로 분양해 주었다. 진흥청의 기술지도사는 포도나무를 교체하는 현장에 나와 기존의 포도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을 더 넓게 잡을 것을 요구했다. 묘목의 성장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왕성하여 기존의 포도나무 보다 사이를 더 두고 심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 묘목이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나서 4년째에 가서 수확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첫물거리는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이듬해에 본격적으로 수확할 때 더 많은 포도가 매달릴 수 있으며 가지의 힘이 좋아져서 많은 포도송이가 매달려도 충분히 견딜 수 있게 된다. 옥천에서 출하되는 옥천 포도는 당도가 타 지역의 포도보다 달고 신맛이 없어 인지도가 높았다.
그런데 논농사와 포도농사는 마을 주민 전체가 한꺼번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품앗이를 할 수가 없다. 일이 몰릴 때에는 외지 사람을 놉을 주어다 써야 한다. 인건비도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혼자의 몸으로 감당해 나가려니 어지간히 힘에 부친다. 하긴 잡초를 제거해 주지 않는 방법의 자연농법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땅심을 길러주기 위해 현재 보다 두 배 이상의 퇴비를 주어야 하고 하다못해 오리라도 넣어 주어야 한다. 오리는 물을 걸러 먹으면서 물속에 있는 유충까지도 먹어 치운다. 멸구, 메뚜기 등 벼에 기생하는 해충은 알에서 깨어나 유충이 되어야 해를 입힌다. 유충이나 성충이나 오리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궁리 끝에 칠복은 3년 전에 오리농법에 도전하기로 작심을 했다. 첫해에 자신의 논에 오리 백 마리를 풀어 놓았다. 오리를 풀어 놓으니 삵과 오소리 고양이 너구리 등에 해를 입곤 했다. 이것이 염려가 되어 한 밤 중에도 한 차례 이상 휴대용 전등을 들고 순찰을 해야 했다. 고된 일이다. 세상에 거저먹는 것이라고는 단 한 개도 없다.
그래도 칠복의 논에서 생산된 쌀은 알갱이는 작았으나 미질이 좋고 풍미가 좋았다. 무엇보다 농약을 안치고 생산한 쌀이라 마을 주민들과 인근 마을과 군청 직원들까지 빼앗아 가듯 했다. 칠뜨기란 별명을 얻은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칠복은 정부의 추곡수매가 보다 조금 더 받았는데 그것은 농약을 치는 일반 쌀을 내는 값과 같았다. 마을 어떤 이는 칠복의 쌀을 사서 서울 등지의 친척들에게 두 배의 값을 받고 팔았다. 쌀 맛을 본 도시인들은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쌀을 찾았다. 칠복은 이들의 등쌀에 못 이겨 자신이 먹을 쌀까지도 내야 했다. 다행히 땅 심이 좋아져 해를 달리하는대로 소출은 쌀로 계산해 보면 10가마씩이나 늘어났다.
오리집은 틈실한 철봉과 철망으로 짜고 그 위에 나무를 덧대어 이중으로 단단히 방비를 했다. 바닥은 철봉과 철망으로 촘촘히 짜고 틈을 많이 주어서 배설물이 밖으로 잘 배출되도록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 그 아래에는 박스형태의 철판으로 만든 배설 물받이를 설치했는데 꺼낼 때에는 양쪽에 나 있는 구멍에 갈고리를 넣어서 꺼내도록 했다. 해꼬지를 하는 짐승들이 하도 약아 빠져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리집은 논둑 네 곳에 설치를 해 두었다. 먹이는 저녁에 한 번씩 주었다. 칠복이 나타나면 오리들은 꽥꽥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벼와 벼 사이를 나르는 듯 물결을 헤치며 헤엄을 치는 듯 달려 왔다. 가관이었다. 저녁을 먹이고 나서는 오리 집 문을 열어 두면 알아서 들어간다. 오리는 한 녀석이 들어가면 죄다 따라 들어가는 버릇이 있다. 동이 틀 때가 되면 오리집을 열어 주어야 한다. 녀석들은 열어 줄 때까지 보챘다. 이때도 한 녀석이 꽥꽥하면 다른 녀석들이 합세하여 합창을 했다.
영국의 동물학자인 로렌드 경은 오리의 습성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오리는 몇 마리의 수컷이 대장이 되어 선봉에 선다. 선봉이 앞서 가면 웅덩이가 되었든 절벽이 되었든 상관하지 않고 그 뒤로만 따라간다. 로렌드 경은 오리가 알에서 깨어나 어떻게 부모를 알아보는가에 대해 실험을 해 보았다. 실험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오리가 알에서 부화하여 처음 본 사물을 제 어미로 알고 따라다닌다는 결과를 내 놓았다. 통나무를 앞에 두니 새끼 오리는 통나무를 따라 다녔다. 세퍼드 앞에서 부화한 새끼 오리는 세퍼드를 따라 다녔다. 새 박사 윤 무부 교수는 "오죽하면 새 대가리라고 했겠느냐"며 조류의 지능이 동물의 지능과 현저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칠복은 만일을 위해 사료를 비축해 두어야 했다. 만일이란 태풍이 불거나 호우로 인해 물이 범람하는 때이다. 보통 때에는 마을 회관 입구에 놓은 짬밥 통에서 수거한 음식물 찌꺼기를 먹이로 주었다. 짬밥 통은 마을 주민들이 협조를 잘 해 주어서 항상 넘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수를 하고 난 뒤에는 대략 80마리쯤이 남게 되는데 50가구가 옹기종기 살고 있는 마을이니 한 가구당 한 마리의 오리를 회식용으로 내 놓았다. 나머지 30마리는 군청에 보내 요양시설과 고아원에 영양식으로 공급되었다. 이때에는 추수한 쌀도 10가마를 경운기에 실어 보냈다.
칠복은 박 초시의 친구인 옥천군청 사회과장의 배려로 주민증을 되찾았었다. 뿐만 아니라 고아출신이기는 했으나 당시 병역법에 따라 3급 이상의 공무원이 신원보증을 해주어야 했고 군수의 결재가 나야 했다. 그래야 6개월의 방위로 병역을 필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1년이나 3년 동안 방위생활을 해야만 했다. 칠복은 사회과장의 신원증명과 신원보증으로 6개월 동안 군청에서 방위생활을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칠복은 사회과장실에서 사무보조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때에 알게 된 대한민국의 사회제도와 복지제도의 현실은 너무도 열악하다는 것이었다. 또 방치되어 있는 소외자들과 행려병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심지어 치매에 걸린 부모를 내다 버리는 일도 일부에서는 자행되고 있었다. 칠복의 가슴에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품어졌다.
칠복은 자신이 사람노릇을 할 수 있도록 박 초시와 가족들, 군청의 사회과장과 김 선생 가족 이어서 따뜻하게 대해주고 품어준 마을 주민들의 사랑과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더해지면 질수록 고마운 마음은 더해만 갔다. 하여 이왕 쌀을 내고 오리를 내는 것, 좀 더 낸다는 것이며 꼭 필요한 곳에는 좀 더 많이 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행하였다. 하지만 힘에 부치지 않는 정도로까지만 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으나 계속하려면 힘에 부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부담감이 들면 중간에 멈출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과 3년 전부터 시작한 일이다. 하지만 칠복의 봉사가 3년 동안 계속 이어지자 옥천군에서는 지역사회의 숨은 일꾼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밭에 나간 칠복은 잘 익은 딸기를 한 광주리 따서 타고 온 자전거에 실었다. 참외는 아직 제철이 아니기 때문에 모양은 푸르둥둥하다. 익으려면 보름은 지나야 한다. 하얀 참외 꽃이 상구도 막 피어나고 있다. 참외 꽃에 매달린 꽃 바퀴가 점점 커지면서 참외가 모양을 갖추게 된다. 수박은 몇 그루 밖에 안 되는데 주먹만큼 자라난 수박이 넝쿨에 매달려 땅에 머리를 박고 숨을 쉬고 있다. 서둘러 일을 마친 칠복이는 집을 향해 속도를 냈다.
"어서 와요. 아가씨가 많이 기다렸어요. 눈이 십리는 들어갔나 봐요."
"어머 유모도 참 내가 언제 그랬다구 그래요. 어서 와요. 선생님"
"아니 웬 딸기를 이렇게나 많이 따왔어요. 이걸 언제 다 먹으라구"
"잡수시구 나머지는 쨈을 해서 드시라구유"
"아유 좋아라. 어쩜 딸기가 이렇게 탱글탱글하냐. 맛있겠다. 냠냠"
선영이 탐스럽게 익은 딸기를 입에 넣었다. 혹시나 그럴 줄 알고 맨 위에 올려놓은 몇 개의 딸기 중의 하나였다.
"어머, 어머 맛있다. 맛있어. 유모도 하나 먹어 봐요"
"정말 이렇게 맛있는 딸기는 처음 먹어 봐요. 고마워요."
"오빠도 한 개"
"고마워."
"잠시 기다려요. 제가 씻어 올께요."
"유모 나 이거 하나 더 먹구"
"아가씨 그렇게도 선생님이 좋아요? 아까까진 시무룩하더니"
딸기 광주리를 들고 씻으러 가던 할머니가 얌퉁 맞아 한 마디 해 줘야 한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환한 표정으로 수연을 찔렀다.
"어머 어머 유모는 내가 언제 그랬다구 그래요. 흥"
선영의 핑크빛 입술에 빨간 딸기의 물이 묻어 입술의 빛이 더욱 싱그럽게 돋보인다. 당황하여 빨개진 뺨이 더욱 사랑스럽다. 선영이 살며시 칠복의 손을 잡아 온다.
"오빠 앞으로는 밭일 하는데도 나를 데리고 가면 안 되우?"
맑고 투명한 눈으로 말끄러미 칠복의 턱밑에서 칠복의 눈을 보며 묻는다. 칠복이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선영이 몸빼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장화를 신고 호미를 든 모습이 상상되니 푸하하하 하고 웃음보가 터진다.
"어머, 어머 왜 웃고 그래요. 내 말이 우스워서 웃는거야요?"
"아니, 아니 선영이가 몸빼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장화를 신고 주저앉아서 호미로 김을 매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어 죽겠어"
"어머 오호호호호호. 증말 웃긴다. 어머 어머 오호호호호 아이고 웃겨라"
배꼽을 잡으며 구르듯이 웃는다. 세상에 내가 한 마디 한 것이 대체 어디까지 간거야. 몸빼에다 장화에다 김매기까지 간거야? 까르륵.
"아니 뭐가 저리 재밌을까. 오호호호"
딸기를 씻어 보기 좋게 쟁반에 담아 내오던 할머니도 웃음보가 터졌다.
"아니, 아니 유모 아하하하"
소파를 두들기며 웃어재끼는 아가씨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도 자지러진다.
"오호호호호"
"글쎄 내가 몸빼를 입고 까르륵"
"웬 몸빼 우리 아가씨가? 에헤헤"
"이만한 장화를 신고 쭈그리고 앉아서 김을 매는 거야 호미로 켁켁"
저런, 사래가 걸렸나 보다. 할머니는 그 꼴이 연상이 되니 뱃가죽이 땅길 때까지 웃었다. 칠복이 슬며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사람은 아직도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웃음보가 터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또 웃게 된다.
"그래 아가씨 누가 그래요? 누가 그렇게 멋지게 우리 아가씨를 변장시켜 놨어요?
"누구긴 누구야요. 선생님이지 까르르륵"
"오메 오메 오호호호"
한참을 웃고 나더니 눈물까지 나나 보다 눈가를 눈으로 꾹꾹 누른다. 관리인이 들어 와서 딸기를 가지고 나가면서 인사를 한다. 관리인 부부는 별채에 살고 있었는데 인터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럼 맛있게 드시다가 위층으로 올라가 계셔요. 제가 저녁을 준비해 놓을께요."
"그래요. 유모 맛있게 부탁해요."
"네 아가씨 굴비하고 갈비도 구워 드리께요."
"선생님 특별히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저는 괜찮아유, 아가씨 입맛에 맞는 것으로 하셔유"
"유모 그럼 갈비찜으로 해줘요. 갈비찜이 먹고 싶어요"
"이제 우리 아가씨 입맛이 살아났나 보네요. 갈비찜을 해 달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말끝이 흐려지고 말았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입맛부터 죽는다 했다. 사람이 살아 나려면 입맛부터 살아난다고 했다. 아가씨의 입맛이 살아나다니 꿈만 같다. 과연 젊은 사람들이라 다르다. 사랑의 힘일까. 아가씨의 눈빛이 달라졌다. 박 선생을 볼 때마다 꿈을 꾸는 듯 눈부셔하고 있다. 사랑을 해도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벌써 70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살 날 보다 갈 날이 가까워 반 귀신이 다 되어 있다는 연령이다. 더구나 선영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키웠다. 아가씨의 눈빛만 봐도 머리 속에서는 비디오가 돌아간다. 병원에서는 6개월 시한부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잠깐 좋아진 것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솔직히 그래 주었으면 좋겠다. 아가씨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아가씨의 첫사랑인 박 선생과 엮어져 처녀귀신이라도 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서울 사장님이 들으면 당장에 목이 떨어질 일이지만, 유모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해주고 싶다. 아가씨의 마음은 확인했으니 문제는 박 선생이었다. 순진하고 순박한 박 선생을 이용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하다. 아가씨를 생각하면 엮어 주어야 하고 박 선생을 생각하면 모르는 척 해야 한다.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선영아 이거 약으로 매일 아침 먹고 한 잔씩 타서 마셔라"
"어머 이게 뭐야"
"응 진꿀로 만든 메실 즙이여, 위장에 아주 좋아. 특히 미식거리거나 속이 안 좋을 때는 직효야"
"메실 즙이 좋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요. 그렇잖아도 유모 할머니가 진꿀로 만든 메실 즙을 구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고마워요"
"그려 걱정 말어 안 떨어지게 할테니깐 양껏 먹어"
선영의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사람,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나 보다. 아니면 운명의 사람이던지. 칠복을 말끄러미 치어다보는 선영의 눈가에 감동의 이슬이 맺힌다. 요즘 들어 선영은 부쩍 감동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고 보니 말도 많아지고 웃음도 헤퍼진 것 같고 눈물도 헤퍼진 것 같다. 영혼 저 아래에서 맑은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그 샘물은 내 온 몸을 휘감고 올라 와서는 내 머리까지 맑고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 살고 싶어. 아니 살아야 해. 내가 살아나서 완쾌가 되면 이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 많아 질거야. 이 사람에게 좋은 일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어. 칠복이 일을 보러 갔을 때 유모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선생님을 자세히 보면 귀골 티가 난다고 분명 귀족의 후손일 것이라고 했다. 유모는 관상쟁이는 아니지만 천성적인 기골을 정확하게 분간하는 탁월한 눈을 가졌다. 유모 앞에서는 아무리 귀공자 같이 행동을 해도 천성이 사악한 사람은 사악하다고 했고 천성이 야비한 사람 같다고 하면 야비한 사람의 행위가 나타났다. 유모는 아버지를 천성적으로 영웅의 기질을 타고 태어나신 분이라고 했다. 유모는 티브이를 보면서 정치인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서 하나 둘 짚어 주었다. 유모가 천성이 귀골 같다고 한 정치인은 없었다. 남들이 다 귀골이니 왕족 같다니 해도 유모는 자세히 살펴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유모가 고개를 흔든 정치인은 결말이 좋지 못했다. 그랬던 유모가 칠복을 자세히 살펴 보고 난 뒤에 귀골 티가 난다고 귀족의 후예일 것이라고 했다. 유모의 말은 선영의 가슴 속에 깊이 박혔다.
"오빠가 한 잔 타 줘요. 그럼 먹을거야"
"그래, 그래 타 줄께 지금 마셔."
칠복은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정성껏 타 주었다. 가만히 보니 물 한 컵에 두 스푼을 넣어서 타 준다. 새콤하면서 단맛이 서로 중화가 되고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그 맛이 순결하다. 이런 맛 처음이야. 혀끝을 감돌아 목에 넘어가면서부터 속이 시원해지고 편해진다. 속에서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왜 이제 오느냐는 듯, 한 방울까지 빨아들이는 느낌이 든다. 최고다.
"어머 맛있어라. 어쩜 맛이 이렇게 순결할까."
"맛이 순결해? 그런 말 첨 들어 본다."
칠복은 선영의 감탄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런 말이나 글을 듣거나 본 적이 있는지를 찾아보는 눈치이다.
"첫 맛이 최고일 때, 그 맛을 순결하다고 해도 되는 거예요."
"글쎄 그런 말을 들어 본적이 없어서 말이여"
"제가 처음으로 한 말이야요. 어떤 어록에도 없어요. 그러니 메모를 해두시던가 아니면 노트에 적어 놓으세요. 나는 리바이벌은 안 해요."
"선영아 근데 지금 이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뻘쭘하지?"
"히히 속으로는 캥겨요. 우찌 그리 잘 아실까. 내 속을"
"근데 참 멋진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들은 적이 없는데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맛있는 표현이야."
“오빠 고마워요. 아주 많이. 그런데 장래 계획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요.”
살포시 칠복의 어깨에 기대오며 선영이 말한다. 칠복은 선영의 말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나는 내 힘껏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사는 것이 내 소망이고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 혀”
“아이 그런 보편적인 내용 말고 장래에 어떤 인물이 되어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돕겠다는 그런 구체적인 계획 말이야요.”
그제야 칠복은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선영의 눈에 눈을 맞추었다. 여인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기 전 반드시 남자의 장래계획을 구체적으로 물어 본다는 사실에 대해 칠복은 알고 있었다. 얼마나 구체적으로 물어 보느냐에 따라 구체적으로 운명을 결정짓는다. 선영의 표정에 애절함이 묻어 있다. 칠복은 긴장했다. 선영은 칠복의 장래 계획에 따라 자신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다는 무언의 암시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만약에 선영의 표정에 애절함이 묻어 있지 않았다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칠복의 장래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볼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영의 표정에서 집요하게 대답을 구하는 표정은 단순히 돕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운명을 걸어 보겠다는 뜻까지도 포함이 되어 있다. 본능적으로 칠복은 위축되었다. 선영이 제 운명을 걸고 자신의 장래 계획에 집중하고 있다는 무언의 암시는 칠복을 당황스럽게 만들었으며 곤혹스럽게 압박해 왔다.
맑고 투명한 눈으로, 의미 있는 단 한마디의 말로 구체적이지 못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눙치는 말이나 흘려버리는 말 따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또렷한 압박이었다. 둘의 운명을 합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합쳐야 할런지 서로의 필요조건에 부합할 수 있는 정도로 간격을 좁히려면 어디까지 좁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포기해야 하고 어떻게 맞추어야 할런지에 대해 결단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말해 보라는 압력이었다. 선영. 이 여인이 지금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칠복은 자신을 거둬 주었던 박 초시가 생전에 칠복에게 반드시 군수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를 했던 것과 꼭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 내 나이가 몇인가. 그 동안 넋을 놓고 살았던 시간이 얼마인가.
칠복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실은 나를 거두어 주신 박 초시 어른하고 약속한 것이 있어. 군수가 되어서 군민을 잘 섬기고 잘 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야. 지금은 그저 먼 산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내가 꼭 올라가야 할 산인데 하면서 말이지.”
“군수가 되어 잘 되게 해 준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네요. 그러면 대학 공부도 하셔야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어. 내 꿈이니까. 지금은 우리 공주님 병이 빨리 낫는 것이 꿈이야.”
선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내가 옆을 지켜드리면서 그 꿈을 이뤄 드리고 싶어요. 남을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리더가 되겠다는 그 꿈이 내 가슴을 움직이네요. 함께 그 꿈을 이루고 싶어요. 칠복의 눈을 보면서 눈으로 말했다.
“아가씨 간호사 선생님은 한 시간 뒤에 오신다고 연락이 왔어요. 식사 준비 다 되었으니 내려오세요.”
할머니가 올라 와서 문밖에 서서 약간 큰 소리로 알려 주고는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 먹으러 가요. 선생님”
선영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칠복의 팔을 낀다. 칠복이 민망하여 슬쩍 떨구려 하나 선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더욱 힘을 주었다. 뭉클한 가슴의 감촉이 전해왔다. 잠시 동숙의 가슴과 비교가 되고 금자의 가슴과 견주어진다. 슬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관리인 부부는 따로 식사를 했다. 원래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입주했기 때문에 뭐라 할 수는 없으나 가끔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관리인 부부의 입장에서 보면 주인댁 아가씨와 관리인 부부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불편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공주님이 빨리 나으시라고 기도해 주셔야 해요. 선생님”
할머니의 성화에 당황한 칠복이 손을 모으며 기도의 태세를 갖추자 선영이 흐뭇한 표정으로 두 손을 잡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당신의 말을 따르겠다는 의미가 고요히 전달되어져 왔다. 묘하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렇게 확실하게 말하는 것도 아닌데 무언의 몸짓과 표정에서 마음이 나오고 의미가 전달되어지는 것이 참 묘하다.
“주께서 주신 모든 것이 선하다 하셨으니 선한 것으로 구별하여 거룩한 음식을 먹고자 합니다. 수고한 할머니의 손길 위에 건강의 기쁨을 주시고 귀한 음식을 먹고 마시는 저희들에게 힘과 장래를 주소서. 한 마음으로 선영의 병이 완쾌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심으로 완쾌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찬란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를 마치고 머쓱해 하는 칠복을 향해 선영이 신비로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입술을 두어 번 오물거리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달콤한 눈빛으로 칠복을 바라본다. 달콤한 눈빛은 신뢰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유모는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가 들어 올리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쩜 제 마음하고 똑 같은 기도를 하셨네요. 우리 선생님 멋져요.”
“저두요. 저를 위해서 늘 기도해 주셔야 해요.”
식탁에는 아이 주먹만큼 큰 실한 피조개가 타원형 접시에 담겨 있고 그 옆에는 알배기 굴비가 접시에 담겨 있었는데 가운데를 뚝 분질러 놓은 먹음직한 큰 굴비가 세 마리나 찜으로 쪄서 올려져있다. 김이 오르는 갈비찜은 네모난 널따란 접시에 담겨 있다. 칠복을 위해 준비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너비아니는 석쇠에 구워 방금 올린 듯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있다. 초록색으로 색깔이 선명한 미역국은 자잘한 새우를 넣어 담백하게 끓여냈다. 김치는 포기김치를 방금 썰어 냈으며 샐러드와 홍어무침까지 상차림 되어 있다. 이것을 언제 이렇게 다 했을까 싶도록 풍성하게 차려진 저녁상이다.
“유모 나 미역국 좀 더 줘요”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맛있게 저녁을 먹는 선영의 모습이 싱싱하게 빛이 난다. 유모는 국을 떠 주면서 마음이 아프다. 다만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것으로도 저리 밝고 힘이 나는 아가씨인데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가씨 부모는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무어라 할까. 마치 제 서방이나 되는 듯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칠복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어 하고 만족하며 즐거워하는 지금의 저 모습을 보면 뭐라 할까. 마음이 편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선영을 이곳에 데리고 내려 왔을 때 선영의 신상에 관한 일체를 자신에게 일임 한다 했다. 죽기 전에 처녀귀신이라도 면해 줄 수 있도록 결혼을 시켜 주어야 한다고 했을 때에도 박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나 부인은 살며시 유모에게 맡긴다고 알아서 조처해달라고 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던 중에 마침 우연처럼 칠복이 나타나주었다. 더구나 이리저리 살펴보니 귀골이다. 무엇보다 아가씨가 좋아하고 있는데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혹여 아가씨가 완쾌된다고 해도 그 이후의 일은 사장님 부부와 선영이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이 할 일은 슬며시 두 사람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오늘 관리인을 시켜 아가씨 방 옆에 비어 있는 방에 칠복이 사용할 책상과 책장 그리고 투 매트리스의 킹사이즈 침대를 들여 놓았다. 티브이와 비디오, 오디오 등 신혼살림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화장실은 아가씨 방에 있는 화장실과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애초에 설계가 되어 있으니 따로 시설할 필요가 없다. 만반의 준비를 다 마쳐 놓았다. 이제 두 사람이 그곳에 들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된다. 선영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좋아했다. 이어 혹시나 칠복이 안 좋아 하면 어쩌냐고 걱정이 늘어졌다. 하여 아가씨가 적극적으로 밀어 부쳐보라고 옆구리를 찔러 주었다.
“선생님 오늘부터 이곳에서 주무실 수 있도록 빈방을 치워 놓았어요. 그러니 그곳에서 주무시고 아가씨와 함께 새벽예배에 가도록 하세요.”
칠복은 부러 빈방을 치워 놓았다는 말에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해했다. 선영이 간호사에게 주사를 맞고 있는 동안에 유모는 칠복에게 가문의 내력과 지금까지 지내왔던 일들에 대해 물었다. 칠복의 말을 듣고 나서 유모는 “사람에 대한 상처는 사람으로만 치료가 되더이다. 지나 간 사람은 잊고 아가씨와 새 출발을 해 볼 의향은 없는지요?” 하고 물어왔다. 칠복은 감히 아가씨와 자신을 견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모는 다시 아가씨가 하자고 하는 대로 해 주라는 말로 못을 박았다.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 주는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의 소원은 반드시 들어 주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어지간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칠복이가 옆방에서 잔다. 선영의 엄지발가락이 자꾸만 꼼지락 거린다. 칠복은 저녁을 먹고 난 뒤에 오리집을 둘러보고 주낙을 놓으러 다녀왔다. 잠시 다녀오는 것인데도 혹시나 안 오면 어쩌나 하고 어지간히 기다려졌다. 칠복은 돌아오는 길에 빨간 앵두를 한 바구니 따 가지고 돌아 왔다. 그냥 돌아와도 되는데 꼭 무엇이든지 선영을 위해 마음 써줌이 허리를 간질이는 것처럼 달콤하다. “사람 하나는 잘 봤어. 내가” 스스로 대견해진다.
“오빠 나 무서워서 잠이 안 와. 나 여기서 자면 안 되어?”
“아이고 다 큰 처녀가 총각 옆에서 자자고 하면 어쪄”
“내가 자려고 하는데 자꾸 무섭구 가위에 눌릴 것 같어.”
“그거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지.”
선영은 커다란 베개를 안고 잠옷 바람으로 칠복의 방에 들어 왔다. 화장실 문을 열고 살금살금 들어 온 것이 틀림없다. 기침이 나거나 힘이 들거나 하면 언제고 깨우라고 단단히 일러 주었지만 같이 자자고 베개를 들고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빠 나 다리하고 팔하고 조금씩 아퍼. 주물러 줘요. 나 잠들 때까지 주물러 줘야 해요”
“응 그래 여기 엎드려 봐.”
“아니 오늘은 누워 있을게 오빠가 알아서 주물러 줘요.”
“그래 그럼”
다리부터 주물렀다. 무릎 위로 주물러 올라가는데 대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막막하다. 고개를 슬며시 돌리고 발가락을 보면서 주물렀다.
“아이 시원해 아야, 아야 거기 조금 더 위에 허벅지가 막 당기고 아파요.”
“응 여기?”
칠복의 손이 엉뚱한데 닿았다. 전혀 다른 감촉에 움찔하며 재빨리 손을 아래로 옮겼다. 일순 가슴에 불이 확 당겨진다.
“괜찮아요. 근데 거기도 아퍼.”
“켁이다. 거기로 뭘 했는디 아퍼 아프기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놓고는 아차 싶었다. 나이 차이가 엄연한데 이 무슨 실수냐 싶었다.
“어머 그게 오빠 등에 업혀서 다니느라구 힘이 들어서 거기도 아픈 거야요. 거기도 아프니까 주물러 줘요.”
말을 해 놓고는 뒷감당이 안 되는지 고개를 베개에 파묻었다. 칠복의 가슴에 불길이 일어났다.
“안 돼 거기는 부부지간인 사람들이 손댈 수 있는 곳이야.”
“만약에 내가 오빠 아내가 될거라면, 어쩔거예요.”
“서울 사장님이 허락하시겠니. 그리고 우리 나이 차이가 얼마인데 그게 가능하기나 한 말이여. 어림도 없는 말인겨. 끄윽”
말도 마치지 못했다. 선영이 두 손으로 칠복이 목을 감싸고 칠복의 입에 진한 입맞춤을 해왔다. 아득한 사이로 종숙이 모습이 스쳐간다. 부인 마님이 동숙이의 죽음으로 인해 헤어 나오지 못할 슬픔에 빠져 있는 칠복에게 눈물을 흘리며 동숙이를 잊고 종숙이를 아내로 맞이해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칠복은 그럴 수 없었다. 눈만 감으면 생각이 나는 동숙이를 배신하는 것만 같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종숙이가 늦은 밤에 칠복의 처소에 들었다. 애원했다 단 하루 만이라도 좋으니 아내 노릇을 하고 싶다 했다. 그래도 아니라면 두 말없이 물러 설 터이니 한 번만 같이 지내보자고 애원했다. 처녀로서 수치심을 내 버리고 애원했다. 그래도 칠복은 그리 할 수 없었다. 종숙이는 큰 소리로 울었다. 잠시 후 방문을 나서며 다시는 안 볼 거라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 다음날 그녀는 처음 선을 본 남자에게 가 버렸다. 가슴 속에서 싸아한 기포가 생겨 목구멍을 치고 올라온다.
“이 아이도 그렇게 떠나보낼 것이냐”
영혼 저 아래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칠복은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답했다. 눈을 감고 선영을 힘주어 안았다. 선영은 고요히 눈을 감았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나며 자신의 옷이 벗겨지고 있다. 잠옷이 벗겨지고 브레이저가 풀렸다. 잠시 멈칫하더니 팬티도 벗겨졌다. 마른 침이 꼴깍하고 목을 넘어갔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칠복이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자주 팔 다리를 주물러 이제는 익숙해졌을 만도 한데 칠복의 손길이 더듬거리고 있다. 칠복의 두 손이 선영의 가슴을 살포시 감싸왔다. 칠복의 손에 다 잡히지 못한 가슴의 일부분이 삐져나온 채로 떨고 있다. 칠복의 손길이 하복부로 내려가며 배꼽 아래에서 회전했다. 선영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선영의 입이 열리며 고개가 젖혀졌다. 칠복의 입술이 열린 입술을 덮치듯 덮으며 뜨거운 혀가 선영의 혀를 휘감았다. 하복부에서 선회하던 칠복의 손길이 허벅지로 더듬어 내려간다. 손길은 허벅지 안쪽 깊이 침범하며 엉덩이를 애무하며 다리를 벌렸다. 슬며시 다리를 벌려 주었다. 선영의 엉덩이가 몇 차례 튀어 올랐다. 칠복의 손이 활짝 펼쳐지며 선영의 샅을 덮고는 잠시 멈추었다. 거웃의 까실한 감촉과 부드럽고 뜨거운 샅의 감촉이 그대로 전달되어 왔다. 선영의 턱이 떨리기 시작했다. 칠복의 손길이 샅을 구체적으로 애무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칠복의 가운데 손가락이 선영의 샅을 헤치며 깊숙이 찔러 들어 왔다.
“하악”
다급한 숨소리와 함께 선영의 몸이 일순 경직되었다가 풀렸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어질 다음 동작에 대한 예비 신호였다. 마치 엉덩이 주사를 맞는 것처럼 다음 동작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메시지였다. 선영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처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남성이었다. 순간적으로 후회스러웠다. 밀쳐 내고 다음 기회에 그럴듯한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며 일순 당황스럽다. 선영은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칠복의 목을 두 손으로 껴안았다. 마침 자신의 몸에 커다란 이물질이 깊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연약한 살이 감당하지 못하고 찢어지는 느낌이 연이어 전달되었다. 찰나적인 아픔, 그 아픔은 어떻게 못하는 아픔이었다. 선영의 몸이 튕겨지듯 올려 지면서 활처럼 굽어지며 경직되었다. 비명이 튀어 나왔다. 질끈 감은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칠복의 움직임에 따라 선영의 몸이 출렁거리며 그 때마다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칠복은 안쓰러웠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눌러 두었던 욕구는 선영의 몸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 온몸의 촉각이 그리로 향했다. 자신의 몸짓에 따라 출렁이는 선영의 백옥 같은 피부와 고통에 찬 신음소리는 본능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여인은 특이하게도 자신을 아프게 했던 남자를 잊지 못한다. 그것이 잠자리를 통한 동적인 행위에서 오는 아픔이라면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었다. 자신의 애를 태우며 속을 썩였던 정신적인 아픔도 이해가 되는 아픔이라면 감내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가져다주는 이해의 힘으로 어떤 난관이나 고난도 인내할 수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는 사랑이라는 원천의 힘에서 공급받았다. 그 사랑이 진실하던지 착각이던지 간에 불문하고 사랑의 에너지는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고 헌신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고마워요. 선영. 당신의 가장 소중하고 멋진 최고의 선물을 주어서 너무 고마워요. 당신을 만난 것이 내 생애 최고의 행운입니다.”
선영의 눈물을 혀로 핥아주며 선영의 몸 위에서 고백했다. 몸짓은 마쳤으나 가쁜 숨은 여전하다.
“고마워요. 오빠. 오빠의 최고의 선물을 제게 주어서 고마워요. 오빠를 만난 것이 제 생애 최고의 행운인줄로 저도 믿어요. 고마워요. 흑흑”
선영이 겨우 눈을 떠서 칠복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파과의 아픔은 넉넉히 참을 수 있는 아픔이었으나 어찌나 긴장하고 온몸에 힘을 주었던지 사방 군데가 지끈지끈 하고 얼얼하다.
“엉엉,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다니 못 됐어. 엉엉”
칠복의 목을 껴안고 더없이 소중하다는 듯 몸을 붙이면서 선영이 징징거렸다. 그리고는 칠복의 엉덩이를 꽉 꼬집었다. 왜 나만 아파야 하냐 너도 아파봐라 하는 표정으로 꼬집고는 비틀어 뜯었다. 상당히 아프다. 칠복이 깜짝 놀라 후다닥 선영의 몸에서 내려왔다.
“아이고 아파라.”
“흥흥 쌤통이다. 호호호”
칠복의 몸이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자 자유로워진 다리를 허공에 흔들어댔다. 칠복의 팔에 선영의 머리가 파고들었다.
“오빠. 좋았어?”
선영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뒷일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 이 문제로 칠복의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걱정이 태산인데 여기에 대고 좋았느냐 안 좋았느냐 하는 말이 나올 때냐.
“웅 좋았어.”
물어 보고 난 뒤에 칠복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금방 나오지 않는 대답에 불안해진다. 겨우 마뜩한 표정으로 좋았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선영이 바짝 긴장하며 약이 오른다. 그래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고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어 놓고 겨우 마지못해 좋았어 하고 대답을 해? 선영의 눈 꼬리가 샐쭉해지면서 칠복의 팔에서 머리를 빼냈다. 자존심 상해. 기껏 순결을 바쳤는데 이런 대접이나 받다니...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등까지 돌리고 훌쩍이는 선영을 보고 나서야 칠복은 자신이 건둥건둥하게 대답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등 뒤로 꽉 안았다. 목에 입술을 대고 몇 번의 입맞춤을 하고 말했다.
“선영이가 너무 너무 좋은데 뒷일이 너무 걱정이 되어서 아주 좋았다는 말로 표현을 하지 못했을 뿐이야”
“오빠 무슨 말이든 하긴 해야 하겠는데 다른 말보다 그 말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내가 여자가 되었는데 기쁨을 주는 여자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서 수치스러움을 간신히 참고 물어 본거예요. 뒷일이나 장래일은 나중에 저와 함께 이야기를 해도 충분한 것이지요. 내가 오빠에게 기쁨을 주는 여자가 되었는지 어떤지 그것이 오빠의 대답이 내게는 가장 중요했어요. 저하고 있을 때에는 제게만 몰두해 줘요. 이제 한 몸이 되었으니 오빠의 걱정이 제 걱정이고 오빠의 고민이 제 고민이 된 거예요. 너무 불성실했어요. 자존심에 상처 입었어요.”
칠복의 얼굴을 향하여 몸을 돌리고 선영은 꾸짖듯 말했다.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지 충분히 알겠다.
“선영아 나는 너무 좋아서 정신을 잃었었어. 그리고 이렇게 좋은 선영이와 언제까지나 함께 살고 싶은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 하느냐 하는 문제가 너무 아픈거야. 그래서 그랬던 것이니 용서해요.”
선영이 칠복의 눈을 이윽히 쳐다보며 칠복의 젖꼭지를 비틀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봐요. 얼마나 좋았는지”
“아이고 그걸 어떻게 일일이 설명을 하누. 당신 몸을 통해 내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다 말해 주었는디”
“호호 정말이야요? 좋아라. 오빠 나 목말라요. 옷 벗고 있어서 민망하니까 오빠가 가져다 줘요. 시원하게 메실차로”
찰싹 칠복의 품에 안겨 선영이 아양을 떨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못 견디겠구나. 살포시 안아 주었다. 매끌매끌한 피부의 감촉이 척척 감겨 온다. 목이 마르기는 칠복도 마찬가지이다. 칠복은 두 잔의 메실차를 와인 잔에 타왔다.
“어머 좋아라. 브라보 해요. 우리”
“그랴”
“우리 둘 영원히 행복한 삶을 위하여”
“위하여”
“하나님 고마워요. 요렇게 좋은 낭군을 주셔서”
선영이 배시시 웃으며 하늘을 향해 와인 잔을 들고 허공에 부딪쳤다. 벌컥벌컥 소리가 나도록 달게 마셨다.
“선영아 부탁이 있어.”
“그게 뭐야 오빠? 다 들어 줄께요.”
“여보하고 불러 봐 줘.”
“어머 그게 부탁이야요? 어머, 어머 여보라니... 폭삭 늙은 것 같어. 잉잉”
“하기 싫으면 말구”
“여어보”
입을 크게 벌려 여보 해 놓고 나니 어지간히 쑥스럽다. 그 말의 의미를 할 수 없이 생각하는 동안에 선영의 젖꼭지가 딱딱해졌다.
“여보 한 번 더하자.”
“한 번 더? 그거 자꾸 해도 되는 거야요? 애고 지금은 안 돼요. 얼얼해서... 혹시 내가 얼마나 좋았냐고 물어 본 것 때문에 하자고 하는 것 아냐요?”
“아니야. 나는 두 번째 할 때 최고로 만족해. 그건 자주 할수록 좋은거야.”
“어머 그거 병적으로 좋아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오빠는 그런 것 아니지요?”
“아이고 무슨 소리야. 나는 변태가 아녀. 선영이가 첨이라 그런겨”
칠복이 선영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젖꼭지를 비틀며 갓난아기같이 장난을 친다. 자극을 받으니 아랫배가 따뜻해지면서 욕구가 올라온다. 그 아픔이 지나가고 나니 그 아픔은 쌉싸롬한 아픔으로 뇌리에 남았다. 커피를 처음으로 마시고 난 뒤에 그 쌉싸롬한 맛에 왜 이걸 좋아할까. 쌉싸롬하고 별 매력도 없는 맛인데 했던 기억이 연상된다. 결국은 그 맛이 좋아지고 길들여지지 않았더냐. 이것도 똑 같은 것 같아.
“웅 오빠 한 번 더 해 줘.”
벌써 길들여진 것인가. 처음과 같은 긴장은 없었다. 오히려 칠복의 율동에 따라 자신의 몸도 따라 움직였다. 찰박찰박 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도 했으나 그 소리가 더욱 흥분시켜 주었다.
“오빠 좋았어?”
“웅 너무 좋았어. 죽을 것 같이 좋았어.”
“오빠 나두 이번에는 힘들지 않았어. 중독될 것 같아.”
꽉 껴안았다. 깊은 입맞춤으로 서로 고맙다는 말과 신뢰와 믿음을 보내고 확인했다. 선영은 그제야 부부간에는 말로 하는 대화도 있지만 육체적인 대화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사람의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샤워를 하기 위해 일어난 시트에는 흘러내린 땀방울과 함께 장미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나 있다.
|
총신80회동문 
전체보기
